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90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프레사는 당황한 채 한참 굳어 있었다.
「……아무래도 부작용인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이상한 쪽으로 나타난 부작용.」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지켜보던 리스가 한 마디 툭 내던졌다.
프레사는 멍하니 붉은색 강아지를 쳐다보다가 이마를 짚었다.
“의사소통은 될까요?”
「딱 봐도 네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만.」
“끼잉…… 낑…….”
리스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프레사가 말할 때마다 클로가 불안한 눈치로 그녀의 다리를 벅벅 긁어댔다.
불쌍한 강아지 소리를 내는 건 덤이었다.
프레사는 강아지를 안아 들고서 두 눈을 맞추며 어색하게 말을 걸었다.
“분명 부작용은 독성인 줄 알았는데 미안해요. 예상하지 못했어요.”
“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괜찮다는 뜻인 것 같네요.”
프레사는 심란한 눈빛으로 클로를 빤히 쳐다보다가 리스를 응시했다.
“원래대로 돌아올까요?”
「장담은 못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늑대인간인지 그냥 인간인지겠지.」
“왈……!”
클로가 리스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짧게 짖었다.
짖는다는 표현을 쓰게 될 줄이야.
프레사가 혼란스러움에 이마를 짚는데 리스가 흥미로운 투로 재차 말했다.
「꼭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 같구나. 내가 보이느냐?」
“왈!”
클로가 다시 짖었다.
그의 시선은 리스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정말 리스를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리스가 클로의 복슬복슬한 정수리 위에 자리 잡고 앉아 프레사를 쳐다보았다.
「레사야, 이 늑대인간. 짐승이 되더니 내가 보이나 보다.」
“진짜네요. 역시 자연 친화적인 정령이셔서 그럴지도요.”
프레사는 클로와 리스를 번갈아서 쳐다보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스 님 말처럼 기다려 보면 돌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방법을 찾아야 해요. 그때까지만 불편해도 참아 보세요.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려놓을 테니까요.”
“왈왈! 으르릉…….”
클로가 프레사의 말을 듣고 알겠다는 듯 작게 짖다가 갑자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시선은 이제 프레사가 아니라 문을 향한 상태였다.
프레사가 의아하게 돌아보는 그때 누군가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정확히 두 번 똑똑 들려오는 소리에 프레사는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토록 일정한 간격으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리카온뿐이었다.
“레사.”
아니나 다를까. 리카온이 프레사의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해야 할까.
프레사는 또 고민의 늪에 빠졌다.
‘리카온 씨가 클로 씨를 몰라볼 리 없겠지. 게다가 더는 거짓말하고 싶지도 않고.’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클로 씨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려면 리카온 씨가 필요할 거야.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마법사들의 조언도 구해야 하고.’
조제법은 완벽했다.
프레사는 지금껏 조제 실수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알지 못하는 다른 원인이 있다는 뜻인데,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리스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리카온은 프레사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프레사는 잠시 리스와 클로를 바라본 다음, 한번 심호흡한 후 천천히 문을 열었다.
리카온은 휴식 중이었는지 편안한 셔츠와 바지 차림이었다.
“어서 오세요, 리카온 씨.”
“우리 여행 계획을 상의하려고 왔습니다. 내가 휴식을 방해한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리카온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프레사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말하는 여행은 프레사의 친부모를 만나러 가는 일이었다.
뭐, 따지고 보면 여행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할 만한 발언이었다.
애초에 리카온과 둘만 가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프레사는 굳이 그의 표현을 지적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쉬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왈……!”
마치 추임새를 넣듯 클로가 잘게 짖었다.
프레사에게로 꽂혀 있던 리카온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고, 곧 클로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단번에 지워졌다.
“……딱 봐도 그게 누구인지 알겠군요.”
나직이 중얼거리는 리카온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프레사는 힐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저주 해제 약을 잘못 만든 것 같아요. 클로 씨가 늑대인간이 된 게 저주일지도 모른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부작용으로 클로 씨가 이렇게 됐고요. 사고 치려고 한 건 아닌데, 미안해요.”
리카온은 클로를 빤히 응시하다 말고 프레사를 보았다.
“당신이 왜 사과해요. 분명히 이 늑대가 당신을 꼬드겼을 텐데.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당장 해 줄 수 없겠군요. 다른 마법사들에게 조언을 구하겠습니다.”
리카온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프레사의 탓을 한 적이 없었다.
프레사 또한 그랬지만, 그 탓인지 더 어깨가 무거워졌다.
물리적으로도 어깨가 뻐근한 걸 보니 강아지 클로의 몸무게가 생각보다 더 나가서일지도 모르겠지만.
프레사는 옅게 미소 지으며 감사인사를 남겼다.
“고마워요.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뭐, 차라리 잘됐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위험하지 않을 테니까. 생각해 보니 영영 이 꼴인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왈! 왈왈! 왈!”
리카온의 가벼운 비아냥에 클로가 발끈해서 크게 짖었다.
프레사는 클로의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시네요, 리카온 씨.”
“저는 빈말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만.”
“네, 네. 그래도 도와주신다고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프레사가 웃으며 말하자 리카온이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클로가 마탑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리카온 덕분이었을 것이다.
마탑 소속이 되려면 마탑주의 허락이 필요할 테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툴툴거리는 걸 보면 묘하게 사람다워서 오히려 귀여워 보였다.
‘또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다니.’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생각을 멈춘 프레사는 리카온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서둘러 표정을 갈무리했다.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짤막한 침묵이 방 안을 맴돌았으나 다행히 리카온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쨌든 이 녀석은 내가 데려가죠.”
그러면서 클로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프레사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대답했다.
“제가 돌볼게요.”
리카온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했다.
“……당신이 돌보겠다고?”
“네. 제 실수였으니 책임을 져야죠.”
“당신은 그저 저 개를 도와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클로는 마탑 소속이니 내가 책임져야죠.”
리카온은 의외로 단호했다.
하지만 그 말처럼 클로는 마법사들에게 가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동료들일 테니 클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지 않을까?
리카온에게 설득당하기 직전인 그 순간, 클로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의사를 표현했다.
꼭 먹기 싫은 약을 코앞에 둔 아이 같은 태도였다.
아무래도 리카온의 품에는 안기기 싫은 듯했다.
‘이런 모습으로 어리광을 부리니까 모르는 척할 수가 없네.’
클로가 원래는 프레사보다 훨씬 큰 늑대인간인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지금은 품에 쏙 들어오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였다.
심지어 클로의 눈빛이 너무 간절해 보였다.
꼭 비 맞은 강아지처럼 안쓰러운 모습에 프레사의 마음도 약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프레사는 클로를 꼭 껴안은 채 차분하게 의견을 내보였다.
“역시 제가 돌보는 게 좋겠어요. 리카온 씨를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누가 누구를 무서워합니까? 클로, 넌 진짜 강아지가 아니야. 프레사 품에 숨으려고 하지 마.”
리카온이 눈을 가늘게 뜨며 클로를 쳐다봤지만, 클로는 아예 프레사의 팔에 고개를 푹 파묻었다.
아무래도 둘만 있을 때 혼이라도 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껏 클로를 향해 보인 리카온의 말을 떠올리면 영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클로가 이렇게 된 데에 프레사의 책임이 컸으니 최대한 클로에게 맞춰 주고 싶었다.
프레사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대신 리카온 씨에게 부탁이 있어요.”
“뭡니까?”
리카온은 프레사의 결정이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늘 그랬듯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프레사는 빙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강아지 용품이 당장 필요해요.”
리카온이 드물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왕! 왕!”
언제 기가 죽었느냐는 듯 클로가 꼬리를 방방 흔들며 프레사의 말에 동의했다.
「어쩌다 개판이 됐는지, 원.」
프레사의 어깨 위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던 리스가 혀를 쯧쯧 차며 중얼거렸다.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개판이었다.
“뭐, 알겠습니다. 당신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준비하는 겁니다.”
결국 리카온이 떨떠름하게 프레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고, 프레사는 그렇게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물론 진짜 강아지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가족을 들인 기분은 비슷했다.
그리고 다음 날 리카온이 강아지 용품을 들고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아지 용품이 맞는지 의문인 것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