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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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새기기 위해 이브에게 점점 다가가는 손.
하지만 무언가 이상이라도 생겼는지 갑자기 멈추고는 다시 되돌아와서 턱을 매만진다.
"흠. 그러고 보니 그걸 깜빡했군."
"뭐 문제라도 있어요? 내가 어렸을 때 나한테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권한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문장은 본신만이 새길 수 있는 거라서."
"그럼 어떻게 해요? 저도 빨리 그 문장이라는 게 새겨지고 싶은데요."
"뭐, 내 본체를 직접 만나면 가능하단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손을 뻗어 이브의 이마를 툭 치자 이브의 몸은 허물어지듯 침대로 쓰러진다.
그리고 반투명하게 보이는 또 다른 이브가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있었다.
"어라? 무언가 했어요?"
"오, 유령…이라고 하기엔 육신과 무언가 연결이 있네."
"몸에서 혼을 분리한 거란다. 간단히 말하면 유체이탈이지."
"우와! 몸이 투명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번에는 머리에 손을 얹고는 정신 보호 주문을 걸어줬다.
고어한 것을 잘 본다고 말하기도 했고 실제로 고름과 검은 부종이 가득한 사제들의 시체를 보고도 약간 눈을 찌푸리기만 한 정신력이지만.
내 본체와 마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
그럼 이제 본체 쪽으로 보내야겠지.
"이번엔 정신 보호 주문을 걸었단다. 미쳐 버리거나 하진 않겠지만 본체를 봐도 놀라지는 말고."
"본체가 어떻게 생겼길래요? 언니는 문장을 새길 때 보셨다고 하셨죠!"
"말로 미리 듣는 것보단 직접 보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본래라면 보이지 않는 힘으로 막혀 있을 창문을 간단하게 열고는 이브에게 손짓했다.
이브는 자기가 혹여나 벽이나 바닥을 통과하지 않을까 조심하며 창문 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창문은 왜 열었어요? 관문으로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일단 눈이나 감아보거라."
내가 그렇게 말하니 눈을 꼭 감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일단 본신을 움직여 창문 앞으로 손을 뻗고는 화신을 움직여 이브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가볍게 들어 올려서 손바닥 위에 올려 준다.
"움직이지 말고 눈을 뜨라고 하면 뜨거라."
"네. 혹시 떨어진다던가 그런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니 안심하고."
혹여나 이브가 떨어지는 건 아닐까 손을 천천히 움직이며 내 눈앞으로 데려왔다.
눈을 꼭 감은 채로 내가 눈을 뜨라고 말하길 기다리는 모습이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는 모양새였다.
혹여나 건들면 뭉개지지 않을까 싶어서 실제로 쓰다듬지는 못 하겠지만.
그러고 보면 지금은 유령같은 상태니 공중부양은 할 수 있을까.
조금 있다가 눈을 뜨면 한번 해 보라고 말해야겠군.
"이브, 눈을 뜨거라."
내 말에 서서히 눈꺼풀이 올라가며 주변을 둘러본다.
내 손 위에 올라와 있으면서도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다니.
주변을 둘러보면 별 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그게 어떤 존재인지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당연한가.
"위를 보거라."
"위요? 오, 그럼 제가 올라와 있는 게…?"
"내 손바닥 위란다."
"이래서 놀라지 말라고 하셨군요!"
"그렇지. 아무튼 빨리 문장이나 새기자꾸나."
이대로 손바닥 위에 올려 두고 새겨 주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유체이탈도 했는데 색다른 경험도 해 봐야지.
방금 시켜볼까 생각해 두었던 공중부양을 한 번 시도해 보라고 말한다.
"이브. 넌 지금 육체의 제약에서 벗어났으니 발이 땅에 붙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단다."
"유령처럼 떠다닐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한번 해 보겠니?"
이브는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무릎을 구부렸다가 다시 펴면서 위로 뛰었다.
마치 우주에 나온 우주비행사가 무중력 공간을 가로지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왓! 제가 날아다니고 있어요!"
"나도 보인다. 기분은 어떠느냐."
"마치 새가 날아다닌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어, 어라?"
영혼 상태에서 처음 날아다녀서 그런지 계속 위로 올라가고 있다.
문장을 새겨 주고 나서 날아다니는 방법을 가르칠 수도 있겠지만 곧 저녁 시간이니 그럴 시간은 없겠지.
나는 주문으로 이브를 살포시 붙잡아 주고는 다시 아래로 데려왔다.
"네가 나중에 주문을 배운다면 굳이 유체이탈을 하지 않아도 날아다닐 수 있을 거란다."
"오오. 빨리 배우고 싶어요!"
"일단 문장부터 새기는 게 먼저란다."
약동하는 마력을 느끼며 그것들을 끌어올려 이브의 영혼에 천천히 문장을 새긴다.
몇 분 정도 시간이 흘러 문장을 전부 새기니 하윤이처럼 완전히 검은 눈동자로 변해 있었다.
은발에 흑안이라 잘 어울리지 않을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럼 이제 저택으로 다시 돌려보내야겠지.
"슬슬 식당으로 향할 시간이니 빨리 방으로 돌아가야겠구나."
"문장은 다 새겼어요? 뭔가 문신 같은 건 보이지 않는데요."
"마력으로 했으니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보지 못하고 그 기운을 느끼는 정도겠지."
"뭔가 따듯한 거 같기도 하고, 보호받는 느낌이네요."
"그래. 아무튼 돌아가거라."
나는 공중에 떠 있는 이브를 손바닥에 내려오게 하고는 창문 쪽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윤이가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려 방으로 들였다.
창문을 닫고 제대로 닫혔나 확인하고는 이브를 살펴봤다.
방 안을 날아다니며 이번에는 제대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게 배우는 게 빠른 학생인 거 같지만 이젠 다시 몸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브. 이제 몸으로 돌아가야지."
"아, 날아다니느라 깜빡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지? 그냥 몸이랑 겹치면 끝인가?"
"일단 한번 해볼게요."
이브는 침대에 누워서 죽은 듯이 자는 거처럼 보이는 그녀의 육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누워 있는 자세와 똑같게 겹쳐보려 해 보니 자연스럽게 들어가졌다.
죽은 게 아니니까 육체와 혼의 연결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거 같은데.
아무튼 다시 눈을 뜬 이브는 벌떡 일어나서 몸을 움직여 본다.
팔도 움직여 보고 다리도 움직여 보고, 살짝 뛰어보는 게 원래대로 돌아왔는지 확인하는 듯하다.
하윤이도 다가가서 어깨와 볼을 만지다가 이브와 눈이 마주쳤다.
"오! 눈동자가 나랑 똑같이 변했네."
"정말로요?"
"잠깐만, 거울 좀 가져올게."
책가방에 들어 있는 손거울을 꺼내려는지 방구석에 있는 가방을 향해 다가간다.
굳이 귀찮게 가방을 뒤져가며 꺼내게 하지 않고 나는 손거울을 만들어 줬다.
"자, 여기 손거울이다."
"신 님 땡큐. 자, 여기 보면 변했지?"
"우와!"
"나도 원래 눈동자가 갈색이었는데 너처럼 검은색으로 변했어."
"그래요?"
소녀들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서 잠시 시간을 확인한다.
문장을 새기는데 집중하느라 시간 가는지 몰랐지만 슬슬 식당으로 가도 괜찮을 거 같다.
"이브. 그 손거울은 선물로 가지거라."
"감사합니다."
"이제 식당으로 가자꾸나."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
이브와 하윤이를 데리고는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중앙에는 직사각형의 길고 커다란 식탁과 여덟 개의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고 메이드가 오가면서 열어둔 게 보였다.
무언가를 요리하는지 이쪽으로 냄새가 흘러오고 있었고 하윤이는 코를 킁킁대며 무슨 냄새인지 확인하고 있었다.
"흠…. 고기인 거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네. 맛있을 거 같으니까 상관없나?"
"고소하면서 달짝지근한 냄새인데요?"
"너무 기대되는걸."
내가 식탁의 끝에 혼자 있는 의자에 앉으니 하윤이와 이브는 내 왼쪽에 같이 붙어서 앉았다.
조금 기다리니 집사와 함께 에반과 제임스도 식당에 모습을 보였다.
"혹시 저희가 조금 늦었나요?"
"우리가 빨리 온 거니 신경 쓰지 말거라."
집사는 아무래도 에피타이저를 가지러 주방으로 향하는 거 같았고, 에반과 제임스는 내 오른쪽인 창가 쪽에 함께 앉았다.
하윤이와 이브는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친해졌는데 저택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냈을 둘이서 이렇게나 침묵에 휩싸여 있다니.
친해지긴 했지만 말은 그다지 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앞에 있어서 그다지 입이 열리지 않는 건가.
그런 상황 속에서 메이드 한 명이 서빙카트를 끌고 무언가를 가져 왔다.
접시에 녹색과 간간이 하얀색이 보이는 게 샐러드일까.
"리코타 치즈가 들어간 샐러드입니다. 혹시 따듯한 걸 원하신다면 양송이 수프가 준비되어 있으니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럼 나는 따듯한 수프로."
"저도요!"
"나는 괜찮다. 너희들은?"
"저희는 샐러드로 괜찮습니다."
"그럼 두 분께는 수프로 드리겠습니다."
메이드는 샐러드를 각각 앞에다 두고는 아래칸에서 수프를 꺼내서는 하윤이와 이브의 앞에 내려 둔다.
그리고 포크와 숟가락같은 식기를 꺼내서 그릇 옆에다가 두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다 드시면 종으로 불러 주시길 바랍니다."
이 말을 하고는 메이드는 다시 서빙카트를 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럼 식사나 하도록 하지."
"잘 먹겠습니다!"
내가 말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식전 인사를 하고 숟가락을 든 이브였다.
에반과 제임스도 말없이 포크를 들고 채소를 찍으며 입으로 가져갔다.
그럼 나도 한 번 먹어볼까.
—아삭!
싱싱한 채소들이 아삭한 식감을 주고 우유를 그대로 굳힌 거 같은 하얀 치즈가 부족한 맛을 채워준다.
메인 요리를 위해 위장을 준비시키는 요리로 좋은 선택인 거 같다.
배를 채우기 위한 요리는 아니어서 금방 그릇이 바닥을 보인다.
이브와 하윤이를 보니 수프가 맛있었는지 어느새 다 먹고서는 아쉬워하는 눈치이다.
그렇다면 빨리 메인 요리로 넘어가야겠지.
허공에서 마력으로 종을 만들고는 메이드를 불러낸다.
서빙카트를 끌고는 금세 식당으로 온 그녀.
"그릇과 식기를 치워 드리겠습니다. 메인 요리는 소와 돼지, 생선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나는 소로 하지."
"그럼 나도 소."
"저는 돼지로 할래요."
"저는 생선으로 할게요. 너는?"
"나도 오늘은 생선이 끌리네."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소나 돼지는 몰라도 생선 요리 중에 오래 걸리는 요리가 있던가.
찜 요리라면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양식으로 나올 테니 그런 건 없을 터.
갑자기 생선 대가리 파이가 떠오르지만 내가 주문하지 않는 이상 내놓을 리는 없고.
그런 생각을 하며 메인 요리를 기다리니 주방 쪽에서 바퀴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주방에 갔다 온 메이드가 다시 온 것이었다.
"주인님과 하윤 님께는 비프웰링턴, 이브 님께는 껍질을 바삭하게 조리한 오븐 통삼겹살 구이, 에반 님과 제임스 님에게는 연어 스테이크입니다."
메이드는 요리가 담긴 접시와 함께 포크와 나이프도 두고는 식사를 잘 하라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비프웰링턴이라.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을 텐데 전날이나 아침에 미리 만들어 둔 걸까.
내가 주방장도 아닌데 이런 걸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겠지.
나는 그저 맛만 즐기면 끝이다.
옆에 앉은 하윤이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에 좋아하는 거 같고, 이브도 밍밍한 거만 먹다가 자극적인 걸 먹으니까 기뻐하는 눈치다.
그렇게 먹는데에 집중하느라 조용해진 식당은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계속 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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