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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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을 통해 병원 창고로 돌아오자 수술 도구인지, 약품인지 무언가를 가지러 온 거 같은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상상도 못 한 것이 창고에 있어서 그런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나와 시선을 교환할 뿐이었다.
그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오기 전에 기절시키고 나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허, 그 사이에 사람이 올 줄은 몰랐구나."
"그래도 알려지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기절한 간호사를 구석에다 눕혀두고 이전의 의사처럼 약간 기억을 지우고 나서 잠시 생각을 했다.
'이대로 이브를 찾지 못하면 부모가 올 가능성이 높지. 하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병원에만 있는 것도 곤란하고.'
일단 소환 주문으로 감시하는데 좋은 괴물을 소환하고 저택으로 갈까.
그렇다면 감시를 할 괴물은 무엇이 좋을까.
구울은 중환자실에서 사람을 잡아먹을게 뻔하니 패스.
딥 원은 비린내가 심하니까 얘도 넘기고.
미고는 카메라에만 안 보일 뿐이지 육안으로 보이니까 얘도 불가능.
'몬가… 몬가 떠오를 거 같은데. 아! 저번에 책에서 봤던 그게 있었지.'
별의 흡혈귀.
물론 흡혈귀라고 해서 인간처럼 생긴 건 아니다.
불어터진 살같은 덩어리에 수많은 촉수가 달려 있고 그런 촉수 사이에서 튀어나온 굶주린 아가리가 인상적이었지.
생긴 건 말랑하게 생겼는데 발톱도 달려 있었고 말이야.
특별한 점이라면 흡혈하기 전까지는 투명하다는 것일까.
물론 사악하게 킥킥거리면서 어그로를 끌기 때문에 존재를 감지하기 쉽지만 뭐.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환청이라 생각하겠지.
물론 이름 그대로 먹이는 피다.
피를 잔뜩 빨아 먹으면 그것 때문에 모습이 보이고 그걸 전부 소화하기 전까지는 미행은 불가능하다.
피를 마시지 못하게 해야 할까.
아니면 혼자 있을 때에 사냥을 하도록 해야 할까.
그런 건 소환하고 감시를 하면서 생각하자.
별의 흡혈귀를 소환하는 방법은… 구름 한 점 없는 밤에 소환 주문을 시전하면 된다.
지금 시간이 벌써 저녁이니 옥상에 올라가서 밤이 되기를 기다릴까.
"이브. 같이 옥상에 올라가지 않겠느냐. 지금쯤이면 노을이 질 때구나."
"응! 오랜만에 보고 싶어요!"
"나가기 전에 비가시화 주문은 사용해야겠지."
주문을 사용해 몸이 투명해지는 걸 확인하고 문을 나간다.
물론 관문을 없애는 것도 잊지 않고.
이브를 품에 안은 채로 옥상에 올라가니 옥상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서쪽을 바라보자 높이 솟은 건물 너머로 보이는 지평선에 걸친 태양이 보인다.
해는 점점 내려가며 작아지다 그 모습을 감추고 어둠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 어둠을 건물의 전등 빛이 밝히는 게 꽤나 멋진 광경이었지만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 뜬 보름달이 자신도 어둠을 밝히고 있다며 말하는 거 같았지만 근처에 친구 하나 없이 저 멀리 북극성만 보이는 게 쓸쓸해 보였다.
너무 쓸데없는 감상에 빠진 거 같아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주문을 사용할 준비를 하니 이브가 말을 걸어왔다.
"으으, 주변이 너무 밝아서 은하수는 전혀 보이지 않네요. 그것도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언젠가 볼 수 있겠죠?"
"네게 그럴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다. 언젠가는 은하수도 보기 질렸다 할 수도 있겠지."
"글쎄요. 사진으로만 봤는데도 그렇게 낭만적이었는데, 그걸 이 두 눈으로 본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절대로 질리지 않을 거 같아요."
"그렇구나."
나는 이브의 말에 대답을 하며 마법화 주문을 사용한 책을 가져왔다.
그리고 주문이 쓰여진 책을 사용하니 잠시 후 무언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성공적으로 소환된 거 같지만 당연하게도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명령을 내려 바닥을 두 번 내려치라 하니 탁—하는 소리가 두 번 퍼진다.
"우왓! 무슨 소리예요?"
"내가 소환한 괴물이란다. 별의 흡혈귀라고 투명한 괴물이지."
"흡혈귀면 검은 망토에 박쥐로 변신하는 노신사가 떠오르는데요."
"찾아보면 그런 흡혈귀도 있겠지만, 이 녀석은 다르단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이브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끼익—하고 옥상 문의 녹슨 경첩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문 쪽을 쳐다보니 어떤 의사가 휴대전화를 들고는 구석으로 간다.
물론 이브의 담당의인 패트릭은 아니었다.
그는 아래층에서 이브를 찾느라 바쁠테니까.
'흠…. 저 의사로 별의 흡혈귀를 이브에게 보여 줄까.'
나는 저 의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브에게 물어봤다.
"이브, 잔인한 걸 보는 건 괜찮다고 했지."
"왜요? 흡혈하는 거라도 보여주시게요?"
"그래.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솔직히 그렇긴 해요."
조금씩 저 의사에게 다가가면서 그에게서 얼마나 흡혈을 해야 죽지 않을지 생각해 보았다.
'일반적으로 혈액의 1/3 정도를 잃으면 과다출혈로 죽겠지. 별의 흡혈귀의 크기가 사람보단 크고 소나 말보다 조금 작으니 일단 1L 정도만 뽑아볼까.'
나는 별의 흡혈귀에게 명령을 내려 먼저 기절시키기로 했다.
저항하는 것도 귀찮고 기억에 남아버리는 것도 안 좋으니 말이다.
'일단 목을 졸라서 기절시키고 흡혈을 해라. 죽을 정도로 먹지는 말고.'
내가 소환한 녀석은 촉수 하나를 뻗더니 목에 휘감아서 서서히, 그러나 단단하게 조여가기 시작했다.
"컥, 끄으윽!"
목이 보이지 않는 올가미 같은 것에 묶인 감촉에 놀란 건지 비명을 지르려다 순식간에 숨이 막힌 그는 큰 비명 소리 하나 못 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보이지 않는 촉수를 양손으로 붙잡으며 저항해 보려 하지만 소용없었고, 뇌로 가는 혈류가 차단되면서 그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다가 결국 눈을 감았다.
내가 목을 풀라고 지시하니 바닥에 풀썩하고 쓰러진 그에게 다가가 목을 짚어보니 심장 박동은 느껴진다.
나는 이제 맛있게 식사나 하라고 명령을 내리니 날카로운 이빨같은 게 튀어나온 입이 달린 커다란 촉수가 튀어나와서 쓰러진 의사의 목덜미에 박아넣는다.
목의 혈관에서 피가 빠져나와 입을 통해 별의 흡혈귀의 체내로 들어가니 점점 윤곽이 생기며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이상 피를 빨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멈추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목덜미에서 입을 떼며 아쉽다는 듯이 촉수로 바닥을 연신 쳐대지만 그저 귀엽게만 보일 뿐이었다.
"자, 그래서 감상은 어떠느냐."
"윤곽 밖에 안 보여서 실망스럽긴 한데, 정말 신기하게 생겼네요."
"일단 전부 소화할 때까지 기다리고 이 녀석은 감시로 붙이도록 하고, 우린 저택으로 갈 거 란다."
"저택이요?"
"그래. 소개시켜줄 오빠들도 있고, 다른 메이드나 집사도 있단다."
"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신나는 건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본다.
"일단 소화를 다 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으엑. 그냥 먼저 가면 안 돼요?"
"음…."
똘망똘망한 눈으로 계속 쳐다보는 게 아무래도 이번엔 한 번 져 주는 게 좋을 거 같다.
"에휴, 그래. 일찍 가도록 하마. 너는 여기서 소화를 다 하고 패트릭이라는 의사를 감시하거라."
나는 별의 흡혈귀에게 손짓하며 명령을 내리고는 저택으로 향하는 관문을 만들었다.
관문을 통과하자 보이는 로비에는 청소를 하고 있는 몇 명의 메이드가 보였다.
깨끗한 바닥에 청소하는 메이드가 비칠 정도로 꼼꼼이 청소를 하던 그녀는 나를 발견하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 존재감은 주인님이십니까?"
"아, 그러고 보니 화신체는 처음 보겠구나. 여기 아이는 이브라고 한단다."
"안녕하십니까. 이브 아가씨."
"우와 뭔가 아가씨 소리는 오랜만에 듣는 거 같아요. 저택도 저희 집보다 훨씬 화려하고요!"
"후후, 고맙구나. 그러고 보니 제임스와 에반은?"
"제임스 님은 처음엔 경계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몇몇 메이드와 친근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에반 님은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나서 마찬가지로 잘 지내고 계십니다."
"지금 둘은 뭘 하고 있지?"
"현재 시각이면… 제임스 님은 식사를 하실 테고, 에반 님은 공용 서재에서 마도서를 탐독하고 계실 겁니다."
"그래, 알았다. 넌 마저 할 일을 하거라."
메이드는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돌아가서 청소를 시작했다.
일단 에반을 먼저 만나는 게 좋겠지.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그리고 식사하다가 체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서재를 향해 걸어가려다가 이브가 말을 걸어왔다.
"팔 안 아프세요? 전 이제 아프지도 않으니까 걸어 다녀도 상관없는데."
"아. 그러고 보니 사제에게 공격받을까 싶어 이렇게 안았는데 이젠 괜찮겠구나."
이브를 품에서 내려주니 내 주변을 도도도—뛰어다니며 미소 지었다.
나는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어서 서재로 가자 말했다.
윗층으로 올라가 고풍스러운 문을 열자 많은 책장들이 보이는 게 서재라기보단 도서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런 책장들 사이에 자리 잡은 책상에는 여러 권의 책들—마도서가 놓여 있었고 어떤 사람이 앉아서 그것들을 읽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당연히 방금 메이드가 말한 에반이었고.
그다지 위험한 주문이 담기지 않은 책이여서 내 서재에 보관하지 않고 여기에다 뒀는데 말이지.
핏발 선 눈으로 책을 읽는 에반의 모습은 마치 광기에 빠져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 저대로 계속 읽다간 정말 광기에 빠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짝짝!
일단 나는 손뼉을 쳐서 에반의 주의를 이쪽으로 돌렸다.
"…누구십니까. 식사라면 괜찮으니 방해하지만 말아 주십쇼."
"에반. 설마 내가 집사같은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실망인데."
"흠? 그러고 보니 집사 중에는 본 적이 없는 분이시군요. 혹시 제임스처럼 눈을 떠보니 여기 오신 겁니까?"
"하아, 일단 행동으로 보여 줘야 알겠구나."
—딱!
"끄으윽—!"
내가 손가락을 튕기니 에반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고는 주저앉는다.
"저 에반이라는 사람은 왜 저러는 거예요?"
"정신이 이성과 광기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때는 두통이 밀려오거든. 나는 그것을 응용한 거지."
"오오, 그런데 제가 그걸 쓸 수는 있나요?"
"언젠가 배울 게다."
나는 이브의 물음에 답하며 에반을 잠식해가던 광기를 물렸더니 에반이 나를 두려운 눈으로 쳐다본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보단 너 자신이 누군지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너는 저택의 집사와 다를 바가 없어. 그저 좀 더 강하고 좀 더 자유로울 뿐이지."
"…그게 무슨."
에반은 내 말을 이해해 보려 눈을 찡그리지만 그다지 해답을 알지 못하는 눈치이다.
"그런 복잡한 문제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차나 한 잔 하는 건 어떠느냐?"
나는 허공에서 종을 만들어 집사를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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