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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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홍차만 마셔서 그런지 우유보다 먼저 바닥이 난 홍차 덕에 이브는 따듯한 우유에 쿠키를 먹고 있었다.
쿠키는 우유와 잘 어울리니 상관은 없겠지만.
에반은 그다지 목이 마르지 않은 건지 두 잔 정도만 마시고 파이에 집중하고 있고.
이제 슬슬 다 먹어가니 조금만 더 대화하고 제임스를 만나러 가도 괜찮을 거 같은데.
지금쯤이면 녀석도 식사를 끝내고도 남을 시간일 테니까.
나는 그렇게 에반과 이브가 마지막 한 입을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입을 열었다.
"이제 차도 다 마셨으면 잠시 대화 좀 하지. 네게 줄 선물도 생각할 겸 말이야."
또 다른 저택에서 존 왓슨과 브라운을 쫓던 미치광이 역.
신체적인 능력으로 따지면 제임스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광기라는 또 다른 정신적인 부분이 다른 캐릭터성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그 광기를 가져다올 도구가 필요한데….
하지만 광기에 빠져서 좋은 게 있긴 한가?
제임스와 광기에 빠진 에반이 싸운다면 왠만해선 제임스가 이길 거다.
시야가 좁아져 직선적으로 움직이는 에반을 간단하게 제압할 테니까.
'흠… 한 번 실험을 해 볼까.'
"에반. 그래서 너는 마도서에 관심이 많다고?"
"예, 뭐. 처음엔 어떤 기억이 떠오르기도 해서 읽었지만, 마법도 써 보고 싶긴 합니다."
"와! 마법! 나도 써볼래요!"
"이브 너는 잠시 나중에 가르쳐 주마. 약간 실험해 볼 것도 생각났고 말이지."
나는 아까처럼 마력으로 종을 만들어 집사를 불러냈다.
잠시 기다리자 노크 소리와 함께 들어온 그는 내가 무엇을 시킬지 알고 있었다는 듯, 내가 말하기도 전에 찻주전자와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책상 위에는 에반이 읽었던 마도서 몇 권만 올려져 있었다.
나는 손으로 어떤 마도서 한 권을 가져와 에반에게 보여줬다.
사전처럼 두꺼운 마도서는 그 자체로도 흉기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책은 실패작이긴 하지만 네게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겠지. 그럼 연무장으로 갈까. 집사, 제임스도 연무장으로 부르도록."
"예, 알겠습니다."
"연무장? 집이 크니 그런 장소도 있군요."
"연무장이 뭐예요?"
"운동을 한다 던가 활발한 활동을 하는 곳이란다."
나는 에반과 이브를 데리고 연무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청소를 하던 메이드들은 나를 보자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고, 에반은 그것에 어색해하며 같이 인사를 하거나 이브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금방 연무장에 도착해 문을 열자 드넓은 방에 여러 무기와 방어구가 구비되어 있었다.
바닥은 흙바닥인 것도 있었고 다른 재질의 바닥도 있는 게 여러 상황에 대비해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물론 여기에서 할 것은 주문 뿐이니 무기라던가 쓸 일은 없었지만.
나는 저 멀리 서 있는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에반에게 말했다.
"일단 마도서를 먼저 펼쳐봐라. 그리고 거기서 마음에 드는 주문을 골라 한 번 사용해 보거라."
"어… 잠시만요."
에반은 페이지를 넘기다가 마음에 드는 주문을 발견한 건지 무언가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허수아비를 향해 손을 뻗더니 그 손에서 노란빛의 번개 한 줄기가 눈 깜빡할 사이에 날아갔다.
번개가 공기를 찣으며 나아가는 소리가 뒤늦게 들리며 허수아비에 명중하니 불이 붙어서 검게 타는 모습이 보인다.
처음… 아니, 두 번째로 마법을 보는 이브는 입을 벌리며 눈을 반짝거린다.
처음 본 마법은 보호 마법이었으니 그다지 멋진 모습은 아니었을 테고 공격할 때는 일부러 고통스럽게 보내려 역병 의사로 공격했지.
사제가 사용했던 그 빛줄기는 눈이 부셔서 제대로 보지도 못 했을 것이고, 내가 만든 보호막에 막혀서 그 위력을 체감하지도 못 했을 거고.
반면에 에반이 사용한 주문, 이름을 짓자면 번개 화살이라고 해야 할까.
번개라는 위력을 알기 쉬운 모습도 그렇고 천둥 소리도 그렇고 겉보기엔 엄청나 보이는 주문이긴 하다.
하지만 굉장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이브와는 다르게 에반은 머리에 손을 대고는 약간이지만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신력을 소모하는 주문이니 그럴 만도 하지.
다른 숙련된 흑마법사라면 소모되는 정신력을 마력으로 치환한다거나 제물을 사용하는 식으로 그걸 피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에반이 그걸 사용할 리가 없지.
그럼 이제 실험을 진행해 볼까.
나는 에반의 머릿속을 점점 광기로 가득 채웠다.
신음소리를 내며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는 그의 눈에는 이성이라곤 한 줌도 보이지 않았다.
"에반 아저씨는 왜 저래요?"
"저건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이란다. 광기는 흑마법사들의 오랜 친구지."
"영원히 저렇게 지내야 하는 거예요?"
"정신력이란 게 한계를 지나지만 않으면 회복되긴 한단다. 에반의 한계치는 꽤나 높으니 몇 주 정도면 정상적으로 돌아오겠지."
"너무 긴 거 아니예요?"
"지금은 내가 강제로 한 거니 실험만 끝나면 원래대로 돌려줄 거란다. 나중에 그가 스스로 광기에 빠진다면… 녀석의 책임이니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에반도 시나리오에서 구를 예정인데 주문을 마구 쓰다가 광기에 빠질 수도 있겠지.
나를 만족시켜준다면 정신력 회복에 도움을 주는 부적을 만들어 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실험이나 빨리하자꾸나. 에반, 저기 허수아비를 공격해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에반은 허수아비를 향해 달려들더니 두꺼운 마도서로 머리 부분을 내려쳤다.
내 말뜻은 주문으로 공격하라는 거 였는데 제대로 명령을 내리지 않은 내 잘못이겠지.
'에휴.'
나는 데자뷰를 느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다.
"에반. 다시 이곳에 서서 주문으로 공격을 해보거라. 주문이다. 주문."
에반은 머리가 움푹 패인 허수아비를 뒤로하고 내가 말한 곳에 다시 서서 이번엔 제대로 주문을 사용했다.
아까 전의 이성적인 에반이 사용한 주문보다 더욱 빠르게 발현된 주문은 순식간에 허수아비를 강타하더니 산산조각을 냈다.
분명 같은 번개 화살인데 속도부터 위력까지 이렇게 다르다니.
내가 만나 본 마법사라곤 딥 원 사제밖에 없지만 광기에 빠졌을 때 주문이 더 강력하던가?
애초에 광기에 빠졌을 때 주문을 사용할 수 있던 건가?
그렇다기보단 에반이 특이한 거겠지.
광기에 빠졌을 때 육탄전은 별로니 주문을 쓰도록 시켰지만 이렇게 상상을 초월할 줄이야.
에반에게 남은 문제는 피아식별이겠군.
이성적일 때는 정신력을 소모하는 주문은 두통을 일으켜서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는데 반해 광기에 빠졌을 때는 그런 것도 없다.
'이건 도대체 무슨 컨셉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에반의 광기를 물러나게 하려 할 때 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신이 집사가 말한 '주인님'이라는 사람입니까. 그리고… 에반?"
광기에 빠져 멍하니 서 있는 에반을 보고는 아무래도 내가 어떤 수작을 부렸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수작을 부린 게 맞나?
일단 내게 달려드는 제임스부터 막아야겠다.
'에반, 막아!'
내 뒤쪽에 있던 에반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제임스와 부딪혔다.
에반의 손목을 붙잡고 힘겨루기를 하던 제임스는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팔을 잡아당겨 업어치기를 했다.
그대로 등부터 땅으로 내던져진 에반은 아프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저대로 계속 싸우면 나중에 에반이 근육통으로 고생할 거 같으니 이제 슬슬 멈추게 해야겠다.
"폭력 멈춰!"
손을 뻗으며 내가 이렇게 외치자 에반이 싸우던 모습 그대로 멈췄다.
"그건 무슨 밈 같은 거예요?"
"한국의 밈인데 네가 곧 만날 언니라면 잘 알 거다. 그리고 에반은 빨리 되돌려야겠구나."
나는 제임스가 잠시 어이없어 하는 틈을 타 에반의 광기를 잠재웠다.
"으음…."
"에반, 괜찮아?!"
"어째선지 등이 아픈데…."
"앗."
에반도 정신 차렸으니 제임스를 설득시키도록 해야겠다.
"에반, 제임스가 오해를 한 거 같으니 네가 해명하도록."
"제가요? 어, 여기 이 분은 라니아 님이라고 내 상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고 해."
"상사?"
"아, 그리고 제임스는 네 선배다."
"네?"
"예?"
"응?"
"이브 너는 왜 놀라는 거니."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은 분위기였어요."
나는 놀란 척을 한 이브에게 딴죽을 걸고는 다시 제임스 쪽을 바라봤다.
상상도 못한 정보에 뇌가 멈춘건지 팔이 버벅거리며 움직인다.
"아, 그래도 걱정하진 말게. 내 명령을 들어야 한다 던가 손짓 한 번에 죽는다던가, 아니 이건 가능한가."
"예? 그럼 손짓 한 번에 죽일 수 있다는 소린가요?"
"주문 얘기일세. 눈앞에 있다면 손짓 한 번에 보내버릴 수는 있지. 내가 그런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스위치를 가진 건 아니라는 걸세."
"이봐 제임스. 방금 그 말 들었어?"
"어, 어어…. 뭐라고?"
"아무래도 시간이 약이겠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제임스를 위해 나는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하윤이도 초대를 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하윤이를 바라보자 체육 시간인지 체육복을 입고는 피구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또 시선을 느낀 건지 다른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로 내게 손을 흔들고는 날아오는 공을 가볍게 피한다.
'저건 밸런스가 영 아닌데.'
하윤이 혼자서 팀을 짜도 이길 텐데 저렇게 팀전을 하다니.
뭐, 그 민아던가.
그런 하윤이의 비밀을 아는 친구들을 제외하면 그 엄청난 신체 능력을 아는 사람들은 없겠지.
마치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가는 피구공이 누군가를 맞춘다.
가죽 터지는 소리가 나는 게 멀쩡한가 싶었지만 힘 조절은 했는지 내장 파열이나 골절같은 부상은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고통스러운 건 그대로인거 같지만.
나는 하윤이가 마지막 사람을 마무리하는 걸 보고 말을 걸었다.
'하윤아, 지금 몇 교시인 게냐.'
'지금? 3교시지. 다음 교시는 쌤이 깐깐한 사람이라 체육복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귀찮아 죽겠어.'
'그럼 한 다섯 시간 정도 기다려야겠구나.'
'음… 그러네. 7교시니까 다섯 시간 남았네. 아니, 여섯 시간인가?'
'아무튼 하교 시간이 되면 말하거라. 데리러 가마.'
'응.'
하윤이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제임스를 바라봤지만 녀석은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대로 연무장에 남아 기다리기보단 어디 가서 앉거나 눕는 게 좋다 생각해 이브에게 말했다.
"이브, 저들은 이대로 내버려 두고 어디 가서 좀 앉아 있자꾸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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