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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96화 (96/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96화

프레사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빛의 여파가 남은 탓인지 잠시 시야가 흐릿했으나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곧장 작은 강아지 클로가 서 있던 곳을 확인했다.

“……클로 씨?”

프레사가 얼떨떨하게 이름을 부르자 클로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왈?”

안타깝게도 클로는 여전히 강아지였다.

하지만 미묘하게 어딘가 달라졌다.

프레사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클로를 살펴보다가 어떤 변화인지 눈치챘다.

“조금 전보다 자란 것 같네요.”

확실히 클로는 새끼 강아지였던 몇 분 전과 다르게 조금 더 컸다.

털도 제법 자랐고 눈매가 한층 날카로워진 걸 보니, 역시 강아지가 아니라 늑대였던 모양이었다.

“끼잉…….”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그대로여서 덩치 큰 새끼 늑대로 보일 뿐이었다.

‘사실 사람의 모습일 때도 그런 인상이긴 했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과적으로 클로는 인간이 되지 못했다.

「……아직 이 정도가 한계인 듯하구나. 미안하다. 숲이 병들어 가는데 난 고작 이 정도라니.」

리스가 풀이 죽은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이는 바로 그였을 테니 프레사는 그 마음을 모를 수 없었다.

‘숲의 검은 흙을 보여 준 후부터 생각이 많아 보이셨지.’

리스는 처음부터 줄곧 이 모든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이러다 또 지난번처럼 땅을 파고 들어갈까 봐 걱정스러웠다.

프레사는 얼른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성장시키는 건 됐으니까 조만간 원래대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아예 아무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리스 님. 그전에 다른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 그렇구나. 일단 난 조금…… 쉬어야겠다.」

그러나 프레사의 다독임에도 리스는 좀처럼 기분이 풀리지 않는지, 쪼르르 세계수 화분으로 날아가 버렸다.

프레사는 비라도 맞은 듯 축 늘어진 그의 솜털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른 괜찮아지셔야 할 텐데.’

리스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초월자치고 너무 섬세했다.

물론 그 점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친 상처를 받을까 봐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할 때는 그렇게 두는 편이 나았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위로해도 닿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힘들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리스는 다시 기운을 찾을 것이다.

프레사는 그를 믿고 있었기에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낮춰 앉아 클로를 향해 말을 걸었다.

“클로 씨, 조금 자랐네요. 기분이 어때요? 오늘은 잘 안 됐지만, 제가 꼭 방법을 찾을게요.”

“왕……!”

“이번에도 알겠다는 의미겠죠? 저 아무래도 동물 언어에도 재능이 있나 봐요.”

“…….”

클로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귀만 쫑긋거릴 뿐이었다.

분명히 다 알아들었으면서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황당했다.

프레사는 그의 촉촉한 검은색 코를 톡 두드렸다.

“뭐예요, 그 표정.”

“왕!”

클로는 금세 귀를 펄럭거리며 방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리스는 이 일로 꽤 많은 자신감을 잃었지만, 클로는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긍정적이라서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안타까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프레사는 서랍에서 말린 고구마 간식을 하나 꺼내 클로에게 준 다음, 검은 흙이 조금 담긴 유리병을 챙겼다.

바로 파로 마을의 숲에서 채취해 온 검은 흙이었다.

‘오늘은 이걸 마저 연구해야겠어.’

이미 약방에서 초기 연구를 끝낸 상태였지만, 조금 더 자세한 것들을 알고 싶었다.

몸은 좀 피곤해도 무언가를 연구하는 일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황제 폐하께 설명드리려면 자료가 자세할수록 좋으니까.’

프레사는 작게 하품한 후 방을 나섰다.

오늘도 저녁 식사 전까지는 종일 약방에 머무를 예정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만 없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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