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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91화 (91/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91화

프레사는 황당한 눈으로 리카온이 가져온 것들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강아지용은 아니었다.

너무 커서 프레사가 덮어도 될 듯한 푸르죽죽한 색의 담요와 분명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남은 그릇을 보면 확실했다.

과일이나 채소를 담았던 나무 상자에 물건을 넣어온 것만 봐도 새것이 아니었다.

엄연히 인간인 클로에게 귀여운 장난감 같은 건 필요하지 않겠지만, 리카온치고 너무 쪼잔한 결과 아닌가?

다행이라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마련한 강아지 화장실이 꽤 근사하다는 점이었다.

‘이상하게 화장실만 공들여서 준비해 왔단 말이지. 가장 중요한 거긴 하지만.’

프레사는 묘한 표정으로 바로 옆의 리카온을 응시하며 물었다.

“리카온 씨, 정말 이게 강아지 용품이 맞나요?”

“지금이야 강아지가 됐지만, 실제로는 ‘아주 건장한 성인 남성’입니다. 이 정도는 돼야죠.”

리카온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으나 프레사는 그가 굳이 강조하듯 또박또박 말한 내용을 알아차렸다.

아주 건강한 성인 남성.

프레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리카온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설마 클로 씨를 질투하시는 건가요?”

“네.”

“네?”

지나칠 만큼 짧고 굵은 대답이라서 도리어 프레사가 당황한 얼굴로 입만 벙긋거렸다.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클로를 돌보는 이유는 별거 없었기에 리카온이 질투할 거리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건 프레사의 생각이고 리카온의 입장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원래 친구 사이에도 더 친한 사람이 생기면 서로 질투하는 법이지.’

프레사가 속으로 엉뚱한 결말에 다다랐을 때, 리카온이 팔짱을 꼰 채 말을 이었다.

“클로가 사용하던 것들이니 오히려 익숙해서 나을 겁니다.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서 투정 부리는 것만은 아니니 그렇게 심란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건 그렇지만…….”

“왕, 왕!”

강아지가 된 후로 신체 능력까지 강아지로 바뀌었는지, 종일 잠만 자던 클로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짧은 다리 탓에 뒤뚱거리는 모양새였으나 제법 씩씩한 태도였다.

프레사의 옆까지 달려온 클로가 자신의 물건을 알아봤는지 꼬리를 흔들며 담요 속으로 파고들었다.

리카온의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클로는 새로운 것보다 쓰던 것이 더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사람일 때도 너무…… 어린아이 같아서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지금 클로는 강아지의 삶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기는 했지만, 그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큰일이었다.

프레사는 담요 위를 굴러다니는 클로를 착잡하게 바라보다가 리카온을 응시했다.

“그나저나 제 다른 부탁은 어떻게 됐을까요?”

리카온 역시 클로를 빤히 보다가 프레사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를 말하는 거라면 제드에게 맡겼습니다.”

“제드 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제드는 요즘 마탑과 황궁을 오가며 바쁜 기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가 치치를 돌봐 주겠다니 프레사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치치가 클로를 만나면 아무래도 충격을 받을지도 몰라 당분간 이 일을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물론 치치가 프레사의 말을 알아들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클로는 리카온의 명령으로 잠시 멀리 임무를 떠난 상태였다.

리카온은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알리지 않는 편이 낫다고 했다.

프레사 또한 그 말에 동의했기에 강아지 클로의 존재는 비밀이 되었다.

‘제드 씨라면 나도 안심할 수 있고.’

새삼 리카온에게 제드처럼 신뢰할 수 있는 수하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리카온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급여를 올려 주지 않으면 그만두겠답니다. 그 늑대가 꽤 사나워서.”

프레사는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치치가 사납다고?

프레사는 치치가 클로를 닮아 사람을 좋아하고 덩치와 다르게 귀여운 늑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치치는 프레사와 만날 때마다 먼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몸을 비비곤 했다.

그런 치치가 사납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진짜로요?”

“진심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만둘 마음도 없을 테고.”

리카온은 여전히 무덤덤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프레사가 궁금한 건 제드의 사직 의사가 아니었다.

제드가 그 누구보다 리카온을 잘 따르는 건 제국 모두가 알 테니 그냥 어리광일 터였다.

프레사는 한층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제드 씨는 그럴 것 같지만, 치치 말이에요. 정말 사나운 성격이에요?”

“마법사들은 전부 그 늑대와 거리를 두는 정도입니다.”

“……그렇군요. 제가 볼 때는 정말 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였는데요.”

리카온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건 당신이 그 늑대를 치료해 줘서겠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네요. 저도 예전에 용독에 당한 늑대를 치료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하지만 그때 리카온 씨는 정말 외로운 늑대처럼 보였는걸요. 비유가 마음에 안 드세요?”

“그게 아니라…….”

“왕! 왕! 왕!”

담요 위에서 꾸벅꾸벅 졸던 클로가 그새 리카온과 프레사에게로 달려오며 짖어 댔다.

리카온의 말은 자연스럽게 끊어졌고 프레사는 굳이 그 말을 더 꺼내지 않았다.

리카온이 당황하는 모습은 그녀에게는 꽤 즐거운 일이었다.

프레사는 클로를 안아 들고 잘했다는 의미로 쓰다듬어 주었다.

동시에 리카온의 표정이 다시 떨떠름해졌지만, 그것마저 제법 귀여워 보였기에 프레사는 빙긋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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