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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2화 (2/154)

〈 2화 〉 지구­001

* * *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하와이의 남쪽, 남태평양해에 갑작스레 나타난 검은기둥.

최초 발견자는 하와이에 있던 주민들과 관광객들이었지만 이들 대부분이 실종되고, 섬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도 원인불명의 이유로 기절하거나 사망해 이런 기현상을 알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고 알린 사람은 누구일까?

그들은 바로 국제우주정거장의 연구원들이었다.

지구의 궤도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평소와 같이 지내던 연구원들은 남태평양에 있는 커다란 검은기둥을 발견하고 이를 NASA에 알렸다.

미 정부는 이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대를 파견했고, 조사대는 남태평양으로 향하기 위해 우선 하와이를 경유하기로 했다.

그렇게 출발한 조사대를 반긴 것은—

"이게 무슨…!"

—마치 죽음 같은 적막이 가득한 하와이였다.

***

"야! 이제 슬슬 종강인데 하와이 가야 하지 않겠냐?!"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이주원, 내 10년지기 친구다.

"아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본 여행 간지 반년밖에 안 지났는데 무슨 여행을 또 가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김범재, 마찬가지로 내 10년지기 친구다.

우리 셋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친구다.

"이게 다 추억이여~! 나중엔 공부하느라 여행은커녕 밖에는 나갈 수 있을까?"

"고건 공부 안하는 니 이야기고."

"아잇, 선넘네. 우찬아! 그래서 너는 여행 어떠냐?"

"응? 나쁘지 않지. 여름에 하와이라."

여름과 하와이. 좋은 조합이다.

특히 해변가의 비키니가…

"그럼 다수결로 정해진 걸로 한다! 내가 비행기표랑 숙소 찾을 테니까 너희들은 돈이랑 짐만 챙겨."

"아니, 이 새끼가."

"그럼 이만!"

그렇게 우리들의 하와이 여행이 정해지고 말았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

공항에서 나오자 반겨주는 햇빛이 따갑다.

"일단 숙소 예약한데로 가서 짐 풀고, 빨리 바다로 가자."

그렇게 온 바다는 정말 멋졌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모래의 해변가에, 사파이어처럼 반짝이는 바다까지.

"그럼 난 일단 파라솔부터… 어라?"

—덥썩!

"싸나이가 무슨 파라솔이야. 바로 바다로 뛰어들어야지!"

"희생양이 되어라."

난 순식간에 양팔을 붙잡히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들려져서 바다로 날려졌다.

"아니 미친…!"

—풍덩!

"이게 뭐 하는—"

"물의 세례를 받아라!"

그리고 나에게 쏟아지는 바닷물.

나는 얼굴을 가린 채 똑같이 맏받아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 빠지게 놀고 나서—

"평소에 운동을 해야지. 그렇게 허약해서 군대는 가겠냐?"

"안 가면 오히려 좋지."

"그건 그러네."

"그나저나 역시 바다는 좋네"

"그러게. 풍경도 좋고… 응?"

수평선 위로 무언가 거므스름한 게 보인다.

"야. 저기 저거 뭐냐? 안경을 안 가져와서 잘 안 보이는데."

"응?"

……

"나도모루게써"

"응? 뭔 소리야?"

난 주원이를 쳐다봤다.

초점없이 가만히 서서 검은색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 절대로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야 범재야! 주원이가 이상해!"

이렇게 말하며 범재를 쳐다봤지만—

—범재 역시 주원이와 똑같은 상태였다.

"이게 대체 뭐야…."

내 친구 둘뿐만이 아니었다.

관광지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적막함을 곧 깨닫는다.

해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 '검은색'을 멍하니 쳐다본다.

마치 혼자 다른 곳을 보는 내가 비정상인 것처럼.

그리고는 모두 천천히 '검은색'을 향해 걸어간다.

"야! 주원아! 김범재! 어디가는 거야?!"

두 친구의 팔을 붙잡고 가지 못하게 하려했지만, 어디서 이런 힘이 나는 건지 오히려 내가 끌려갈 것 같아 결국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봤을 때—

—사람들이 마치 경쟁 하듯이 '검은색'을 향해 수영쳐 가는 모습이었다.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배나 요트도 그쪽을 향했다.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경찰이나 119를…!"

그렇게 뒤돌았을 때 보인건 서 있던 사람들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쓰러진 사람들이었다.

"헉! 괜찮으세요?"

나는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며 물어 봤다.

그리고는 다른 쓰러진 사람들도 살펴봤다.

전부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게 정상이 아니다.

"일단 숙소로 가서 전화를 해야겠어."

그렇게 숙소로 가면서 나를 반긴 것은 해변가와 같이 '검은색'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상한 적막함에 의문을 느낀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결국 다른 사람들처럼 초점이 사라져 '검은색'을 향해 걸어가거나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질 뿐이었다.

"헉… 헉…."

숙소로 급히 뛰어오느라 숨이 찬 나는 잠시 주저앉아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나는 방을 찾아가 바다로 가느라 못 챙긴 스마트폰을 챙겼다.

그리고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고양이뿐만이 아닌 사람마저도 죽일 호기심이.

나는 안경 케이스에서 안경을 꺼내고서는 침을 삼켰다.

"…꿀꺽."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나에게 안경을 쓰고 '검은색'을 보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이 봤던 '검은색'을 쳐다보았다.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마치 블랙홀같은 검은색이 내 영혼마저 빨아들이려는 거 같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그 안에서 점멸하는 별빛이 내게 속삭인다.

'가까이 와.'

그에 나도 모르게 '검은색'을 향해 걸어가다— 어딘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안경이 벗겨지며 깨졌고,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아니 이걸 정신을 차렸다고 해야 할까?

머릿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시끄럽게 1초에 수백 번, 수천 번은 속삭이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곤죽으로 만드는 거 같았다.

—주륵

아니 진짜로 곤죽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어라…?"

피눈물이 난다. 밖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처럼.

"아하하… 아하하하…."

나는 마치 뇌가 갈려서 눈으로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머리가 너무 아파'

—그것이 박우찬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

수색대가 도착했을 때 이미 검은기둥은 사라져 있었다. 마치 신기루처럼.

"연구원들 말로는 하와이에서도 보일 거라 했는데."

"저희를 반기는 건 검은기둥과 함께 사라진 실종자들과 피눈물을 흘리는 사망자 뿐이네요."

"허 참. 이런 상황은 처음 보는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시체부터 수습해야겠지. 하지만 예정대로 남태평양 수색도 진행한다."

"그럼 반반으로 나눠서 할까요?"

"그래."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후.

—치익!

{대장님! 들리십니까?}

"잘 들린다."

{연구원들이 말한 검은기둥이 있었다는 곳으로 가는 도중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수는 얼마나 되지?"

{수백은 되어 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배와 요트도 여러척 보입니다}

"생존자는 있나?"

{배와 요트를 수색 중이지만 모두 비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모두 사망한 거 같습니다.}

"…그런가, 알았다. 수고했다"

"하아…."

"대장님. 웬 한숨이십니까?"

"이런 상황은 생전 처음이여서 그렇다. 담배 있나?"

"담배는 끊지 않으셨습니까?"

"실종자가 전부 사망 처리돼서 말이지…. 입안이 씁쓸해져서 말이다. 이럴 땐 담배 연기로 달래주고 싶어지는군."

"그렇군요…."

—칙, 칙!

담뱃불을 붙이며 희미하게 보인 그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이거 하나만 다 피우고 구조대나 요청해야겠군."

그렇게 하와이에 드리운 어둠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빌딩과 반짝반짝 빛나는 광고판들, 건물 사이로 보이는 황혼빛 하늘까지—

이곳은 관광 명소중 하나인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다.

빛나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나다.

'미국은 광고도 멋있네.'

이런 생각을 하며 길을 가고 있는데—

"%$#$%#&%^#@."

여러 개의 관악기가 다 함께 중저음의 불협화음을 낸다면 이런 소리일까?

마치 귀를 통해 들어오는 게 아닌, 머리를 통과해 소리가 손이 되어 뇌를 만지작거리는 느낌이 몸을 얼어붙게 만든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을 땐—

마치 우주가 사람 형태로 빚어진다면 저럴까. 마치 예술 작품같다.

사람 형태의 우주를 바라보니, 별빛이 나에게 속삭인다.

'이리로 와.'

나는 발을 움직이려고 노력했지만, 아까 들린 소리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눈에 핏발이 서도록 계속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마치 날개가 돋힌 것처럼 그것을 향해 날아갈 수 있었다.

'어라?'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껴 뒤를 돌아봤을 땐—

앞으로 고꾸라지는 내 몸이 있었다.

'이게 뭐야?! 내 몸이 왜 저기 있어!'

라고 생각하며 내가 날아가는 곳을 다시 보니.

'저게 뭐야.'

저것이 정녕 내가 봤던 그 아름다운 것이 맞을까?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몸집, 불타오르는 듯한 물결처럼 움직이는 부정형의 검은색과 그 안에서 빛나는 별빛 같은 눈동자들.

그 모든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자 내 영혼이 산산조각이 나는 거 같았다.

'끄아악!'

손끝을 보니 망치로 내리친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내 손이 보였다.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

그렇게 날아가면서 서서히 조각나던 그의 영혼이 '검은색'과 맞닿자—

—펑!

마치 위대한 존재의 탄생을 축하하듯, 폭죽처럼 터졌다.

그리고 그를 이어 다른 영혼들도—

—펑! 퍼버벙!

***

나는 뉴욕의 치안을 담당하는 NYPD 소속의 경찰관이다.

타임스 스퀘어는 뉴욕의 상징이면서 관광명소여서 테러를 노리는 녀석들이 많다. 하지만…

광고판을 보며 걸어 다니는 관광객들, 그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질나쁜 상인들까지.

오늘도 평범한 하루이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꺄아악!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혼비백산 달아나고 있었다.

나는 테러가 일어났나 싶어 사람들이 도망치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고, 그 중앙엔—

"저게… 도대체 뭐지?"

—이상한 괴물이 있었다.

나는 즉시 권총을 꺼내 괴물을 향해 겨눴다.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눈앞의 괴물이 순식간에 다가와 날 죽여 버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 똑바로 차려!'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저 괴물때문에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저 괴물을 쓰려뜨려야 해!'

그렇게 생각하고 방아쇠를 당기자—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이 무언갈 휘둘렀다.

"촉수…?"

괴물은 팔에서 촉수를 뽑아내 총알을 튕겨 낸 것이다.

"으아아—!"

—탕! 탕! 탕!

겁에 질린 나는 괴물을 향해 여러 발을 난사한다.

하지만 괴물은 촉수로 튕겨 낸 것은 그저 보여 주기였다는 듯이 그대로 총알을 맞았다.

"하… 하핫…."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이대로 죽나 싶었다.

하지만—

"어라? 사라졌다?"

—어째선지 괴물은 사라지고 말았다.

남은 시체들만이 그 괴물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거 같았다.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뒤로 넘어진 채로 하늘을 보았다.

'벌써 해가 졌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렇게 밝으면 별빛이 보일리가 없는데—

밤하늘에는 그를 부정하듯이 별들이 빼곡히 박혀있었다.

마치 방금 본 괴물처럼…

"어라? 왜 하늘이 점점 다가오는 거 같지?"

기분탓이 아니다. 실제로 다가오고 있다.

마치 방금 괴물이 사라진 것은 이를 위해서인가?

"아하하— 젠장할."

밤하늘에 건물이 닿으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건물 파편들은 그를 피해 갔고—

그의 눈앞에 별빛이 가득했을 땐

"어머니—"

—콰직!

뉴욕과 그 근처의 도시는 아무런 생명체도 남지 못하고, 마치 무언가가 눌러낸 것처럼 평평한 땅만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멀리서 목격한 사람들은 SNS로 영상을 날랐고, 세상에 혼돈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다.

물론 그 씨앗은 제대로 피어나기도 전에 무언가에 의해 짓밟혔지만 말이다.

이 영상을 본 수많은 이들 대부분은 합성이라 여겼고, 누군가는 종말이 온다 소리쳤고, 누군가는 지하 깊숙한 곳의 쉘터에 숨었다.

부디 종말이 나를 지나치길 기도하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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