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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8화 (18/154)

〈 18화 〉 지구­005

* * *

몇십 분 정도 길을 걷자 아까 봤던 갈림길이 나왔다.

"저희가 나온 컨테이너가… 저쪽이었죠."

"그럼 이쪽 길이네요."

그렇게 우리는 왔던 길을 떠올리며 전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로 향했다.

"여긴 대체 어디일까요? 바닥의 질감을 보면 동굴같기도 하고."

"세상에 이런 크기의 동굴이 있었으면 벌써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그럼 지하실인가…?"

지금 우리가 걸어 다니고 있는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지 궁금해하는 모습이다.

하긴 나도 기억이 온전했다면 저기에서 똑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겠지.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방금 이상한 녀석을 제압할 때에 보인 무력은 대체 무엇이고.

그동안 내가 해온 것이 무의식적으로 발휘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다가 누군가 나를 툭 하고 쳤다.

—툭.

"왜 그래요?"

"앞에 불빛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앞쪽을 쳐다보니 오른쪽에서 약한 빛이 보이긴 했다.

"멀리 있는데 용케도 저걸 봤네요."

"헤헤."

아멜리아라고 했던가.

나보다도 눈이 좋은 모양이다.

"사실 가방에 망원경이 있었거든요."

"아, 그렇군요."

아니었나 보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거에 부끄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진다.

아멜리아 양은 내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헤실헤실 웃고만 있다.

내가 감정을 가라앉히며 걸어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불빛을 발견했는데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제임스 씨. 앞에 불빛이 있는데 어쩔까요?"

"일단 저 혼자 살펴 보러 가겠습니다."

나는 사냥하러 가는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발소리 하나 내지 않으며 모퉁이로 갔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내밀어 누가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는 경비같은 사람이 세 명.

그리고 기둥 너머에 사람 같은 형상이 보이긴 하는데….

'잘 안 보이는군. 일단 이 정도 거리면 들키지는 않을 테니 모두 데리고 와도 상관없겠어.'

나는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내가 본 것을 전했다.

"경비 셋과 그 너머로 잘 안보였지만 더 있다고요?"

"네. 그리고 저쪽 모퉁이에서 몰래 관찰해도 들키지 않을 거 같아요."

"그럼 일단 가봅시다."

그렇게 다시 일행과 모퉁이로 온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는 아멜리아 양에게 말했다.

"저기 아멜리아 양—."

"에이미로도 괜찮아요."

"아, 그렇군요. 저기 에이미 양. 망원경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나는 에이미 양에게 망원경을 받고는 고개를 살짝 내밀어 망원경을 통해 기둥 너머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기둥 너머에는 로브를 입은 사람이 두 명 있었다.

허리를 숙인건지 원래 그런 건지 덩치가 작아 보였다.

그런데 그들이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커다란 눈과 입, 그리고 그 입에서 삐죽 튀어나온 뾰족한 이빨과 피부를 덮은 비늘까지.

내가 아까 제압했던 사람이 좀 더 변하면 저렇게 되는 걸까.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끔찍한 몰골에 나는 눈을 돌렸다.

"무언가 봤나요?"

"아, 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생명체가 있다면 저게 아닐까 싶네요."

"도대체 기둥 너머로 뭐가 있길래…."

"저도 한 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아, 리 씨. 저런 끔찍한 걸 봐도 괜찮은가요."

"제가 아는 건지만 확인하고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내 손에 들려 있는 망원경을 뺏어가듯이 집어가서는 기둥 너머를 관찰했다.

"호오, 역시 내 생각이…."

그러고는 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소리가 너무 작아서 들리지는 않았다.

"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엄청난걸 구경했네요."

"예. 엄청나긴 하죠."

나는 다시 기둥 너머에서 봤던 끔찍한 몰골을 떠올리며 몸을 약간 떨었다.

"에이미 양. 망원경 빌려준 거 고마워요."

"뭘요.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든 도와야죠."

"그리고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쪽으로는 못 갈 거 같네요."

"네에? 왜 그러시죠? 저흰 총도 있잖아요."

"상대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총격전을 벌일 수도 없죠. 저는 제임스 씨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그럼 어떻게 저 너머로 가야 하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위를 바라본다.

가파르긴 하지만 내 직감이 이곳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절벽. 위에 공간이 있는 거 같네요."

"네, 그렇긴 한데…. 설마 여길 올라가자는 건 아니죠?"

"올라갈 겁니다."

"혹시 여기에 암벽등반을 해 본 사람이…?"

"제가 올라갈 겁니다. 허리에 밧줄을 매달고 올라가서 묶을 만한 곳을 찾겠습니다."

"그것도 좀 위험하지 않나요?"

"그래도 이건 제 목숨만 걸린 거잖아요."

그렇게 나는 가장 긴 밧줄을 묶고는 절벽 앞에 섰다.

'밧줄 길이는… 충분하겠군.'

벽에 나 있는 틈새나 약간 튀어나와 있는 바위를 잡으며 천천히 올라가며 아래에서 걱정하는 시선을 느낀다.

몇 번 놓치면서 돌 부스러기가 아래로 떨어지는 일도 있었지만 다행히 내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절벽 위로 올라온 나는 묶을 곳을 찾아서 그대로 묶었다.

그리고 밧줄을 흔들어서 묶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절벽 끝자락에서 잘 올라오고 있는지 확인을 하던 나는 곧 메리 양을 볼 수 있었다.

떨어져도 아래에서 잡아줄 수 있도록 여성부터 올려 보내기로 했지.

내가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오자 그대로 손을 뻗어서 들어 올린다.

꺄악—하고 작은 비명 소리를 낸 그녀를 사뿐히 내 옆에 내려 준다.

"가, 감사합니다."

"뭘요."

그렇게 한 명을 올린 후 다시 밧줄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에이미, 타케시, 리, 그리고 윌리엄까지 일행 모두 절벽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해요! 혹시 제임스 씨는 사실 특수부대가 아니었을까요?"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저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저였으면 무서워서 올라가지도 못했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모두들 나를 치켜세워준다.

이거 좀 부끄러운걸.

그렇게 절벽을 따라 길을 쭉 가니 밧줄로 만들어진 사다리가 바위에 묶여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가 아까 그곳에서 이어지는 곳인가 보네요."

"그렇겠죠. 그럼 저쪽이…."

윌리엄이 그렇게 말하며 반대편을 쳐다보자 일행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한다.

"저기 틈새에서 빛 같은 게 새어 나오는 게 문인 거 같네요."

"안에는 당연히 사람이 있겠죠?"

"아까 그 괴물 같이 생긴 사람일지도…."

우리는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강철로 만들어진 문으로 향한다.

"이제 어떻게 하죠?"

메리 양이 속삭인다.

"잠시만요."

에이미 양이 그렇게 말하고는 문에다가 귀를 대고는 눈을 감는다.

"음…."

"뭔가 들리는 게 있나요?"

"TV소리 때문에 다른 소리가 묻히네요. 잘 모르겠어요."

안에 몇 명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우리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일단 문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도 이곳에 출구가 있을 확률이 높은데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죠."

"무언가 작전이라도?"

"제가 이곳으로 진입해서 제압하겠습니다."

"네에? 위험해요!"

"제 직감이 괜찮을 거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전도 간단하게 세울 거고요."

"아! 무전기를 쓰는 건 어때요?"

"무전기를 쓰면 나오게 할 수는 있겠지만 들킬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우우, 그럼 제임스 씨. 작전을 말해 주세요."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일단 문 옆쪽의 벽에 붙어서 노크를 할 겁니다. 그걸 듣고 누가 나오면 돌멩이를 던져서 시선을 끌어 주세요. 그럼 방금처럼 제가 알아서 제압하겠습니다."

"저희는 돌멩이만 던지면 끝인가요?"

"아, 리 씨. 혹시 총을 쏠 줄 압니까? 한국인 남성은 모두 군대를 간다고 들었는데."

"제가 한국인은 맞지만 아직 군대는 안 가서요. 가기 전에 여행 겸 조사를 온 거라…."

"아…. 그래도 윌리엄 씨와 리 씨가 총을 엄호를 해 주세요. 제압할 때는 거추장스러운 총은 필요 없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위험한 게 아니면 총은 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쪽 줄사다리도 풀어두죠. 만약 총을 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못 올라오게 해야 하니까."

"그럼 제가 풀고 올게요."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고 나는 문 가까이로 왔다.

그리고 문 옆의 벽에 등을 기대고는 일행 쪽을 살펴봤다.

줄사다리를 풀고 온 타케시와 문 쪽으로 총구를 겨누는 두 명, 그리고 돌멩이를 들고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미 양이 보인다.

나는 문에다가 주먹을 갇다대고는 두들겼다.

—똑똑.

"왔냐?"

"……."

"짐이 너무 많아서 열지도 못하겠어? 에휴, 정말이지."

벽 너머로 구시렁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일단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끼익.

"응? 어디 갔어?"

그렇게 문을 열고 누군가 나오는 걸 보자 에이미 양이 돌멩이를 던진다.

—툭!

내가 있는 곳의 반대쪽에 떨어진 돌멩이가 내는 둔탁한 소리에 나온 녀석의 시선이 그쪽을 향한다.

"무슨 소—"

밖으로 나온 녀석의 고개가 돌아갔으니 실행할 시간이다.

나는 곧바로 녀석의 목을 향해 손날을 휘두른다.

그와 동시에 명치에도 묵직한 주먹을 한 방 날려 준다.

"———!"

비명 지를 틈도 없이 기절한 녀석의 멱살을 붙잡는다.

가볍게 들린 녀석을 잠깐 본 후에 방 안으로 진입한다.

안에는 에이미 양의 말대로 TV가 틀어져 있었고 그걸 보는 두 명이 들어오는 나를 발견한 건지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한 명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건지 아마추어여서 그런지 멀뚱히 앉아만 있었다.

다른 한 명은 권총을 들려고 손을 뻗지만 그쪽으로 내가 들고 있는 고기 방패를 힘껏 던진다.

고기 방패에 맞고 쓰러진 걸 확인한 후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녀석에게 달려갔다.

내가 달려오는 걸 보자 이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건지 다급히 일어나려는 모습이 보이지만 이미 늦었다.

—퍼억!

인중에 작렬하는 내 주먹에 무언가 부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코피를 흘리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녀석을 힐긋 보고는 고기 방패에 깔린 녀석에게 다가간다.

뚜벅뚜벅—하고 다가오는 내 발소리를 들은 건지 자기 위에 엎어져 있는 사람을 빨리 치우려 하지만 내가 머리를 걷어차는 게 더 빨랐다.

—빠악!

그렇게 방에는 기절한 세 명과 서 있는 나 혼자 뿐이었다.

세 명을 제압하느라 가빠진 숨을 잠시 진정시키고는 밖으로 나갔다.

일행은 내가 나오는 걸 보고 작전이 성공했다는 걸 알았는지 내게 달려온다.

"후우, 안에 세 명밖에 없더군요. 전부 제압했습니다."

"대단해요! 역시 특수부대여서 그런 걸까?"

"하하.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들어가서 수색을 하죠."

그렇게 모두 방으로 들어가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층침대 여섯 개와 저들이 보던 TV, 그리고 책상과 의자 여러 개.

벽에는 달력도 걸려 있었지만 어떤 날짜에 표시가 되어 있는 거만 빼면 특별한 건 없었다.

'흠…. 의식날?'

붉은색으로 여러 번 강조 표시를 한 게 중요한 날인 거 같은데.

"앗! 뉴스라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비디오였네요! 이거."

"뭐야. 뉴스가 안 나와?"

"채널을 돌려도 나오는 게 없어요!"

"납치 사건이 보도됐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TV는 비디오밖에 볼 수 없나보다.

'어째서지? 뉴스로 동향을 살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방을 더 살펴보다가 문을 찾았다.

"여기 문이—"

"여러분! 여기 책상 위에 무슨 일지같은 게 있어요!"

이런.

문은 나중에도 확인할 수 있으니 먼저 일지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지.

잘하면 우리를 납치한 이유도 찾을 수 있을 거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책상으로 다가갔다.

"어디 한 번 보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일지를 펼쳤다.

***

19년 7월 20일

성인 남자 20명

의식 실패

19년 7월 20일

성인 여자 20명

의식 실패

19년 7월 20일

성인 남자 10명, 성인 여자 10명

의식 실패

19년 7월 20일

남자아이 20명

의식 실패

…….

20년 7월 20일

성인 남자 9명, 성인 여자 7명

남자아이 1명, 여자아이 3명

의식 실패

20년 7월 20일

성인 남자 7명, 성인 여자 10명

남자아이 2명, 여자아이 1명

***

"이거… 20년 7월 20일이면 곧 아닌가요?"

"오늘일수도 있죠. 여행일지가 마지막으로 쓰인 날짜가 18일이었으니까."

"사람이 20명이나 납치되다니…."

"게다가 아이들까지 있어요."

""…….""

"저희가 구해야 해요."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구할 수 있어요?! 빨리 탈출해서 경찰에게 알리는 게 더 좋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죽이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저,저기 의식이라면… 저희가 탈출하면 의식에 사용할 사람이 부족해지는 거니까…."

"그걸 대비해서 더 많이 납치했을 수도 있지만요."

"읏!"

"그럼 제가 여러분을 탈출시키고 구하러 돌아오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말다툼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자, 모두 진정하시죠."

"제가 좀 흥분한 거 같네요. 죄송합니다."

"저도 미안해요."

이제 좀 진정한 거 같네.

"일단 탈출할 사람들을 먼저 돕고 나서 납치된 사람들을 구하는 거로 하죠."

"탈출하면 빨리 경찰에게 알릴게요!"

"네. 그게 좋겠네요."

윌리엄도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목소리가 평소같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에서 들리는 약간의 떨림에서 그의 분노가 느껴진다.

잠깐동안 봤지만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니 아이들이 납치된 거에 엄청 분노했겠지.

그렇게 모두를 진정시킨후 나는 방을 좀 더 수색해 보고 저 문으로 빠져나가자고 말했다.

"아무래도 저 문이 출구같으니 방을 조금만 더 수색하고 빠져나가죠."

"네! 빨리 수색하고 나가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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