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16화
분명 숲의 어딘가에서 불어온 바람인데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저 피부를 스치고 가는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소름이 돋을 뿐이었다.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주변을 경계했으나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레사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안개 너머를 살펴보았다.
여전히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만큼 어둑어둑했다.
프레사는 허리춤에 찬 약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런 일도 없는 게 더 이상하긴 하네요.”
「……아무런 일도 없지는 않았다, 레사야.」
어째 칼리스투스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프레사는 고개를 돌려 그가 서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프레사가 올려다보던 칼리스투스는 사라지고 작고 귀여운 솜뭉치 모습의 리스가 둥실 떠올라 있었다.
“……리스 님?”
「망할 세계수 같으니라고. 뭐, 이미 망하기는 했는데.」
리스가 투덜거리며 프레사의 어깨 위로 날아와 앉았다.
세계수 욕을 하는 걸 보니 역시 세계수가 무슨 수를 쓴 모양이었다.
확실히 뚜렷한 자아가 있는 마법 생물이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 저와 리스 님 둘뿐이네요?”
프레사는 리스가 다시 솜뭉치가 된 데에 당황하다가, 곧 일행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그 바람이 문제로구나. 게다가 이 이상한 안개도. 일단 이동하자꾸나.」
리스가 침착하게 대꾸했다.
프레사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두 붙어 서 있던 이들이 어디로 간 건지, 다들 무사한지 걱정되어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 가만히 서 있어 봤자 일행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프레사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다들 나보다 강한 사람들이니까 괜찮을 거야.’
제롬이 신경 쓰이기는 했으나 그 또한 검을 다루던 이였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마음을 다잡은 프레사는 리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 그러고 보니 나침반을 챙겨 왔는데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마 소용없을 거다.」
리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레사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침반을 꺼내 확인했다.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켜야 할지 모르는 듯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프레사는 탁, 소리 나게 나침반을 닫았다.
“……리스 님 말씀이 맞았네요. 그럼 일단 저쪽으로 가 봐야겠어요.”
「내가 세계수의 기운을 찾아보마.」
리스가 프레사의 정수리 위로 올라갔다.
프레사는 만일에 대비해 언제든 약을 꺼낼 수 있도록 약주머니를 살짝 열었다.
‘다들 무사해야 할 텐데.’
세계수는 정말 무슨 생각인 걸까.
어쩌면 칼리스투스와 둘만 만나고 싶은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일행을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계수는 계속 리스 님에게 말을 걸었다고 했지.’
무슨 말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으나, 분명 칼리스투스를 만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세계수와 정령은 평생을 함께하도록 설계되어 이 세상에 온 이들이었다.
‘어쨌든 세계수를 찾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만나게 될 거야.’
다른 사람들 또한 프레사와 같은 생각 중일 테니 최종 목적지에서 만날 가능성이 가장 컸다.
프레사는 주변을 살피며 침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낯선 땅을 짓이기는 프레사의 발소리만이 사방에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