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00화
프레사는 일행을 돌아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여기인 것 같아요.”
“코테즈, 맞습니다.”
직접 문패를 확인한 리카온이 프레사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사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루이제는 언제나 그랬듯 침묵했고 클로는 오늘따라 얌전했다.
찰나의 침묵을 무너트린 이는 리스였다.
「무언가 걱정되는 모양이구나, 레사야.」
“상상했던 것보다는 좀 떨리네요.”
프레사는 누군가에게 하는지도 모를 말을 내뱉고 입을 다문 채 문패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막상 진짜 찾게 되니 심장이 쿵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지? 원하지 않는다면?’
퍼뜩 그런 불안함이 밀려들었다.
애초에 그런 애정을 기대하고 찾아온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레사.”
그때, 리카온이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프레사를 불렀다.
프레사는 자연스럽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그러니까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겁을 먹었던 걸까?
프레사는 리카온의 말을 듣자마자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곳에 온 이유는 친부모와의 재회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뿌리로 들어갈 방법을 찾으려고 온 거야.’
리스가 아직 능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으니 그전에 무엇이든 해 보고 싶어서였다.
이들이 프레사를 반기든 냉대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왕!”
프레사의 다리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던 클로가 마치 응원하듯 짧게 한 번 짖었다.
프레사는 그를 내려다본 후 다시 문패를 응시했다.
그녀가 털어 냈던 문패 위에 어느새 다시 눈이 쌓여 있었다.
프레사는 잘 보이지 않는 문패를 한 번 더 털어낸 후, 반쯤 열린 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오래된 나무 대문이 옆으로 밀리면서 묵직한 소리를 냈다.
프레사의 일행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프레사는 낯선 정원을 둘러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오로지 현관문만을 향해 걸어갔다.
똑똑똑.
그리고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등 뒤와 어깨 위 그리고 다리 옆에 있는 이들 덕분에 머뭇거리지 않았다.
잠시 후, 달칵 잠금쇠를 푸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살짝 열렸다.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데…… 누구십니까?”
낯선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그의 말투는 어째서인지 조금 지친 것처럼 들렸다.
프레사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 여러 번 고민했던 질문을 마침내 꺼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오래전에 아이를 잃어버리신 적 있으신가요?”
프레사는 천천히 후드를 걷고 남자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보랏빛 머리칼 위로 폭신한 눈이 느릿느릿 내려앉았다.
남자는 프레사와 닮은 청록빛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소프 가문의 그들과는 사뭇 다른 맑은 푸른빛이 프레사를 향하는 순간, 프레사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정말 내 친아버지일지도 몰라.’
프레사가 거울을 보며 상상했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프레사는 아무런 말이 없는 남자를 향해 다시 말했다.
“저는…… 프레사예요. 아주 어렸을 때 친부모님을 잃어버렸거든요. 수소문 끝에 이곳에 제 친부모님이 살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돼서 찾아왔어요.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최대한 예의 바르고 간결하게 사정을 얘기했으나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프레사는 굳이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답을 기다렸다.
“잃어버린…… 아이라고……. 지금, 레사 얘기를 하는 거요? 아니…… 설마…….”
선량한 인상의 남자가 쏟아지는 눈보다 더 새하얗게 질린 채 프레사를 멍하니 응시했다.
“……네가 레사, 레사 맞지?”
레사.
프레사의 애칭으로 쓰였던 이름이었다.
그가 프레사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떨어져 지냈는데도 말이다.
“레사, 레사라고…… 프레사? 아니, 레사가……. 이럴 수가……!”
남자는 프레사의 예상보다 더 놀랐는지 횡설수설했다.
프레사가 그를 진정시키려는 다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보, 그게 무슨…… 무슨 소리예요? 레사라뇨?”
이번에는 남자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었는데, 그녀 역시 프레사를 발견하자마자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괴로운 표정을 짓던 그녀가 비틀거리는 순간, 프레사가 재빨리 팔을 붙잡아 지탱했다.
“……괘, 괜찮으세요?”
“정말…… 레사니?”
“누가 봐도 우리 레사가 맞잖소! 그렇지? 우리를 찾아 준 거지?”
뒤이어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는 격양된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프레사가 그를 쳐다보는데 샤를 코테즈, 프레사의 친모일지도 모르는 여자가 침착하게 심호흡하며 말했다.
“일단…… 날이 추우니 안으로 들어오렴. 친구들도 얼른 들어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