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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촉수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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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푹 자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했다.
피곤한 듯 개운한 느낌, 기지개하면서 머리에 피가 몰리는 감각, 그리고 턱에 무언가 달려 있는 듯한 묵직한 느낌.
'응?'
호기심삼아 수염을 약간 길러보긴 했지만, 이렇게 많이 자랐을리는 없을 텐데 하고 손으로 만져 보니—
—물컹!
"어라?"
말랑하면서도 단단한 느낌, 축축하면서도 매마른 이상한 감각에 눈을 내려다봤을 땐…
수많은 촉수다발이 수염을 대신하듯이 달려 있었다.
"으아악!"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당황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거울로 내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야겠다 싶어 화장실로 향하기 위해 방문으로 손을 뻗었지만—
"이게 무슨…"
—그곳에 방문따윈 없었다.
그리고 벽을 향해 뻗은 손을 봤을 때, 턱에 달려 있던 촉수같은 것 다섯 가닥이 마치 '이것이 네가 뻗은 손이다'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나는 그대로 까무러치고 말았다.
***
'으… 목말라.'
다시 일어났지만 여전히 같은 공간 같은 몸이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마실 거라도 있는지 찾아보자.'
방에는 침대와 책상,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지구본이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지구본과 달리 지구처럼 생긴 구체가 공중에 살짝 떠 있었고,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구001?'
섣불리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컴퓨터를 살펴보기로 했다.
[위대한 존재시여, 환영합니다.]
[이름을 정해주세요.]
'위대한 존재?'
이 방에는 나밖에 없으니 위대한 존재는 나를 칭하는 것일 테지만…
"이렇게 목말라 하는데 어떻게 위대한 존재야? 생긴 것도 그냥 촉수괴물 같은데."
'촉수괴물… 촉수괴물?'
"잠깐, 위대한 존재(Great One)?"
사람들이 말하는 크툴루 신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초월적 존재인 그레이트 올드 원.
하지만 올드가 빠졌다는 것은 아무래도 갓 태어난 존재인가?
이런 생각은 나중에 해야겠다. 지금은 빨리 컴퓨터를 살펴봐야겠는데…
"이름을 정하라니. 크툴루로 하는 게 좋으려나?"
[이미 있는 이름입니다.]
역시나 라고 해야 할지, 이미 있는 이름이었다.
'이미 있는 이름이라면 역시 존재하는 건가…'
아무래도 이름을 정해야 컴퓨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거 같은데 안타깝게도 내 네이밍 센스는 최악에 가깝다.
이름을 지으려면 역시 외형에서 따오는 것이 편할듯해 내 몸을 살펴봤다.
내가 원래 사람이여서 그런지 턱에 달린 촉수를 제외하면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팔을 여러 가닥의 촉수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보니, 정해진 형태가 없는 부정형인 듯하다.
게다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빛을 흡수하는 듯한 검은색과 그 안에서 별빛처럼 빛을 내는 점들까지.
'아니, 이건 진짜 별일수도.'
아무런 빛도 없는 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면 이럴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면 이름에 별이나 은하수의 이름을 넣는 게 좋을까.'
"그렇다면 이름은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에서 따와서 '라니아'라고 해야겠다."
누가 내 이름을 말한다고 소환되거나 폭발하거나 그렇진 않겠지. 애초에 사람 귀에 '라니아'라고 들리지 않을 수도 있고.
[위대한 존재, 라니아님. 환영합니다]
그렇게 켜진 컴퓨터 화면에는 단 두 가지만 있었다.
'상점'과 '지구'.
'상점은 말 그래도 상점일 테고, 지구는 뭐지?'
이렇게 생각하며 옆에 있는 지구본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 지구본을 살펴볼 수 있는 거 같은데… 내 눈으로는 못보나?'
지구본을 보면 엄청 큰 건물은 보이긴 했다. 집중하면 도시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생김새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위에서 보니까 불편하네. 역시 컴퓨터로 보는 게 편하겠지?'
지구를 클릭하니 생각대로 마치 스트리트 뷰처럼 볼 수 있었다. 다른점이라면 이건 실시간이라는 점일까.
그리고 아까 본 장소를 상상하며 그곳을 보고 싶다 생각하니 시점이 그 장소으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상점을 둘러볼 차례다.
[포인트 : 0]
상점에 들어가자 보이는 포인트. 이건 아마도 돈일터.
포인트는 어떻게 버는지 생각하다가 옆에 있는 물음표가 보였다.
'도움말이 있네.'
*지구에 미친 영향력에 따라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지구는 언제든지 리셋할 수 있으니 유희를 즐겨주세요.
'지구에 미친 영향력이라.'
—힐긋
컴퓨터 옆에 있는 지구본을 바라보았다. 나의 고향이었던 푸른별, 지구.
이제는 내가 침략자가 되어 무언갈 해야 한다니, 입안이 씁쓸해진다.
"일단 상점이나 마저 살펴보자."
[상품 목록]
물 : 5pt
식량 : 20pt [목록 보기]
짙은 안개 : 1000pt
알 : 500pt [목록 보기]
유사 환경 사육장 : 5000pt [목록 보기]
정수기 : 5000pt
…….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물. 게다가 식량도 있다.
"목록 보기가 있다는 건 다양하게 팔고 있는 모양이네."
스테이크, 햄버거, 피자, 백반 등등 여러 가지를 팔고 있었고, 목록을 쭉 내리다 한순간 내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인간?"
나는 당황해하며 설명을 읽었다.
[식용 인간입니다. 보기보다 연약하니 개조를 하려면 상점에서 팔고 있는 개조용 인간을 구입하세요.]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워 순식간에 말문이 막혔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이 상황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었다.
몸이 변해서 그런 걸까? 나는 분명히 인간이였을 텐데 식용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다니.
이런 당황스러움이 금방 가라앉는 것에 역겨움이 느껴졌지만, 그 역겨움 또한 금방 가라앉고 말았다.
나는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 외에도 먹을건 많다는 생각을 하며 다른 걸 살펴보기로 했다.
여러 가지 가구들과 괴상한 도구. 그중 가장 위에 있던 짙은 안개의 설명을 읽어 봤다.
[두 공간을 이어줍니다.]
간단한 설명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듯한 짙은 안개를 보니 어떤 영화가 떠오른다.
—꼬르륵!
"윽! 이젠 배까지 고프네. 빨리 포인트를 벌어야겠어."
시선을 완전히 지구본을 향한다. 이걸 만져도 될까 하면서 가장 큰 바다, 태평양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오."
시원한 느낌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온다. 그대로 손가락을 빼 맛을 보니 짭짤한 맛이 느껴졌다.
'진짜 바닷물이네.'
"영향을 주는 것 중에 가장 간단한 건 역시 존재를 드러내는 거겠지?"
나는 눈을 감고, 처음에 봤던 장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그곳으로 이동했다 생각하고 눈을 뜨니—
높은 빌딩들과 수많은 광고판,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까지.
나는 순식간에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도착했다.
"오, 진짜로 도착했네."
이렇게 한마디하자 근처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멍하니 날 쳐다보다가 쓰러졌고, 몇몇은 눈에서 피를 흘리거나 도망쳤다.
그리고 경찰같은 사람이 내게 총을 겨눴다.
'잠깐, 내가 총을 맞아도 괜찮나?'
내가 생각하는 사이, 경찰을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정확히 나를 향했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비유가 아닌 실제로.
손을 슬쩍 움직였더니, 느려진 시간속에서 평범하게 움직였다.
이대로 총알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내 몸이 얼마나 강한지 실험도 해 보기 위해 팔에서 촉수를 하나 뽑아내 총알을 향해 휘둘렀다.
총알이 촉수에 닿자, 파고들듯이 들어와 이대로 관통하나 싶었지만—
총알은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당황한 경찰이 총을 몇 번 더 쐈지만, 맞아도 맞아도 움찔대기는커녕 멀쩡한 나를 보고는 기절했다.
나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개미 한 마리가 내 앞에서 무엇을 한들 사람들이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똑같이 그런 것이다.
다른점이라면 인간이 개미 사이즈가 되었다는 점?
다시 한 번 내가 사람이 아니란 걸 느끼고는, 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구를 바라보았다.아니 이건 지구가 아니다.
몇 번이고 리셋할 수 있는 지구라니. 도움말에서도 유희를 즐겨달라 적혀 있기도 했고, 지구라고 하긴 그렇겠지.
그저 포인트벌이 도구— 혹은 장난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저 지구처럼 생겼고, 지구같은 문화를 가졌을 뿐이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었던 괴물인가, 혹은 인간의 기억을 가져 버린 위대한 존재인가.
"이젠 상관없어. 나는 '라니아'. 위대한 존재인 '라니아'다."
나는 지구001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선 뉴욕이 있는 미국부터."
쿵—
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작은 소리다.하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다른 대륙도 손보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존재를 없애버리기 위해.
나의 손을 보고 단체로 광증에 걸려 집단 자살한다던가, 깊은 곳의 쉘터에 숨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쉘터에 숨은 사람은 어떻게 찾나 싶었지만, 컴퓨터에 있는 '지구'의 검색 기능이 있어서 1시간 정도의 노력으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재밌긴 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진 않다. 이상한데 숨어든 사람을 찾느라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럼 이제 리셋을 할까."
[리셋 하시겠습니까?]
[총 포인트 : 12260]
[엔딩 세계멸망]
'포인트는 많이 벌었네.'
나는 물과 식량을 사려다가 잠시 손을 멈추었다.
정수기 : 5000pt
물의 천 배나 달하는 가격이지만, 이걸 사는 게 이득이겠지.
물컵도 사야겠네. 머그컵이 좋겠다.
그렇게 정수기와 머그컵, 식량을 사고 남은 포인트는 7230포인트.
다음번엔 이런 고생을 하고 싶지 않으니 따로 도구같은 걸 사서 해 봐야겠다.
"일단 정수기나 설치하고, 밥이나 먹자."
설치한 정수기는 온수와 냉수, 그리고 얼음까지 나오는 물건이었다.
"역시 정수기를 산 보람이 있네!"
머그컵에 냉수를 따르고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상점에서산 식량— 피자를 올려놨다.
그리고 한 입 크게 베어물며 지구본— 지구002를 바라봤다.
"다음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나는 이번 경험과 상점에 있는 물품들을 생각하며 다음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 검색 기능을 사용했다.
'크툴루'와 '르뤼에'.
그레이트 올드 원인 크툴루와 그가 잠들어 있는 곳인 르뤼에.
내가 이렇게나 지구를 건들였는데도 잠들어 있던 것일까?
[검색 결과 없음]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크툴루와 르뤼에가 없다는 건 이 지구가 정말로 복사본이라는 걸 입증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안배해둔 존재는 무엇일까.
너무나 복잡한 머릿속에 나는 그저 다시 피자를 크게 베어물며 머리를 긁어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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