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옛 존재들
* * *
지구003을 보면서 나는 느꼈다.
'하윤이 이 녀석은 혼자서 다른 장르를 찍고 있네.'
어릴 적부터 괴이를 마주하다 보니 평범한 삶을 원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이끌림이 있는 건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귀신을 만난다.
물론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덤빈 귀신의 최후는 성불뿐이었지만 말이지.
'어릴 적엔 무섭다고 말하던 귀여운 때가 있었는데 말이지.'
이제는 그로테스크한 귀신도 그냥 때려잡는다.
'신님, 뭔가 이상한 생각했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크툴루나 다른 그레이트 올드 원이 강림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저번 지구인 지구002에서 다곤이 강림하면서 매우 당황한 나는 무작정 리셋만 했지.
하지만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지구002에서 크툴루의 권속인 다곤이 소환되었는데도 아무런 일도 없는 지구003.
리셋을 하면 좌표가 완전히 바뀌는 것인지 혹은 불러내지 않으면 찾아올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럼 이제 슬슬 리셋을 해 볼까. 괴력난신도 이젠 끝물인 거 같으니.'
이대로 시간이 흘러 인간이 우주까지 진출한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고립된 환경인 우주선 속에서 나타나는 외계 생명체들과 서로 싸우는 인간들….
'나쁘진 않은데? 그런데 우주로 진출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고 진출을 한다해도 어떻게 봐야 하지?'
상점에 지구본 업그레이드가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지구에 집중하고 싶다.
'아직 3회차밖에 안했는데 무슨 우주야.'
다음 회차에 사용할 것도 찾을겸 상점을 둘러봤다.
다음 지구에선 다시 딥 원을 풀어둘 예정이니 크툴루 신화와 관련된 존재이면 좋겠다.
그렇게 상점을 찾다가 좋은 것들을 찾았다.
올드 원
자신들의 피조물에게 살해당한 신비한 과학자들.
생명을 창조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존재라.
"이번 지구에선 이것들을 풀어 놓는 걸로 하자. 아, 그 전에 리셋을 해야지."
[리셋하시겠습니까?]
[포인트 : 72650]
[엔딩 덤벼라 귀신아]
어떤 웹툰이 떠오르는 이름의 엔딩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시간을 돌려서 올드 원을 풀어 둘 차례이다.
지구의 생명체가 나타나기도 전 남극에다가 올드 원 몇몇을 풀어두었다.
녀석들은 심심풀이인지 먹을 것이 부족해서인지 생명체들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창조를 하면서 오랬동안 남극에서 지내다가 다른 곳을 탐험해 보고 싶은 것인지 바다를 통해서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바닷속에 해저 도시를 건설하면서 녀석들은 신기한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
검은 광택을 내는 흐물거리는 살덩이가 보인다.
흐물거리는 살덩이는 부글거리는 거품의 덩어리같고 기괴한 녹색 광채를 내뿜으며 수많은 눈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저렇게 생겼는데도 지성이 있는 것인지 올드 원의 말을 따라 한다.
"테켈리리! 테켈리리!"
다른 올드 원들이 말하는 걸 듣고는 저 생명체의 이름을 알아차렸다.
'쇼고스라.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긴 하네. 올드 원이 만들어 낸 생명체였다니.'
올드 원들은 쇼고스를 노예로 부리며 여러 가지 일들을 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똑똑해지면서 반항적으로 변한 것인지 쇼고스들은 자신의 창조주인 올드 원을 상대로 폭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폭동은 실패로 돌아가 제압당하고 말았다.
올드 원은 쓸모 있는 쇼고스를 폐기할 수 없었던 모양인지 그대로 두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딥 원이 나타났다.
딥 원은 세력을 키우다 올드 원과 마주하게 되었고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도시를 세우며 큰 세력을 가진 올드 원에게 딥 원은 아무런 상대도 아니었고 이러다가 딥원이 멸종할지도 모르게 되었다.
하지만 운이 올드 원의 편이 아니었는지 지각변동으로 여러 대륙이 떠오르면서 해저 도시가 파괴되었고, 그 틈을 통해서 딥 원들이 다곤을 강림시켰다.
나는 과연 다곤이 나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인지 실험해 보기 위해 내버려 두었고, 다행히도 나를 알아차리는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으면 모르는 걸지도. 아니면 내가 더 강한 건가?'
그렇다면 크툴루도 한번 강림을 시켜볼까.
이번 지구는 실험용인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다곤을 강림시킨 딥 원들도 잘 싸우고 있지만 아직까진 패색이 짙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주문을 입에 담으며 크툴루 강림을 시작했다.
성공적으로 강림을 한 크툴루는 자신의 권속인 다곤의 존재를 느꼈는지 올드 원과의 전쟁터로 향했다.
순식간에 상황이 비등비등하게 된 올드 원들은 결판을 내지 못하고 퇴각하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크툴루는 지각변동으로 나타난 대륙에 도시를 짓고는 그곳에서 머물기 시작했다.
'크툴루도 나를 못 알아보는구만. 실험도 끝났고 역할도 다 했으니 대륙 그대로 봉인시켜야겠네.'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크툴루에 자신감이 생긴 나는 통제하기 어려울 법한 크툴루를 봉인시키기로 했다.
자신의 도시에 머물고 있던 크툴루를 잠재우고는 그대로 대륙을 가라앉히며 봉인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시가 완전히 가라앉고 봉인이 완성되자 무언가가 느껴졌다.
"어라?"
몸을 살펴보니 내 몸에 있던 별들이 제자리를 벗어난 것이 보였다.
"이게 뭐야."
나는 마력을 운용해 보고 이상이 있나 살펴봤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아무래도 봉인식의 영향으로 변한 거 같은데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으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지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양식으로 지어진 도시.
그리고 그 도시안에 잠들어 있는 크툴루까지.
마치 르뤼에를 연상시킨다.
'아니 진짜 르뤼에라고 봐야겠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양식의 건축물들을 구경하다가 다시 지구를 살펴봤다.
그새 또 폭동을 일으킨건지 쇼고스들이 날뛰고 있다.
하긴 전쟁때문에 방비가 취약해지면서 기회를 엿보던 쇼고스들이 난리를 피운거 겠지.
어찌저찌 간신히 폭동을 제압한 올드 원들은 자비가 넘치는 건지 멍청한 건지 아니면 또다시 제압할 자신이 있는 건지 쇼고스들을 내버려 두었다.
이후로는 올드 원의 전성기였다.
딥 원과는 협약을 맺은 건지 서로 건들이지도 않았고 잘 살아가고 있었다.
'이대로면 올드 원들이 계속 있겠는데. 어디 숨으려고 하지 않는 걸 보면 다른 외계 종족을 데려와야겠는 걸.'
나는 이전에 봐두었던 외계 종족중 하나를 떠올렸다.
'미고가 좋겠어.'
나는 예전에 봤던 미고의 설명을 떠올렸다.
지구에 있는 특수 광물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광물을 얻기 위해 올드 원과 전쟁을 벌일 터.
나는 즉시 미고를 여럿 구매해 지상에다가 배치했다.
예상대로 미고와 올드 원은 전쟁을 벌였고 비등비등하나 싶었지만 쇼고스의 폭동으로 전세는 반전되어 점점 밀리게 되었고, 결국 자신들이 처음으로 내려왔던 남극 대륙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남극에 있는 도시를 제외한 모든 도시가 파괴되었고 올드 원들은 남극에 고립되었다.
그리고 남극도 점점 추워지며 황폐하게 얼어붙어가자 도시를 버리고 지하 깊숙이 들어가 동면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미고는 평화롭게 가끔씩 자원을 채취해 갔고 남은 쇼고스들은 자기들끼리 잘 살아갔지만 그 일부는 딥 원들에게 길들여지게 되었다.
이후로 시간이 흘러 인간들도 나타나고 문명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동안 쇼고스는 번식이라도 한 건지 개체가 늘어나 있었다.
쇼고스의 후손들은 조상보다는 작지만 더욱 지능이 늘어난 건지 인간들로 변장해 문명 속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덩치가 그렇게까지 작은 건 아니여서 뚱뚱하거나 큰 모습으로 밖에 변장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문명 속에서 살아가다가 정체를 들켰을 때는 본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사람을 한번에 집어삼켰다.
집어삼킬 때는 마치 늪에 빠지는 모습을 빠르게 보는 거 같았다.
인간 형태를 유지하는데에 많은 노력과 집중이 필요해 보였지만 자신의 정체와 비밀은 잘 숨기고 다녔다.
물론 신화적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 가끔씩 그 비밀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벌집을 건든 사람들의 결과가 어찌 되겠는가.
대부분이 집어삼켜졌고, 살아남았다고 해도 광기에 빠져서 정신병원으로 갔겠지.
내가 지금 관찰하고 있는 녀석도 그렇다.
녀석은 회사를 다니며 평범하게 지내고 있지만 어릴 적 발견한 신화서와 실제로 목격하게 된 괴물들로 인해 신화적 존재들을 알게 되었다.
괴물들을 목격하고도 겁이 없는지 신화적 존재들을 찾아다니던 그는 어느새 성인이 되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씩 비만인 사람을 만나면 쇼고스인가 가끔 의심도 하는 거 같지만 인간인 그가 변장의 귀재인 쇼고스를 알아볼수는 없겠지.
하지만 어느 날 그의 일상은 크게 바뀌고 만다.
어느 골목 안쪽에서 들리는 우드득거리는 소리.
무언가 단단한 것을 동시에 여러 개 부러트리는 듯한 소리가 그를 골목 안으로 이끈다.
그리고 살짝 들여다보자 보이는 점액질의 괴생명체, 쇼고스.
식사를 하던 중이었던 건지 근처 벽에 핏자국이 약간 보인다.
그는 어릴 적 보고 나서 보지 못한 신화적 생물을 숨 죽인 채 바라보다가 쇼고스가 인간 형태로 변신하자 도망쳤다.
그 쇼고스는 식사를 하면서 인간이 주는 공포심을 즐기느라 그럴까.
자신을 쳐다보던 사람의 존재를 깨달치 못한채 길거리로 나올 뿐이었다.
그다음날부터 그 녀석은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듯 멍하게 지낼 때가 많았다.
그렇게 회사에서도 멍때리다가 상사에게 혼났지.
아무래도 어릴 적의 호기심이 어디 가지 않았는지 어제 봤던 쇼고스의 생김새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인간으로 변한 모습까지 봐버렸으니까 말이지.
그 쇼고스가 인간으로 변장한지 얼마 안 돼서 안 들켰던 거지 만약 오랫동안 인간생활을 즐겨 온 녀석이었다면….
"뭐, 뱃속에서 다른 사람이랑 인사라도 하고 있었겠지."
아무래도 이 녀석은 벌집을 건들 생각인가 보다.
물론 나도 그걸 원해서 이 녀석을 지켜보고 있는 거지만.
아무튼 녀석은 그날 뒷골목에서 봤던 생김새를 종이에 그려놓고는 매일 같이 바라봤다.
머릿속에 그 생김새를 각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만일에 대비해 권총을 들고 다니며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주변을 둘러보며 다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 날 아침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하던 녀석은 이전에 봤던 이제는 머릿속에 새겨져 있을 정도로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망설이다가 품속의 묵직한 금속의 감각을 느끼며 자신감을 얻었는지 쫓아가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뒷골목으로 향하는 쇼고스를 미행하던 그는 마침내 식사를 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자고 있던 노숙자를 목표로 삼은 건지 발소리없이 천천히 다가가던 쇼고스는 본모습을 드러내더니 신체의 말단부터 천천히 삼켜가기 시작했다.
"윽, 무슨. 으, 으아악!"
고통을 느끼고는 일어난 노숙자가 원래 형태로 돌아간 쇼고스를 보고는 비명을 지른다.
쇼고스는 그 비명을 음미하듯이 천천히 삼켜가기 시작했고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한편 근처에 숨어서 그 장면을 살펴보던 녀석은 같은 사람이 잡아먹히는 데도 구하려하기는커녕 좀 더 가까이서 보려 혈안일 뿐이었다.
그렇게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하다가 바닥에 버려져 있던 캔을 발로 건들고 말았다.
—땡그랑!
식사를 음미하던 쇼고스는 인위적인 소리에 방해받은 것이 짜증이 난 것인지 몸통밖에 안 남은 사람을 바로 삼켜 버리더니 인간 형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소리가 난 곳을 찾아가지만 그곳엔 도망가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이후로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인지 쇼고스를 찾아다녔다.
아니.
자신처럼 신화적 존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불러내선 함께 찾아다니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 사람들 중에는 교수도 있었지.
자신이 스케치한 것을 나눠 주고는 찾아다니는 모습이 꼭 날 죽여줍쇼 하는 거 같았다.
그렇게 찾아다니다 누군가 쇼고스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모두들 그곳을 향했다.
다들 쇼고스의 지능을 얕본 것이겠지.
인간들 사이에 숨어 생활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까.
쇼고스의 함정에 빠져 버린 인간들은 도망다니다가 하나씩 잡아먹혔고 마지막에 내가 관찰하던 녀석이 남았다.
인간 형태로 다가오는 쇼고스를 향해 총을 쏘지만 설마 그걸로 죽을거라 생각한 걸까?
하지만 쇼고스는 그 녀석을 완전히 가지고 놀 생각인건지 머리를 맞고는 죽은 척을 했다.
죽은 줄 알고 안심하며 다가와서는 확인사살을 위해 자신에게 겨눠지는 총을 녀석은—
"멍청하구나."
—콰득!
완전히 씹어먹었다.
"으, 으아아—!"
"인간은 정말이지 멍청하군. 그게 재밌는 거지만 말이야."
막다른 골목길.
벽에 등을 기대고 덜덜 떨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가는 쇼고스는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점액질의 몸과 그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눈들.
완전한 본모습은 처음 보는 거라 그럴까.
완전히 광기에 빠져 버린 듯했다.
"결국은 잡아먹혔네. 마지막에 너무 재미없게 끝난 거 같다. 에잉."
그렇게 허무하게 끝난 누군가의 인생을 뒤로하고 나는 또 다른 관찰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