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8화 (8/154)

〈 8화 〉 괴력난신

* * *

점심을 먹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딥 원은 왜 다곤을 강림시켰을까.

크툴루 신화에선 다곤도 지구에 함께 있어서 심해 도시가 그의 마력에 보호를 받았다.

아무래도 숭배하는 다곤을 직접 모시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마력으로 보호받는 도시는 덤이고.

그렇다면 다른 그레이트 올드 원이 있어도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딥 원은 금지해 둬야 할까.

"하아…. 그래도 다시 딥 원을 사기 위해 포인트를 쓸 일은 없을 테니 다행인가."

나는 딥 원을 대신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상점을 둘러봤다.

그레이트 올드 원과 관계은 없으면서 공포스러운 무언가.

"오."

그럴듯한 걸 찾았다.

­괴력난신 : 10000pt

딥 원의 열 배 가격.

하지만 괴력난신이라면 귀신이나 요괴, 신 같은 존재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겠지.

"이걸 사야겠네. 역시 공포하면 귀신이지."

하지만 이걸 사도 4만 포인트나 남는데 포인트를 아껴야 할까.

"음…. 그다지 끌리는 것도 없으니 이대로 가자."

[과거의 기록]

­딥 원의 출몰 □

­신앙의 발생 □

­괴력난신 (New!) □

물리적인 게 아닌 추상적인 것은 이런 식으로 추가되는 건가.

'그럼 신앙의 발생과 괴력난신만 선택해서 가야겠다.'

세 번 째 지구, 지구­003의 시간은 현대였다.

"일단 확인해볼게 있으니 고대 시대로 돌리자."

그렇게 다이얼을 돌려 청동기 시대— 나에 대한 신앙이 퍼졌을 시대로 향했다.

시간을 맞추고 지구를 둘러다보니 익숙한 얼굴을 찾았다.

나의 대사제, 제사장.

지구­003에선 아직 내가 간섭하지 않았지만 저 단검에 새겨진 주문을 보면 내가 이전 지구에서 했던 행동이 그대로 일어난 거 같다.

"그럼 설정도 제대로 된 거 같으니 시간을 빠르게 돌려볼까."

다이얼을 돌려 철기 시대로 맞췄다.

아직 내 신앙이 몰락한 건 아닌지 나의 대사제가 지닌 특유의 눈동자를 지닌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나의 명령을 제대로 따른 것인지 어느새 어엿한 나라로 발전해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글이 없다보니 구전으로만 주문을 전수해와서 그럴까.

많은 주문들을 소실한 거 같았다.

'나도 글 같은 걸 알려줄 걸 그랬나? 니알라토텝이 핵무기의 설계도를 건네준 것처럼. 잠깐, 니알라토텝…?'

니알라토텝. 기어오는 혼돈, 천 가지 형태의 군주, 외계의 신, 아우터 갓.

그레이트 올드 원보다 더욱 상위 개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인 외우주의 신, 아우터 갓을 잊고 있었다.

'혹시 아우터 갓이 나를 이곳에 넣어 둔 것이 아닐까?'

이런 공간을 만들만 한 존재라면 아우터 갓이나 이스의 위대한 종족 정도일까.

하지만 이스의 위대한 종족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으니 아우터 갓들 중 하나겠지.

"이건 나중에 힘을 더 키운 다음에 생각하자. 일단은 지구에 집중해야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라는 어느새 멸망해서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멸망했으면 이 시간대는 볼일이 없는데. 넘겨야겠다.'

시간을 빠르게 돌리니 내가 풀어둔 괴력난신의 활약이 보였다.

쇠를 먹어치우는 괴물이 날뛴다던가, 꼬리가 여럿 달린 여우가 사람을 유혹해 간을 빼먹는다던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괴력난신이 나타나는 빈도가 줄었다.

고려 시대를 지나 조선 시대가 되면서 가끔 나타나 사건을 일으키는 정도였다.

아무래도 괴력난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힘이 약해진 걸까.

'확실히 여러 창작물 속에서도 그런 느낌이 많았지.'

그러고 보니 이름을 보고 추측만 해서 설명을 안 읽었었다.

[괴력난신 ­ 괴이한 힘과 난잡한 귀신을 뜻합니다. 귀신과 요괴, 이야기 속 존재들이 실재하게 됩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믿는 사람이 많을 수록 힘이 강해집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믿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라.

그 반대로 세상이 평화롭고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약해지다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이겠지.

과거에 여러 마을을 멸망시킨 구미호라던가, 여의주를 2개가진 이무기같은 존재는 어느새 토벌되었고.

사람을 간신히 홀려 간을 빼먹는 여우나 원한깊은 구렁이 같은 퇴마사가 아닌 지나가던 선비에게도 죽을 정도로 약한 괴이만 활동했다.

물론 강력한 괴이도 여럿 존재했지만 힘이 예전만도 못 해서 그런지 몸을 사리고 있었다.

이대로 퇴마사들이 사라지길 기다리다가 활약할 때를 기약하는 걸까.

서양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니 더 나쁘다고 해야 할까.

과학이 발전하면서 점차 괴력난신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괴력난신이 사라지니 과학이 더 발전하고, 그렇게 발전하면서 괴력난신이 더욱 사라지는 악순환이 발생하면서 결국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 21세기, 현대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괴력난신도 존재하고 가끔 사고도 일으키지만 그 규모가 예전만도 못하다.

무당이라던지 여러 무속인도 존재하고, 외국에도 엑소시스트처럼 악령을 퇴치하는 성당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어라?"

12살쯤은 되었을까.

아직 어린 갈색 눈의 소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 들린 익숙한 단검과 소녀의 갈색 눈을 보자 친숙한 얼굴이 떠오른다.

'아직까지 혈통이 이어지고 있던가…. 그나저나 엄청난 재능이군. 내가 불러내지도 않았는데 찾아오다니.'

일단 의식을 치렀으니 문장은 새겨줘야겠지.

'앞으로는 이 아이를 주로 관찰할까.'

주인공이란 특별한 법이니까.

어릴 적에 호기심으로 해 본 의식 때문에 눈 색이 변하고 이상한 세계를 알게 된 소녀라니.

"여긴 어디예요? 전 할머니 집에 있었는데…."

'응? 아직 문장을 새기지도 않았는데?'

"이곳은… 내가 사는 곳이란다."

"우와아—!"

내 모습을 보고 놀라기는커녕 좋아하다니 무서울 정도의 재능이다.

"혹시 우리 할머니가 말한 밤하늘의 신님이세요?"

"응? 그래, 그렇지."

소녀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저는 하윤이에요! 이하윤."

"그렇구나. 네가 무슨 일을 한 건지 아느냐."

"혹시 제가 나쁜 일이라도 한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나를 만나는 사람은 오랜만이여서 그렇구나."

"신님은 외톨이세요?"

"커헉!"

소녀가 나를 말로 때리고 있다.

"아무튼 내게 선물로 줄게 있단다."

"우와! 뭐예요?"

소녀에게 문장을 새기며 몇몇 기능을 추가한다.

"이것만 있으면 언제나 나와 대화할 수 있을 거란다."

소녀는 새겨진 문장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구나. 너희 부모님도 걱정하고 계시고."

"앗!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그래."

나는 그녀의 영혼을 돌려 보내며 말했다.

"돌아가면 혼자 있을 때 말을 걸렴. 안 그러면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볼거란다."

이렇게 말하고 소녀가 제대로 돌아갔는지 확인하지 잠에서 깨어나듯 눈을 뜨는 소녀를 찾을 수 있었다.

눈을 뜨니 심연같이 어두우면서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인다.

누워 있던 소녀를 걱정하며 바라보던 그녀의 부모님과 할머니가 그 눈동자를 보고 놀란다.

'하긴 기절했더니 눈동자 색이 바뀌면 누군들 안놀라겠어.'

소녀가 말한 할머니는 얼굴을 굳힌 채로 부모를 끌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현대에서 보기 힘든 한복을 입고 늙었는데도 눈에서 느껴지는 총기가 마치 무당인 거 같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어 보니 이런 말이 들렸다.

'신내림?'

신내림이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물론 부모에겐 날벼락 같은 소식이겠지만.

그렇게 다들 밖으로 나가자 소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신님. 들리시나요?"

'잘 들린다. 한번 머릿속으로 생각하듯이 내게 말해볼 수 있겠느냐?'

"한번 해볼게요."

'아— 아아—. 신님, 들리세요?'

'그래, 앞으로 누가 같이 있을 때는 이런 식으로 말하거라. 너도 남들이 이상하게 보는 건 싫겠지?'

'네!'

잠시 소녀가 나와 말을 나누는 사이, 대화가 끝났는지 소녀의 부모가 방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할머니의 말을 못 믿는 것인지 병원에 데려가려 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병원에 데려가도 돌아오는 대답은 정상이라는 소리일 뿐.

이런 마법적인 힘을 아무리 현대기기라고 해도 알아차릴 수는 없었겠지.

결국 할머니의 말처럼 신내림이라는 걸 인정한 걸까.

다시 그 무당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소녀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어쩌다가 신내림을 받게 되었냐고.

소녀는 우물쭈물거리다 결국 대답했다.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과 단검, 그리고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따라 하자 일어났던 것까지.

무당인 할머니는 방학동안 자기 집에서 지내면서 수련같은 걸 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런 상황에 문외한인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자기들의 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수련을 한다고 해도 별거 없었다.

재능이 있기도 하고, 이미 문장을 통해 나와 대화할 수 있으니 수련은 간단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문장의 영향으로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무당이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고 소녀도 나의 문장이 새겨져있어서 귀신이 다가오지 못했지만 문제는 방학이 끝난 이후였다.

자신들을 볼 수 있는 소녀에 호기심을 느끼지만 다가가면 죽을 거라는 것을 느낀 귀신들은 소녀의 근처를 맴돌뿐이었다.

그렇게 맴돌면서 그녀의 근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힘이 약해서 물리적인 피해를 주진 못하지만 약간의 한기를 느끼게 한다던가, 악몽을 꾸게 만들다던가.

혹은 희귀하게 귀신이 보이는 아이에게 달라붙어 괴롭힌다던가 하는 일이 생겼다.

물론 원인이 자기인 것도 모르고 귀신은 자신을 못건드니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주변의 분위기에 따라 함께 침울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요즘 친구들이 기분이 안 좋은 거같아요….'

'그건 귀신들 때문이란다.'

'혹시 저 때문인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어떻게 하겠느냐?'

'뭐가요?'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귀신을 퇴치하는 거지.'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넌 내가 선택한 아이니까.'

물론 먼저 다가온 건 저 아이지만 문장도 새겨 줬으니까.

이후론 퇴마에 쓸 만한 주문을 가르치는 일 뿐이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주문을 가르치자 바로바로 배우는 것이 역시 엄청난 재능이라 다시 생각했다.

이후로는 주문을 배운 소녀— 하윤이가 근처의 거슬리는 귀신들을 전부 족치고 친구들의 평화를 얻어냈다.

그리고 나는 하윤이의 친구이자 보호자처럼 지냈다.

그렇게 소녀는 점점 성장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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