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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32화 (32/154)

〈 32화 〉 저택

* * *

나와 이브는 앉아서 쉴 곳을 찾다가 응접실을 발견했다.

가운데에 탁자를 두고 소파가 여러 개 놓여 있고 벽에는 어딘가의 풍경화가 걸려 있었다.

나는 가운데에 놓인 주인을 위한 1인용 소파에 앉기보단 옆에 두세 명 정도 앉을 수 있을 법한 손님용 소파에 앉았다.

내 옆에 앉아서 편하게 등을 기대고 편히 쉬던 이브는 점점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골골대던 아이가 완치되어 일어났다 해도 이 정도로 돌아다녔다면 피곤하겠지.

방금 간식으로 배도 약간 채우기도 했고.

'흠, 침대에서 일어나고 나서… 그 담당의 이름이 뭐였더라. 아, 패트릭이었지. 그 녀석이 허둥대는걸 구경하다가 두 번째 화신체를 공격하는 사제들도 다 처리하고. 그리고 저택에 와서 간식도 먹고 돌아다녔지. 많이 피곤했겠네.'

나는 졸음과 싸우고 있는 이브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이브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다시 꾸벅꾸벅 졸았다.

이브는 이대로 잠들도록 내버려 두도록 하고 잠시 응접실을 살펴보았다.

내가 앉아 있는 소파와 그 앞의 탁자, 그리고 벽에 걸린 풍경화에 다른 쪽을 쳐다보자 아까는 못 봤던 장식장도 놓여 있었다.

흑단나무로 만들어진 장식장은 깊은 광택을 뽐내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기품을 완전히 살리지 못한 모습이다.

1인용 의자 뒤의 벽에 걸려 있는 풍경화를 바라보니 언덕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로 넓게 펼쳐진 평야가 보인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바람에 휘날리듯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나는 너무 생동감 있게 그려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다시 한번 계속 바라봐도 그림은 멈춰있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풀, 꽃들이 흩날리는 게 보였다.

세상에 저런 그림이 있을 수도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른 곳을 둘러보려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종종 그림 속 세계나 거울 속 세계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던가.

거울 속 세계라면 현실 세계를 그냥 반대로 돌려 놓은 모양일 테니 넘기도록 하고.

존에게 초대하겠다고 말해 놓고서 이제 와서야 좋은 생각을 떠올렸지만 뭐 어떤가.

그에게도 대비할 시간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편하겠지.

아니면 그동안 벌벌 떨고 있었다던가?

내가 봤던 탐정은 그럴 성정이 아니라 생각한다.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면… 이번에야말로 죽음이 그를 찾아가겠지.

존 왓슨을 생각하니 그와 함께 저택을 탈출했던 브라운이 떠오른다.

걔는 점점 공기처럼 존재감이 사라지는 거 같은데.

내 기억에서 영영 잊혀지기 전에 존과 함께 행동하도록 약간 개입을 해야겠다.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어떤 이벤트에 당첨되어 런던 여행을 가게 되는 게 가장 그럴싸하겠지.

그림이 완성되면 존의 사무실로 보내도록 하고.

그림의 내용은… 나중에 생각하자.

이렇게 존을위한 시나리오를 간단하게 구상한 나는 완전히 조용해진 이브를 바라봤다.

고개를 위아래로 꾸벅거리면서 마치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나중에 일어나면 목이 아플 거 같아 보였다.

일단 여기 소파에 눕히는 것보다는 푹신한 침대에 눕혀주는 게 좋을 거 같아 나는 이브가 깨지 않도록 흔히 말하는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려서 내 침실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가고 맨 위층으로 올라와 문을 열자 사람 몇 명은 충분히 드러누울 정도로 큰 침대가 있었다.

침대 옆에는 작은 서랍이 있었고 그 위에는 시계와 조명이 놓여 있었다.

벽 쪽에는 옷장과 전신 거울이 있고 밖을 보여주는 창문에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 보였다.

사실은 내 본체지만 말이지.

애초에 난 잘 필요도 없고 옷도 마력으로 짜올려 만들어내면 충분해서 사실 장식이나 다름없는 방이다.

차라리 이브의 방으로 바꿔 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옆방이 내 전용 서재기도 하고 이브 혼자서 쓰기엔 넓어 보이기도 해서 그냥 내 화신체 전용 방으로 쓰는 게 좋을 듯싶다.

이브의 방은 아래층에 하나 정해서 꾸며주는 게 좋겠지.

에반과 제임스도 조금 있다가 손님 방에서 따로 방을 만들어 주도록 하고.

아직 이브의 방도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잠시 내 방에서 재우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한 나는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 주고는 옆의 의자에 앉았다.

옆에서 이브가 새근거리며 편히 잠든 것을 바라보고는 눈을 감고 아직 미국의 어떤 도시를 돌아다닐 두 번째 화신체, 역병 의사로 의식을 집중했다.

그저 병원을 찾는다는 간단한 생각만으로 돌아다닌 결과는 아직도 거리를 걸어 다니는 내 모습이었다.

방금 그 병원을 생각 해보면 현대에는 의학이 너무 발달해 내가 활동할 만한 장소가 없는 거 같다.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을 만나 치유해 준다고 해도 내 말을 듣기는 할까.

과거부터 연을 쌓아서 알고 있다면 모를까, 이런 시대에 대뜸 나타나서 그런 말을 하면 죽기 전에 환각을 본다고 믿거나 그저 헛소리라고 생각하겠지.

실험은 중세시대로 가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역병 의사는 회수해야겠다.

몸에서 점점 날벌레들이 빠져나가더니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던 것은 어느새 점점 작아져서 결국 완전히 흩어졌다.

그럼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계속 이브가 자는 것만 구경할 수도 없는 거고.

이렇게 된 거 에반과 제임스의 방이나 미리 만들어야겠다.

설마 아직까지도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브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메이드 한 명을 불러 이브가 깬다면 나를 부르도록 문 앞에 대기시켜 놓고는 혹시나 싶어 연무장으로 다시 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번거로워졌다고 해야 할지 연무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방금까지 주문 실험에 쓰였던 반쯤 불탄 허수아비와 산산조각이 난 허수아비 조각들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집사 두 명을 불러 한 명에겐 이걸 치우도록 명령하고 다른 한 명에겐 그 둘이 묵고 있는 손님방으로 가도록 했다.

집사가 2층의 어느 방 앞에 서서 노크를 하니 문을 열어 주는 에반이 보였다.

"앗, 라니아… 님. 제 방에는 어쩐 일로?"

"여긴 자네 방이 아닐세."

"어…, 혹시 제가 내쫓길 예정인가요?"

"여긴 손님방이여서 말이야. 자네 방은 따로 만들 예정일세. 짐이라고 할 건 있나? 없으면 빈손으로 따라오게."

나는 에반을 이끌고 내 방의 아래층으로 왔다.

그리고 적당한 방 하나를 골라 문을 열었다.

"흠, 이 방이면 충분하겠군. 자네가 좋아할 만한 것을 생각하면… 책장을 하나 설치하는 게 좋겠군. 공용 서재에서 원하는 마도서라도 꽂아두게."

"아, 예. 감사합니다."

나는 마력으로 가구를 만드는 것보다는 어딘가의 가구 상점에서 사는 게 편하기도 하고 나을 거라 생각했다.

'뭐, 에반의 방이니 내 입맛대로 건들 필요는 없는 거겠지.'

"에반, 조금 있다가 제임스와 함께 가구라도 둘러보러 가거라. 아니다. 나도 함께 가는 게 좋을까."

"아뇨, 뭐. 저는 괜찮습니다."

"자네의 방이니 난 별 상관없겠지. 돈은… 나중에 현금으로 주도록 하마."

나는 마찬가지로 제임스도 불러내서 에반의 옆 방을 그의 방으로 정해 줬다.

"둘이 친하게 지내는 거 같으니 옆 방으로 정했네. 문제 있나?"

"배려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구를 구매하면 어떻게 옮기죠?"

"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지. 자네들은 정당하게 구매만 하도록 하게."

가구를 파는 상점이 많은 거리의 인기척이 없는 어느 골목.

그곳에다가 관문을 만들어 놓고는 녀석들에게 충분한 현금을 쥐여 주고는 그대로 밀어 넣었다.

물론 현금은 은행에서 주문으로 빌려온 거지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쟤들이 연락할 수단이 없는데.

뭐, 본체로 지켜보다가 끝난 거 같다 싶으면 찾아가야지.

그렇게 나는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

몇 시간 정도가 지난 걸까.

어느새 쇼핑을 끝내고 가구들을 운반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잠시 옆에 있는 시계를 들어 올려 허공으로 던졌다.

그러자 시계는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기는 커녕 공중에 하얀 구멍같은 게 생기며 그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그 공간이 닫히는 걸 보고는 다시 한번 내 옆에 열어서 손을 넣어 봤다.

그리고 무언가 단단한 게 만져져서 그걸 빼내 보니 내가 방금 던진 시계가 손에 들려 있었다.

"흠, 다행히도 성공했군."

올드 원이 우주를 여행할 때 사용했다던 이차원 공간.

그것들을 응용해서 어디론가 연결되지 않는 제한된 공간을 만들어냈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보이는 것보다 넓은 가방이라고 해야 할까.

한마디로 인벤토리나 마찬가지다.

이것만 있다면 가구들도 쉽게 옮길 수 있겠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관문으로 향했다.

관문을 통과하자 사람이 없는 골목길로 나온다.

에반과 제임스가 있을 곳으로 향해 몇 분 동안 걸으니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쇼핑은 다 했나 보군. 가구는 어디 있지."

"여기 가게에서 대부분 구입했습니다. 다른 가게도 여기 근처니 금방 끝날 거예요."

"근데 그 무거운 걸 언제 옮기는 겁니까. 그 관문이라는 거로 가져가기도 벅찰 거 같은데."

"일단 가게로 들어가도록 하지."

나를 반기는 가게 주인을 잠시 잠재우고는 녀석들이 샀다는 가구를 찾아봤다.

"이건…?"

"잠시 할 게 있어서 재운 거다. 오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거라."

"저희가 산 가구들은 여기 있습니다."

"책장에 옷장에 다른 가구들도 있군. 옷장은 기본적으로 있을 텐데."

"이게 좀 더 마음에 들어서요."

"일단 빨리 가져가도록 하지."

나는 새하얀 공간을 열어서 가구들을 밀어 넣었다.

에반과 제임스는 무겁다고 했지만 일반인을 초월한 근력은 이 정도의 무게도 가볍게 옮길 수 있게 했다.

"여기는 다 넣은 거 같군. 다음 가게로 가지."

이런 식으로 가구를 모조리 새하얀 공간에 넣고는 관문을 통해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후로는 방에다가 가구를 넣어 주고는 알아서 하도록 시켰다.

그러고는 내 방으로 향하니 방금 대기시켰던 메이드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이브가 일어난 모양이다.

하윤이가 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은 거 같으니 이브의 방도 빠르게 마무리 짓도록 할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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