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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0화 (10/154)

〈 10화 〉 지구­003

* * *

이번 편은 조금 잔인할지도 모릅니다!

***

오늘 꾸었던 꿈에서 나온 뱀.

마치 저 허물의 주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이야.'

허물을 봐서 그럴까.

꿈에서 봤던 뱀이 떠올라 소름이 끼친다.

나를 바라보던 노란 눈과 나 하나쯤은 가볍게 삼킬 정도로 크게 벌린 입까지.

수풀사이로 뱀이 기어 다니는 거 같은 소리까지 들린다.

"강석아, 혹시 뱀 기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느냐?"

"예? 저는 못 들었습니다. 잘못 들은 거 아닙니까?"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점심이 지나고도 안개가 껴있어서 그럴까.

쌀쌀하다못해 이제는 춥다고 느껴져 닭살이 돋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으리. 혹시 추우십니까?"

"아니, 괜찮다. 그래도 이제 슬슬 내려가 봐야겠구나. 내려갈 때쯤이면 어두워지겠어."

"예. 알겠습니다. 그럼 따라오시죠."

강석이는 낫으로 나무에 새겨두었던 흔적으로 왔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으아악!"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가…!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 같은데요?"

"이건… 아까의 길잡이의 목소리가 아니냐?"

"왜 깊은 산속까지 따라왔을까요?"

"납치당했거나 범인이겠지. 빨리 가자!"

"예!"

비명이 난 곳을 찾아가자 그곳엔 넝쿨로 묶여 있는 길잡이가 있었다.

"이보게 여기서 뭐 하는가?"

"나, 나, 나으리! 살려 주십쇼!"

"강석아, 일단 풀어 주거라."

강석이는 길잡이에게 다가가 낫으로 넝쿨을 베기 시작했다.

"나으리. 넝쿨이 생각보다 질깁니다."

"끊어낼 수 있겠느냐?"

"조금 오래 걸릴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길잡이. 강석이가 넝쿨을 자르는 동안 네 이야기를 들어 보지."

나는 길잡이에게 왜 여기에 이렇게 묶여 있는지 물어봤다.

"아까 나으리께서 마을로 돌아가시라 하셔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기어 다니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뱀이더냐?"

"예, 맞습니다. 사람은 족히 잡아먹을 크기에 이 녀석이 원흉이다—이걸 깨달고 도망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 잡혀 있느냐?"

"도망가려고 하는데 눈이 마주치지 뭡니까. 눈에서 독기가 철철 넘치는 게 마주치자마자 몸이 굳어 버리지 뭡니까? 다리가 뻣뻣해져서는 움직이질 못해서 결국 기절하고, 일어나니 이곳이었습니다."

"허어. 일단 그 녀석을 토벌하기 전에 마을로 돌아가서 준비해야겠구나."

대화하는 사이 넝쿨을 다 풀었는지 길잡이가 일어선다.

옷에 붙어 있는 자잘한 넝쿨과 나뭇잎을 털어 낸 길잡이는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빨리 여기서 도망—"

"어딜 도망가려고."

—콰득!

길잡이는 어느새 나타난 뱀에게 목이 물렸다.

"커억! 끄으어!"

길잡이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손발을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저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길잡이를 몸통으로 칭칭 감고는—

"으으. 나, 나으…."

—우드득!

손쉽게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듯 사람의 몸을 으스러뜨리고는 마치 더러운 것에 닿았다는 듯이 던져 버렸다.

그렇게 던져진 검붉은색 덩어리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핏물이 가득한 커다란 고깃덩이에 하얀색 무언가가 삐져나와 있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흙장난을 치듯이 사람을 가지고 논 것 같다.

""으아악—!""

나와 강석이는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렇게 얼마나 도망쳤을까?

강석이는 어디 갔는지 안 보이고 나 혼자만 나무들 사이에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무기, 무기를…!"

도망치면서 쏟아버린 건지 화살은 네 발 밖에 없었고, 그나마 다행이 허릿춤에 검은 그대로 있었다.

나는 화살을 시위에 물리고는 천천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호랑이도 잡아봤는데 뱀 따위에게 겁먹어야겠어?'

그때는 눈 깜짝하면 다가올 정도의 거리였지만 침착하게 대응을 해서 잡았다.

오히려 지금은 더 좋은 상황이다.

그 정도 크기의 뱀이면 발견하기도 쉬울 테고 내가 먼저 발견해서 쏘면 된다.

하지만 목이 물린 길잡이의 눈빛과 그 뱀의 노란색 안광이 내가 움직이기 힘들게 만든다.

마치 증오로 빚어진 듯한 눈과 인간을 향한 끊임없는 살기가 느껴졌었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하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름달이 떠 있다는 걸까.

달빛에 의존하며 나아간다.

올빼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 발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누가 수풀속에서 튀어나왔다.

"나으리! 쏘지마십쇼. 접니다!"

"강석이…?"

다행히도 아까 전 나와 헤어졌던 강석이였다.

강석이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무 사이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걸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 화살촉이 달빛에 빛났나 보구나."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다행입니다."

"그래. 정말 다행이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는데 이렇게 위험한 일이라면 더욱더 낫지 않겠는가.

"아까 그 뱀은 자세히 보았느냐? 무슨 말을—."

무슨 말을 했던데.

'말을… 해?'

"무슨 말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하려고 했지."

그 뱀을 분명히 말을 했다.

'어딜 도망가려고'라고 했었지.

어제까지만 해도 애들한테나 들려줄 이야기라고 했던 게 오늘 현실로 나에게 다가왔다.

'말을 할 줄 안다면 둔갑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까 풀숲에서 강석이가 튀어나왔을 때 눈빛에 약간 노란빛이 돌았던 거 같기도 하다.

"강석아."

"예, 나으리.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두렵다.

언제나 나를 잘 따르던 강석이의 모습으로 둔갑해 나를 죽이려 드는 것이.

내 눈앞의 강석이가 진짜일지도 모르는데 의심암귀에 빠져드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두렵다.

"그러고 보니 땅을 기는 소리가 안 들립니다."

"그렇…구나."

의심이라는 모습을 한 귀신이 점점 나를 잡아먹는다.

'사실 강석이는 죽은 게 아닐까? 이 간악한 뱀이 강석이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온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질문을 해 보자.

정말로 강석이라면 대답을 하겠지.

"강석아…. 어릴 적에 기억나느냐? 네가 목말을 태워줬다가 아버지께 혼났었지."

"예? 지금은 그런 이야기보다 빨리 빠져나갈 생각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내 질문을 회피한다.

'이 더러운 뱀 녀석이 나를 속이려 들다니…. 죽여야 한다. 죽여야… 죽어 죽어 죽어 죽어죽어죽어죽어어죽어죽어'

"이야앗—!"

"크악!"

내가 속은 줄 알고 등을 보여 주다니 멍청한 녀석!

나는 녀석이 원래대로 돌아올까 싶어 빠르게 다가가 다시 베었다.

"죽어! 이 더러운 뱀 새끼야아아!"

"커헉! 나으, 크헉!"

녀석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사악한 술수일까 싶어 말도 못하도록 계속 베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베는 걸 멈추었을 땐—

"허억— 허억—"

—주변은 완전히 피투성이였다.

한지 위에 붓으로 먹 대신 피를 사용해 마구잡이로 칠한 것처럼 주변이 완전히 검붉은색이었다.

검을 얼마나 휘두른 걸까.

팔이 후들거려서 검을 놓고 말았다.

그대로 피곤해진 나는 피바다에 누웠다.

그리고 이것이 악몽이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

눈을 떴을 땐 아직 어두웠다.

달빛에 의존해 검을 찾고는 내가 죽인 시체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척추가 보일 정도로 난도질된 등으론 뱀의 흔적이 안보인다.

아무래도 앞쪽을 봐야 할 거 같은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시체를 확인했다.

"흐아악!"

눈을 뜬 채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죽은 시체.

내가 봤던 노란 안광은 어디 가고 검은색의 눈동자가 자기는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다… 아니야! 그래, 둔갑이 안 풀린 게야!"

하지만 내가 아무리 부정을 하려해도—

"역시 인간은 역겹군. 내 어머니뿐만 아니라 같은 동족마저 죽이다니."

—스르륵하고 땅을 기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네놈! 네 녀석이 나를 홀렸구나!"

"헛소리를."

"내가 반드시 네놈을 죽여 강석이의 원한을 풀겠다."

"더는 들어 주지 못하겠군!"

녀석이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을 일방적으로만 공격해 봐서 그런지 어설픈 공격이다.

나는 오른쪽으로 약간 움직여 녀석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그저 검을 갖다댄다.

다가오던 힘 그대로 베여 목이 반쯤 잘려서는 피가 내 얼굴 쪽으로 튄다.

"윽!"

피가 얼굴에 닿자 뜨거운 느낌이 든다.

아니 뜨겁다 못해 따갑다.

마치 피부가 녹아내릴 정도로.

"으아악!"

아니, 정말로 녹아내리고 있다.

비명을 지르며 벌려진 입으로도 피가 들어온다.

"커헉! 쿨럭!"

"오랫동안 쌓아온 원한이… 독기가 되어 내 몸속에… 흐르고 있지. 아직… 더 죽여야… 하는데…!"

무언가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걸 알아챌 수 없었다.

얼굴과 목이 불타는 거 같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크어어!"

나는 뱀이 다가올까 싶어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렇게 휘두르다 돌부리에 걸려 몇바퀴를 굴렀다.

나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마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쪽으로 땅을 기는 소리가 들린다.

뱀인지 무엇인지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쫓아온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이번엔 앞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언제 추월해서 내 앞으로 온 거지?!'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죽어라 이 뱀녀석!'

"주그아—!"

성대가 망가진 건지 제대로 말이 안 나온다.

뱀은 내 검을 경계하는지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다가가야겠지.

나는 재빠르게 달려 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이 살점을 가르는 감각이 손을 타고 올라온다.

이윽고 뱀이 완전히 쓰러진 것이 보이자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하아—"

하지만 또 다른 뱀이 찾아왔다.

하나가 아닌 여럿이.

'뱀이 하나가 아니었나!'

나는 위협하듯 검을 휘둘렀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럴까 팔이 무겁고 점점 힘이 빠진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되는데….'

풀썩—!

나는 그렇게 쓰러져서 기절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

앞에서 무언가가 말을 하고 있었다.

말이 끝나자 나를 묶은 뱀이 어디론가로 끌고 가더니 내 팔과 다리를 칭칭 감았다.

그리곤 천천히 사지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이런 잔인한 녀석들! 죽여도 모욕적으로 죽이겠다는 건가?!'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여 부모님께서 주신 신체를 소중히 여기며 손상치 않아야 하는데 유교도 모르는 미물들이—!

그렇게 팔다리가 당겨지는 것을 느끼다가—

"끄어억."

—투두둑!

***

임자년 영천현에서 발생한 실종사건으로 조사관을 파견보내지만 조사관과 그와 함께 간 노비가 실종되고, 다음날 실종사건의 범인이 발견되었다.

범인은 피투성이로 나타나서 조사관의 검으로 난동을 부리다 주민을 한 명 부상을 입히고는 기절했다.

미치광이는 즉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았다.

"죄인은 들으라! 영천현의 주민 여섯과 조사관, 그리고 조사관의 노비를 죽이고 시체를 훼손한 죄! 죄의 깊이가 깊어 너에게 거열형을 선고한다!"

밧줄로 묶인 미치광이는 넓은 공터로 끌려간다.

그곳에는 소와 말이 다섯마리가 있고 각각 밧줄이 묶여 있었다.

그 밧줄들은 죄인의 팔다리와 목에 묶여서는—

"형을 집행하라!"

—그대로 당기기 시작한다.

미치광이도 고통은 느끼는 것인지 지하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의 비명을 낸다.

"끄어억."

하지만 그것도 잠시.

—투두둑!

살점이 늘어나면서 끊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비명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멎는다.

그리고 공터에는 대(大)자 모양으로 핏자국이 남고는 죄인의 신체가 여섯 조각이 되었다.

그리고 죄인의 머리는 저잣거리에 효시되어 돌팔매질까지 맞아 원래의 형태도 보이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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