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지구002
* * *
나는 런던에서 탐정을 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견습 탐정이라 해야 할까.
아직은 탐정일을 배우고 있는 중이니까.
스승님처럼 경찰에게 의뢰를 받거나 하진 못하고, 간단한 의뢰만 하고 있었다.
언제 한번 스승님께 나도 큰 사건을 한번 맡아보고 싶다 했지만, 스승님은 기본기나 더 쌓으라며 호통쳤었지.
그렇게 오늘도 간단한 일을 해결하고 오늘 길이었다.
"잭. 니 앞으로 편지가 왔다. 네 부모님께서 보내신거 같은데."
"앗. 감사합니다, 스승님."
'부모님께서 편지를 보내시다니, 무슨 일이지? 평소에 꼬박꼬박 편지는 보냈을 텐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사실 나는 런던 출신이 아니다.
어느 외진 곳의 농장에서 태어났었다.
농장을 물려받아 나도 그대로 농부가 되어야 했지만 내 적성과는 맞지 않았다.
나는 어느 정도 맞을 각오를 하고 아버지와 이야기를 했지만, 오히려 나를 지인분께 소개해주시기까지 하셨다.
그렇게 소개받은 분 아래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의미로 한 달에 한 번씩은 편지와 함께 몇 푼 돈을 함께 보냈다.
그러니 나를 걱정해서 보내는 게 아닌 부모님 쪽에서 큰일이 난 것이겠지.
편지를 펼쳐보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들에게
잭, 도시 생활은 잘 지내고 있니?
이 어머니는 네가 혹여나 굶거나 다치지 않을까 매일매일 염려되는구나.
매달 편지를 보내긴 해도 눈으로 볼 수가 없으니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걱정되니 가끔씩은 집으로 돌아오려무나.
…….
어머니께서 보내신 편지다.
확실히 런던에 오고 나선 일을 배우느라 집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편지를 보냈다고 해도 어머니께선 마음이 여리시니 많이 걱정하셨겠지.
"어라?"
편지를 쭉 읽다 보니 아무래도 편지를 보낸 이유가 적혀 있었다.
"형이 실종됐다고?"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우리 형은 괴짜라고 할 수 있다.
집 근처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긴 하지만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하고는 그다음날 바다로 향한다던가.
어느 날은 바다에 가서 먹은 물고기가 맛있었다고 말하고는 또 바다쪽에 있는 마을로 갔었지.
물론 언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면 반드시 돌아왔고, 그런 행동력만 빼면 남들과 다를 게 없는 사람이다.
부모님께서도 처음엔 걱정하셨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있기도 하고.
편지에서는 형이 일주일 내로 돌아오겠다고 하고는 한 달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심각한 사안인 거 같아 나는 곧바로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스승님! 아무래도 집으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응? 편지에 뭐라고 써져 있었나?"
"형이 실종됐다고 합니다. 한 달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요."
"허어. 그럼 빨리 집으로 가야겠군. 가면 다니엘씨에게 내 안부도 전해주게나."
"네, 스승님. 감사합니다."
나는 마차를 불러 집으로 향했다.
하루가 걸려 집에 도착하자 울적한 분위기가 나를 반겼다.
잠시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는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형과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에게 질문했다.
"오, 잭! 도시에 가지 않았어? 언제 돌아왔대."
"아, 마이크 형 오랜만이네. 방금 도착했지. 잠깐만 질문할게 있는데…."
"응, 뭔데? 뭐든지 물어봐."
"혹시 우리 형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 한 달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는데."
"아, 쿠퍼말이야? 걔는 언제나 같이 거기 바다 쪽 마을로 갔지. 거기 이름이 다스머트였나?"
"그래? 내가 지금 형을 찾으러 가 봐야 할 거 같아서 나중에 봐요!"
다스머트. 그 이름을 되새기며 나는 길을 떠났다.
마차를 타고 바로 갈 수도 있겠지만 가는 길에 있는 마을에서 탐문도 할 겸사겸사 걸어가기로 했다.
몇 시간을 걸어가고 해가 떨어질 즈음이 되자 어떤 마을에 도착했다.
양해를 구한 나는 어떤 사람의 집에서 하루 묵게 되었고 다음날 마을 사람들에게 질문했다.
"혹시 저와 닮은 사람이 마을을 지나간 적이 없나요?"
"응? 그러고 보니 가끔 오는 청년이랑 닮았구먼. 혹시 형제인가?"
"아, 아무래도 제 형이 맞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형도 이쪽 길로 다녔나보군.'
간단한 탐문을 끝낸 나는 다음 마을로 향했다.
다음 마을에서도 나는 같은 질문을 했고, 형이 확실히 다스머트에 향했다는 걸 확신했다.
"혹시 다스머트가 어떤 마을인지 아시나요?"
"다스머트? 여기 근처 마을에 볼일이라도 있나?"
"형이 다스머트로 향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요."
"허어, 빨리 형을 찾았으면 좋겠군. 아, 그러고 보니 요즘 이런 소문이 있었네. 다스머트가 요즘 물고기가 많이 잡히고, 금광이라도 발견했다던가 그랬던데."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내일이면 다스머트에 도착하겠군.'
내일이면 좋든 싫든 사건의 진상과 만나게 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그렇게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잭은 다스머트에 도착했다.
'마을의 분위기가 이상한 걸. 물고기도 많이 잡히고 금광도 발견했다는데 왜 이리 표정들이 어둡지?'
마을에 들어가자 악취가 코에 들어온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비린내가 아닌 마치 물고기가 썩어서 나는 듯한 비린내가 마을 전체에 얕게 깔려 있다.
"아! 여행이라도 오셨나요? 어서 오세요!"
방금 봤던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 웃음을 띄우며 내게 다가온다.
내가 방금 봤던 사람이 맞는 걸까?
무언가를 두려워하던 표정은 어디 가고 매우 기뻐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 사람도 비슷하다.
기뻐하거나 안도하는 표정.
"아, 제가 형을 찾으러 왔는데 저와 닮은 사람을—"
"아니요.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거 같네요."
무례하게 말을 끊으며 부정했다.
내 말을 전부 듣지도 않고 어떤 고민도 없이 대답하는 게 매우 수상했다.
'이 사람, 거짓말을 하고 있군.'
"아! 제가 너무 무례하게 말했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최근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변명을 하지만 내 눈을 피할 수는 없다.
탐정의 감이 말하고 있다.
형은 이 마을에서 실종되었다고.
'그렇다면 일단 이곳에서 어느 정도 묵어 보며 찾아야겠지….'
"혹시 마을에 묵을 만한 곳이 있을까요?"
"아, 그건 촌장님께 물어볼게요!"
그렇게 말하며 그 여자는 사라졌다.
'잠시 마을이라도 둘러보자.'
마을을 돌아다니던 나는 계속 시선을 느꼈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숨는 사람, 마을에서 놀다가도 내가 지나가니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
분위기가 너무나도 소름 끼친다.
닭살이 돋은 나는 팔을 쓸으며 바다쪽을 향했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저게 뭐지? 기둥?"
어떤 생물을 새겨 놓은 듯한 기둥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 깔려 있던 비린내의 근원이 여기인건지 비린내가 더 심해졌다.
내가 기둥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한 걸음 내디디려는 순간—
"저기요?"
—툭.
처음에 봤던 여자가 어느새 촌장을 만나고 온 건지 내 뒤에 서 있었다.
"아, 촌장님을 만나고 오셨나 보군요."
"네. 촌장님 댁에 빈 방이 있다고 하네요. 어서 가시죠."
저 기둥을 내게 보여 주기 싫은 것인지 나를 촌장의 집으로 데려가려한다.
'일단 따라가는 게 좋겠지. 저건 나중에 조사해도 될 테니까.'
나는 여자를 따라 촌장의 집으로 갔다.
촌장의 집은 꽤 컸다. 한 가족이 살기에 약간 클 정도로.
"안녕하십니까. 제가 다스머트의 촌장인 스콧입니다."
희게 샌 머리, 하지만 옷 너머로 보이는 근육들과 그을린 피부가 뱃사람이란 걸 알려 주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스콧씨. 아무래도 실례하게 되었습니다."
"실례라뇨? 이렇게 여행객도 찾아와야 마을에 활기가 돌죠. 하하하!"
몸은 다부지지만 온화한 인상이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지만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오는데 피곤하셨을 테니 방에서 쉬시고 저녁이라도 드시죠. 저희 마을의 생선 요리가 명물이랍니다!"
"아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나는 촌장의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왔다.
그리 좁아 보이진 않는 방에 침대와 서랍,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창문이 여행을 왔다면 좋다고 느꼈을 법한 방이다.
나는 침대에 앉아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형이 납치되었다면 죽었을까? 아니면 어딘가에 갇혀 있을까?'
죽었다면 시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저 멀리 바다로 나가 시체를 버리면 금세 물고기밥이 되어 흔적도 찾을 수 없을 테니.
'일단 어딘가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나는 형이 살아 있길 희망하며 숨길만한 곳을 추리했다.
'숨긴다면 지하실이나 동굴같은 곳일까…. 이 근처에 동굴도 있던 거 같던데. 지하실이 있을 만한 곳이라면 여기 촌장집 밖에 없겠지만.'
마을을 둘러봤지만 지하실이 있을 만한 크기의 집은 촌장의 집을 제외하면 없었다.
'그렇다면 좀 있다가 지하실이 있나 찾아봐야겠군.'
—끼이익!
"어라? 이렇게 어두워졌는데 등불도 안 켜시고 뭐 하십니까?"
너무 오랫동안 생각을 했는지 어느새 어두워졌다.
"아. 방금 일어나서 등불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저녁이 완성되어서 부르러 왔습니다."
출출해진 나는 촌장을 따라 부엌으로 갔다.
식탁에 앉으니 큼지막한 물고기를 그대로 요리한 것이 보였다.
"일단 식사 전에 기도부터 하죠."
"아 그러시죠."
나는 눈을 감고 작은 소리로 기도문을 외웠다.
그런데 귀에 들어오는 촌장의 기도문이 조금 이상했다.
'다곤?'
혹시 이 마을의 사람들은 이교를 섬기는 걸까.
나는 그 기도문을 못 들은 척하며 기도를 마무리했다.
"그럼 드시죠."
어느새 기도를 끝낸 촌장이 생선 요리를 덜어 주며 말했다.
"아, 그럼 잘 먹겠습니다."
요리는 맛있었다. 어디서 향신료라도 구한 건지 독특한 향이 일품이었다.
저녁을 먹은 나는 방에 돌아가겠다 하고는 잠시 집을 둘러봤다.
하지만 촌장에게 들킬 수도 있어 짧은 시간 동안 제대로 살펴보진 못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웠다.
'밥을 먹어서 그런가, 졸리네.'
형을 찾기 위해 이곳까지 걸어오느라 피곤했던 걸까?
침대에 누운 나는 금세 잠에 빠졌다.
***
'으으, 왜 이렇게 흔들려.'
눈을 뜨니 손과 발이 묶인 채로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게 뭐야?!"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청년들이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마을 사람들도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이대로 허무하게 끌려갈순 없어서 나는 몸부림쳤다.
예상외로 강한 힘에 놀란 걸까.
청년을 나를 놓쳐 버렸고, 나는 땅을 굴렀다.
그렇게 구르다가 손에 무언가 날카로운 게 잡혔다.
이걸로 밧줄을 풀어야지— 생각하다가 마을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윽, 으악!"
저항할 수 없는 폭력에 나는 웅크리며 몰래 밧줄을 끊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맞다가 폭력이 멈추자 나는 더 빨리 밧줄을 풀었다.
"이봐! 제물로 바쳐야 하는데 이러면 어쩌자는 건가?!"
"아니, 이 녀석이 저항하지 않습니까…."
촌장과 나를 때린 마을 사람들이 말다툼을 하지만 머리를 맞아서 그런지 이명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촌장과 다투느라 나를 신경 쓰지 못했는지 나는 밧줄을 전부 풀 수 있었다.
"움직이지 마!"
나는 권총을 빼들었다.
"움직이면 죽을 줄 알아!"
사람들은 내가 권총을 가지고 있을지는 몰랐는지 당황해하는 게 느껴졌다.
"너희들이 내 형을 납치한 범인이구나! 내 형은 어디 있어?!"
"이보게 젊은이, 진정하게."
"다가오지 마!"
나는 촌장을 겨눈다.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오면 쏘겠어!"
그렇게 나와 대치하던 사람들은 뒤에서 누군가가 왔는지 웅성거리다 길을 터줬다.
그 사람—아니 그것은 내게 다가왔다.
날카로운 비늘과 지느러미, 손에 달린 물갈퀴와 칼날 같은 손톱, 큼지막한 눈과 벌려진 입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이빨까지.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모독적인 괴물이었다.
"흐아악—!"
—탕!
나는 그 끔찍한 것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캬아악!"
총알에 맞은 그것은 괴로워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몇 발을 더 쏜다면 죽일 수는 있겠지만 내가 가져온 총알이 별로 없어서 다시 끌려갈 수 있었다.
그렇게 대치가 계속되자 다른 괴물도 찾아왔다.
나는 승산이 없으니 도망쳐야할까 생각했는데 괴물들이 대화를 나누더니 갑자기 마을 사람들을 공격했다.
나는 괴물과 한편인 줄 알았던 마을 사람들이 공격받자 어이가 없어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제압되어 괴물들에게 끌려간 마을 사람들을 본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형도 아마 저 괴물들에게 잡혀 있겠지. 이곳에 온 이유를 잊으면 안 돼!'
나는 저 멀리 바다로 가고 있는 괴물을 몰래 따라갔다.
바다에 도착한 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낮에 봤던 기둥에 묶여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 형이 보였다.
"형!"
형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지만 오랬동안 굶었는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는 형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려 했지만 괴물이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걸 말이라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는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자 괴물들이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으아악—!"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형도 괴물의 손톱에 목이 반쯤 베여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입으로 피를 개워내다 결국 고개를 떨구는 형을 본 나는 그저 멍하니 형의 시체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리고 바다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팔이 기둥을 붙잡는다.
이어서 튀어나온 것에 나는 더욱더 깊은 절망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
이곳에 널려 있는 괴물이 커진 듯한 생김새지만 근본적으로 무언가가 다르다.
겁에 질린 나는 필사적으로 숨을 곳을 찾아간다.
나는 어느샌가 오늘 묵었던 촌장의 집에 있었다.
그리 좁아 보이지 않는 방에 침대와 서랍,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창문.
바다가 보이는 창문.
창문 밖으로 날 잡기 위해 쫓아오는 괴물들이 보인다.
그리고 커다란 괴물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쪽으로 오고 있다.
—쾅쾅쾅!
괴물들이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어느새 커다란 괴물은 집 가까이로 와서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저 창문! 창문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