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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45화 (45/154)

〈 45화 〉 그림 속 세상

* * *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어디론가로 향하는 에반을 쫓아간 브라운은 숨이 차는지 헉헉대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불만을 내뱉으려 했지만 에반이 뻗은 손이 그의 머리를 강제로 숙이게 만들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서 창문을 통해 무언가를 살펴보는 그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어 하는 눈치인 거 같지만 왠지 심각해 보이는 분위기 때문에 선뜻 입이 열리지 않는 모양이다.

브라운은 어쩔 수 없이 에반을 따라 도대체 뭘 보고 있는지 살펴보다가 복도에 돌아다니는, 주방에서 자신을 거의 죽일 뻔한 인형이 정원에서 나무를 손질하는 걸 보고 놀라하는 눈치이다.

그의 눈동자는 정원사 인형들을 살펴보다가 위쪽을 보더니 눈이 커지는 게 아무래도 동상이 들고 있는 검을 발견했나보다.

브라운은 저걸 어떻게 얻어야 하냐면서 에반에게 묻지만 자기도 그걸 생각 중이라면서 구박을 받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에반은 생각을 끝마쳤는지 작은 목소리로 저 인형 중 하나만 맡아줄 수 있냐고 물었다.

브라운은 '이 새끼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같은 표정을 짓고는 다시 말해 달라고 말했다.

에반은 방금 했던 말을 똑같이 다시 말했고, 기껏 생각한 게 정면돌파냐고 브라운에게 욕을 먹었다.

정원에서 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인형은 총 네 개.

그리고 네모나게 동상을 둘러 싸고 있는 풀밭과 모서리 부분에 있는 작은 나무.

인형들은 모서리의 나무 네 그루를 각각 맡아서 일하고 있으니 조용히 들어가 하나 씩 암살해가면 편하게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브라운은 주방에서 얻은 꼬챙이까지 있으니까 맨손보다 더욱 간단하게 할 수 있을 터.

에반은 그냥 대놓고 싸울 생각밖에 없던 것인지 최대한 정신력을 쓰지 않는 방향으로 효율적인 전투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브라운은 창문 너머로 인형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다가 문을 슬쩍 열었다.

그러고는 따라오라는 듯이 손짓 하면서 몰래 들어가더니 점점 인형을 향해 다가갔다.

에반도 브라운이 어떤 생각인지 알아차린 것처럼 반대편으로 갔다.

나무를 손질하느라 주변을 바라보지 않는 인형의 뒤로 가 꼬챙이를 올리더니 그대로 머리 부분을 향해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무 조각이 튀면서 꼬챙이는 반쯤 파고들었고, 인형은 끼긱거리며 고개를 돌리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 소리가 다른 인형들에게도 들린 건지 모두 브라운을 쳐다봤다.

그렇게 시선이 모두 그쪽을 향했을 때 기척을 죽이고 있던 에반이 한 인형을 기습해서 머리와 몸통을 분리했다.

'인형의 연결 부분이 확실히 약해 보이긴 하지만 그걸 그대로 뜯어버릴 줄은 몰랐네.'

에반은 꼬챙이를 뽑아보려 애쓰는 브라운에게 달려드는 두 인형 중 뒤에 있는 녀석에게 간단히 주문을 외워 불덩이를 날려주고는 브라운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 사이에 다가간 인형이 두꺼운 나뭇가지를 자르는 것처럼 브라운의 목을 자르려 시도했고, 그걸 피하려던 그는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가위의 가운데 축 부분을 잡아 어떻게든 저항하던 브라운이지만,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그런 힘을 내는 건지 가위는 점점 목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달려온 에반이 인형을 걷어차고는 그대로 엎어진 그것의 목에 발을 올려서 힘을 주었다.

빠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점점 금이 가더니 우지끈하고 목이 부러진 인형은 미동조차 없이 멈췄다.

역시 정면돌파가 더 좋았을 거라 말하는 에반에게 식은땀이 폭포처럼 흐르는 브라운이 역시 그건 아니라면서 티격태격했다.

잠시 싸움의 열기를 식힌 둘은 대리석 조각상 앞에 서서 이리저리 살펴봤다.

"이아손? 이 이름은—"

"누군가…."

"우왓!"

"이런 거에 놀라면 어떡해."

"조각상이 말할 줄은 어떻게 알아요."

"방금 전에 그림자는 그럼 뭔데."

"누군가 그걸 가져와 준다면…."

조각상이 말하는 것에 놀란 것도 잠시.

이어진 그것의 말에 브라운은 말없이 생각에 잠겨들었다.

에반은 읽었던 책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 그저 옆에서 생각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아—하는 감탄사와 함께 떠올렸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는 그에게 에반이 질문했다.

"그래서 이 조각상이 찾는 게 뭐인 거 같냐?"

"아무래도 황금양털이겠죠. 2층의 서재에서 읽었던 책에 적혀 있었는데."

"이봐! 그 황금양털인지 뭔지 찾아오면 그 검을 줄 수 있나?"

"무엇이든."

—딸깍.

어디선가 잠금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럼 빨리 찾으러 가자."

"책에서는 잠들지 않는 용이 그 양털을 지키고 있다는 데요."

"용?"

"네. 아마도 구멍이 뚫려 있는 그 문인거 같아요."

"네가 들여 봤다가 발작한 그 문?"

"거참! 무슨 괴물이랑 눈이 마주쳤다니까요?!"

운이 좋지 않았다고 해야 할지 관찰력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100개의 눈이 달린 용과 눈을 마주친 그는 잠시 광기에 빠졌었다.

에반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단숨에 알아차리고 그의 입을 틀어막고 제압해서 위층의 갑옷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했었지.

겨우 눈이 100개 있는 용과 마주했다고 그러면 어쩌나 싶지만.

브라운은 책에 그 용이 수면제에 당해 잠들었다고 적혀 있었다면서 다시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말했고, 에반도 굳이 힘들게 싸우기 보단 간편하게 해결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는지 그의 말을 따랐다.

하지만 둘의 표정은 계단을 올라가며 점점 들려오는 발소리에 굳어졌다.

'2층엔 갑옷이… 다섯 개가 돌아다니고 있네. 벌써 한 시간 정도 지났나?'

이제는 갑옷들이 한꺼번에 달려든다면 위험할 정도의 수까지 되었다.

에반은 난간 사이로 갑옷이 얼마나 있나 가늠하더니 자세를 숙여서 천천히 올라갔다.

브라운은 정면돌파는 생각도 말라면서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혹시 번개 화살처럼 요란한 주문을 사용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

이쪽 복도에 돌아다니는 갑옷이 하나만 있게 되자 주문을 속삭이던 에반은 빠르게 올라가 그 갑옷에다가 손을 뻗었다.

그대로 갑옷을 우그러뜨리고는 조심히 바닥에 내려 두고는 브라운에게 따라오라고 손짓 하면서 약품 조제실로 향했다.

다행히도 그들이 복도를 다니는 동안 갑옷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조제실로 들어온 브라운은 빠르게 제조법이 담긴 책을 펼쳐서는 빠르게 넘겼다.

에반은 장작을 모아서 불을 붙이고는 그 위에다가 솥을 올려 두었다.

레시피를 찾은 브라운이 재료를 바리바리 들고 와서 솥에다가 물을 붓고는 커다란 주걱을 가져 왔다.

재료들을 썰고, 빻고, 으깨는 등 손질해서 솥에 넣고는 주걱으로 젓다 보니 어느새 심연처럼 어두운 약물이 만들어졌다.

완성된 약물을 커다란 둥근 플라스크에 담고 옆에서 굴러다니던 코르크 마개로 어떻게 막으니 정말 포션처럼 생겼다.

그걸 바라보던 에반은 슬슬 나갈 준비하기 위해 문에다가 귀를 대고 발소리에 집중했다.

눈을 감은 채로 귀를 기울이며 철컥거리는 소리를 듣는 와중에 브라운이 그에게 말을 건다.

"어… 빨리 나가 봐야 할 거 같은데요?"

"잠깐만."

"이걸 보시면 그 말이 쏙 들어갈 텐데."

"도대체 왜 그러는…."

에반이 바라본 것은 솥에서 올라오는 황금빛 연기였다.

브라운이 들고 있는 병의 내용물 또한 황금빛으로 변한 것을 보아하니 시간이 지나면 색이 변하면서 저절로 기화하는 모양이다.

점점 다가오는 연기에 에반은 다시 문에다가 귀를 갖다 대고는 발소리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다급히 빠져나온 둘은 문을 닫고는 재빨리 계단으로 가다가 갑옷과 마주쳤지만 겨우 하나뿐이어서 간단하게 쓰러뜨리고 내려갔다.

잡히면 바로 죽음이나 마찬가지 일 터니 이해는 하다마는 제작자 입장에서 마음이 아프다.

나는 저기 뒤에 있는 갑옷과 똑같이 팔과 몸통이 우그러져서 거의 일체화된 갑옷을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그들을 따라 내려갔다.

브라운은 금세 황금 양털이 있는 방 앞으로 가서는 문의 구멍으로 약물을 넣고 있었다.

황금빛 액체가 문 너머로 흘러가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잠시.

문의 구멍을 손으로 막고는 귀를 갖다 대며 상황을 살펴보던 브라운은 쿵—하며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나자 흠칫하며 놀랐다.

구멍을 살짝 열어 보며 연기가 흘러나오는지 확인한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어두웠지만 저 멀리 언덕 위에 있는 나무에 걸려 있는 황금 양털이 마치 달처럼 은은한 빛을 내며 방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산처럼 커다란 용이 모든 눈을 감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용을 바라본 브라운은 잠시 멈칫하며 두려워했지만 심호흡을 하고는 에반과 같이 양털이 걸려 있는 나무로 향했다.

나뭇가지에 걸린 양털은 부드러우면서 마치 햇볓에 말린 이불같은 냄새가 났다.

이걸 이브에게 이불로 만들어 준다면 어떨까 생각도 했지만, 이렇게 빛이 나면 잠자는데 문제일 테니 잊어버리기로 하고.

에반이 성큼 다가가 황금 양털을 나뭇가지에서 가져오자 마치 100년은 더 살아온 거 같은 거목의 나뭇잎은 갈색으로 변했고, 나뭇가지와 줄기는 수분이라도 말라버린 것처럼 시들어 버렸다.

갑자기 시들어 버린 나무에 놀란 그들은 도망치려는 자세를 취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뻘쭘해하던 에반과 브라운은 그대로 문밖으로 나가 다시 정원으로 향했다.

나는 이렇게 문단속을 안 하면 어쩌려는지 생각하고 직접 문을 닫고 잠갔다.

문고리를 돌리며 잠긴 것을 확인하고 정원으로 가자 황금 양털을 받고 좋아하는 조각상이 보였다.

"오오…! 이것이 있다면 왕위는 내 것이야!"

"그럼 이제 그 검을 주지 않겠어?"

"아, 그렇군. 이 은혜를 검 한 자루로 갚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들이 바란다면야."

조각상은 검을 떨어뜨리고는 황금 양털을 든 채로 활동을 멈췄다.

에반은 그 검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왼쪽의 갑옷에게 들려주자 갑옷들은 양쪽으로 비켜 주며 길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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