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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34화 (34/154)

〈 34화 〉 저택

* * *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던 건지 이대로면 몇 시간이 지나도 계속 이야기꽃을 피울 거 같다.

—짝짝!

앞으로도 이야기할 시간은 많으니 우선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박수를 쳐서 이목을 끌었다.

"이야기할 주제가 많은 건 알겠다만, 일단은 하윤이 너를 이쪽으로 초대한 이유를 설명해야겠구나."

"엥? 저번에 여름 휴가 갔을 때 언제 한 번 초대한다고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 약속도 잊지 않았지만 다른 목적도 하나 있었지."

"이브랑 같이 저택 구경이나 하게 빨리 말해줘요."

"네 영혼에 새긴 문장을 이브에게도 새겨줄까 해서 말이다. 너는 내 첫 번째 신도기도 하고, 가족같은 존재니 물어봐야겠다 생각했단다."

"그런 거는 물어보지 말고 신 님 마음대로 하세요. 그런데 이 문장, 귀신이 다가오지 않는 거만 빼면 별로 쓸모없는 거 같은데."

"네가 특별해서 그렇지 원래 다른 기능도 있단다. 평소 멀리 있을 때 대화하는데 쓰이기도 하고, 정신을 보호해 주기도 하지."

"오…. 그런데 정신 보호는 왜 있어요? 귀신 볼 때 무서워할까 봐?"

"너는… 에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재능이 넘치는 아이란.

나를 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자각이 없겠지.

"하윤아, 평범한 사람들은 내 본신을 쳐다보기만 해도 미쳐 버린단다. 나의 첫 대사제, 너의 선조도 하마터면 미쳐 버릴 뻔했지."

"그래요? 그런데 저는 왜?"

"아무래도 네 재능이겠지. 너가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야."

"흐음. 그럼 할 말은 이게 끝이죠?"

"그래. 이제 마음껏 돌아다니거라."

"이브! 빨리 가자!"

"네!"

둘 다 저택 구조도 모를텐데 무작정 아무곳으로 뛰어가다니.

집사나 메이드를 붙여주면 좋긴 하겠지만 둘이 더 친해질 기회를 차버리는 거 같고.

돌아다니다가 만나는 메이드에게 알아서 물어보겠지.

부모가 걱정할 테니 저녁만 먹고 돌아간다고 쳐도 내게 몇 시간의 여유가 생긴 거나 다름없다.

저기 멀뚱히 서 있는 남정네들도 어떻게 친해지긴 해야 할 텐데.

한 번만 오고 평생 안 올 것도 아니니 상관없겠지.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두세 시간 정도면 긴 시간 같으면서도 짧은 시간이다.

다음 시나리오를 위한 그림이라도 약간 그려 둘까.

그렇다면 그림의 배경부터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그림 속 세계라….

이브, 그림, 미술관… 윽.

더 이상은 언급하면 안 될 거 같다.

그나저나 미술관이라.

내가 무명의 작가로 어떻게 유명해진다면 전시회를 열어서 불특정 다수를 끌여 들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물론 지금은 아무리 멋진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전시회같은 건 열어 주지도 않겠지.

인간이란 명성이란 것도 보니까.

배경을 생각하다가 다른 곳으로 새버렸군.

일단 내가 봤던 그림처럼 광활한 들판은 안 된다.

사람의 공포를 자극하려면 폐쇄된 공간이 좋을 테니까.

미술관처럼 테마를 잡아두는 것도 좋을까?

일단 배경은 건물 안으로 정해졌는데….

자연사 박물관?

공룡의 뼈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도 재밌긴 하겠지만 그건 공포가 아니라 판타지다.

물론 그런 크기의 육중한 무게를 가진 것이 죽이려들며 달려온다면 그 대상에겐 공포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그런 판타지나 다름없지.

살아 움직이는 시체, 좀비라면 무섭긴 하겠지만 그게 나올 만한 실내가 있긴 한가.

던전?

그건 또 장르가 바뀌는데.

던전이란 게 지하 감옥을 뜻하긴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게임에 나오는 그것을 생각하겠지.

지하 무덤에 들어찬 관들과 그걸 열고 일어나는 좀비들.

그리고 그런 좀비를 때려잡는 존과 브라운.

…총알이 잘 안 통하는 애들로 준비해 줘야겠군.

구울이나 딥 원처럼 현대 무기로 어떻게 상대할 수 있는 것들은 패스.

원래 존과 브라운을 맞이할 친구로 생각해 둔건 돌이나 도울이라 부르는 괴물이었는데.

거대한 벌레라고 할까, 지렁이라고 할까.

수백 미터정도 되는 몸길이는 마치 살아 있는 열차와도 같다.

한 번이라도 공격받는다면 으깨질 테고 운이 좋다면 장례를 치르기 충분한 시신을 찾을 수 있겠지.

사람이 열차에 치이면 비슷한 결과일 테니 내 비유가 정확하다고 볼 수 있겠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입으로 끈적한 점액질을 발사하니 안심할 수 없을 거고.

지금 생각해 보면 인간이 상대할 수 없기도 하고 실내라는 배경에도 맞지 않으니 넘기는 게 좋겠다.

흠… 기어다니는 것?

수천 마리의 벌레와 구더기로 이루어져 있어서 총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딥 원처럼 머리나 심장을 맞으면 죽는 게 아니니까.

상대하려면 화염방사기나 주문을 사용해야겠지.

그렇다면 에반도 함께 보낼까.

악연으로 이어진 사이지만 이전엔 적이었던 사람과 등을 맞대어 싸운다라.

그다지 끌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대로 허무하게 죽는 걸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없고.

그 외에는 별로 떠오르는 것도 없으니 이걸로 정할까.

기어다니는 것은 죽은 마법사의 시체를 파먹은 벌레들이 모여든 군체.

파먹은 것이 마법사여서 그런지 정신이 남아 있고 주문을 쓸 수도 있다.

근접전도 가능은 하겠지만 육체가 약하기도 하고 하수인도 부릴 수 있을 테니 자기는 뒤에서 주문이나 쓰겠지.

그렇다면 원래는 마법사였던 것이니 배경도 그것에 맞게 할까.

혼자 살면서 연구를 하던 마법사.

잡일은 모두 그의 하수인이 맡아서 하고 연구에만 집중하며 살아간다.

하수인은… 골렘이나 살아 움직이는 갑옷으로 할까.

갑옷은 뭔가 위압적이니 보안용인 것으로 하고.

목각 인형 같은 것들이 요리나 여러 가지를 하는 하수인으로 할까.

아무튼, 그렇게 연구를 하며 살아가다 결국 죽음이 찾아온다.

의자에 앉아 연구를 하다가 심장 부근을 움켜쥐고 쓰러진 마법사.

그런 시체를 찾아와 살을 파먹으며 알을 까는 벌레들.

안구같이 부드러운 조직부터 가죽, 근육, 내장까지 전부.

하지만 그 시체가 마법사여서 그런지 혹은 어떤 존재와 거래를 해서 그런지.

할 일을 다한 벌레는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뭉쳐서 인간같은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죽었던 마법사의 정신이 되살아나고, 그의 의지로 벌레와 구더기들이 육체를 이룬다.

인간에서 다른 존재, 기어다니는 것으로 되살아난 마법사는 침입하는 인간들을 사로잡아 실험을 자행하며 지금까지도 살아가고 있다.

그래, 나쁘지 않은 스토리군.

에반에겐 그림이 완성되면 말하기로 하고, 나는 그림이나 그리러 가야겠다.

내 방보단 어디 하나 넓은 방에서 캔버스 하나를 가져와서 그리는 게 좋겠지.

나는 어느 빈방에 들어와 이젤에다가 캔버스를 고정한다.

그러곤 붓과 팔레트를 만들어서 들고는 원하는 색을 만들어낸다.

벽돌로 지어진 지하를 그릴까, 생활 공간으로 쓰이는 나무로 지어진 지상을 그릴까.

칙칙한 지하에 그림이 걸려 있는 건 부자연스러우니 지상으로 하자.

복도에 걸려서 커튼이 쳐져 있는 창문이 보이는 것으로 할까.

옆에는 갑옷 장식도 설치되어 있게.

하지만 그런 그림은 뭔가 보잘것없어 보일 텐데.

내 저택에 설치할 것도 아닌데 상관없겠지.

나는 캔버스에 붉은 커튼과 은색 갑옷을 그리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한 시간보다 약간 더 지난 게 아직 저녁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그리는 건 여기까지 하고 메이드에게 저녁을 준비하라고 일러둬야겠다.

캔버스를 검은 천으로 덮어두고는 문을 열고 나와 일을 하고 있는 메이드에게 저녁을 준비하도록 주방에 전하라고 말했다.

저녁이 준비되는 동안 나는 저택을 돌아다닐 이브와 하윤이나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발을 옮겼다.

하윤이에게 새겨진 문장을 느끼며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다 보니 이브의 방에 다다랐다.

모두 어디가 어느 방인지 잘 모를테니 그나마 이브가 자기가 아는 방들을 알려주고는 자기 방에서 이야기나 하자고 했겠지.

이브가 아는 방도 공용 서재에 연무장에 내 방 정도일까.

서재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기껏 만났는데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을 거다.

—똑똑.

나는 일단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서로 침대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노크 소리를 들었는지 내가 들어오고 있는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내가 이야기하는 걸 방해한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신 님도 같이 이야기나 할래? 그다지 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흠. 나는 일단 곧 저녁 시간이라고 알리려 왔는데 말이다."

"곧? 한 5분 10분 정도 후야?"

"아니. 한 시간 정도 걸리겠지."

"그게 왜 곧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튼, 그런 걸로 알고."

나는 허공에서 나무 의자를 하나 만들어내고 그대로 앉았다.

에반과 제임스에게도 알려야 할 테니 집사나 부를까.

금방 종을 만들어내고는 약간 흔드니 곧 집사가 찾아왔다.

"집사 할아버지는 왜?"

"시킬게 있어서 말이지. 주방은 지금 저녁 준비에 들어갔나?"

"예. 방금 확인하고 조리 준비 중입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나."

"메인 요리는 한 시간 정도 걸리겠습니다. 지금 식당으로 가셔서 에피타이저를 드시며 기다리시겠습니까?"

"30분 정도 후에 가도록 하지. 에반과 제임스에게도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집사는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문을 나갔다.

30분 동안 이야기나 할까.

아니면 차라리 문장이라도 새겨줄까.

그건 그다지 시간도 걸리지 않으니 말이다.

"이브. 남은 시간 동안 문장이나 새기도록 할까?"

"언니에게 있는 그거 말이죠?"

"아프진 않을게다. 하윤이 너는 새길 때가 기억나느냐?"

"기억나지. 얼마나 신기했었는데. 아프진 않았던 거 같았어."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해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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