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라니아
* * *
역시 치킨은 최고다. 바삭한 튀김옷과 한 입 베어물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육즙까지.
정신 차렸을 땐 이미 치킨은 사라져 있었다.
"너무 급하게 먹었나."
입안에 남은 치킨의 맛이, 또다시 치킨을 먹고 싶게 만든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에 대한 신앙이 생겼으니 어딘가에 써먹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내 영향력을 늘릴려면 이 부족이 점점 커져서 나라 하나는 만들어야겠는데.'
마법적 재능이나 쓸 만한 주문을 주는 게 좋을 것이다.
마침 지금 지구의 시간은 새벽이니, 모두 자고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불러야겠군."
어차피 자고 있을 테니 그냥 불러내도 큰일은 없을 것이다.
방금 전처럼 제사장의 영혼을 불러냈다.
"여긴…. 설마!"
"그래. 내가 널 불렀다."
"오오, 밤하늘이시여! 저희가 바친 제물이 마음에 드셨습니까?"
'밤하늘? 뭐, 그렇게 생기긴 했지.'
"그래.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슬프더구나. 나를 섬기는 너희들이 이렇게 작고 초라하게 살다니."
"저희가 어떻게 해야 위대한 분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전쟁이든 연합이든, 너희의 땅을 넓히고 믿음을 퍼뜨려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겠지."
나는 제사장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리고 나의 마력을 주입하며 영혼에 문양을 새겼다.
문장을 새기고 보니 눈 색깔이 바뀌었다.
원래의 갈색에서 심연같이 어두운 색으로.
그 안에서 무언가 반짝 빛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새긴 문장의 영향인 듯하다.
"매일 밤, 널 불러낼 것이다. 너에게 주문을 가르치도록 하지. 하지만 그 대가로 너희들은 신앙을 바쳐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내가 할 말만 하고 다시 돌려 보냈다.
"후, 이러면 주문을 가르치는 것만 빼면 할 일은 다 한 거 같은데."
이쪽에서의 일은 이제 나중에 하고, 내가 풀어둔 딥 원을 다시 살펴볼 때다.
이름에 맞게 깊고 깊은 심해속에서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딥 원은, 내가 처음에 풀어둔 4마리의 딥 원을 장로로 모시며 살아가고 있었다.
언제 이런 공간을 만든 것인지, 심해 속에 도시를 만들어 놨다.
해저 도시는 광범위하게 펴져 있으면서도 잘 숨겨져 있어서, 평범하게는 찾기 힘들 거 같다.
그리고 벽에 새겨진 벽화.
마치 딥 원을 그대로 거대화시킨 듯한 생김새, 그레이트 올드 원인 다곤.
역시나 이들은 다곤을 섬기며 살고 있었다.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까, 예상외라고 해야 할까.'
딥 원들의 지배자이자 수호자여서 그럴까.
그들의 본능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다곤을 숭배하고 있었다.
'아직 심해밖으로 벗어날 생각은 안하고 있네.'
호기심이 많은 젊은 딥 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심해 도시에서 그저 다곤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젊은 딥 원이 지상으로 가 인간을 만났다.
물고기와 인간을 섞은 듯한 생김새를 보고 신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
처음 인간을 본 딥 원은 신기해 하기도, 당황해 하기도 하면서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딥 원이 바다로 돌아간 걸 본 인간들은 곡물과 가축을 가져와선, 불에 태우는 것이 마치 제사를 지내는 듯했다.
그 어린 것은 처음 본 불에 놀라워 하며 신기한 것을 보여 준 거에 감사를 표하듯 물고기떼를 몰아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인간들은 점토판에 아까봤던 딥 원의 생김새를 묘사하면서 이름같은 걸 적었다.
'반인반어 형태의 신, 다곤?'
엄청난 우연이다.
그들이 섬기는 아버지인 '다곤'을 이름으로 그 딥 원을 칭하다니.
'아니면 그것이 계속 다곤이라고 말한 걸까?'
처음 본 지적 생명체에게 다곤을 섬기라고 말한 걸수도 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이곳은…?'
서아시에에 길게 뻗은 두 강,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세계 4대 문명이자 기록이 남은 최초의 문명이라 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였다.
'그러고 보니 다곤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해신인 다곤을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말도 있었지.'
여기선 그 반대가 되었지만 말이다.
"정말 재밌는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필연이라고 해야 할까?"
이 첫 접촉을 시작으로 더욱 많은 접촉을 해서, 더욱 많은 사건을 일으켜 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포인트도 많이 벌테니까.'
***
이후로 나는 제사장에게 주문을 전수하면서, 가끔씩 제사를 통해 올라오는 포인트를 받았다.
"이제 슬슬 때가 된 거 같구나."
"예. 이 정도 힘이라면 그 어떤 부족도 저희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명심하거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폭력은 가장 나중에 사용해야 한다."
'전쟁으로 많이 죽으면 나를 믿을 사람도 줄어드는 거니까.'
"어리석은 이들까지 생각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에게 올 포인트를 생각하며 사람을 죽이지 말라 한 걸 다르게 이해한 모양인지 이상한 말을 한다.
"아무튼 이제 돌아가거라."
나는 손가락을 튕겨서 언제나와 같이 돌려 보냈다.
다음날이면 전쟁의 시작이다.
그걸 위해 보호 주문과 공격 주문, 최후의 수단을 위한 강림 주문까지 가르쳤다.
이번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조금 화날지도 모르겠다.
"오, 시작한다."
수백에 달하는 장정들의 보호를 받으며 다른 부족의 마을을 향해 나아가는 제사장이 보인다.
주변을 경계하며 언제든지 보호막을 펼칠 수 있도록 주문을 외는 것이, 가르친 보람이 있게 만든다.
'흐뭇하구만.'
그 마을에서도 수백명이 다가오는 걸 발견했는지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멈춰라! 여긴 높은땅 부족의 영역이다. 너희들은 누구냐!"
"우린 밤하늘 부족이다."
"밤하늘 부족? 근처에 그런 부족은 없었는데."
"부족명을 최근에 바꿔서 잘 모를수도 있겠군. 질문을 하나 하지. 우리와 함께 하겠는가 거절하겠는가?"
"함께하자는 것은 동맹인가?"
"동맹이라, 동맹보다도 더 깊은 관계를 원하는 거지."
높은땅 부족이라. 근처에 산이 있는 걸 보니 저 높은 산을 숭배하는 부족인가 보다.
저런 식으로 말하면 누가 설득당하련지, 참으로 답답하다.
"동맹을 해서 우리에게 좋을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군…. 오히려 다른 부족들이 우리의 동맹에 위협을 느껴 공격받을지도 모른다."
"그대들은 다른 부족들에게 공격당할 것이 두려워서 그런가? 나에게 그들을 막을 힘이 있다면 동맹하겠다는 건가?"
"하! 그런 힘이 있다면 동맹하고 말고!"
"그렇다면 보여 주겠네. 위대하신 분의 힘을."
제사장이 오면서 외우던 주문의 마지막 절을 말하자 기적이 일어난다.
"이것이 그분께서 내게 내려 주신 주문인 '밤하늘의 장막'이다."
반투명한 검은 장막이 밤하늘 부족과 높은땅 부족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그리고 또 다른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도 그분께서 내려 주신 '밤의 손길'이란 주문이지."
장막에서 어둠으로 이뤄진 촉수가 나와 주변의 나무를 후려친다.
—콰직!
두꺼운 나무가 한번에 부러지는 광경을 목격한 이들은 하나 같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가? 이 정도면 안심할 수 있겠지?"
"어…. 그래, 그렇지…."
"그렇다면 높은땅 부족의 제사장은 만나고 싶군."
"그래…. 안내하겠네."
자신이 목격한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듯, 어안이 벙벙해진 그는 부러진 나무를 계속 바라다보다 자신의 마을로 밤하늘 부족을 데려왔다.
'오.'
화려한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마을 입구에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이쪽 마을의 제사장인 거 같은데 여성이여서 다행이다.
'혈연을 맺을건데, 남자였으면 딸과 결혼해야 했겠지. 아직 고대시절이긴 하지만 페도는 좀….'
"장군, 이들은 누구인가요?"
"아 무녀님. 이들은 밤하늘 부족의 사람들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부족과 혈연을 맺고 싶어 하는 듯 합니다."
"그걸 그냥 받아들였다고요? 분명 규모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주변의 부족들을 생각해 보면 동맹은 위험합니다."
"그게… 사실 엄청난 기적을 보여줘서 말입니다. 저희 부족에도 이득일 거 같아서 받아들였습니다."
"그 기적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죠?"
"무슨 말을 중얼거리더니, 순식간에 나무를 쓰러뜨리더라고요."
"허?! 아무래도 믿기 힘든 소리네요. 직접 봐야지 믿을 수 있겠어요. 당신이 밤하늘 부족의 제사장인가요?"
"아, 반갑습니다. 제가 밤하늘 부족의 제사장입니다."
"그 기적이란 걸 저에게도 한번 보여 주실 수 있으신가요?"
"예, 뭐. 몇 번을 들어 보는 것보단 한 번 보는 게 낫죠."
그가 주문을 외자, 그의 소매에서 검은 촉수가 튀어나와 근처의 나무를 후려쳤다.
—콰직!
아까와 마찬가지로 나무는 두 동강이 났다.
무녀도 아까 들은 것이 사실이라는 것에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정말 사실이었네요."
"그럼 제가 거짓말이라도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해요. 설마 이게 전력이란 건 아니겠죠?"
"설마요. 한번에 나무 열 개는 간단히 부순답니다."
"부디 그게 거짓이 아니길 빌죠."
"그렇다면 정해진 걸로 알겠습니다. 일단 장정들은 마을로 돌려 보내겠습니다. 아무래도 이 근처가 더 살기 좋아 보이니 이주해야겠죠."
이렇게 내 신도들의 첫걸음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혼식은 언제인 거죠? 혈연을 맺길 원하잖아요."
"아. 한 달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결혼이라. 내 첫 신도의 결혼식인데, 내가 뭔가 할 수는 없을까?
강림은 미친 짓이고, 다른 도구나 유물로 목소리만 전달 해야 할까?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할까. 어차피 한 달 후라니까."
상점에서 어떤 유물을 사서 주는 것도 좋겠지.
'나한테는 쓸모없어도 저들에게는 아닐 테니까.'
"으아—."
기지개를 펴니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앉아 있었던 거야? 엄청 피곤하네."
아침 겸 점심으로 치킨을 먹었으니 저녁으론 뭘 먹을까 생각하며 난 잠시 일어섰다.
'딥 원의 지상 진출과, 나의 종교의 첫걸음. 이게 오늘의 수확인가.'
지금은 밥이 땡기니 백반을 샀다.
밥과 찌개, 상을 가득 채우는 반찬.
오랜만에 보는 듯한 한식이다.
나는 밥을 먹으며 아이쇼핑을 했다.
'그러고 보니 개조용 인간도 있었지. 나중에 사서 신의 대전사 느낌으로 보내볼까?'
이런 생각도 하고—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는 위험해 보이고, 번개총? 이건 재밌어 보이네.'
저런 생각도 하고—
'아직은 포인트도 부족하니까 뭐 하나 못사주네….'
그렇게 아이쇼핑을 하다 보니 밥을 다 먹었다.
'슬슬 졸린데 자야겠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지구는 멈춰놔야지.'
지구의 배속을 조절하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처음 이 침대에서 일어났을 땐 정말 놀랐는데 말이야. 이젠 정말 신 같은 존재가 됐네.'
그렇게 감성에 빠져들며 나는 서서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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