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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81화 (81/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81화

“……프레사?”

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카를라였다.

카를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프레사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안경 너머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프레사는 미리 준비한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카를라가 더 빨랐다.

“역시 당신은…… 무언가 알고 있는 거죠?”

“……네?”

“황제 폐하께서 지시하셨나요? 수석 약제사님을 조사하라고 보내신 거 맞죠?”

“아, 아뇨. 저는 그냥 청소하려고…….”

평소와 너무 다른 카를라의 태도에 프레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카를라는 어째서인지 의지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청소 때문이라니 말도 안 돼요! 당신은 분명 저 쓰레기 같은 수석 약제사를……. 어머,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말이 함부로 나왔네요. 어쨌든 전 프레사가 처음 왔을 때부터 믿었어요!”

카를라는 프레사가 황제 폐하의 은밀한 지령을 받아 약제부의 비리를 파헤치러 온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

‘설마 그래서 오늘 일부러 열쇠를 준 거야? 뭔가 찝찝하기는 했는데…….’

사실 카를라가 엘리엇과 한통속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는 했지만, 그 반대일 줄은 전혀 몰랐다.

무슨 이런 황당하고 어이없는 경우가 다 있담.

어쨌거나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프레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굴렸다.

아무래도 카를라는 그녀를 황제의 명을 수행하는 비밀 요원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이건 라우렐과 전혀 상관없이 프레사 혼자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하지만 카를라 역시 수석 약제사를 고발하고 싶어 한다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몰라.’

어디에서든 내부 고발자란 상당히 찾기 힘들었다.

특히 약제부처럼 한 명이 권력을 장악한 상태라면 더욱.

‘확실히 카를라는 처음부터 다른 약제사들과 달랐어.’

지금껏 약제부 사람들을 살펴보았는데, 오직 카를라만이 엘리엇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그때부터 카를라를 눈여겨보기는 했다. 그런데 카를라가 정말 엘리엇을 적대시한다면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잠시 고민한 프레사는 방긋 미소 지으며 카를라의 손을 꼭 붙잡았다.

“맞아요, 카를라. 저는 황제 폐하의 특별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온 거랍니다. 그러니 이건 비밀로 해 주겠죠?”

“무, 물론이에요! 역시 제 예상이 맞았군요! 폐하께서는 이미 엘리엇 루퍼트를 눈여겨보고 계셨던 거예요.”

카를라는 프레사의 손을 마주 잡으며 감격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거짓말하는 건 여전히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일로 카를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훨씬 수월할 터였다.

프레사는 시간을 한번 확인한 후 카를라의 손을 잡아끌었다.

“일단 여기 계속 있는 건 위험하니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요, 카를라.”

두 사람은 약제부실과 조금 떨어진 정원에 자리 잡고 앉았다.

구석에 자리한 아주 작은 휴게 장소였기에 드나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카를라는 프레사의 맞은편에 앉아서 결연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사실 약제부 인원 충당은 수석 약제사의 고유 권한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갑자기 황제 폐하와 대공 전하를 등에 업고 나타나니 경계할 수밖에요.”

“고유 권한이었다면…… 지금껏 수석 약제사가 보조 약제사를 전부 채용했다는 건가요?”

“네, 맞아요. 채용 공고는 공식적으로 올렸지만, 면접에서 합격하는 사람은 전부 수석 약제사의 마음대로였거든요.”

“정식 약제사는요?”

“정식 약제사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보조 약제사로 일정 기간 일한 다음 국가시험에 합격 후 정식 약제사가 되는데, 이 정식 약제사를 최종적으로 채용하는 사람은 수석 약제사니까요.”

열심히 노력해서 시험에 합격해도 황성 약제사가 되려면 엘리엇 루퍼트의 눈에 들어야 한다니.

‘어느 곳이나 살아가는 건 비슷하네.’

프레사는 이미 잘 아는 현실에 작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완전히 독재네요.”

카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요. 프레사도 알겠지만, 약제부는 정말 작고 힘없는 부서예요. 신관처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번 반출되는 약이라고는 연고나 진통제 같은 약이 전부니까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든 아무도 관심 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라우렐은 왜 프레사를 약제부로 보낸 걸까?

라우렐이 아무 생각도 없이 프레사를 약제부 직원으로 고용했을 리 없었다.

그는 이 나라의 황제였다.

하지만 리카온의 말을 들어보면 황제의 권력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일들도 꽤 많았다.

카를라의 말처럼 루퍼트 가문은 아주 오래도록 수석 약제사를 배출한 가문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수석 약제사 가문인 것뿐만 아니라, 제국에서 꽤 유명한 백작 가문이라고 들었다.

손을 대려면 꽤 번거로울 것이 분명한 그런 존재.

‘어쩌면 황제 폐하 역시 무언가 짐작하고 있는 건가?’

어쩌면 라우렐은 본인이 직접 관여하기에는 애매한 일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프레사의 짐작일 뿐이었다.

‘조만간 라우렐을 만나야겠어. 그럼 확실한 의중을 알 수 있겠지.’

처음에는 단순히 프레사에게 고마움을 느껴 보상해 주려는 생각으로 약제부에 배정한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한 듯했다.

“저는 그래서…… 증거를 찾고 있었어요. 프레사 당신도 찾았겠지만요. 허위로 약초의 효능을 기록한 기록지요.”

역시 카를라는 허위 기록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맞아요. 다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 맞죠?”

카를라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정식 약제사들도 보조 약제사들도 모두 수석 약제사의 눈 밖에 나는 걸 두려워해요. 그랬다간 이곳에서 일할 수 없게 될 테니까요.”

카를라가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다들 황실 약제실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요. 저 역시 그래서 갈등했어요. 이 사실을 폭로해도 되는지 말이에요.”

“결국 정의로운 선택을 한 거잖아요, 카를라.”

프레사는 손을 뻗어 카를라의 손등을 감싸듯 쥐었다.

그녀의 손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프레사에게 실상을 털어놓고 있지만, 아무래도 꽤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동료를 배신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겠지.

어쨌든 카를라는 프레사보다 이곳에서 훨씬 오래 일했으며 다른 약제사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카를라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있다가 아래로 늘어트렸던 시선을 들어 프레사를 마주 보았다.

“제가 두려웠던 건…… 황제 폐하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고 해도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날 믿어요, 카를라. 황제 폐하께서는 절대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으실 거예요.”

프레사가 확신하는 어투로 단호하게 내뱉자, 카를라는 그제야 옅게 미소 지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해 주니 안심이에요.”

프레사는 카를라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마주 웃었다.

사실 남들이 보면 심각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프레사는 이 상황이 꽤 흥미로웠다.

‘비리 고발이라니, 약제부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될 거야.’

물론 한동안은 소란스럽겠지만, 프레사는 고일 대로 고여 썩어가는 약제부를 재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왕 자리 잡기로 한 거 제대로 해내야지.’

비리 척결, 프레사의 새로운 목표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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