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93화
프레사는 지하의 조제실로 내려가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책부터 찾아보았다.
흔한 조제법 책부터 약초학 서적, 약을 포장하기 위해 모아 뒀던 오래된 신문까지 무언가 찾아낼 수 있는 거라면 전부 확인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로렌과 같은 증상은 없었다.
사제가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프레사가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신성력은 만능이 아니었다.
단순히 상처를 낫게 하거나 출혈을 멈추거나 기력을 회복시킬 수는 있지만, 본격적인 병의 치료는 고위 신관도 힘들어하는 분야였다.
그러니 이 세계에는 약사와 의사가 필요한 것이다.
‘리카온 씨처럼 특수한 독에 당했을 경우도 포함해서.’
새삼 프레사가 해독제를 만들어서 다행이었다.
그 어려운 것을 해냈으니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사는 의욕적으로 신문을 뒤적이다 말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로렌은 일주일 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고 했어.’
일주일 전에 로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했다.
프레사는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구겨진 신문을 펴다 말고 일어났다.
바닥에 얌전히 엎드려 있던 클로와 책상 위에서 저주 관련 책을 읽던 리스가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프레사는 그들을 한 번씩 마주 보며 말했다.
“잠시 제롬에게 다녀올게요.”
“왕!”
「알겠다. 나는 마저 찾아보마.」
프레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왔다.
제롬은 여전히 로렌의 침실 문 앞에 서서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프레사가 로렌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 후로 계속 저 상태였다.
‘쓸데없이 성실하네. 진작 저랬으면 좋았을 텐데.’
소프 저택에 살 때 지켜본 제롬은 게으른 망나니였다.
지금 프레사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면 다행이지만, 프레사는 아직 그를 온전히 믿을 생각은 없었다.
“제롬.”
“아, 프레사.”
프레사가 부르자마자 제롬이 움찔하더니 그녀를 돌아보았다.
“뭐 시킬 일 있어?”
“로렌이 일주일 전에 뭘 했는지 알고 싶어. 기억나?”
“일주일 전이라면…….”
제롬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곧 말을 이었다.
“아, 숲에 다녀왔어. 약초를 캔다고.”
“혼자?”
“……나, 난 약방을 지키라고 해서…….”
프레사의 질문에 제롬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웅얼거렸다.
프레사는 그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재차 질문했다.
“숲이라면 마을의 숲 말이지?”
“응. 맞아.”
프레사도 약초를 캐기 위해 자주 갔던 숲이었다.
하지만 로렌에게 동행이 없었으니 숲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디까지 들어갔던 건지 알아내기가 번거로웠다.
‘로렌에게 직접 확인하면 되기야 하지만…….’
프레사는 침실 쪽을 힐끔 살펴보았다.
로렌은 잠든 상태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힘에 겨운지 몇 번이나 뒤척였다.
‘깊게 잠들기 힘든 모양이야.’
그렇다면 더욱 깨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질문의 답을 찾아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텐데.’
로렌이 숲에서 겪은 일이 무엇이든 이 알 수 없는 병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줄 것 같았다.
그래도 숲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그걸 단서로 삼아 자료를 찾아보면 될 것이다.
프레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어. 지하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알려 줘.”
프레사는 제롬에게 다시 한번 단단히 말한 후 들고 온 해열제를 다시 챙겨 지하로 내려갔다.
원래 올라온 김에 로렌에게 먹이려고 했는데, 깨어나면 먹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롬에게 맡겨도 되겠지만…….
‘평생 누구 수발들어 본 적 없는 인간이야.’
제대로 약을 먹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프레사가 갖고 있기로 했다.
뒤통수에 제롬의 시선이 와 닿았으나 프레사는 돌아보지 않았다.
고작 몇 주 사이의 일로 그를 용서하기에는, 그녀가 소프 가문의 프레사로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