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지구005
* * *
그렇게 방을 뒤지다가 에이미 양이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했다.
아까 그 일지같은 건 아닐까 확인했지만 무슨 종교의 책 같은 것이었다.
'다곤… 밀교?'
들어 본 적이 없는 종교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상한 종교 단체가 벌이는 인신공양을 위해 납치된 것일까.
"다곤이면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아! 메소포타미아 신화였던가?"
"그건 아닐 거예요."
"그럼 리 씨는 뭔가 아는 게 없나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여서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리 씨는 무언가 아는 듯한 눈치던데 언젠가 말해주겠지.
"우와. 내용이 정말 이상하네요. 탈출해서 경찰에 제출하면 수사에도 좋겠죠?"
"저는 법적인 건 잘 모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역시 그렇죠?!"
경찰에게 제출할 생각인가.
수사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타케시 씨의 말대로 없는 것보다는 낫다.
이제 슬슬 전부 조사한 거 같은데 빠져나가 볼까.
—짝!
박수를 쳐서 이목을 끌고는 슬슬 탈출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제 조사도 다 한 거 같으니 빠져나가죠."
아까 쓰러뜨린 녀석들 중 한 명이 갖고 있던 열쇠꾸러미로 문의 열쇠구멍에 하나씩 맞춰 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넣어 보면서 돌리지만 다른 문의 열쇠인지 열리지 않는다.
'열쇠가 왜 이리 많은 거야.'
그렇게 반 정도 확인했을 때 타케시가 이런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거 이상한데요? 왜 이쪽에서 잠겨 있죠?"
"어? 그러네. 일반적으로 밖에서 못 열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저기 일지를 보면 1900년대에도 의식을 했었으니까 그동안 저희처럼 탈출한 사람도 가끔은 있지 않았을까요? 탈출한 사람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이렇게 해 둔 거죠."
"오…. 그것도 일리는 있네요."
나는 대화를 들으면서 열쇠를 맞춰 보다가 철컥—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 드디어 열었네요."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곳도 탈출이네요!"
그렇게 문을 열고 나서 보인 것은—
"이게… 뭐야?"
"어라…?"
—출구가 아닌 무기고였다.
계단이나 복도 같은 건 없고 사방이 막힌 채 벽에 걸려 있는 총기와 바닥에 쌓여 있는 총알 상자가 우릴 반긴다.
이럴 때가 아니다.
이렇게 사기가 떨어지면 위험하다.
"이쪽이 출구는 아니었지만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아요?! 출구로 보이는 길은 여기 뿐이었는데!"
"아뇨. 아직 하나가 더 있습니다. 저희가 왔던 길의 반대편. 그쪽에 발광석으로 표시는 없었지만 분명 길은 있었어요."
불빛도 그렇고 경비를 서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쪽 길은 잘 안 보였겠지.
하지만 확실히 길은 있었다.
"아직 희망을 버려선 안 됩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있으니까 여기서 정비를 하고 그곳으로 갑시다."
"네…. 그래야겠죠."
나와 일행은 정신을 차리고 벽에 걸려 있는 총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돌격소총과 권총 여러 정이 거치대에 걸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들고 다니기 어려워 보이는 돌격소총보단 권총이 편해 보이는지 권총을 들고는 살펴봤다.
"권총을 들고 다닐 거면… 잠시만요. 여기 이게 안전장치인데 평소에는 걸어뒀다가 위험할 때 풀어서 사격하세요."
"오, 총은 전혀 만져본 적이 없어서 몰랐네요."
그렇게 모두 권총을 챙기고 가방에도 총알을 약간 챙기고는 무기고같은 곳에서 나와 다시 문을 잠갔다.
"아."
"왜 그래요?"
"그러고 보니 저 녀석들을 안 묶었네요."
"출구가 코 앞이라 생각해서 모두 잊어버렸네요. 하하."
우리는 가지고 있던 밧줄로 세 명을 모두 묶고 이 방을 나갔다.
아무 말도 없이 걸어가던 우리는 절벽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그대로 밧줄을 바위에 묶어서 내리고는 일행이 내려가는 것을 지켜봤다.
모두 내려가자 나도 밧줄을 붙잡고 한 번에 쭈욱 내려갔고 풀어낼 방법이 없어서 그대로 두고 길을 갔다.
물론 가는 길이 어두워서 내 허리에 밧줄을 묶어두고 잘못해서 흩어지지 않도록 조치는 취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직진으로 걸어가다가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물소리 같은데.
혹시 출구가 아닐까 싶어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서 천천히 갔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물로 가득 찬 거대한 구멍이었다.
마치 싱크홀처럼 커다란 구멍 속에서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아마 윌리엄이 손을 뻗어 물에다가 손가락을 찍어 보더니 그대로 혀를 갇다 댄다.
"윽, 퉤! 엄청 짠데요. 무슨 바닷물 같아요."
"이걸 들어가야 할까요."
그런 말을 하며 구멍을 쳐다보니 무언가 반짝이는 게 보이는 거 같았다.
"어! 저기 뭔가 빛나는데요?"
에이미 양이 무언가 발견한 듯하다.
좀 더 집중해서 쳐다보니 빛나는 무언가가 얇은 줄에 달려 있었다.
그 빛에 비치는 것은 큰 눈과 입, 그리고 튀어나온 뾰족한 이빨을 가진 물고기였다.
"저건… 심해어 아닌가요?"
나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잘못본 건 아닌지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봤다.
하지만 그래 봤자 변하는 건 없었다.
"역시… 여긴 심해 도시였군요. 혹시나 싶었지만 제발 아니길 빌었는데. 젠장할."
"심해 도시요? 그런 건 들어 본 적도 없는데요? 애초에 그런 도시를 만들 기술력이 있긴 한가요?"
"사람이 만든 게 아니니까요. 가능은 하겠죠."
"그게… 무슨 소린가요."
"저희가 봤던 제임스 씨가 제압했던 괴물 같은 사람은 심해인 혼종이에요. 제임스 씨가 봤던 괴물은 심해인이고. 그것들은 지상에서도 활동하니까 심해 도시일 확률은 낮다고 생각했는데 심해어를 보니까 이젠 부정할 수도 없네요."
"그런 걸 왜 이제 말하는 건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걸 말해봤자 이해하긴 할까요? 오히려 이상한 놈 보듯이 안쳐다보는 게 다행이지."
"아니! 그래도—"
"자자. 진정하세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혼란스러웠을 텐데 그런 말을 꺼내면 분위기가 더 심각해졌겠죠. 이해합니다."
분위기가 과열되는 거 같아 일단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여기가 심해면 탈출할 길도 없는 거잖아요! 수압때문에 헤엄쳐서 나갈 수도 없고!"
'흠…. 수압?'
"잠깐만요. 그럼 저희는 어떻게 이곳으로 납치된 거죠?"
"그거야! 어… 글쎄요?"
"저 심해인들이 여기까지 수영쳐서 올 수 있다고 해도 저희를 끌고 오는 건 이야기가 다르죠. 수압도 그렇고 호흡도 문제여서 바다를 통해서는 올 수 없었을 거에요."
"그렇다면…."
"아직 저희가 못 찾은 기구가 있거나 마법이겠죠. 안 그래요 리 씨?"
"저는 신화 생물 쪽이 전문이라 마법이나 주문은 문회한인데. 뭐, 가능성은 있겠죠."
저런 괴물 같은 생명체가 있다면 마법 같은 비과학적인 힘도 존재하겠지.
리 씨는 마법은 잘 모른다고 하지만 그 말은 즉슨 마법이 존재한다는 거니까.
"그럼 일단 엘리베이터나 다른 기구를 찾아보죠! 마법은 최후의 수단입니다."
"네에—."
아무래도 모두 지친 건지 말이 없다.
그나마 쾌활한 에이미 양도 기운이 별로 없다.
"그럼 출발합시다."
나는 일행이 밧줄을 제대로 붙잡았는지 확인하고는 커다란 구멍을 뒤로하고 다시 기둥이 있던 그곳으로 향했다.
벽에 어떤 장치가 없을까—하고 벽을 짚어가며 걸어갔지만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차가운 쇠의 감촉이 아닌 단단한 바위 뿐이었다.
그렇게 바위의 감촉만 느끼며 길을 가다가 저기 앞에 누군가 서성거리는 게 보였다.
"여러분 잠시만요."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에이미 양. 잠시 망원경 좀."
"앗, 여기요."
에이미 양에게 망원경을 받고 누구인지 확인했다.
아무래도 줄사다리를 풀어둔걸 들킨건지 경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일단 제압해야겠지.'
나는 망원경을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자, 여기요. 에이미 양."
"네. 뭔가 있었나요?"
"아무래도 줄사다리를 풀어둔 게 들켰나 보네요. 일단 제압은 해야겠으니 가까이 가죠."
그렇게 말하며 가까이 다가가다가 내 뒤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가져 왔던 무전기같은데요?"
"일단 흩어지세요."
나는 일행이 어둠 속으로 흩어진 걸 확인한 후 돌격소총을 견착했다.
'지금은 내가 유리하다.'
불빛을 등지고 오는 녀석들과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나.
경비를 서고 있던 세 명 모두 이쪽으로 오고 있다.
아무래도 로브를 입은 그 심해인이라는 녀석은 어디간 건지 보이지는 않는다.
조준기를 통해 가장 앞에 있는 녀석의 머리를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긴다.
—탕!
총알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나면서 어둠 속에서 불꽃이 핀다.
앞의 녀석이 쓰러지는 걸 보고 약간 옆으로 움직인다.
당황한 녀석들은 어둠 속에서 점멸한 불꽃을 향해 총을 쏘지만 나는 이미 그 자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남은 두 명에게도 머리에 총알을 선물해주니 잠잠해진다.
"휴우…."
누가 더 있을까 경계해 보지만 아무도 없는 걸 보고 총을 내린다.
상대가 전부 쓰러지고 일행들이 내 곁으로 모였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이제 위험한 녀석들은 모두 무력화된 거 겠죠?"
"아직 로브를 쓴 그 심해인이라는 녀석이 안 보이는데요."
그런 대화를 하다가 저 기둥 너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와 눈을 강타했다.
"윽!"
팔로 눈을 가리며 빛이 사라지길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빛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안 보였던 로브를 입은 심해인 두 명이 나타났다.
역시 마법적인 방법으로 오갈 수 있나 보군.
내가 쓰러뜨린 녀석을 발견했는지 그쪽으로 다가간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다가오다니, 죽고 싶은 건가?'
—탕!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총알이 날아가더니 벽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져 나가는 거 아닌가.
게다가 두 심해인 뒤로 혼종이라고 부르는 녀석들이 열 명은 더 넘게 있었다.
'이런….'
나는 다시 총을 녀석들에게 겨눴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어느새 포위되어 혼종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방금처럼 총알이 막힐지 모르는데 무작정 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대치가 지속되던 와중에 뒤에 있던 심해인이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손을 뻗더니 일행이 한 명씩 쓰러져 갔다.
'윽!'
나도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밀려오는 졸음을 혀를 깨물어서 몰아내려고 했지만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서 결국 눈이 감기고 말았다.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기둥에 묶여 있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같이 묶여 있었고 일행으로 같이 다녔던 사람들은 다른 기둥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앞에는 심해인 둘이 무슨 그림인지 문양 위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일단 나는 몰래 밧줄을 풀면서 주변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심해인이 음산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작은거 같은 데 선명하게 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기둥 뒤쪽에서 혼종이 나타나 무언가를 들고는 옆의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건… 단검?'
설마 지금 의식이 시작한 건가.
나는 밧줄푸는 것에 박차를 가했다.
옆에 있는 사람의 목을 긋고는 녀석이 점점 나에게 다가온다.
'윽! 빨리!'
칼날이 목에 거의 닿았을 때 녀석의 손목을 잡을 수 있었다.
"뭐, 크윽!"
손목을 꽉 쥐자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건지 단검을 놓친다.
떨어지는 단검을 오른손으로 잡고는 그대로 목을 긋는다.
마치 그곳이 약점인걸 아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나간 손이 할 일을 다 하자 목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나는 녀석을 내버려 두고 일행을 찾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 아아—!"
목에 빨간 선이 그어져 있는 채로 피를 토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직감은 내가 슬픔에 빠져 있을 시간도 주지 않았다.
등골이 섬짓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일어난 나는 그대로 기둥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기둥 너머로 빛이 번쩍였고 제단같은 곳 위의 심해인을 제외하면 모두 핏물로 변해 있었다.
———!
그리고 세상이 흔들린다.
지진이라고 칭하기엔 그 이름이 초라해 보일 정도의 규모였다.
지구에 운석이 충돌한다면 이럴까.
마치 지구가 분노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저 너머로 물이 흘러오는 것이 보인다.
혼종은 물에 빠져서는 허우적 거렸고 위에서 떨어지는 집채만한 바위에 깔려서 죽는 녀석도 있었다.
그런 소란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졸음이 몰려왔다.
아까의 심해인이 했던 것처럼 이상하고 불쾌한 느낌이 아닌 푹신한 이불에 누운 거 같은 편안함이 나를 감싸는 듯한 졸음이었다.
나는 그대로 쓰러지면서 죽은 일행들을 생각했다.
'윌리엄, 타케시, 리, 메리, 그리고 에이미… 구하지 못해서 미안….'
그렇게 나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