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지구003
* * *
어느날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을 향해 가는 길이었네.
"꺄아악!"
그런데 어떤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게 아닌가.
나는 비명을 낸 사람을 찾아갔고, 구렁이에게 잡아먹히게 생긴 처자를 발견했지.
평범한 구렁이가 아닐세.
몸통이 얼마나 긴지 사람을 칭칭 감고도 남았으니 말이야.
하지만 화살앞에선 그저그런 미물일 뿐이지.
거 선비의 덕목중에 활 쏘기도 있지않나.
그렇게 구해준 처자가 나에게 반해버려선 은혜를 갚기위해 결혼을 하겠다고 하지않는가.
물론 예쁘긴 예뻤지.
그런데 나는 과거 시험을 보러가는 길이었잖나?
어쩔수없이 나는 시험을 보러 가야하기 때문에 결혼은 힘들다고 말했어.
그런데 이게 뭔가?
그렇다면 시험을 끝내고 돌아올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는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한양으로 가 당당하게 합격하고 돌아왔지.
응?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떻게 됐냐고?
저기 저 여편네가 보이나?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이렇게 결혼까지 해서 오순도순 살고 있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지.
내가 아까 말한 구렁이 있잖나.
그게 암놈이었던 모양이야.
새끼들이 어미의 복수랍시고 찾아오는게 아닌가?
게다가 알을 얼마나 낳은겐지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찾아왔다네.
물론 오는 족족 전부 물리쳤다네. 내가 검술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말이야.
아니면 지금 자네와 대화하는게 유령이겠지, 안그런가?
하하하! 자네 표정 좀 풀게나.
아,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네.
내가 방금 알을 얼마나 낳았는지—라고 말했었잖나.
말 그대로일세.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구렁이도 있었지만 그런 행동을 못 할 정도로 어린 것도 있는 모양이야.
어미를 죽인게 누군진 모르겠지만 제 누이인지 오라비인지 누군가 사람이 죽인걸 알려줘서 그런지 사람을 만나는 족족 공격하는 모양이지 뭔가.
그러니 절대로 저 산에 들어가지말고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 할 때는 반드시 조심하게.
아무리 사대부가 없다고 부정한다지만 괴력난신은 존재하네.
자네가 어두운 방에 들어간다고 해가 사라지는건 아니잖나?
응? 내가 해결하면 되는게 아니냐고?
어허, 나는 지금 지켜야할 가정이 있는데 죽으러 가라는 소리냐.
그때는 구렁이들이 내 가정을 위협하니 죽인 것이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내가 아까 말했잖나.
목숨이 아까우면 저 산에 들어가지 말라고.
***
임자년 약초꾼과 나무꾼들이 뒷산에서 실종되는 일이 발생한다.
전하께서는 수사를 명하셨고 나는 그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영천현을 향하고 있었다.
"강석아, 언제쯤 영천현에 도착하겠느냐."
"반나절쯤이면 도착할거 같습니다."
내가 타고있는 말을 끌고가고 있는 녀석은 강석이라고 하는데 내 노비다.
평소에 나를 잘 따르기도 하고 힘도 깨나 좋아서 데려왔다.
"마을에 도착하면 여독이나 풀 겸 네가 좋아하는 전에 술이나 한잔 하자꾸나."
"아유, 그럼 빨리 가야겠네요."
걸음을 서둘리하는 강석이를 바라보며 나는 장죽을 꺼냈다.
장죽에 담뱃잎을 넣고 부싯돌로 불을 피우니 달콤하며 매캐한 연기가 입 안으로 들어온다.
"푸후—. 꿀물에 축여둔 담뱃잎은 좋구만."
나는 담배를 피며 사건을 생각했다.
약초를 캐러, 나무를 하러 간 사람들이 여섯이나 실종된 사건.
처음엔 산짐승이 물어간게 아닐까 생각도 해봤지만 장정 세 명이 실종자를 찾겠다고 산으로 갔는데 한 명도 돌아오지 않는걸 보고는 심각성을 느끼고 보고했다지.
'세상은 이리도 평화로운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나는 원인이 될 법한 일을 생각해봤다.
'약초꾼 둘에 나무꾼 하나 그리고 장정 셋이라. 실족사는 아니겠군.'
약초꾼이나 나무꾼이 좀 더 깊숙히 들어갔다가 실족사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장정 셋이 찾으러 들어갔는데 세 명이 동시에 떨어진게 아닌 이상 실족사일리는 없다.
'애초에 약초꾼과 나무꾼은 산길을 잘 알고있을테니.'
그렇다면 산짐승이 물고 간걸까?
'그것도 아니야. 너무 굶어서 공격했다해도 여섯을 전부 먹어치웠을리도 없다. 그리고 건장한 청년 세 명 중 한 명도 돌아오지 못한 것도 이상해.'
그렇다면 산적일까?
'산적이라면 가능하겠군. 약초꾼이나 나무꾼은 물론 건장한 청년 세 명도 머릿수 앞에선 무용지물이겠지. 하지만 최근에 기근이 일어난 적은 없는데.'
기근이 발생해 사람들이 굶으면 모를까, 풍작이었던 작년에 창고를 곡식으로 꽉 채워뒀을텐데.
'처음부터 도적질을 하던 녀석들이 아니라면 모를까.'
그리고 내가 가는 영천현에서 올라온 보고는 실종 사건 뿐이었다.
도적이 나타났다거나 하는 일은 보고되지 않았고, 근처 마을에서도 그런 보고는 없었다.
'거 참 기괴한 일일세.'
"나으리, 곧 도착합니다요."
"그래? 시간 참 빠르게 가는구나."
많은 초가집과 논밭, 그리고 커다란 기와집 몇채가 보인다.
"저곳이 관아인가보군. 일단 이곳 지방관을 먼저 만나고 주막으로 가자꾸나."
"예, 나으리."
관아앞에 도착하니 대문앞에 포졸 두 명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전하께서 명을 내리셔 영천현의 실종사건을 조사하러 왔네."
"아, 사또께서 말하신 분이군요. 어서 들어가십쇼."
관아로 들어가니 사또로 보이는 사람이 무언갈 적고있었다.
"크흠!"
"아,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군. 미안하네. 그대는 누구인가?"
"영천현에서 실종사건이 발생해 전하께서 명을 내리셔 찾아왔습니다."
"그대가 조사관이로군. 보고를 올린지 얼마 안됐는데 이리도 빨리 오다니. 감사하네."
"전하께서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라는 어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렇군. 여기, 증언을 적어둔 두루마리일세."
"감사합니다."
사또에게 두루마리를 건네받은 나는 우선 마을의 분위기를 살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저는 내일 아침에 산으로 가보겠습니다."
"알겠네. 내일 아침 산길에 눈이 밝은 사람을 한 명 보내겠네."
이렇게 관아를 나온 나는 약속대로 주막을 향하기로 했다.
다른 초가집보다 크고 평상 몇 개가 밖에 있는 곳을 찾았다.
"나으리 저기입니다. 저기서 국밥 냄새가 납니다."
마을 분위기가 안좋아서 그런지 손님이 없는 주막을 찾았다.
"나리께선 국밥도 드시렵니까?"
"그래. 여기까지 오니 출출하구나. 너도 국밥을 먹고싶은게냐?"
"저는 전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허허, 너의 전사랑은 여전하구나."
"주모! 여기 국밥 하나랑 전 좀 많이 주쇼. 그리고 막걸리도!"
"예에!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일각 정도 기다렸을까.
국밥과 함께 푸짐하게 쌓인 전 한상을 가져왔다.
"거 손님도 없는데 함께 드는게 어떠나."
"어머,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
이렇게 말하고 나는 묵묵히 국밥을 먹었다.
"이분이 여기 영천현의 실종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야!"
"정말이에요? 요즘 마을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장사도 잘 안됐는데 다행이네."
"그래서 혹시 소문같은거 없나?"
"소문? 그러고보니 어느 양반이 자기가 구렁이에게 원한을 샀다고 말하던데."
"구렁이? 무슨 옛날 이야기도 아니고 구렁이가 무슨 말이여."
"그러게 말이야. 애들한테나 들려주기 좋은 이야기지."
"어디서 도적이 나타났거나 그런 이야기는 없느냐."
"나으리, 제가 이곳에서 20년이 넘도록 살았지만 언제나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그렇느냐."
이후로는 강석이와 주모가 몇마디 말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잘 먹었네. 오늘 하룻밤 묵어야겠는데."
"그렇다면 저쪽 끝의 방을 쓰시면 됩니다."
방에 들어오니 개어져있는 이불과 책상, 그리고 등불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또께서 주신 두루마리를 읽을테니 강석이 넌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오거라."
"예. 알겠습니다."
두루마리를 읽으니 한문으로 쓰여진 문장들이 보인다.
내용은 비슷하다.
산을 다녀본게 10년이 넘는 시간인데 그럴리 없다는 증언과 깊은 산에나 들어가야 호랑이가 있다는 증언.
"허어, 호랑이도 아니고 실족사도 아니고 산적도 아니면 역시 내일 아침 조사를 해봐야 하는건가."
그렇게 두루마리를 거의 다 읽어가니 강석이가 돌아왔다.
"강석아,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냐."
"예에, 산에서 실종된 사람들은 모두 어릴적부터 산에서 일을 해와서 그럴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은 없더냐?"
"그러고보니 요즘 쥐가 안보인다고 하더군요. 창고에 뱀이 사는것도 아닌데 잡아먹힌건지 도망간건지…."
"별 수확은 없구나. 그럼 일찍 자자꾸나.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할테니."
그렇게 이불을 펴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땐—
"이게 무슨…."
—몸이 밧줄로 꽁꽁 묶여있었다.
아니 밧줄이 아니다.
매끈하면서 싸늘한 감촉이 마치 뱀같다.
'뱀?'
그리고 위를 바라보니 노란색 안광이 나를 쳐다본다.
쩌억—
그리고 벌려진 입이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허억—!"
악몽을 꿨다.
"젠장, 기분 더럽군."
잠에서 깬 나는 세안을 하려 우물을 찾아 문 밖으로 나왔다.
하늘이 약간 푸르고 동쪽에서 하늘이 붉어지는것이 보이는게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려는 중이었다.
우물을 찾은 나는 세안을 하고 강석이를 깨우기 위해 방으로 갔다.
"강석아, 일어나거라!"
내 목소리를 들은 강석이가 꼼지락거리더니 슬그머니 일어났다.
"으으—벌써 아침입니까요?"
"그래."
그렇게 강석이가 일어나는걸 바라보며 마루에 앉아있던 나는 누군가 다가오는걸 느꼈다.
"혹시 사또께서 말씀하신 조사관님이십니까?"
"그렇다네. 자네가 길잡이인가?"
"예. 어릴적에 산에서 많이 놀아서 산길은 잘 알고있습니다."
길잡이도 왔겠다, 나는 산으로 갈 준비를 했다.
우선 철궁을 꺼낸다.
가장 강력한 활은 각궁이지만 수사를 위해 여러곳을 떠돌아다니는 나는 활을 관리하기가 어려워 철궁을 쓴다.
시위를 당겨보고는 활 상태가 썩 괜찮은 것을 느끼고 이번엔 검을 꺼낸다.
날의 길이는 세 뼘정도 될까.
날카롭게 세워진 날을 보고 다시 칼집에 집어넣는다.
"강석아. 준비는 다 됐느냐?"
"예!"
강석이는 점심으로 먹을 주먹밥과 나뭇가지로 길이 막힐때를 위해 낫을 하나 준비했다.
호신용으로도 쓸만하겠지만 이 녀석은 손아귀힘이 장난아니여서 늙은 호랑이도 때려잡았으니 온몸이 무기인 녀석이나 다름없다.
'이 녀석이 노비만 아니였어도 장군으로 이름을 날렸을텐데….'
잡다한 생각을 하다가 산으로 출발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안개가 껴서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안개가 꼈는데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이것보다 더 심할때도 잘만 다녔지요."
아직 초여름이여서 그럴까.
안개가 껴서 그런지 엄청 쌀쌀하다.
"위험한 동물같은건 없고?"
"호랑이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나오고, 여우나 매, 아니면 뱀 정도일까요."
"독사는 아니겠지?"
"색이 밋밋했으니 독은 없을겁니다. 그리고 다들 물려본적이 없어서요."
"우선 사람이 떨어질만한 높이의 절벽으로 가주게나."
"예이."
절벽에 도착하니 낭떠러지가 보인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지 않아도 멀쩡하지 못할 듯 하다.
"시체는 없군. 다른 곳은 없나?"
"여기가 잘 알려진 절벽입니다. 다른 곳은 찾아봐야 알 듯 합니다."
"그럼 같이 찾아보지."
길잡이는 사람이 다니면서 생긴 길을 따라 안내를 계속 했다.
"여기서 산나물이나 약초를 캤습니다. 나뭇가지도 마찬가지죠."
확실히 길에 나뭇가지나 풀이 별로 없다.
"길은 여기서 끊깁니다. 혹시 더 들어가시렵니까?"
"그래. 자네는 마을로 돌아가도 괜찮네."
"그럼 수고하십쇼. 저희 마을 사람들도 반드시 찾길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길잡이와 헤어진 나는 산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 지났을까.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왜 아직도 안개가 껴있지. 지금쯤이면 안개가 다 걷혀야 할 시간인데."
"혹시 숲 속이라 그런게 아닐까요?"
"주변이 산으로 막혀있다면 불가능하진 않을거다. 하지만 영천현은 그런 지리가 아닌데…."
그렇게 이상함을 느끼며 수색을 했지만 찾은건 없었다.
"사람이 다닌 흔적도 없고, 길잡이 말대로 여우나 고라니같은 동물뿐이군."
길을 가다가 비명소리가 들려서 갔더니 고라니 울음소리라던가.
여우와 마주쳐도 그쪽이 먼저 도망칠 뿐이었다.
"이제 슬슬 점심시간이니 주먹밥이나 꺼내먹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니."
"예, 나으리. 저도 슬슬 배가 고팠습니다."
소금으로 간을 했을뿐인 밥이지만 두 시진 정도 산을 돌아다녀서 그런지 꿀맛이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다시 수색을 하다 강석이가 무언갈 발견했다.
"나으리! 여기 이상한게 있습니다!"
"뭔가?"
강석이에게 가니 하얀 껍질같은게 있었다.
"이건… 허물인가? 허어, 이렇게나 크다니."
"혹시 용이나 이무기가 아닐까요?"
"요즘 세상에 무슨 소리냐. 이렇게 큰건 처음 보지만 크게 자랄수도 있는 법이겠지."
나는 엄청나게 큰 뱀의 허물을 바라보다가 다시 돌아섰다.
"혹시 뱀에게 잡아먹힌건 아닐깝쇼?"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그렇다면 우선 뱀을 찾아야 한다."
나는 뱀의 허물을 힐끗힐끗 쳐다보다 다시 걸어갔다.
꿈에서 봤던 커다란 뱀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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