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만 119화
클로는 늑대인간이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강아지가 되기 전까지는.
늑대인간인 그를 반기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도 없었다.
상처 입은 그를 우연히 발견한 리카온이 마탑에 머무르게 해 준 후에도 그는 외톨이였다.
그러다 늑대 치치를 만났고, 리카온처럼 행동하고 싶어서 치치를 데려왔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도 클로는 치치와 함께였기에 만족했다.
치치와 리카온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프레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클로 씨!’
다정한 손길. 그가 늑대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피하지 않은 사람. 어리광에 가까운 부탁을 듣고도 노력해 준 유일한 존재.
클로에게 프레사는 어느새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지키고 싶었다.
프레사를 향해 날아드는 거친 나무줄기를 보는 순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놀란 프레사의 눈과 마주쳤을 때 클로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네가, 다치지 않아서.’
작은 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고통이 엄습했는데도 괜찮았다.
프레사가 이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어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데 죽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게 죽음인가?
이렇게 따뜻한 품에서, 포근하고 평온하게…….
“……씨……! 클, 로씨…… 클로!”
클로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어째서인지 시야가 달라졌다.
천국인가? 아, 늑대인간은 죽으면 어디로 간다고 했더라?
클로가 그런 생각을 하며 눈만 깜빡이는데 프레사의 얼굴이 보였다.
“프레사.”
얼마 만에 부르는 이름인지 모르겠다.
“……크, 클로 씨.”
프레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클로의 이름을 내뱉었다.
클로는 그제야 프레사가 그를 살려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클로는 씩 웃으며 물었다.
“나, 잘했어?”
프레사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표정으로 클로를 바라보았다. 클로는 순진한 아이처럼 히죽 웃었다.
하여튼 프레사는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었다.
클로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온몸이 찌뿌둥했으나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오랜만에 보는 제 손을 여러 번 쥐었다 펴며 질문했다.
“그럼 나 이제 인간이야?”
“음, 클로 씨. 그게…….”
프레사가 머뭇거리며 클로의 머리 위를 응시했다. 커다란 늑대 귀 한 쌍이 파드득 흔들렸다.
공교롭게도 클로는 아직 늑대인간이었다.
“아무래도 클로 씨는 저주 같은 게 아니라 순혈 늑대인간이었나 봐요.”
“그렇구나.”
클로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사는 미안한 눈치였으나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늑대인간이든 아니든 프레사는 늘 다정했으므로, 종족이야 어떻든 중요하지 않았다.
클로는 프레사의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마음을 전했다.
“프레사, 고마워.”
프레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클로 씨. ……하지만.”
보통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잔소리라던데.
클로가 불쌍한 척 귀를 아래로 축 늘어트렸으나 프레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지 마세요. 아셨어요? 정말 죽을 뻔했다고요.”
“알았어, 알았어.”
“건성으로 듣지 마시고…….”
“그나저나 저기는 심각하네.”
클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치 중인 리카온과 칼리스투스 그리고 세계수를 쳐다보았다.
리카온이 그들 사이로 끼어들자 칼리스투스와 세계수 사이에 틈이 생겼다. 난폭한 빛이 살짝 수그러드는 듯했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그리 다정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프레사 또한 자연스럽게 그들을 응시했다.
그녀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그리고 클로를 내려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클로 씨는 여기에서 쉬고 계세요.”
“프레사, 나도 같이…….”
“금방 올게요.”
프레사가 단번에 고개를 가로저어 클로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프레사의 표정이 너무 단호했고 또 슬퍼 보였다. 아무래도 꽤 어려운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클로는 프레사의 눈을 마주 보며 나직이 내뱉었다.
“다녀와, 프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