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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41화 (41/154)

〈 41화 〉 그림 속 세상

* * *

그림을 가리고 있던 천을 치우고 팔레트와 붓을 들고는 다시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캔버스에는 갈색이라기보단 검은색에 가까운 목재로 만들어진 문과 손을 뻗으면 곧바로 열릴 거 같은 금색 문고리가 보였다.

주문을 새기지 않은 채로 액자에 넣어서 벽에다가 걸어두고는 화실을 나왔다.

그러고 보니 브라운이 응모하는 것을 기다리려고 에반과 잠시 대화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화실까지 와서 그림 하나를 완성해 버렸다.

어떻게 보면 의식의 흐름이란 게 참 곤란하다.

하지만 내가 방금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으니 브라운이 수업이 끝나고 몇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구를 살펴보니 노트북 앞에 앉아서 잡지를 읽고 있는 그가 보였다.

지금 응모를 하려는 건지, 다 하고 나서 잡지나 마저 읽는 건지 모르겠지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제 추첨할 때 조작만 해서 브라운이 당첨되게 하면 끝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거지.

추첨일까지 한 번, 브라운이 영국으로 도착할 때까지 또 한 번 시간을 스킵해야겠다.

눈을 몇 번 깜빡인 사이 어느새 추첨일로 시간이 넘어간 걸 확인하고 나는 잡지사를 확인했다.

원래 이벤트를 하면 고전적인 방식으로 상자에 종이를 넣고 뽑는 게 전통인 듯하지만 지원자 수가 작은 상자로는 택도 없어서 결국 현대적인 방식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로 했나 보다.

스크롤바의 크기가 이렇게 작아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표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개인 정보가 보였다.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프로그램을 돌려도 예상 시간이 몇 분이나 되는 게 그 사이에 여기 있는 직원들에게 정신 조작이나 걸어둬야겠다.

주문이 컴퓨터에도 통하는지 여기서 시험해 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예상 시간이 1초 남았으면서 계속 끝나지 않는 프로그램에 점점 답답해하는 직원들을 구경하다가 화면에 다섯 명의 명단이 뜬 것을 확인했다.

그 명단을 어딘가에 메일로 보내기 전에 그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첫 번째 인적 사항을 브라운의 것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엄청난 확률을 뚫고 당첨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내가 본 화면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으니까.

타자를 치고 있는 직원을 제지하지 않고 그대로 지켜본다.

바로 정보가 전송되는 방식이 아니어서 다행이네.

만일 그랬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주물러야 할 테니 귀찮았을 거다.

이제 이게 메일로 보내지기만 한다면 며칠 정도 후에 문자든 뭐든 당첨 소식을 전할 것이다.

그럼 나는 이제 브라운이 영국으로 가는 날짜까지 시간을 가속하면 된다.

당첨됐는데도 만약 안 간다?

그럼 멱살 잡고 그림 속으로 넣어 줘야지.

아무튼 또 눈 깜빡하는 사이에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브라운의 위치를 추적했다.

엄청나게 넓은 터미널과 여러 개 놓인 활주로가 있는 공항이 보인다.

브라운은 어깨에 메는 여행가방을 옆의 벤치에다가 올려 두고는 시계를 보면서 탑승 시간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그럼 나는 내 방에 있는 그림 소포나 챙겨서 준비나 해야겠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동영상 빨리 감기를 하는 듯이 1분씩 넘겨 가며 브라운을 지켜봤다.

문을 열고 포장해 둔 그림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서 계속 그러고 있으니 벤치에 있던 그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계속 걸어가다가 어떤 줄에 서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에 타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죽이는 행위는 보기 귀찮으니 네 시간 정도 시간을 넘겼다.

그러니 대서양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의 모습이 눈에 사로잡혔다.

이런 풍경은 지구본을 보면 매일 볼 수 있는 광경이니 그다지 멋지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기껏 해야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있네—정도?

호기심 충족은 손가락을 직접 넣어서 맛까지 봤을 때 해결됐으니까.

아무튼 한 시간씩 계속 넘기다 보니 어느새 큼지막한 섬나라, 영국으로 가까워지는 비행기가 보였다.

고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구름 아래로 내려가더니 런던 어딘가의 공항에 있는 활주로로 착륙하고 있었다.

어느새 비행기에서 내린 브라운이 버스를 타지 않고 공항에서 기다리는 게 아무래도 존과 연락을 한 모양이다.

존에게 있어 브라운은 친구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생명의 은인이니까나중에 보답을 해 주고 싶었을 거다.

게다가 어디 한 곳에 묶일 만한 직업도 아니어서 시간 같은 것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데리러 올 수도 있었겠지.

저기 멀리서 승용차를 몰고 오는 존이 보인다.

원래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다지 쓸 일은 없었는지 곳곳에 아직 치워내지 못한 먼지가 보인다.

아무래도 일 때문에 멀리 나갈 경우가 아니라면 별로 타지 않는 모양이다.

그가 사무실로 출근할 때도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사용하는 걸 봤으니까 없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옆 좌석에 앉아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둘 사이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른다.

가는 방향을 보아하니 자택이 아니라 사무실로 가는 모양이다.

존의 직업이 탐정이다 보니까 궁금해서 그런지 본격적으로 관광을 하기 전에 구경 차 들려보려는 생각인 듯하다.

아니면 사무실에서 재울 생각인 건가?

존의 집은 그리 넓은 것도 아니고 침대가 두 개인 것도 아니니까.

일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사무실에 있는 소파에서 잠 든 경험도 있는 모양이고.

아니면 브라운이 근처에다가 숙소라도 잡아둔 건가.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그림 속에서 헤매다 보면 반나절 정도는 훌쩍 지나 있을 테니까.

아무튼, 나에게 있어 사무실로 가는 건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좁은 방에서 녀석들이 탈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얼마나 없어 보일지.

소파에 앉아 홍차를 마시면서 기다리는 흑막 쪽이 더 좋아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에 도착해서 쉬고 있는 브라운이 보인다.

소파에 거의 눕다 싶이 앉아서는 책장에 꽂혀 있는 파일들을 쳐다보는 게 흥미가 있어 보인다.

그럼 이제 내가 갈 차례로군.

나는 옷을 갈아입고 옆의 소포를 들고는 이전처럼 근처 골목에 관문을 열었다.

이런 택배기사가 골목길에서 나오는 걸 보면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림만 전하면 됐지.

사람이 다니는 거리를 커다란 액자가 담긴 소포를 들고 양해를 구하며 어떤 건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고 익숙한 문에다가 노크를 하니 금세 존이 나온다.

나는 비어 있는 손으로 모자를 살짝 들며 인사를 하고 사무실 벽 쪽에다가 소포를 기대어 놓고 아무 말도 없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재빨리 관문으로 돌아가면서 사무실을 살펴보니 시킨 적도 없는 물건이 와서 그런지 찬찬히 관찰하고 있었다.

일단 물건이 뭔지 확인해보고 반송을 하려는지 커터칼을 가져와서 테이프를 자르는 게 보였다.

바닥에 눕혀두고 최대한 골판지 박스가 손상되지 않도록 자르고는 액자를 꺼내서 다시 벽에다가 기대게 둔다.

그러고는 보내는 이에 적혀 있는 이름과 주소를 살펴보며 이런 그림을 왜 자신에게 보낸 건지 의문스러워하는 존이다.

뒤에 앉아 있던 브라운은 의뢰인이 감사의 표시로 보낸 게 아니냐고 물었다.

옛날에 보내려고 했다가 깜빡해가지고 지금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며 말하지만 존은 그동안 받아 온 의뢰인 중에 이런 이름은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관문을 통과해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화실로 공간이동을 해서 벽 중앙에 걸려 있는 커다란 액자로 몸을 던진다.

그림을 통과해 작은 방으로 들어온 나는 문을 열고 기어다니는 것을 소환했다.

소환되자마자 최선을 다해서 복도를 기어 액자가 있는 곳까지 가는 게 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액자 앞에 서 있는 존을 놓칠 수는 없지.

기어다니는 것은 그림을 바라보며 브라운에게 말하고 있는 그의 발목을 붙잡고는 그대로 당겼다.

그대로 넘어져서 그림 속으로 끌어당겨진 존이 당황스러워하며 뒤돌아보자 그것은 벌레와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주문으로 그를 기절시켰다.

브라운은 소파에 앉은 채로 고개만 돌려서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 있었다.

전에 본 에반은 그래도 사람이었지만 이번엔 사람도 아니니까 그럴 만도 하겠지.

존이 무력하게 끌려가는 것을 바라만 보던 그는 볼을 꼬집어 보며 이게 꿈인지 확인하다가 허둥지둥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나 액자 앞에 섰다.

손가락을 갖다 대면서 정말로 들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던 브라운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점점 팔과 몸통, 다리까지 전부 들어오고는 주변을 살펴 본다.

그럼 나는 이제 그림을 통과할 수 없도록 막아야겠군.

주문을 일부분 비활성화해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나서 잠시 그가 무엇을 하는지 구경했다.

브라운은 갑옷을 쳐 보면서 입어보려 하는 건지 투구를 벗겨보려 했지만 마치 갑옷과 일체형인 것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아쉬워하는 눈치로 몸을 돌린 그는 사무실에서 무언가를 가져오려는 것인지 다시 그림으로 손을 뻗었다.

—툭.

하지만 그림은 마치 유리창처럼 그를 가로막을 뿐.

당황스러워하며 양손으로 두들겨 보지만 그림에는 어떠한 영향도 없이 그저 건너편의 풍경만 보여줬다.

살짝 개입해볼까.

붉은 벽과 대조되는 푸른 물감으로 글씨를 쓴다.

[탈출하고 싶다면 그를 구출해]

철퍽거리는 소리와 함께 옆의 벽에 글씨가 써지자 자그마한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친다.

"히에엑!"

사람의 비명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자기가 무슨 님프인 줄 아는 건가.

잠시 가만히 서서 글씨를 계속 주시하던 브라운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복도를 걸어갔다.

그럼 나도 에반을 데려올까.

그림 속을 소개시켜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을 텐데 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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