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지구001
* * *
한편, 미국 서부의 한 가정집.
한 청년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여러 가지 종말 시나리오.'
핵전쟁같은 현실적인 것부터 좀비 창궐이나 행성끼리 충돌하는,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까지.
청년은 초코바를 씹으며 생각했다.
'일주일 전에 완공된 방공호에 물이랑 보존식은 최대한 보관했고… 다른 것도 잘 구비했으니, 위험하면 몸만 들어가면 되겠네.'
취미 생활의 영역이 아닌 규모.
몇 년 전 자연재해로 부모를 잃은 그는, 강박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안전한 장소를 만들어 갔다.
그의 가족은 꽤 부유했기 때문에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과 보험금으로 방공호를 지었다.
방공호를 짓고 몇 년 치의 보존식과 물, 생활용품을 사느라 많은 돈을 썼지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재앙의 공포가 청년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청년은 밤바람이 쐬고 싶어져 베란다로 나갔다.
"후으…."
지진이 일어날까, 홍수가 일어날까, 아니면 허리케인?
매일매일 근처에서 일어날 법한 자연재해를 떠올리며 항상 두려움에 떨어 왔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이제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안전하니까.
—쿠구구궁!
세상이 진동한다.
"으아악! 지진인가?!"
나는 당황해하며 방공호가 있을 지하를 향해 계단을 내려갔다.
방공호로 들어와 문을 조작해 두껍고 육중한 문이 닫히는 걸 보자,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세상을 흔들어 놓는 듯한 진동은 멈추었지만, 여진이 있을지 몰라 나가기보단 인터넷을 확인하기로 했다.
나는 레딧에 들어가 자주 찾아가던 재해 관련 서브레딧을 봤다.
[미국 동부 상황]
동부에도 지진이 일어났나 싶어 들어간 게시물에는 여러 사진이 있었다.
멀리서 찍은 듯한 사진 속에는 난장판이 된 도시가 보였다.
무너진 건물들과 사이사이에 보이는 많은 피들.
재해로 돌아가신 부모님이 떠올라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심호흡했다.
그리고 다시 본 스마트폰 속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찾았다.
모든 건물이 무너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꼼꼼히 으깨버린 듯이.
내진설계는 둘째치고, 땅에 인접한 부분은 그래도 멀쩡해야 할 텐데 사진 속에 보이는 모든 곳이 평평했다.
나는 다른 사진들도 찾아 봤고, 그 결과는—
"하, 이게 무슨 일이야."
—마치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사진이었다.
"이거… 합성이겠지?"
마치 꿈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다.
하지만 영상도 있었다. 밤하늘이 그대로 내려와 도시를 뭉개버리는 장면이 아까 본 사진의 전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른 장소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도 있어,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세계가 멸망하는 건가…?"
—쾅!!
핵폭탄이 근처에서 터지면 이럴까.
아까와는 비교도 못할 진동이 방공호를 덮친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하늘이 무너진 걸까?
나는 그저 엎드려 이 진동이 끝나길 기다렸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진동은 멈춰있었다.
나는 다시 레딧에 들어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려 했다.
이전보다는 적은 글이 올라왔지만, 게시글을 종합해서 보면 이곳도 동부와 같이 하늘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오는 게시글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서브레딧을 구독한 사람도 몇만 명을 넘고, 자기 집의 방공호를 자랑하던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들이 전부 죽어 버린 걸까?
나는 질문글을 올렸다.
[지금 상황 아는 사람 있어? 난 지금 벙커에 있는데 무서워서 나가질 못하겠어!]
부디 답하는 사람이 있기를 기도하며 난 몇 분간 기다렸다.
마치 영원할 듯한 침묵 속에서 알림이 왔다.
Catas45
오 신이시여! 무사한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내 게시물에 들어가자, 익숙한 닉네임의 유저가 쓴 댓글이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재해 사고를 빠르게 알려 주던 유저다.
가끔 올라오던 그의 방공호 사진은 마치 호텔 방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아서, 나의 방공호를 향한 꿈을 키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Arne111
무사하셨군요! 혹시 바깥상황을 아시나요? 지금 방공호 안이라 바깥 상황을 전혀 모르겠어요!
Catas45
미안. 나도 지금 방공호 안이여서 잘 모르겠어.
Arne111
사진들 보니까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던데요??!!
Catas45
하늘이 무너진다라. 그래, 그게 딱 맞는 표현이네.
도시인데도 여행 갔을 때 봤던 거 처럼 별빛이 보이는 게 이상했었지.
하늘을 보니 별이 점점 커졌고, 나는 얼타다가 방공호로 들어 왔지.
Arne111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이네요.
Catas45
그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잠깐.
누군가 방공호 문을 두들기고 있어.
잠시 살펴보고 올게.
이런 상황에서 누가 문을 두들긴다는 거지?
나는 10분 정도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Arne111
저기요? 확인하셨나요?
장난치지 마세요. 무섭다고요.
저기요?
제발 답장 좀 해주세요.
아무런 답장도 없다.
'강도라도 당한 걸까?'
터무니없는 소리다.
이런 세상이 되었지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강도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지간한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게다가 그는 밖에서는 열 수 없는 방공호에 있다.
그가 스스로 문을 열지 않는 이상, 누구도 그를 건들순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답장을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텅! 텅!
문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가 말한 노크 소리처럼.
"누구세요?"
—텅! 텅! 텅!
"거기 누구야!"
텅텅텅텅텅텅텅텅텅—
문은 견고하게 닫혀 있어 이곳은 안전할 텐데, 나는 어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생존본능이 머릿속에서 소리쳤다.
'여기서 도망쳐야 해!'
하지만 어디로?
밖에는 나갈 수가 없다. '저것'이 문을 두들기고 있는데 문을 여는 건 자살 행위다.
나는 안쪽으로 뛰어 갔다.
그리곤 침대 위로 뛰어 들어 이불을 뒤집어썼다.
덜덜덜—
이불 속에 숨어든 나는 저 소리가 사라지길 기도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내 상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라졌다.
—쾅!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나는 더욱 웅크려서 완전히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들어온 게 뭐든, 그냥 날 지나치길 바라면서.
그렇게 떨고 있다 슬쩍 이불밖을 봤다.
'내가 이불을 너무 뒤집어썼나?'
그렇게 이불 밖으로 나왔어도—
"뭐야… 발전기가 고장 났나?"
전기가 끊길 것을 대비해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그런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아니, 매우 많은 것이 반짝였다.
사진 속에서 봤던 밤하늘이 보인다.
여긴 지하일 텐데, 지하니까 멀쩡해야 할 텐데—
그것이 점점 내게 다가온다.
"내게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푹!
어느새 솟아난 촉수가 내 가슴을 꿰뚫었다.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아."
—촉수가 그의 뇌를 관통해 있었다.
***
대한민국, 서울.
여기 또 다른 청년이 있다.
몇 달 전부터 어떤 종교에 빠진 그는 오늘도 교주의 연설을 듣기 위해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나 참, 그런 놈들은 친구도 아니야.'
별진리교. 우주 저 너머에 있는 별에 담긴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이다.
여러 가지로 심란한 일 때문에 방황하던 나는 길거리에서 운명적으로 교주님을 만나 단체에 가입하게 되어 위로를 받을 뿐이었지만, 이제는 나도 마찬가지로 별의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정말로 사이비였으면 돈을 달라고 했겠지. 그렇게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사이비일리가 없잖아.'
최근에 만들어져 신도들이 별로 없다는 말을 들은 나는 친구들에게 권유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미쳤나는 소리뿐이었다.
그런 건 사이비일 테니 무조건 탈출하는 게 답이라고, 나중엔 그냥 돈이나 바치게 될 거라고, 만나는 친구마다 모두 같은 소리를 해 나는 대판 싸우게 되었다.
'교주님이 날 위로해 주는 동안 지들은 뭘 했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거야?'
하지만 이제 괜찮다. 그런 친구도 아닌 것들은 손절했으니까.
♪~
문자가 왔다. 교주님이시다.
교주님
신도여러분께 알립니다. 오늘은 누구도 빠짐없이 기도하러 와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신도들에게 빠짐없이 오라고했다.
평소에도 강요하지 않던 사람이라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 싶었다.
그렇게 어느새 건물까지 도착했다.
"교주님, 안녕하세요."
"오, 이신강 신도님! 어서 오세요."
"웬일로 신도들은 다 부르시고 그러시네요?"
"조금 전 별의 진리를 발견해서 말이죠… 어서 빨리 여러분들께도 알려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오! 그러시군요!"
"일단 기도실에서 모두들 오실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기도실에 들어가자 양 옆에 있는 긴 의자 여러 개와 맨 앞에 있는 연설대였다.
나는 연설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다리자 사람들이 점점 들어오더니 기도실의 반 정도가 찼다.
교주님은 연설대 앞에 서서 얼마나 들어 왔는지 확인하더니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오셨군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와 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모두 오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교주님은 리모컨을 조작했다.
교주님 뒤쪽으로 스크린이 내려오더니 여러 사진을 보여줬다.
"이 사진은 방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 담긴 사진입니다."
밤하늘이 내려오는 사진, 도시가 무너지는 사진. 마치 신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별께서 벌을 내린 거 같군요. 다른 빛으로 별빛을 가려, 진리를 보려하지 않은 자들에게 말입니다"
사진 속 별빛을 보니 움직이지 않아야 할 별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계속 바라보니 무언가 빨려 들어가는거 같아 이것이 진리인가 싶었다.
"아무래도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천벌이 내려진 거 같군요."
어떤 신도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렇다면 저희들도 벌을 받는 거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우리가 진리를 탐구했다 하지만 별빛께선 우리를 바라보지 못하셨으니."
"그러니 우리가 먼저 별빛께 다가가야 합니다."
순간, 교주님의 분위기가 변했다.
평소의 온화하던 분위기와 다르다.
눈빛도 마치 광인의 것과 같이 번들거리며 빛났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말하기도 전에 교주님이 무언갈 나눠줬다.
"이걸 마시면, 우리도 별빛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의 분위기에 압도된 사람들은 하나둘씩 그걸 입에 댔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마시게 되었다.
그 액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쿨럭!"
—식도가 불 타는거 같다.
주변의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이다.
—쿨럭쿨럭!
모든 사람들이 목을 부여잡고 마신걸 토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피 뿐이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기도실에서 서서히 하나씩 쓰러졌고, 나도 함께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보던 교주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하하하하— 쿨럭, 커헉. 하하하—!"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는 미쳐 버린 교주님의 웃음소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