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10화 (110/120)

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10화

프레사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동안, 리카온은 전에 없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동안 프레사가 무리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제국에 온 후부터 단 한 순간도 푹 쉬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쓰러질 줄은 몰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와 웃고 떠들고 마주 보았던 프레사가,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는 순간 리카온은 세계수를 죽이고 싶었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세계수의 정령 또한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온몸의 마력이 팽창하고 살의만 느껴졌을 때, 프레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리카온 씨는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마치 달콤한 주문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실수를 저지른다면 프레사는 더는 리카온을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는 반듯하게 누워 잠든 프레사를 내려다보며 이성을 되찾았다.

기절한 줄 알았지만 다행히 그냥 지쳐 잠든 것뿐이었다.

이 세계가 무너지면 프레사도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리카온에게는 프레사와 함께할 수 있는 이곳이 중요했다.

‘당신이 이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세계니까.’

리카온은 촛불 하나만 켜진 침실에서, 반듯한 자세로 앉아 프레사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는 벌써 몇 시간 동안 아무도 이곳에 들이지 않았다.

세계수의 정령이 찾아와도, 프레사가 아끼는 하녀가 찾아와도 마찬가지였다.

프레사에게는 온전히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꼬박 오후가 다 가고 어느덧 밤이었다.

똑, 똑, 똑.

정확히 세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리카온은 문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고 무시했다.

“문 열어라. 내 계약자를 봐야겠다. 부수고 들어가는 걸 원하지는 않겠지. 꽤 소란스러울 텐데.”

칼리스투스의 목소리였다.

그가 프레사를 만나겠다며 찾아온 것이 벌써 세 번째였다.

“으음.”

칼리스투스의 음성이 꽤 컸는지 프레사가 눈썹을 찡그린 채 뒤척였다.

리카온은 덩달아 미간을 좁히고 손을 까딱였다.

그의 손짓에 반응해 굳게 잠겨 있던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칼리스투스가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프레사가 누운 침대 옆에 섰다.

리카온은 누가 들어오든 말든 여전히 프레사만 응시했다.

“레사는 좀 쉬어야 할 필요가 있다. 너도 알겠지만.”

칼리스투스가 리카온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리카온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문제라면 프레사를 억지로 쉬게 한다거나, 무언가를 하지 못하도록 막고 싶지 않다는 점이었다.

“지금 상황이 편하지 못하니 이런 일이 일어난 것 아닙니까.”

결국 리카온은 화살을 칼리스투스와 세계수로 돌렸다.

아니, 그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리카온은 칼리스투스가 어쩌다 프레사를 계약자로 정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 일을 떠맡았더라면 프레사는 자유롭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 내 잘못이지.”

칼리스투스는 순순히 인정했다.

리카온은 그가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니 도리어 속이 불편했다.

그래서 다시 입을 다물고 프레사가 내쉬는 호흡에만 집중했다.

칼리스투스 역시 잠시 침묵했으나 재차 말했다.

“그러니 레사가 가장 신뢰하는 인간을 찾아온 거다, 마탑주야.”

“…….”

“네가 레사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하.”

리카온은 바람 빠지듯 웃었다.

그것은 비웃음이나 한숨보다, 자조적인 웃음에 가까웠다.

프레사를 설득할 수 있다고? 리카온은 그녀가 무엇을 하든 적정선을 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써 왔다.

바로 그 신뢰가 담긴 시선을 받기 위해서.

그런데 이제 와 그걸 무너트리란 말인가.

“나는 레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도울 뿐입니다. 감히 이래라저래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칼리스투스의 한쪽 눈썹이 삐딱하게 틀어졌다.

“답답한 녀석.”

“…….”

“이대로라면 레사는 세계수의 기운을 이기지 못할 거다. 그러니 설득하라는 거야. 네 감정적인 욕심을 채울 생각만 하지 말고.”

리카온이 인상을 찡그리며 칼리스투스를 노려보았다.

억눌렀던 살의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때.

“……리스 님? 리카온 씨?”

프레사가 깨어났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