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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09화 (109/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09화

칼리스투스의 단호한 대답에 레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째서입니까? 당신들에게는 사람 한 명 살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세계수 화분만 건드리던 칼리스투스가 레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표정 없이 레인을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그를 똑바로 마주 보던 레인은 금세 기가 죽었는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때까지 침묵하던 칼리스투스가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누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냐.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

“그건…….”

레인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끝맺지 못하는데 칼리스투스가 못을 박았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칼리스투스가 이토록 냉정한 적이 없었기에 프레사 또한 조금 놀랐다.

‘세계수 가지를 달라는 건…… 훼손해야 한다는 의미니까. 칼리스투스 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긴 해.’

지금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세계수의 가지를 꺾는다고 생각하면, 프레사 또한 선뜻 그러겠노라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프레사는 레인을 신뢰할 수 없었다.

리카온에게 넌지시 레인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으나, 리카온 역시 이렇다 할 답을 주지는 않았다.

‘마법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녀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말수도 적고 혼자 지내는 성격이라 직접 대화한 적도 별로 없고.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합니까? 애초에 어쩌다 만났는지가 알고 싶은데.’

리카온은 프레사가 왜 레인에 대해 궁금해하는지 그게 더 알고 싶은 듯했다.

프레사는 리카온에게 사실대로 말했고 리카온은 당장 레인을 찾아갈 기세였다.

물론 프레사가 말리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지만.

어쨌든 마탑 내에서 레인은 희미한 존재감의 마법사인 모양이었다.

리카온이 마탑의 마법사를 한 명 한 명 관리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니 더 모를 수밖에.

‘하지만 여동생 이야기는 진짜일 거야.’

레인은 전에 없이 간절해 보였고 처음으로 솔직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과거의 일처럼 얘기하는 걸 보면 화상을 입은 지 이미 시간이 꽤 지난 듯했다.

‘그리고……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당시의 사고가 떠올라 힘들 거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 또한 괴롭겠지.

프레사는 레인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칼리스투스를 쳐다보았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아무래도 화상 흉터는 약이나 신성력으로 고칠 수 없으니까요.’

물론 프레사가 흉터 연고를 만들 수는 있지만, 완벽하게 지워 줄 수는 없었다.

그 마음의 소리를 들었는지 칼리스투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네 사정도 딱하긴 하니.”

“……!”

“세계수에게 직접 물어보거라.”

그 말은 즉, 레인 역시 이 여정에 동행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물론입니다!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얼마든지요!”

레인이 다시 원래의 과장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칼리스투스를 향해 머리를 숙여 보이더니 곧 프레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스승님, 제가 함께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프레사는 잠시 레인을 바라보다가 빙긋 미소 지었다.

“……대신 보호 마법을 좀 더 준비해 주시겠어요?”

“그 정도야 이 천재 마법사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레인이 또 익숙한 허풍을 떨었으나 프레사는 이제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네, 네. 천재 마법사님, 곧 뿌리로 떠날 테니 완벽하게 연습해 두셔야 해요.”

“이미 완벽하다니까요! 지금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레인이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보호 마법을 펼쳤으나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심지어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몇 초도 안 되어서 금세 사라져 버렸다.

레인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연습해 오겠습니다. 시간만 주시면 더 견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천재니까요!”

“하여튼 인간들이란.”

칼리스투스가 나직이 중얼거렸고 프레사는 속으로 그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인간이라서 이토록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각자의 목적과 목표, 꿈을 지니고서.

프레사에게도 그런 것들을 품고 있었기에 레인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프레사는 레인의 어깨를 토닥였다.

“일단 마법은 알아서 잘 연습해 오실 테니, 준비물부터 알려 드릴게요.”

“예, 스승님!”

“쯧.”

칼리스투스가 짧게 혀를 차더니 또 세계수 화분만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종일 저러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세계수를 상대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걸까.

프레사는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 레인에게 준비해야 할 것들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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