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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6화 (6/154)

〈 6화 〉 라니아

* * *

이상한 꿈을 꿨다.

하나의 커다란 대륙에 인간들과 괴물들이 살고 있었다.

지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다.

'내가 저런 괴물은 풀어 놓은 적이 없는데.'

남쪽의 거대한 섬에는 인간형이지만 뿔과 날개 그리고 꼬리가 달렸고 얼굴이 있어야 할 곳은 밋밋한 게, 마치 악마와도 같이 생긴 괴물이 있었다.

북쪽의 고산지대에는 커다란 거미 괴물과 염소와 인간을 섞은듯한 마치 그리스 신화의 사티로스같은 것들이 있었다.

서쪽에는 수많은 도시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동쪽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진 않았지만 커다란 대리석 성벽이 인상적이었다.

좀 더 둘러보니 어느 바위산에서 인간같이 생긴 것이 뼈다귀를 버리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인간과 닮았지만 고무질같은 피부와 약간 굽은 허리, 날카로운 손톱이 상점에서 봤던 구울과 비슷하게 생겼다.

산으로 들어가는 구울을 보고 지하로 이어진 길이 있는 거 같아 지하쪽도 관찰해 보려다가 잠에서 깼다.

"앗."

잠에서 깨니 꿈에서 봤던 것들이 약간 흐릿해진다.

비몽사몽 한 채로 나는 빨리 컴퓨터 앞으로 가서 꿈속에서 봤던 괴물들을 검색했다.

나이트건트와 렝의 거미, 그리고 드림랜드의 주민들.

아무래도 나는 꿈을 통해 드림랜드에 들어간 거 같았다.

하지만 드림랜드로 들어가려면 문지기의 시험을 받아야 할 텐데, 평범한 인간들만 시험을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째서 드림랜드로 들어가진 걸까?

"누가 끌고온 거라면 드림랜드에서 무언가 했을 테니, 내가 그냥 흘러 들어간 건가?"

드림랜드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지구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했다.

나의 대사제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의 결혼식.

그를 위해서 무언가 내려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의 첫 신도라고 너무 신나했던 거 같다.

그동안 가르쳤던 주문만 하더라도 충분할 텐데, 너무 베풀어도 호구로 보이는 법이다.

주문을 시험해 본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지만, 이제 슬슬 간섭하는 것은 그만둬야겠다.

"너무 고대시대에 시간을 쓴 거 같네. 그런 보람은 있지만, 이제는 현대로 넘어가야겠지."

그렇다고 갑작스레 연결을 끊어 버리면 당황스러울 테니 지금 당장은 무리겠지.

'나중에 불러내서 얘기해야겠다.'

***

결혼식은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간단하게 만들어진 의식장에서 밤에 치러진 결혼식은 신비한 느낌도 들었다.

제사장이 한 달 동안 주문을 부여한 청동 거울을 통해, 나는 마치 화상통화를 하는 거 같이 말을 전달할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거울에 밤하늘이 비친 것처럼 보이겠지만, 허투루 무녀를 하는 게 아닌지 나의 마력을 느낀 듯했다.

아무튼 이렇게 내가 주례를 서게 되었고, 그날밤 두 부족은 하나가 되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거사를 치른 제사장이 잠들자, 나는 그의 영혼을 불러냈다.

"드디어 한 걸음 내디뎠구나. 나의 사제야."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보셨습니까?"

'뭔 소리지? 아, 혹시 그 얘긴가.'

"하하하! 네가 이리 부끄러워할 텐데, 너희들이 사랑을 나누는 걸 왜 지켜보겠느냐."

"아무래도 뭔가 부끄러워서 말이죠."

"그나저나 네게 할 말이 있다."

"경청하겠습니다."

"너희 부족도 어느 정도 성장했으니, 나는 안심하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겠구나."

"혹시 떠나는 것입니까?"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오늘처럼 너를 불러내지 않을 뿐이지. 항상 지켜볼 것이다"

'이제는 슬슬 시간을 빠르게 돌릴 예정이니까 말이지.'

"그래도 안심하거라. 네게 새긴 문장은 나만이 옮길 수 있으니, 문장을 옮기는 의식을 할 때 다시 만나게 될 거다."

"그렇군요…."

"내가 가르친 주문을 후세에 전하고, 나의 신앙을 퍼뜨려라. 그리고 바다를 조심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나는 할 일을 전하고는 돌려 보냈다.

'마지막으로 볼 때는 많이 늙어 있으려나.'

이제 지구의 시간을 빠르게 해야 한다.

***

대사제가 나를 부르는 의식을 했을 때는, 옆에 그와 매우 닮은 사람이 있었다.

'아무래도 대사제의 혈육인가 보군.'

"위대한 분이시여, 문장을 제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나에게는 별로 시간도 안지났지만 어느새 대사제는 늙어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얘기해야겠지'

"오랜만에 보는구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겨울이 열 일곱 번 지났습니다."

'17년… 아니, 18년인가?'

"많이 지났구나. 그래, 그럼 문장을 옮기도록 하지."

대사제에게 새겨진 문양을 들어내고 그의 자식에게 문장을 옮긴다.

그리고 대사제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돌려 보냈다.

이후로도 몇 번의 의식이 있었지만 그다지 대화는 나누지 않고 그저 문장만 옮길 뿐이었고, 결국 신앙이 끊긴 건지 나를 부르는 의식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장이 내 손으로 다시 돌아왔네….'

대사제의 혈통이 끊긴 건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잊혀져 민간 신앙이 되어 있었다.

딥 원을 신경 쓰느라 의식을 할 때밖에 보지 않아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시간은 지난다….

***

언제부턴가 딥 원들이 지상 진출을 위해 인간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 거래를 하며 말을 배우더니, 나중에는 젊은이를 제물로 받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저항하려 했으나, 풍부한 어획량에 눈이 먼 사람들은 결국 제물을 바쳤다.

바쳐진 젊은이들은 딥 원과 교배하게 되었고, 그렇게 태어난 딥 원과의 혼종은 다시 마을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그 마을은 혼종들의 마을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마을에 어떤 탐험가들이 찾아왔다.

영국에서 온 모험가들은 처음엔 마을 주민들의 생김새에 놀랐다.

큰 눈과 넓은 이마, 푸른색으로 보일 정도로 창백한 피부가 마치 병에 걸린 듯했다.

그리곤 풍부한 어획량과 희귀한 광물들에 또 한 번 놀랐다.

모험가들은 비밀을 파헤치다 딥 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모두 겁에 질려 도망쳤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온 한 모험가가 무서워했던 건 잊어 버린건지 근처 바다에서 딥 원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딥 원과 접촉하고 말았다.

풍부한 어획량과 희귀한 보석에 눈이 먼 그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고, 우선은 외지인부터 바치기로 합의했다.

'외지인을 바친다라…. 좋은 시나리오가 되겠는 걸?'

어떤 청년이 묶여서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간다.

나는 그 청년의 가족관계를 알아봤고, 동생이 탐정일을 하고 있었다.

관계도 나쁘지 않아서 형이 실종되면 그 진상을 찾기 위해서 노력할 사람이다.

'그럼 이제부터 저 탐정을 주로 관찰해야겠다.'

탐정이라곤 해도 그 이름처럼 무언가 사건을 해결하는 게 아닌, 그저 의뢰를 받으며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청년이 편지를 받았다.

여행을 간 형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편지.

평소에 형이 무책임하게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는지, 동생은 이상하다고 느꼈나보다.

바로 의뢰를 취소하고 그는 집을 향했다.

형의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며 어디로 여행을 갔는지 찾아봤다.

그러곤 형의 경로를 추리하며 지나갔을 마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찾아다녔을까?

그는 분위기가 이상한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은 무언가에 두려워하듯이 어두운 표정을 짓다가, 마을로 들어오는 청년을 보고는 밝은 표정을 짓는 것이다.

이상함을 느꼈지만 티를 내지 않은 청년은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촌장의 집에서 묵게 된 청년은 자신을 닮은 사람이 여길 왔었냐는 질문을 하지만 사람들은 아니라는 답만 할 뿐이었다.

탐정일을 하며 감이 늘은 걸까, 거짓말이란 것을 간파한 청년은 잠시 속아주기로 했다.

권총을 가져오긴 했지만 총알도 많지 않고 머릿수로 밀어닥치면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촌장의 집에서 저녁 식사까지 얻어먹은 청년은 마치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금세 잠들었다.

아니, 정말로 식사에 약을 탄거겠지.

그렇게 바닷가쪽의 제단으로 끌려가던 청년은 약이 제대로 안 들었는지 금방 눈을 떴다.

그리곤 묶여 있는 것에 당황해하며 저항했다.

몸부림치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얻어맞은 청년은 잠잠해졌지만, 어느새 밧줄을 풀고서는 권총을 들었다.

'몸부림치면서 날카로운 거라도 주웠나? 대단하네.'

청년과 마을 사람들이 대치하던 도중 그것이 찾아왔다.

그리고 청년은 그것을 목격했다.

인간처럼 걸어 다니지만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고 손에는 물갈퀴와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마치 물고기와 사람을 섞은 듯한 생김새의 괴물.

괴물을 보자 청년은 패닉에 빠져 딥 원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요란한 소리에 한번, 엄청난 고통에 또 한 번 놀란 딥 원은 당황해하며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어서 저 녀석을 붙잡으라고.

하지만 총기앞에서 머뭇거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답답해하던 딥 원은 다른 동족들이 오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여럿이 모인 딥 원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번엔 마을 사람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같은 편인 줄 알았던 둘이 갑자기 내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싸우는 것을 본 청년은 어이가 없어졌다.

모두 제압한 딥 원들은 청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자신들의 본거지로 향했다.

형을 찾기 위해 왔다는 것을 상기한 청년은 그것들을 따라갔고, 이윽고 목격했다.

사람들이 제단같은 곳에 묶여 있는 것을.

바다에 높이 솟은 기둥들과 기둥에 묶여 있는 사람들.

"잠깐, 왜 교배를 안하는 거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이 녀석들은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그 교두보로 육상에 진출하고 교배를 하던 게 아니었던가?

어느새 의식을 시작한 딥 원들은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숨을 거두자—

—■■■!

바다에서 무언가 올라온다.

사람보다도 더 큰 팔이 기둥을 붙잡는다.

그 팔에는 날카로운 비늘과 지느러미가 돋아나 있었고, 이윽고 그것의 머리가 나타난다.

마치 딥 원을 거대화한 느낌이지만 존재감이 다르다.

저것이 딥 원들의 대부이자 지배자. 그레이트 올드 원, 다곤.

그것을 목격한 청년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젠장! 다곤을 강림시키다니 미쳐 버리겠네!"

나는 녀석들이 강림 의식을 치르고 있는 의식장을 살펴봤다.

아직 주문을 외우고 있는 걸 보면 완전히 강림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불행 중 다행이네 정말."

그렇다면 그 주문을 사용해야겠다.

강림과 함께 쓰여 있던 주문, 추방.

마침 시간도 밤이니 개입하기도 좋다.

저 아래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는 딥 원보다 더 빠르게 주문을 외었다.

그리고—

"내 놀이터에서 꺼져! 이 망할 새끼야!"

—추방 주문을 완성했다.

허리까지 나왔던 다곤은 다시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고, 저항하기 위해 기둥을 잡지만 소용없었다.

다곤이 완전히 추방된 걸 본 나는 빨리 리셋 버튼을 찾았다.

"하…. 이번 시나리오는 좀 이상하게 흘러 갔네."

[리셋하시겠습니까?]

[포인트 : 56220]

[엔딩 ­ 저 창문에!]

"하, '저 창문에!'라니. 비슷한 상황이네."

물론 난 정신 나가지도 않았고 다곤이 강림한 것도 아니지만.

"설마 이번 일로 또다시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예상치 못 한 다곤의 강림으로 어쩔 수 없이 지구를 리셋했다.

만약 다곤이 지구의 복제품인걸 알아차리고 찾아온다면 어찌해야 할까.

"부디 그런 일이 없길 빌어야겠군. …응?"

[과거의 기록을 저장하시겠습니까?]

­딥 원의 출몰

­신앙의 발생

"어라?"

딥 원의 출몰이면 내가 풀어둔 4마리의 딥 원일 테고, 신앙의 발생은 나에 대한 신앙일 거다.

"귀찮은 걸 반복하지 말라는 건가? 일단 저장해 두자."

나는 딥 원들이 다곤을 강림시킨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하…. 머리아프네."

많은 생각을 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고 잠시 침대에 누웠다.

"일단 잠깐만 머리 좀 식히고 생각해야겠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머리가 안 돌아가네."

—꼬르륵

"밥도 안 먹었네, 그러고 보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밥을 먹다 보면 자연스레 머리도 식혀질 것이다.

상점에서 아무거나 구매하고는 의자에 앉아 지구본을 바라보았다.

'딥 원들의 행동도 생각해 봐야 하고 지구­003의 시나리오도 생각해 봐야겠네. 으으….'

그렇게 나의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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