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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92화 (92/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92화

크게 아픈 게 아닐 수도 있다.

제롬이 괜히 프레사의 눈치를 보느라 별일 아닌데도 연락했을지도 몰랐다.

프레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며 재차 물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 지금 어디에 있어?”

제롬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치, 침실에. 아무래도 독한 감기에 걸린 것 같아. 네가 와서 직접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연락했어.”

제롬은 진심으로 로렌을 걱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프레사를 응시했다.

미미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프레사는 다시 덜컥 겁이 났으나 겉으로는 침착하게 행동했다.

“지금 당장 갈게. 그러니까 로렌을 잘 지켜보고 있어, 부탁할게.”

“걱정하지 마.”

제롬이 사뭇 믿음직스럽게 말했지만, 프레사는 아직 그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지금 이게 연기라면 어쩌지?

제롬이 로렌을 해친 다음 프레사에게 거짓말하는 거라면…….

프레사는 서둘러 수정구를 끄고 벽에 걸려 있던 아무 망토나 걸쳤다.

느릿느릿 허공을 부유하던 리스가 서둘러 그녀의 어깨 위에 앉았다.

「지금 당장 갈 생각이냐?」

“네.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나도 갈 테니 화분을 챙기거라.」

“감사해요.”

프레사는 굳이 마다하지 않고 세계수 화분을 안아 들었다.

분명 별일이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심장이 빠르게 뛰는지 모르겠다.

꼭 좋지 않은 일어나기 직전의 그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왕! 왕!”

소파 위에서 뒹굴던 클로가 자기도 가겠다는 듯 펄쩍펄쩍 뛰며 짖었다.

프레사는 아주 짧게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알겠어요. 클로 씨도 같이 가요.”

만약 프레사가 바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클로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연구도 지연될 것이다.

차라리 약방으로 같이 가서 시간이 날 때마다 연구를 계속하는 편이 나았다.

프레사는 아무런 짐도 챙기지 않고 화분과 클로, 그리고 리스만 동행하고서 리카온의 방으로 향했다.

“리카온 씨, 저예요.”

문을 두 번 두드리며 이름을 부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리카온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레사? 무슨 일입니까?”

리카온은 프레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간을 살짝 좁혔다.

프레사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서일까.

프레사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있다가 나직이 대답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지금…… 약방에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군요. 표정이 안 좋습니다.”

톡.

리카온의 손가락이 프레사의 뺨을 부드럽게 스쳤다.

오늘따라 그 짧은 접촉이 유난히 다정했다.

프레사는 리카온을 올려다보다가 신중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로렌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얼마나 아프길래 이렇게 놀랐습니까?”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지만, 연락한 제롬은 심각해 보였어요. 그래서 당장 가 보기로 한 거고요.”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프레사는 거기까지만 얘기하고 입을 도로 닫았다.

좋지 않은 생각이 여러 가지 떠올랐으나 금세 지워 버렸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속단하기는 일렀다.

그저 얼른 가서 로렌을 살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레사.”

리카온이 프레사의 손을 조심스레 잡으며 나직이 이름을 불렀다.

프레사는 살짝 시원한 그의 체온을 느끼며 느릿느릿 눈을 깜빡였다.

리카온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함께 갈 테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고마워요.”

프레사는 옅게 미소 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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