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04화
안타깝게도 꼬리 마을에는 증상이 나타난 사람이 벌써 여러 명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인간이었고, 이로써 종족이나 특성에 따라 증상이 다르다는 것을 거의 확신했다.
프레사와 일행들은 그들을 만나 증상을 확인한 후 다시 코테즈 부부의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이곳에는 신관이 없었기에 증상을 완화시킬 약만 나눠주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 뿌리에 다녀왔고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인상을 찡그린 채 앉아 있던 아이작이 내뱉었다.
“역시 뿌리로 가는 수밖에 없겠군요.”
뒤쪽에 서 있던 루이제가 침착한 투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뿌리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리스 님께서 지금 상황에 뿌리로 들어가는 건 아직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네요.”
프레사는 리스의 말을 모두에게 전달했다.
이제 이곳에 있는 이들은 리스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그의 이야기를 전해도 상관이 없었다.
“레사.”
리카온이 프레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나직이 프레사를 불렀다.
프레사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일단 준비가 필요할 테니 제국으로 돌아가는 건 어떻습니까? 이곳에서는 당장 뭘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저도 그러는 편이 낫다고 생각 중이었어요. 제가 요정족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그에 맞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야 해요.”
프레사는 리카온의 말에 곧장 동의했다.
처음부터 세계수의 뿌리 근처에 다녀온 이들에게 병이 생겼으므로, 그곳은 오히려 바깥보다 더 위험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 뿌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중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급박할수록 더 고민하고 또 생각해야 했다.
그러려면 프레사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해야 했는데 그건 바로 약 조제와 식물을 성장시키는 능력이었다.
내내 그녀를 의문에 빠지게 했던 출생의 답을 찾았으니 그에 맞게 약을 만들면 될 것이다.
‘내 능력도 더 연구해야겠어. 지금껏 식물만 성장시켰지만, 요정족의 능력을 조사해 보면 더 넓게 활용할 수 있을 거야.'
페도르에게 마력을 나눠줘 그를 치료했으니 리스에게도 무언가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그럼 그렇게 하죠.”
“저도 동의합니다.”
“짐을 다시 챙겨야겠군요.”
다들 리카온과 프레사의 말에 동의했고 그들은 내일 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다들 각자 휴식을 취하거나 귀환을 준비하러 나섰고, 프레사는 어젯밤 사용했던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
겨울 햇살이 얇은 커튼으로 스며들어 한층 포근해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이 집에서 보낸 시간은 프레사에게 무척 특별했다.
‘처음에는 아무 기대도 하지 않으려고 했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부모님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곳을 떠나려니 아쉽고 씁쓸한 마음이 컸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프레사는 하룻밤 신세진 낡은 침대를 손으로 문지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세계수 화분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리스가 잠에서 깼는지 프레사의 어깨로 내려와 앉으며 말했다.
「아쉬운 모양이구나.」
“그러게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당연한 것 아니더냐. 이들은 네 가족이다. 네가 언제 돌아오든 반겨줄 이들일 텐데도.」
리스의 대답은 제법 확고했다.
그러나 프레사는 여전히 묘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꼭 이 좁고 포근한 방이 처음부터 그녀가 머무를 곳인 듯했다.
지금 돌아가야 할 곳은 따로 있는데도 말이다.
프레사가 한참 상념에 사로잡힌 그때, 샤를이 열린 문을 똑똑 두드렸다.
프레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샤를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레사, 잠깐 시간 괜찮니? 우리가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단다.”
잠시 말없이 샤를을 응시하던 프레사는 곧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