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역병 의사
* * *
"으, 으음…."
이브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해 주다 보니 벌써 저기 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의사 양반이 눈을 뜨려 한다.
엄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이브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내고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가 정작 나에게는 비가시화 주문을 쓰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주문을 사용했다.
혹시 저기 일어나고 있는 의사가 나를 보진 않았을까 저쪽을 봤지만 내가 기억을 지우면서 두통이라도 생긴 건지 머리를 붙잡고 끙끙거릴 뿐이었다.
머리를 부여잡고는 갓 태어난 아기 사슴처럼 부들거리는 다리가 위태로워 보인다.
"어라?"
한 손으론 벽을 짚고는 천천히 눈을 뜨다가 텅 빈 침대를 발견한 모양이다.
"크, 큰일이다!"
문으로 뛰쳐가다 한번 삐끗해 넘어질 뻔한 그지만 어떻게든 문을 나서 어디론가로 달려간다.
"저 의사도 나갔으니 말해도 상관없단다."
"계속 여기에만 있기도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 봐요."
"네 뜻이 그렇다면."
문밖으로 나오니 그다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간호사 몇 명이 무언가를 들고 바삐 걸어 다니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여기 층은 저 같은 사람이 많거든요. 전 이제 아니지만."
"병세가 지독해 걸어 다닐 기력조차 없다는 건가."
"옆 방의 사람이 며칠에 한 번씩 바뀌는 꼴도 봤다고 말했죠?"
"그랬었지. 아무튼 의사나 따라가보지."
방금 어디론가로 뛰어간 의사가 뭘 할지도 궁금하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복도를 돌아다니다 간호사들이 모여 있는 접수대같은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선 간호사들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던 의사가 있었다.
"…그럼 찾는 즉시 연락해 주시고, 저는 그 아이의 부모님께 전화해 보겠습니다."
"네. 그래도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어 하던 아이니까 금방 찾을 거예요."
"부탁드립니다."
혼자 찾기보단 간호사들에게 부탁한 건가.
아니 그것보다 이브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한다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이브에게 물어봤다.
"이브. 평소에도 이렇게 탈출해 본 적이 있느냐."
"간호사 언니한테 말하고 산책 나간 적은 있어요.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어서 주로 휠체어를 많이 탔지만. 옥상에서 도시를 구경하며 다 나으면 어디로 갈까 생각했었는데."
"이젠 어디든지 갈 수 있지 않으냐."
"덕분예요."
이브와 잠시 조용히 대화하다 보니 신호음이 들려온다.
의사가 들고 있는 휴대전화에서 나는 소리였다.
"여보세요? 예. 이브의 담당의인 패트릭입니다. 예, 예. 그게, 이브가 그… 가출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라져 있어서 말이죠. 네? 알겠습니다."
통화는 금방 끊어졌고 의사는 또다시 어디로 달려갔다.
"따라가 봐요."
"그래."
의사는 속삭이는 듯이 이브의 이름을 부르며 화장실이나 비상계단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브의 부모님은 일단 찾아보라고 말한걸까.
주변 병실에는 잠자는 환자들이 있으니 목소리는 크게 내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게 찾아봤자 이브는 내 옆에 있는데 말이지.
"후후. 뭔가 우스꽝스럽네요. 저는 바로 여기 있는데."
"확실히. 이런 걸 보는 것도 재미있는 법이지."
"모습은 안 보여도 목소리나 다른 건 들린다고 했죠."
"그렇다만. 무언가 하려는 게냐?"
"숨바꼭질이요.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요."
"술래한테 너무 불리한 거 같지만. 네가 재미있으면 상관없겠지."
이브는 발걸음을 내지 않으려 살살 걸어 다니며 작은 목소리로 여기예요—라고 말했다.
"이브?"
이브의 담당의,패트릭은 고개를 돌리며 찾아봤지만 뭐.
영적인 능력도 없는 일반인인 그가 볼 수는 없겠지.
특별한 도구가 있다면 모를까.
종종 걸어 다니며 패트릭을 놀리는데 열중인 이브를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짓고 따라갔다.
허둥지둥대는 그의 모습도 웃기기도 하고 말이지.
그러다가 시야의 구석에서 인영이 여럿 보였다.
이쪽의 시야가 아니다.
이건 두 번째.
역병 의사가 바라보는 방향인데.
"이브."
"응?"
"오랜만에 노느라 신나는 건 알겠지만 잠시 옆에서 기다려 줄 수 있겠니. 두 번째에게 무언가 일이 생긴 거 같아서 말이야."
"두 번째면… 까마귀같은 오빠?"
"그래. 잠시 있으면 해결될 테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네에—"
나는 잠시 역병 의사에게 집중하니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보였다.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된 의복.
사제들이 내가 가만히 서 있던 사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군. 형제님을 살해한 악마!"
"지옥으로 쫓아버리는 게 아닌, 완전히 소멸시켜 주마."
일곱 명인가.
앞에 네 명, 뒤에 세 명이 거리를 두고는 십자가를 쥐었다.
곧 십자가에서 새하얀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나는 곤충들을 증식시키며 수를 불려갔다.
내 주변에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듯이 보이는 곤충들은 점점 주변의 공간을 잠식해가지만 내게 작렬하는 하얀 기운이 기세를 한풀 꺾는다.
이대로 계속 공격받다간 위험하다 생각해 세 명이 있는 쪽에 공격을 가하지만 이번엔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이건 좀 위험한데.'
일단 증식을 해야 보호막을 뚫고 공격할 수 있을 텐데 저 녀석들의 공격 때문에 증식이 제대로 안 된다.
게다가 저 한 명은 아직까지 주문을 외고 있는 게 큰 거 하나 날릴 생각인가 보다.
젠장할.
이런 일은 생각하지 못해서 공격 수단을 제대로 넣어 두지 않은 것을 한탄하며 나는 생각했다.
'일단 나중에 지팡이를 손봐서 공격 무기로 만들던가 해야겠고. 첫 번째가 와야겠어.'
일단 무작정 마력을 불어넣어 폭발적으로 곤충들을 증식시키자 여러 명이서 하얀 기운을 날리며 저지한다.
그 사이 첫 번째 화신체로 집중을 돌린 나는 이브에게 말했다.
"이브. 아무래도 잠시 어디 좀 갔다 와야겠는데 함께 가겠느냐."
"어딘데요?"
"병원 밖 길거리다. 두 번째가 귀찮은 일에 휘말려서 말이지."
'나중엔 두 명 이상을 동시에 조종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지 원.'
나는 사람이 없을 법한 공간을 생각하다가 사람이 없는 창고를 찾아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두 번째가 있는 좌표를 계산해 세 명의 사제 뒤쪽으로 관문이 생기도록 했다.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곤충들을 막느라 정신없는 세 명은 알아차리지 못했고 관문이 있는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넷도 시야가 가려져서 그저 빛무리를 날려 보낼 뿐이었다.
나는 주문으로 손에서 촉수를 뽑아내 그대로 관문 너머로 날려 보냈다.
가운데 있는 사제의 심장을 관통한 것을 보고는 그것을 옆으로 휘둘러 오른쪽의 사제에게 던져 버렸다.
불의의 기습에 당황한 사제가 뒤를 돌아보며 공격하는 인원이 반으로 줄어들자 녀석에게 검은 파도를 날려보낸다.
순식간에 검은 파도에 휩쓸린 사제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브. 네가 보기엔 잔혹할 수 있는데 정말로 갈 테냐."
"언제까지 아이일 수는 없어요. 언젠가 겪을 일이라면 빨리 겪는 게 나으니까요."
"그럼 잠시."
나는 비가시화 주문을 해제하고 이브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계속 환자복을 입고 있었구나."
"아, 그러네요. 이 지긋지긋한 옷도 빨리 갈아입어야 하는데."
"원하는 옷을 말해 보거라. 무엇이든 만들어 주마."
"음…. 간단한 드레스요. 색은 검은색으로!"
"그 정도야 간단하지."
즉시 마력을 짜올려 환자복 위로 드레스를 덧씌운다.
그리고 환자복을 없애니 동화 속 등장인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 이제 너의 데뷔라고 할 수 있겠구나."
"이게 그 포탈같은 거죠? 아까도 봤었는데."
"그래. 여기로 들어가면 밖이란다."
"빨리 가요!"
관문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심장이 꿰뚫린 시체 하나, 기절한 사제 하나, 그리고 검은 안개 같은 것에 휩싸인 사람의 그림자였다.
아, 이것도 회수해야지.
곤충들을 회수해 사제 넷이 있는 쪽으로 보내니 고름과 검은 부종으로 뒤덮인 사제가 보인다.
"으, 저건 좀 역겹네요."
"저기 심장이 뚫린 건 괜찮고?"
"그, 이건 비밀인데…."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애들은 못 보는 잔인한 영화는 많이 봐서 내성이 생겼어요. 그렇다고 잔인한 게 좋은 건 아니고 봐도 멀쩡한 정도?"
"그 정도면 괜찮다."
나는 조금 앞으로 가 역병 의사의 옆에 섰다.
"크윽! 조금만 더 기다리면 형제께서 전부 날려 버리실거다! 조금만 더 버텨!"
"아무래도 정말 큰 거 하나를 쓰려는 모양인데."
얼마나 강력할지 기대하며 저들을 공격하던 검은 파도를 회수했다.
"어라? 공격이…."
"아무래도 주님께서 우릴 돌보신 모양이야!"
"어? 저기 저 녀석 옆에 누군가가."
"저건… 사람?"
아무래도 나와 이브를 발견한 건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악마를 퇴치하러 왔는데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현혹되지 말지어다. 저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그리고 저 소녀는… 악마를 사역하는 마녀인가."
"저 사람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신경 쓸 필요 없단다. 곧 저들이 기도하는 자와 만나게 될 터이니."
"소멸되는 것은 네놈들이다."
저들 가운데에 있는 사제의 십자가에서 범상치 않은 양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앞에 어떤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것으로부터 세 갈래의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벽에 상흔을 남기며 회전하다가 점점 하나로 합쳐지며 위력이 증가한다.
"이런, 주문 : 밤하늘의 장막."
"흐읍!"
내 앞에 검은 장막이 생기며 빛줄기를 막아 낸다.
"아, 내 눈."
"으으, 새벽에 불 꺼놓고 TV 보다가 번쩍이는 장면을 보는 거 같아요."
이브는 밝은 빛때문에 눈이 아픈지 실눈을 뜨고 눈을 찌푸리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 힘을 다 쓴건지 헉헉거리며 가쁘게 숨을 쉬고 있는 사제가 보였다.
"무슨! 마지막 심판을 막을 수 있다고?!"
"이런 힘을 가진 악마는 전혀 만나 본 적이 없는데…!"
"크윽, 일단 빨리 성당으로—"
"어딜 도망가려고."
녀석들의 뒤로 공간 이동을 해 퇴로를 막아 내고는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이런, 형제여! 그대들이라도…!"
"혹시 저기 셋을 말하는 건가?"
"저 사람들은 이미 갔는걸요. 요단강 너머로요."
"이, 이— 악마들이!"
"할 말은 그것뿐인가."
나와 이브를 바라보며 분노하는 녀석들의 뒤에서 검은 파도가 덮쳐 온다.
"이, 이런! 크아악!"
"살려 줘!"
"피, 피부가—"
결국 저들은 고통스러운 단말마와 함께 쓰러질 뿐이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자꾸나."
"네에. 뭔가 영화보는 느낌이었네요."
나는 관문 앞에 서서 잠시 뒤를 돌아봤다.
"아, 그러고 보니."
"뭐 잊은 거라도 있어요?"
"하나를 깜빡했구나."
주문으로 촉수를 뽑아내서 기절한 녀석의 심장에 꽂아넣는다.
정확히는 기절한 척이겠지.
숨소리가 불안정했으니까.
"커, 커억."
촉수가 좀 두꺼워서 그런지 심장과 폐를 같이 찔러서 입으로 피를 토하고 있다.
"이제 정말로 돌아가자꾸나."
"돌아가면 같이 숨바꼭질 하실래요?"
"그것도 좋지."
그렇게 나는 이브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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