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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84화 (84/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84화

프레사와 카를라가 탄 마차는 곧 낯선 장소에 도착했다.

제도와 조금 떨어진 곳의 작은 마을은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이런 평화로운 곳에서 사기나 치고 다니다니.’

프레사는 잘게 혀를 차곤 다시 양피지를 펼쳤다.

발자국은 그녀가 선 건물 앞에서 끊어졌다.

추적 가루의 단점은 바로 이거였다.

공간이 분리되는 순간 추적 또한 중단된다는 점.

‘나중에 보완해서 판매해 볼까. 마탑에서 팔면 꽤 인기가 많을 텐데.’

일반인에게 판매하기에는 악용될 가능성이 있으니 마법사들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프레사는 영락없는 장사꾼 같은 생각을 하며 양피지를 접어 옷소매에 집어넣었다.

“여기에서…… 그런 쓰레기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겠죠?”

카를라가 흘러내린 안경을 바로 추켜올리며 중얼거렸다.

그 순한 얼굴에서 이렇게 거친 말이 튀어나올 때마다 프레사는 흠칫 놀랐다.

외모와의 괴리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닌가 보네요.”

“네. 입구가 안 보여요.”

“비밀 문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프레사는 단단한 벽돌로 막힌 건물을 손으로 꾹 눌러 보았다.

추적 가루는 이미 리스에게 묻혀서 여러 번 실험했으니 실패할 리가 없었다.

‘역시 사기꾼이라서 그런지 잔머리가 잘 굴러가네.’

다른 입구가 없는지 찾아봐야 할 듯싶었다.

“카를라는 저쪽으로 가 줄래요? 저는 이쪽을 확인해 볼게요. 혹시 모르니까 이것도 챙겨가고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이 약을 써요. 잠시 상대의 시야를 흐리게 해 줄 거예요.”

프레사는 카를라와 구역을 나눠서 입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부디 조심해요, 프레사.”

염려를 덧붙인 카를라는 프레사가 건넨 약을 들고서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프레사는 그녀의 야무진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곧 건물 벽을 더듬으며 걸어 나갔다.

‘마법 도구 같은 걸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네.’

언젠가 리카온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지정된 사람 이외의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속임수 마법이었다.

프레사는 벽을 손으로 꼼꼼히 훑으며 다른 벽과 다른 점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때.

‘어라.’

손가락 끝에 작은 모래알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추적용 가루.’

프레사는 손가락에 묻은 반투명한 가루를 가볍게 문질렀다.

그녀가 만든 추적용 가루였다.

‘여기로 들어갔나 보네.’

프레사는 씩 웃으며 벽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단단한 벽이 흐릿해지는 듯 보이더니 그 자리에 낯선 문이 나타났다.

‘인지하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고 들었는데 진짜였구나.’

사기에 최적화된 마법이었다.

루퍼트 가문은 사기로 번 돈을 이런 마법 스크롤을 구매하는 데에 사용한 모양이었다.

‘역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니까.’

이미 몇 번이나 황실 약제사를 배출하고 제국 내에서 이름도 알릴 만큼 알린 루퍼트 가문이 이런 치졸한 사기 행각이나 벌이고 다니다니.

돈 욕심이 얼마나 많은지 프레사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프레사, 문을 찾았네요!”

때마침 카를라가 숨을 몰아쉬며 프레사에게 다가왔다.

프레사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네, 방금 찾았어요. 이제 오늘 할 일은 끝이네요. 고생했어요.”

“휴. 너무 짜릿하고 재밌었어요! 꼭 탐정이 된 기분이었다니까요. 아직도 심장이 두근두근해요.”

카를라가 상기된 얼굴로 조잘거렸다.

이제 프레사가 계획한 일은 모두 진행되었다.

루퍼트 부자가 사기 치는 장소를 알아낼 것.

대책 없이 안에 쳐들어간다거나 그런 뻔한 짓은 벌이지 않을 것이다.

프레사는 문고리와 문 전체, 그리고 문 앞에 발이 닿을 곳까지 추적용 가루를 넉넉히 뿌렸다.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가루를 어딘가에 묻힐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 가루는 물에 씻겨 내려가지도, 쉽게 털리지도 않으니 며칠 동안은 계속 남아 있을 터였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본 프레사는 손을 탁탁 털어냈다.

‘이제 준비는 끝났으니 남은 건 아이리스에게 부탁하는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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