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역병 의사
* * *
"…누구세요?"
어느 방으로 들어오자 보이는 침대 하나.
그곳에 멍하니 누워만 있던 아이가 나를 발견했는지 말을 걸어온다.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앙상한 팔과 혈관이 보일 정도로 창백한 피부.
비니를 쓰고 있는 게 아무래도 항암 치료나 백혈병을 치료하면서 빠진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침대 앞에 설치된 커다락 TV에는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게 뉴스가 틀어져 있었다.
'아직 사제가 죽은 건 보도 되지 않은 모양이군. 몇 시간 전 일이기도 하니까 당연하겠지만.'
나는 틀어져 있던 뉴스를 쳐다보다가 아이를 향해 눈을 돌렸다.
이렇게 수상한 사람이 들어왔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쳐다보는 게 평범한 아이는 아닌 거 같은데.
아니면 평소에 이렇게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다던가.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 그런 행사를 하는 사람이 많긴 하니까.
"그래. 여기 어린 아가씨는 무슨 병 때문에 여기 누워 있나."
"그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부모님이나 의사 아저씨도 안 알려주고요. 댁은 아빠가 보내는 이상한 광대와는 달라보이는데 누구세요?"
"광대? 하하하. 확실히, 그런 녀석들과는 다른 존재지."
"그래요?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는 무슨 히어로라고 하는 사람과는 확실히 옷차림부터 달라보이네요. 그래서, 뭐 하시러 오셨나요. 납치범은 아닌거 같아 보이는데."
"부모님은 언제 오시니? 너도 총명해 보이긴 하지만 우선 네 부모와 대화하고 싶은데."
"글쎄요. 저번 주에 찾아왔으니까 다음 달에 오실 텐데. 상태가 안 좋아지면 찾아오긴 하겠지만 그렇게 아파하면서까지 보고 싶진 않아서요."
일단 병약한 아이는 찾았는데 부모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병원비를 버느라 못 찾아오는 건지 찾아올 여유는 있지만 아이보단 일이 우선순위에 있는 건지.
이 아이의 말을 들어 보면 후자 같긴 한데 말이다.
코스튬을 입은 사람이 봉사활동으로 찾아온 게 아니라 아빠가 보냈다고 했으니.
그다지 이 아이의 취향이 아니여서 좋아하지는 않은 거 같지만 자기 자식의 취향도 모르는 건지 아이라면 무조건 좋아할 거라 생각한 건지 원.
"무엇을 하러 왔냐고? 내가 네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면 믿을 테냐? 네 부모도 그다지 간절해 보이지 않는구나."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불치병은 아니니까요. 물론 더럽게 아파서 빨리 나았으면 좋겠지만."
"이 병원이 특이한 건지 몇몇 환자들이 특별한 건지.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닌데 말이야."
"요즘 세상에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데요. 저도 언젠가 여기서 나와 여러 곳을 돌아다닐 예정이니까요."
"호오, 그러느냐."
그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내가 보인다는 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아래 층의 두 노인도 시한부 판정을 받아서 내가 보였겠지.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이 아이는 얼마 안 가서 명을 달리하게 될 거다.
"하지만 내가 보인다는 건 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데."
"네? 헛소리 하지 마시고 좀 비켜 주실래요? 뉴스나 마저 보게. 아니면 간호사라도 부를까요?"
"네 마음대로 해 보거라."
내가 이리 말하니 저 아이는 귀찮은 듯한 눈으로 어떤 버튼을 눌렀다.
아무래도 저게 너스콜인지 문밖에서 금방 발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어머, 이브. 네가 부르는 건 오랜만인 거 같네. 뭔가 불편한 거라도 있니?"
"어…. 그냥, 언제 쯤이면 나을 수 있을까 궁금해서 불렀어요."
"그건, 금방이면 나을 수 있다고 네 주치의께서 말씀하셨단다. 다른 불편한 건 없고?"
"네. 괜찮으니까 돌아가 주세요."
들어온 간호사가 저 질문을 듣자 스쳐 지나간 경직된 표정으로부터 나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부모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거고 주치의에게도 일부러 말하지 말라고 한 거 같은데.
죽기 전에 정을 떼려는 것일까.
혹은 다른 방법을 찾아다니는 것일까.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뭐가요. 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요? 아니면 부모님이 이걸 숨겼다는 거?!"
"일단 진정 좀 하거라."
"제가 어떻게—쿨럭, 허억."
너무 흥분한 건지 옆의 심전도를 보여주는 기계에서 삐삐—거리는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이윽고 방금처럼, 아니.
방금보다 더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드르륵!
세차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의사가 가쁘게 숨을 쉬며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아이를 급히 살펴본다.
"얘야, 괜찮니? 심장 박동이 빨라져서 큰일 난 줄 알았단다."
"당신은…."
"응?"
"당신은 알고 있었어요? 아니! 알고 계셨겠죠! 제 주치의니까!"
"어, 어? 내가 뭘 알고 있다는 거니?"
앞의 중요한 내용은 빼먹고 알고 있었냐는 말만 하니 못 알아듣는 모습이다.
"자, 일단 진정하고 심호흡부터 하자.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후우— 하아—."
"그래그래. 이제 진정됐니?"
"아니요."
심호흡을 하며 침착해진 건지 아까보다 더욱 날카로운 눈으로 의사를 쳐다본다.
"아, 하하. 그렇게 바라보면 상처받는단다."
의사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 아이—이브라고 불렀던 거 같은데—를 곤란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아까 그러니까… 내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했었지? 그게 뭔지 알려주지 않을래?"
"제가, 후우—. 제가 시한부인 거 알고 계셨죠."
"어, 어? 그런 말은 누가 한 거니? 간호사는 아닐 테고."
이제는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는 게 이 녀석은 거짓말에 영 재능이 없나보다.
소녀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저기 안 보이세요? 당연히 안 보이시겠죠! 저와는 다르게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았으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당연히 여기 병실에는 너와 나 밖에 없는데?"
의사는 작은 목소리로 '항암제에 환각 증세 같은 부작용은 없을 텐데'라 말하며 나가려고 하는지 몸을 문 쪽으로 돌렸다.
"일단 다른 의사 선생님도 데려와야 할 거 같아서 잠시만 갔다 올게.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렴."
"이런. 그러지 않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
나는 잠시 주문을 풀어 의사가 나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의사를 데려온다면 이브가 격리될 가능성도 있으니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너, 너는 누구지? 분명히 이 방에는…."
"이봐, 그러니까… 패트릭. 이대로 널 보낼 수는 없겠구나."
"무, 무슨."
"이대로 널 죽여야 할까? 아니면 기억만 없애버려야 할까."
—척
나는 녀석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잠시 생각을 했다.
이대로 죽인다면 돌아오지 않는 것에 이상을 느낀 다른 동료 의사가 찾아오겠지.
그렇다면 기절시키고 기억을 지워 버릴까.
하지만 지금의 화신체는 주문을 쓰는데 제약이 있는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가 악마처럼 유혹을 하는.
그런 역할로 만들었기 때문에 치유 주문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물론 죽이는 건 간단히 할 수 있지만.
지금, 이 녀석의 어깨를 잡은 손.
그 손을 감싸고 있는 검은 가죽 장갑만 벗겨지면 금세 죽을 거다.
병원을 찾아다니다가 만난 그 사제처럼 피부가 썩고 고름이 나고 검은 부종이 생기겠지.
하지만 그렇게 죽여 버리면 시체를 치우는 게 어렵다.
옆에서 날 쳐다보는 이브에게도 충격일 테고.
'어쩔 수 없지.'
첫 번째 화신체.
영국에서 존에게 의뢰를 하고 그대로 남아 관광을 즐기고 있었지만.
잠시만 이쪽으로 와서 녀석의 기억을 지워야겠다.
나는 시야 한쪽으로 보이는 빅 벤을 뒤로하고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갔다.
공간 이동보단 관문을 만들어서 오가는 게 낫겠지.
두 번째 화신—역병 의사가 있는 곳의 좌표로 통하는 관문을 간단히 만들어내고는 살펴본다.
마치 허공에 검은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보인다.
그대로 들어가니 커다란 까마귀같이 생긴 두 번째 화신체가 보인다.
그와 동시에 평범한 시민A 처럼 보이는 첫 번째 화신체도 보이고.
"이게 뭐야?!"
"조금만 잠들어 있거라."
나는, 그러니까 첫 번째 화신체는 손을 뻗어서 패트릭이라는 의사의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주문을 사용해 몇십 분 간의 기억을 지우고는 병실 구석에다 던져 뒀다.
볼일도 다 봤으니 다시 돌아가야겠지.
관문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펴보니 이쪽으로 온 사람은 없나보다.
골목을 나가며 다른 건축물을 구경하면서 다시 역병 의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아. 그래서 이브. 너는 무엇을 택할게냐."
"저를 치료해 주신다면, 그 대가는 무엇이죠?"
"모든 것."
그런데 얘를 데려가도 상관없으려나.
내가 쓸 말이 늘어나는 건 좋지만 너무 많아도 좋지는 않아 보이는데.
'어디 보자… 내가 본 시나리오에서 등장했던 게 제임스와 에반 스미스, 존 왓슨과 브라운인가. 하윤이는 이번 휴가에서 같이 활약했었고.'
하지만 제임스는 아직 나를 만난 적이 없고, 에반은 광기 때문에 기억을 못 하겠지.
존 왓슨에겐 한 번 모습을 드러냈고 브라운은….
대학 생활이나 보내고 있겠지.
하윤이는 애초부터 내 수제자이자 대사제기도 하니 넘어가고.
"정말로 날 따라올게냐. 네 부모님은 어쩌고."
"그거 아세요? 저는 오빠가 하나 있어요. 저보다 엄청 건강하고 곧 부모님이 하는 일을 물려받을 거라고 해요."
"그래서?"
"저번에 문병왔을 때 부모님의 눈이 어땠는지 보셔야 했는데. 여태까지 부정해 왔지만 말이죠."
"그러니 나를 따라오겠다?"
"부모님이 제게 상처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그렇다면 저는 이딴 연명보단 밖을 돌아다니고 싶어요."
"나를 따라다니면 끔찍한걸 많이 볼 수 있는데도?"
"제게 가장 끔찍한 건 죽음이니까. 그리고 사람이 죽는 건 익숙해요. 며칠에 한 번 옆 방의 사람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네 각오가 그렇다면."
나는 이브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댄다.
"다시 한번 물어본다만…."
"후회는 없어요. 없을 거예요. 아니면 당신 옆에서 제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라도 봐서 정을 끊어버릴까요?"
"그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제 부모님이 슬퍼하더라도 상관없어요.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으니까."
"그렇다면 시작하마."
치유 주문을 사용하자 창백했던 피부는 점점 혈색이 돌아오며 이제야 건강하게 보인다.
"서비스로 머리카락도 자라게 두었다. 머리카락은 누구에게나 무척 소중할 테니까."
"우와아—"
이브가 비니를 벗자 고운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그동안의 투병 생활때문인지, 원래 그랬던 것인지 하얗게 빛나는 은발은 허리까지 내려왔다.
"에휴. 아무래도 영국 관광은 글러 먹은 거 같네."
"뭐가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영국에서 구경이나 하며 돌아다니던 화신체로 다시 병원에 공간 이동을 했다.
"여긴 또 다른 나라고 할 수 있단다. 네게도 문장을 줄까 생각도 들었지만 하윤이와 상담을 해 봐야겠지."
"방금 그 사람이네요? 그리고 하윤이라는 사람은 누구예요?"
"나중에 만나게 해주마. 아무튼, 나는 이만 가도록 하마."
"저는 이 사람이랑 같이 있으라고요?"
"또 다른 나라니까. 그리고 네 부모의 반응이 어떤지도 지켜볼거라 했으니."
"이쪽의 나와 함께 다니는 게 좋을게다. 어디, 장막이 그대를 감춰 주기를."
이렇게 주문을 외자 이브의 몸이 점점 투명해진다.
"우와! 제가 투명 인간이 됐어요!"
"이건 비가시화 주문이란다."
"몸만 투명해지니 누가 있으면 조용히 하고."
"네에—"
주문을 건 내 눈에는 손을 휘적거리며 눈을 반짝이는 게 보이지만.
"그럼 나는 가도록 하마."
나는 그대로 문을 나설려다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의사에게 몸을 보이게 하려고 주문을 해제했었지.
다시 주문을 사용해 존재를 감추고는 방을 나섰다.
"우와! 이번 거는 무슨 주문이예요? 방금 말한 비가시화예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주문이지. 이제는 실감이 가느냐?"
"아…. 네!"
이브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기도 뭐 하니 마음껏 질문해 보거라. 이제 너는 나와 공동운명체라 볼 수 있으니."
"그럼—"
그렇게 이브는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의사가 일어날 때까지 쭉 이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