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밤하늘의 화신
* * *
동굴로 들어오자 어떤 비린내와 함께 어둠이 반겨 온다.
"당당하게 들어갈까, 아니면 잠입을 할까. 선택하거라."
"다 죽이면 잠입이야. 납치한 새끼들은 죽여도 상관없겠지? 신 님."
"난 상관없다마는. 너는 괜찮겠느냐?"
"사람은 아니라며. 게다가 사람이었어도 내 친구를 납치했으면 어디 하나는 부러뜨렸을 거야."
"네 뜻이 그렇다면 알겠다. 그럼 불 좀 밝히도록 하마. 나는 상관없지만 너는 불편하겠지."
손 위로 별빛을 불러내 주변을 밝힌다.
종유석이나 석순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석회 동굴은 아니고 근처에 화산은 없으니 용암 동굴도 아니다.
아무래도 파도로 침식되어 만들어진 해식 동굴을 인위적으로 더 파내서 안쪽에다 공간을 만든 듯하다.
"이렇게 동굴이 대놓고 있는데 잘도 들키지 않았군. 아니, 오히려 호기심으로 들어온 사람을 납치한 건가."
"민아가 아무 말도 없이 이런 곳으로 올 거 같지는 않은데요. 모두를 불러서 데리고 가면 모를까."
"동굴에 들어오는 사람으로는 부족한가 보지."
이렇게 추측을 하며 일자로 뻗어 있는 동굴을 계속 들어가다 보니 보초를 서고 있던 혼종 두 명이 보인다.
동굴이 어두우니 인기척 없이 가만히 있다가 들어온 사람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주로 납치를 하는 모양인데 이번엔 상대가 나빴다.
이런 동굴에 들어오는 사람이 가진 광원이라곤 핸드폰의 전등 기능이나 손전등 정도밖에 없을 테니 빛줄기를 피하기는 쉬웠겠지.
하지만 내가 불러 온 별빛은 사방을 전부 비춰서 저들이 숨을 만한 어둠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이 씨발 새끼들아!"
"아니 이게 무슨… 컥!"
순식간에 달려든 하윤이가 한 녀석의 머리를 후려친다.
우드득 소리와 함께 목이 절반 정도 돌아간 녀석은 바로 절명했다.
"사, 살려—"
"어림없는 소리!"
그리고 뒤돌려차기로 가슴팍을 맞은 녀석은 벽으로 날려져서 그대로 부딪혔다.
"커헉!"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녀석에게 다가간 하윤이는 등을 즈려밟고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야. 안에 몇 명 있냐. 제대로 말하면 고통 없이 보내줄게."
"컥, 커헉!"
"아무래도 갈비뼈가 부러져 폐가 찔린 듯하구나. 내게 맡기거라."
나는 쓰러져서 피를 토하고 있는 혼종에게 다가가 머리를 붙잡는다.
그리고 정신 추출의 주문을 이용해 최근의 기억을 빼낸다.
녀석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아닌 검은 잉크같은 눈물이 나왔고 그것을 공중에 흩뿌렸다.
흩뿌려진 검은 눈물은 넓게 펴져서 둥근 화면을 만들어 냈고 곧이어 이 녀석의 기억을 재생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보초를 서다 사람이 오면 납치하고, 가끔씩 밖에서 사람을 납치해 오면 그걸 안쪽의 마법진을 통해 해저 도시로 보낸다라.
'그렇다면 안쪽에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딥 원이 하나….'
이런 생각을 할 때 갑작스레 나타난 물줄기가 공중에 떠 있는 화면을 강타한다.
아무래도 방금 하윤이가 일방적으로 패는 소리가 들린 건지 급하게 오느라 숨이 가빠보이는 딥 원이 보인다.
"저게 그 딥 원인가 심해인인가 그거예요? 기분 더럽게 생겼네."
"인간 따위가—"
"아가리 닥쳐라."
하윤이는 눈 깜빡할 사이에 다가가서 주먹을 휘두르지만 딥 원 마법사는 태연하게 주문을 외우고 있다.
'아무래도 보호막을 믿는 거 같은데. 이런 전투는 해 본 적이 없겠지.'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보호막은 박살 나고 주먹은 그대로 녀석의 얼굴로 다가간다.
녀석도 이게 한 번에 깨질지는 몰랐는지 눈을 크게 뜨다가 그대로 얻어맞고는 침묵한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열 받게."
"이런. 한 번에 즉사해 버렸군. 이러면 기억은 추출하지 못하는데."
"어차피 안에는 이 녀석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우리는 셋의 시체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동굴이라 생각되지 않을 평평한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공간이었다.
"오, 주문만 배워서 이런 마법진은 처음 보는데. 신 님은 뭔지 알아요?"
"흠…. 마법진 위에 있는 것들을 정해진 좌표로 보내는 거구나. 옮기는 것의 크기에 따라서 마력의 소모량도 달라지고."
"그럼 그냥 마력만 흘려보내면 끝?"
"아마도 그렇겠지. 그럼 빨리 올라가자꾸나."
하윤이와 함께 마법진 위에 올라간 나는 무작정 마력을 불어넣었다.
사람 두 명을 옮기는데 필요한 마력이 얼마나 드는지 모르니 무작정 마력을 넣다 보면 알아서 보내리라는 생각이었다.
점점 마법진이 빛나다가 마치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더니 빛이 가라앉자 다른 공간이 보인다.
납치한 사람이 도착했나 확인하는 딥 원이 멀쩡히 서 있는 우리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쪽으로 손을 뻗지만 그대로 손목을 잡히고는 우드득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다가간 하윤이가 손목을 꺾어 버린 것이었다.
"캬아악!"
"비린내 오지니까 아가리 좀 닥쳐줄래?"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딥 원의 주둥아리에 어퍼컷을 날린다.
뇌에 충격이 전해진 것인지 쓰러지는 딥 원을 그대로 즈려밟는다.
이런 소란에 경비를 서던 혼종이 와서는 총을 갈기지만 펼치고 있던 보호막에 막힐 뿐이었고 오히려 하윤이의 화만 돋우는 꼴이었다.
밑에 깔려 있는 딥 원을 세게 밟아 심장을 파열시키고는 재장전을 하는 혼종에게 다가간다.
그러고는 총신을 잡고 으스러뜨리며 이딴건 소용없다고 말하고는 얼굴을 잡고 바닥으로 내려친다.
—쾅!
"이곳은 저번에 봤던 곳과는 다르군. 녀석들의 마력이 나처럼 많은 건 아닐 테니 아마도 남해 쪽인가."
"신 님은 여기 말고 다른 곳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직접 간 건 아니고 다른 녀석이 활약하는 걸 구경했었지. 나중에 소개시켜주마."
우리가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누군가 지원을 불러 온 건지 많은 혼종들이 총을 들고 이쪽으로 오는 게 보인다.
"저기다! 저 녀석들이 사제님과 주혁이를 쓰러뜨렸어!"
"흠? 녀석들이 편하라고 한 번에 몰려오는구나."
"생긴 거랑 다르게 한국 이름이네요. 같은 민족…은 아닌가? 아, 몰라."
"아무래도 바다 쪽에서 살다 보니 딥 원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겠지.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아닌 거 같지만 말이야."
"모두 쏴!"
—타다다당!
시끄러운 발포음이 공동에서 울린다.
불빛과 함께 수많은 탄환이 우리를 향해 날라오지만 보호막으로 인해 전부 막힌다.
"에잉, 시끄럽게 이게 뭐 하는 게냐."
"무, 무슨. 사제 님이라도 이 정도의 공격은 막지 못하실 텐데!"
"신 님, 제가—"
"이번엔 내가 나서마. 너도 네 친구를 빨리 구하고 싶잖니?"
"네에."
"빨리 가서 지원을 요청해라! 여기 괴물이—"
"시끄럽다. 상대도 많으니 '부패의 바람'이 좋겠군."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람 하나 없는 공동에서 갑작스레 잿빛 바람이 분다.
"끄아악! 살려 줘!"
"내, 내 피부가 녹아—"
그 바람에 닿은 녀석은 피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금세 녹아내렸다.
"지나가기엔 좀 지저분하구나."
다시 손가락을 튕겨 이번에는 자그마한 불씨를 만들어낸다.
녹아내린 살점에 닿은 불씨는 금세 크기를 키우더니 정확히 그것들만 불태우고 사라졌다.
"자, 이제 가자꾸나."
그렇게 하윤이를 이끌고는 앞으로 향했다.
이전에 본 것처럼 발광석이 박혀 있는 길 덕분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길을 쭉 따라가니 컨테이너가 있었고 문을 뜯어내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윤이의 친구인 민아와 다른 한국인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사람들.
그리고 금발의 여성 한 명이 관광을 온 외국인인 거 같았다.
"민아야! 정신 차려 봐. 괜찮아?"
하윤이가 큰소리로 소리치며 민아라는 아이를 깨우려하니 덩달아 다른 사람들도 일어났다.
"으으, 이게 뭐야. 어? 다, 당신들 누구야?! 여긴 어디고!"
"꺄아악! 살려 줘요!"
"다들 좀 닥쳐봐! 민아야, 괜찮아?"
"으응…. 어, 하윤아? 여긴 어디야?"
"다행이다! 나는 네가 걱정돼서…."
"저번엔 귀신이더니 이번엔 괴물이네. 밧줄 좀 풀어 주라."
"아, 깜빡했네. 금방 풀어 줄게."
"구, 구하러 오신 분이신가요?"
"시—아니, 오빠. 오빠도 빨리 다른 사람 밧줄 좀 풀어 줘요."
"그래, 알았다."
그렇게 우리 둘은 다른 사람들의 밧줄을 풀어줬고 풀려난 사람들은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까는 소리쳐서 죄송해요. 너무 당황해가지고…."
"에이 뭐, 괜찮아요. 시—아니, 오빠. 사람들은 이게 끝이에요?"
"뒤쪽에 컨테이너가 더 있긴 하구나."
"그럼 그것만 구하면 끝이겠네요. 빨리 가요."
일단 사람들을 컨테이너 앞에 기다리게 하고는 뒤쪽으로 향한다.
민아라는 아이도 도우려는지 같이 따라오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쪽 오빠는 누구세요? 아까 놀 때 보니까 하윤이랑 같이 있던데."
"그게, 아는 오빠야. 우연히 여기서 만났네."
"그럼 그쪽 세계? 퇴마사같은 그런 거야?"
"어…. 그렇겠지?"
"일단은 그렇다고 해 두마."
이야기를 하며 걸어오니 금세 도착한 뒤쪽 컨테이너.
하윤이는 문손잡이를 잡고는 돌려보더니 그대로 뜯어낸다.
"짜증 나게 일일이 다 잠가놨어. 어차피 다 묶여 있구만."
"하, 하하. 빨리 구하기나 하자."
그렇게 묶여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풀어 주기를 얼마나 했을까.
여기에 잡혀 온 사람은 전부 풀어 줄 수 있었다.
"총 32명인가. 참 많이도 잡혀 왔네. 하아—."
"왜 한숨을 쉬느냐. 네가 구한 거나 마찬가지이거늘."
"아니 그냥. 가끔씩 생각하는 게 있어요. 이쪽 세계에는 발도 들이기 싫지만 이미 들여 버렸고,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도 있을 텐데 힘을 가진 제가 하기 싫다고 구하지 않는 게, 마치—"
"마치 나쁜 사람 같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유명한 말도 있잖아요? 힘에는 책임도 따른다고."
"흐음…. 선악을 논하기에 지금은 바쁜거 같으니 책임에 대해서 말해볼까."
"설마 혼내시려는 건 아니죠?"
"아니. 애초에 선악이란 개념은 인간이 만든 것이니 지금의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게 책임이 없다는 말이란다."
나는 하윤이가 침착해질 때까지 기다리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네가 힘을 가졌다고 모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만약 그런 의무가 있다면 강대국은 이미 약소국을 돕고 세상에 가난한 사람은 없었겠지. 그리고 너는 친구들을 구하지 않았더냐. 인간들의 관점으론 네가 선인이라고 볼 수 있지."
"그럼 신 님이 보기에는요?"
"나에게 있어 너는 소중한 선물 같은 귀여운 아이란다."
나는 하윤이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게 뭐예요. 정말이지."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싫은 티는 내지 않는 게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하다.
"아무튼 이제 돌아가자꾸나. 약속했던 조개구이도 먹고."
"아, 빨리 안 가면 저녁 시간에 늦겠네."
금세 기운을 차린 하윤이는 사람들은 이끌고 마법진 쪽으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혼종 경비를 한 번 만나긴 했지만 주먹 한 방에 간단히 무력화되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도착한 마법진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고 사람들을 모두 마법진 위로 올려보내기 시작했다.
올라가기 무서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와 하윤이가 올라가는걸 보고는 괜찮다고 생각한 건지 결국엔 모두 올라왔다.
나는 마력을 불어 넣었고 빛이 뿜어져 나오며 아까와 같은 느낌을 받고는 눈을 떠보니 그 동굴 안이었다.
탈출한 것에 기뻐하는 사람들은 동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도 같이 따라갔다.
노을을 보며 기뻐하는 사람들.
"지금 해가 지는구나."
"이런걸 보려고 여기까지 여행을 왔는데 이게 뭐람."
"그래도 나는 하윤이 네가 다시 구해 줘서 좋았어."
"부끄럽게 달라붙지마."
사람들도 어두운 동굴에 묶여 있다 나와서 어린 멋진 풍경을 보니 좋아하는 모습이다.
"저길 봐. 정말 엄청난 석양이야."
"아아, 마치…."
저기 남성 둘은 분위기가 좀 이상하긴 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쩌지? 이쪽 세계를 알아봤자 좋을건 없는데. 신 님, 뭔가 방법이라고 없어?"
하윤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네가 원한다면 저 사람들의 납치당한 기억을 없애주마."
"응, 고마워. 내 친구들은 가까이 있지만 저 사람들은 아니니까."
우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려는지 모두 떠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사람을 찾을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간단히 주문을 외웠다.
'망각의 파도. 오늘 하루의 기억을 없애버리면 충분하겠지.'
커다란 파도가 이쪽으로 덮쳐 온다.
사람들은 어어—하다가 그대로 파도에 휩쓸린다.
내 곁에 있는 하윤이와 민아는 보호막 덕에 맞지 않았지만.
잠시 기절한 저들을 힐끗 보고는 주문 : 보이지 않는 손을 이용해 옆의 해변가로 옮겨 왔다.
그래도 31명이 동굴 앞에서 단체로 기절해 있는 건 이상해 보일 테니까.
내 옆의 둘도 나를 도와서 사람들을 옮긴다.
"그래도 뿌듯하긴 하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말을 해도 다음에도 도와줄 거면서."
"자자, 출출하지 않느냐?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꾸나."
그렇게 우리들은 숙소에 있던 일행과 합류해서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서 먹은 조개구이의 맛은 뭐, 그저 그랬지만.
친구들과 대화하며 웃는 하윤이의 미소가 나를 배부르게 만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