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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7화 (17/154)

〈 17화 〉 지구­005

* * *

내 이름은 타케시.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동아리 여행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쉬는 게 더 좋은데 왜 귀찮게 해외여행을 가나 싶었지만 멋진 풍경과 건축물이 내 생각을 바꿨다.

이런 것들을 보려고 여행을 다니는구나—생각하며 길을 다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났다.

여행객들을 위한 특별 이벤트라고 하던데.

사람이 좀 이상하게 생겼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을 테니까 별 생각은 안 했다.

세상에 눈이 큰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뭐, 입도 좀 크긴 하지만 그런 걸로 사람을 차별하는 시대는 거의 다 끝나가지 않나.

그렇게 얼마나 따라갔을까.

옛날 수도사처럼 로브를 입은 누군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고통 때문에 가라앉아 있던 의식이 점점 떠오른다.

그리고 눈이 뜨인다.

"어라?"

숙소의 푹신한 침대가 아닌 딱딱한 바닥의 감촉이 나를 반긴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보려 하지만 무언가에 걸린 듯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걸린 게 아니라 묶인 거다.

"얘들아? 장난치지 마 재미없어."

이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조그만 방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 여럿이 나와 같이 묶여서는 기절해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나는 이게 동아리 친구들의 장난이 아닌 심각한 상황이란 걸 알고 밧줄을 풀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발버둥을 쳐봤자 밧줄이 풀리는 일은 없었고 기절해 있던 사람들은 내가 치는 발버둥이 시끄러웠는지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깨어난 사람들은 나처럼 처음엔 부정을 하더니 결국은 모두 밧줄을 풀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뭐, 소용없었지.

그런 혼란스러운 방 안에서 한 명은 푹 잠들어 있었다.

금을 녹여내 실로 뽑아낸 듯한 머리카락에 잘생긴 얼굴이 모델같다.

이런 상황에서 편하게 잠들어 있다니 얼마나 태평한 건지.

하지만 아무리 태평한 성격이더라도 네 명이 동시에 시끄럽게 하는 건 버틸 수 없던 걸까?

눈을 뜨자 보이는 사파이어같은 벽안이 마치 모두가 상상할 법한 전형적인 서양인의 생김새였다.

눈을 뜨자 남들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무슨 마술이라도 부린 건지 간단하게 밧줄을 풀었, 엥?

"우왓, 잠시만요! 저도 풀어 주세요!"

그 남자는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는지 가까이 다가와서 내 밧줄을 풀어줬다.

다른 사람들도 밧줄을 푼 걸 본 건지 자기도 풀어달라고 아우성이다.

몇 분 후 모두 밧줄에서 풀려나고 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어…. 이런 상황이긴 하지만 자기소개라도 할까요? 저는 타케시예요. 여행을 왔다가 이렇게 납치를 당했네요."

"저는 윌리엄입니다.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어디서 본 거 같은 얼굴인데 혹시 모두 그리스로 여행을 오셨나요?"

"네, 맞아요! 저도 그리스로 여행왔다가 납치당했는데…. 아! 제 이름은 메리예요."

"저는 이한설입니다. 부르기 어려울 테니 그냥 리라고 부르세요. 조사하러 왔다가 이게 무슨 일이람…."

"제 이름은 아멜리아예요! 편하게 에이미라고 불러 주세요."

이렇게 모두들 자기소개를 하는데 아직 한 사람이 침묵에 잠겨 있다.

"……."

턱을 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내가 저랬으면 뭐 하는 거냐고 욕이나 먹었겠지.

하지만 이렇게 납치당한 상황에서 저렇게 여유롭게 있는 것도 위험할 테니 빨리 여길 나가야겠지.

나는 모두가 쳐다보고 있는 그에게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다가간다.

—툭.

"저, 저기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고민하는 모습이 분위기 있어 저절로 말을 더듬게 되었다.

'으아아! 왜 이렇게 말을 더듬은 거야 나는!'

"아, 죄송합니다. 지금 기억나는 게 이름밖에 없어서요. 저는 제임스입니다."

이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니.

"그런가요? 저도 납치당할 때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혹시 머리를 맞은 건 아닐까요? 저도 납치당할 때의 기억이 안 나서요!"

옆의 금발 머리, 에이미라고 불러달랬나.

내 말이 끝나자 바로 끼어들더니 나와 같이 납치당했을 때의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머리를 맞았다라… 확실히 가능성은 있다.

내가 일어난 것도 머리가 아파서 그랬던 거니까.

"당신들도 그런가요? 저도 똑같은데."

"앗. 저도 그래요. 머리도 조금 욱신거리고…."

그 이한서루? 리라고 불러달라했지.

안경을 쓴 뭔가 똑똑해 보이는 이미지다.

옆의 여성은 메리라고 하던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좀 무서워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모두가 납치당할 때의 기억이 없는 모양이네요. 한 명은 완전히 기억상실인 거 같고."

지금 말하는 사람은 이름이 윌리엄이었지.

언제 우리를 납치한 사람이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나는 여길 빨리 빠져나가자고 말했다.

"일단 납치범이 찾아올지도 모르는데 빨리 나가죠?"

"그 전에 방을 약간 수색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린 무기도 없는데."

리가 내게 말한다.

"확실히 맞는 말이에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맨손으로 다니는 건 다시 잡아달라는 거나 마찬가지죠."

윌리엄도 동의한다.

"어차피 찾아볼 곳도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빨리 찾고 나가죠!"

에이미까지.

전체의 반이나 동의했으니 나도 따라야겠지.

방 안에 뒤져볼게 캐비넷밖에 없기도 하고.

그렇게 찾아서 나온물건은 모포 어두운 색상의 모포 여러 개와 우리를 묶고 있던 밧줄 뿐이었다.

"음…. 쓸모가 있겠죠?"

"그래도 없는 거보단 나을 겁니다."

윌리엄과 대화하는 사이 밖을 보던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밖엔 아무도 없는 거 같군요."

그 말에 안심한 우리들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밝은 방과 대조되게 어두운 바깥에는 그의 말대로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어두우면 모포를 쓰고 다니는 게 위장에 좋을 겁니다."

"오, 좋은 생각이네요."

이건 암록색이라고 해야 하나.

칙칙한 색의 모포는 내 손에 느껴지는 감촉만 아니었으면 모포가 여기 있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안보였다.

모포를 뒤집어쓰고 팔을 들어 보며 흘러내리지는 않을까 확인을 하는데 리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길일까요. 어딘가로 이어진 거 같은데."

그의 말에 바닥을 살펴보자 빛나는 돌같은 게 몇 미터 간격으로 떨어져서 바닥에 박혀 있었다.

그 돌은 우리가 나온 방—컨테이너부터 어딘가로 쭉 이어져 있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서 남매가 빵 부스러기로 길을 표시한 것처럼.

"아무래도 길이겠죠. 이렇게 어두우면 손전등이 있어도 길을 찾아가기에는 어려울 테니까."

"그럼 이 길을 따라가면 납치범의 본거지도 나오겠네요."

"탈출구도 있겠죠."

"일단 이걸 따라가보죠."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빛나는 돌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나는 바닥에 박혀 있는 빛나는 돌—야광석이 신비해서 그것만 쳐다보면서 따라갔다.

'여긴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빛을 내는 거지? 밝을 때 빛을 저장했다가 어두울 때 발하는 방식이라기엔 여긴 너무 어둡고. 여긴 동굴인지 지하인지 모르겠지만.'

야광석에 비치는 바닥의 질감은 흙이 아니라 바위같았다.

'그렇다면 방사성 물질일까? 위험한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요. 저기요?"

"아, 네. 뭔가요?"

"갈림길에 도착해서요…."

메리의 말을 듣고 아래를 향한 시선을 앞으로 옮기자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 있었다.

"이걸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요?"

"반으로 나눠서 가는 건 위험할 테니 한쪽길을 정해서 가는 게 좋겠죠."

"여기서 기다리다 보면 납치범들이 오지 않을까요? 그때 확! 제압하는 거죠."

"그건 위험성이 좀 높아 보이는데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이걸 다수결로 정하죠."

그렇게 투표를 한 결과 오른쪽으로 가기로 정해졌다.

다시 길을 따라서 얼마나 갔을까.

우리가 갇혀 있던 컨테이너와 똑같이 생긴 게 여러 개가 있었다.

"혹시 저희같이 잡혀 온 사람들이 있는 건 아닐까요?"

"일단 창문으로 살펴보죠."

윌리엄이 다가가 창문 너머를 살펴보고는 인기척은 없다고 한다.

나는 안심하고 문으로 다가가는데 제임스가 말한다.

"저는 경계를 서도록 할게요. 모두 들어갔다가 납치범이 찾아오면 큰일이니까."

"그럼 저도 함께 서도록 하죠. 혼자 서는 것보다 둘이서 하는 게 더 안전하니."

그렇게 제임스와 윌리엄은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 보초를 서기 시작했다.

"그럼 저희들은 안으로 들어갈까요?"

"네, 그러죠!"

그렇게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수많은 배낭과 여행 가방이었다.

"앗! 여기 내 배낭이야!"

"내 가방도 여기 있네."

"제 것도요…!"

나도 방 안을 둘러보다가 내가 가지고 다니던 크로스백을 발견했다.

"다행이다! 휴대폰은… 역시 없네."

휴대폰은 팔아먹으려고 먼저 빼간 건지 혹시라도 탈출할까봐 빼간 건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지갑은 무사히 있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내 여행일지! 무사했구나!"

"여행일지를 쓰시는군요. 그걸 확인해 보면 저희가 어디서 납치된 건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걸요."

"아, 그러네요!"

"저, 저도 같이 봐요!"

어디서 납치되던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만 탈출해서 경찰에 신고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겠지.

"저도 좀 같이 봐요."

나는 그렇게 에이미에게 다가가 그녀가 들고 있는 여행일지를 쳐다봤다.

***

네 명이 창고 안에서 추리를 하는 동안 밖의 두 명은….

***

"이봐요. 기억은 괜찮은가요?"

"네? 아, 아직까지 제대로 돌아오지 않네요."

"많이 힘드시겠네요. 이렇게 납치당했는데 기억까지 잃고."

"아, 하하. 설마 평생 이러겠어요? 언젠가 되돌아오겠죠."

밖에 둘이 가만히 서서 경계나 서고 있기에는 분위기가 좀 그랬던 걸까.

윌리엄이 내게 말을 걸고 있다.

'확실히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이름밖에 기억이 없어서 당황스러웠지.'

하지만 곧이어 무언가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들이 머리에 심어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제가 어떻게든 돌려보내겠습니다."

"그거 정말 안심되네요. 아, 윌리엄 씨는 어쩌다가 여행을 하게 되었나요?"

"이건 좀 긴 이야긴데. 제가 사람을 돕는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봉사활동도 많이 다니고. 그러다가 친구들이 가끔씩은 쉬어야 한다면서 여행을 가자고 하지 뭐에요."

"오호, 그래서 방금 괜찮냐고 물어본 거군요."

"네, 그렇죠. 아무튼 친구들과 여행을 왔다가 이렇게 납치까지 당하고 보네요."

"하하, 그러네요. …흠?"

"왜 그러시—."

"쉿—."

나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다 갖다 대고는 조용히 하라고 했다.

—저벅저벅.

그렇게 조용히 하자 들리는 발소리.

다행인 점은 저들이 멀리 있어서 우리의 대화는 못 들었다는 걸까.

—툭툭.

"이제 어떻게 하죠?"

윌리엄이 작은 소리로 물어본다.

"빨리 제압해야죠. 윌리엄 씨는 멀리 있는 녀석을 붙잡아 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처리하죠."

나 또한 작은 소리로 대답하며 발소리 하나 내지 않으며 어둠 속을 걸어갔다.

납치범으로 보이는 이들은 저 빛나는 돌로 만들어진 길을 걷고 있어서 어둠 속에서도 잘 보였다.

'두 명에 모두 총을 들고 있군. 일단 한 명만 움직임을 멈출 수 있으면 행동에 옮길텐데 윌리엄 씨는 언제….'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납치범 한 명이 당황한 듯 소리를 질렀다.

나는 윌리엄 씨가 붙잡았다는 걸 알아채고는 빠르게 다른 한 명을 향해 나아갔다.

붙잡힌 동료를 바라보며 총을 겨누려는 그에게 다가가 멱살을 붙잡는다.

내가 힘이 센건지 상대가 가벼운 건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업어치기를 해 땅에 메다꽂는다.

머리부터 떨어진 그는 기절이라도 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그대로 윌리엄 씨가 붙잡고 있는 녀석에게 달려간다.

동료가 아닌 내가 온 것에 놀란 건지 당황한 얼굴이 보였고 나는 그의 목젖을 힘껏 주먹으로 강타했다.

"뭣, 커헉!"

그대로 기절한 것인지 힘이 풀려서는 쓰러지려 한다.

뒤에서 붙잡던 윌리엄 씨는 기절했다는 걸 알고는 그대로 놓아준다.

"와! 대단하시네요."

"그러게요. 마치 무의식적으로 한 거 같은데."

창고 안의 사람들도 우리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바깥으로 나온다.

"헉! 혹시 이들이 납치범인가요?"

"아마 그렇겠죠. 총까지 들고 있는걸 보면."

그렇게 납치범을 살펴보던 그들은 무언가 이상한걸 찾았나 보다.

"여기 봐요! 이거 혹시 비늘 아니예요?"

"이게… 무슨?!"

제압할 때는 못 봤지만 기절했는데도 감기지 않는 큰 눈에 약간 창백해 보이는 푸른 피부, 그리고 조금씩 나 있는 비늘들이 물고기와 인간을 섞은 듯했다.

할 말을 잃은 건지 아무 말도 없이 납치범의 품속을 뒤질 뿐이었다.

"나온 건 이것 뿐이네요…."

아무래도 창고에 볼일이 있었는지 무전기 하나와 돌격소총 두 정 뿐이었다.

"일단 두 분이 제압하셨으니까 총은 여러분이 가져 주세요."

"앗, 저는 총을 만져 본 적도 없는데."

"그래도 일단 드는 게 나을 겁니다. 조준만 잘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끝이니까요."

"그런가요? 제임스 씨는 익숙해 보이시네요."

"내. 왠지 모르게 익숙하네요."

"혹시 제임스 씨는 군인이 아니었을까요?! 납치범을 이렇게 제압한 것도 그렇고!"

군인이라….

지금 가능성이 높은 건 그것 뿐이긴 하다.

"일단 이 녀석들은 묶어두죠. 밧줄 좀 가져다주세요."

그렇게 이상하게 생긴 녀석들을 묶고 나서 일행을 쳐다보니 무언가 바뀐게 보인다.

"왠 가방이예요. 창고에 있었나요?"

"아마도 저희 물건을 넣어 두는 창고였나 봐요. 제 가방도 여기 있더군요."

"그럼 챙길 건 다 챙긴 거 같으니 다시 가도록 하죠!"

창고에서 자기 가방까지 챙긴 일행은 그렇게 다시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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