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런던에서 일어난 일
* * *
모든 것의 비극은 대학 친구가 보여 준 한 잡지에서 시작되었다.
전공 책이나 소설을 사러 서점에 갔을 때 눈에 띄면 나도 가끔 사던 잡지.
다음 수업을 기다리면서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던 내게 한 친구가 다가와 그걸 보여줬었지.
함께 신청하자면서 거기에 적혀 있는 대로 했지만 한 명만 신청할 수 있었고,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갔다.
평소 같았으면 잡지가 있는 곳은 눈길조차 주지 않아 꽉 차 있어야 할 책장도 거의 비어 있었다.
그래도 내가 살 수 있을 만큼은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인 것은 커녕 불행하다고 생각해야 마땅하다고 느끼는데 말이야.
후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내가 당첨될 수 있던 것은 이런 일을 당할 존을 구하기 위해 신께서 내려주신 기적이라고.
비록 이전에 나를 쫓던 미치광이가 이번엔 정상적으로 변해서 함께 다니고 있지만, 이것도 신께서 내려주신 시련이라고 생각하자.
내 머릿속의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도피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 버릴 거 같으니까.
***
어느 날 오후, 과제에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하던 나에게 어떤 문자가 왔다.
잊고 있었던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메시지.
그 순간만큼은 과제에 대한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기뻤었다.
밀려드는 과제의 압박 덕분에 다시 침울해지긴 했지만.
이런 기쁜 소식을 나 혼자만 알고 있을 수는 없어서 내 친구들과 존에게 자랑했다.
친구들은 부러워하면서 축하해 주고, 존은 오는 날짜를 물어보더니 굳이 돈 쓰지 말라면서 공항까지 찾아가겠다고 했었지.
그로부터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방학은 찾아왔고 영국으로 가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커다란 여행가방에다가 옷가지와 생활용품을 집어넣고 현관 쪽에다가 두고는 침대에 와서 누웠다.
'지금이면 런던은 아마 새벽이겠지.'
존에게 문자를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 자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문자를 보내 깨울 필요는 없으니 스마트폰을 충전기에다가 연결시켰다.
그리고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는 점점 가라앉는 의식을 느끼면서 잠들었다.
"으음…."
체감상으로 몇 분도 지나지 않은 거 같지만 눈을 찌르는 빛 때문에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서 옆에 있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 : 50]
방학이 되면서 게을러진 내가 일어나는 시간보다 약간 빨리 일어났다.
어차피 비행기는 오후 9시에 출발 예정이기 때문에 점심까지 여유를 부려도 괜찮을 정도이다.
나는 옆에 있던 스마트폰의 충전기를 빼서 요즘 유행하는 영상이나 찾으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다가 슬슬 배고프다고 느낄 때 즈음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하나 꺼내온다.
옆에 있는 시리얼 박스를 그릇에 넣어 버리다 싶이 처박고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오고, 제대로 박스에서 나오지 않는 시리얼을 적당히 넣고는 우유를 부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식빵 두 장과 땅콩버터도 꺼내오니 이제서야 만족할 만한 점심이 되겠다.
눅눅해져서 물에 적신 골판지를 먹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시리얼을 처리하고 귀찮아서 굽지 않은 빵에다가 땅콩버터를 바른다.
뻑뻑한 빵과 꾸덕한 땅콩버터의 하모니로 막혀 오는 목을 시리얼을 먹고 남은 우유로 뚫어 버리니 고급 레스토랑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이게 천국이지."
여기에다가 잼까지 추가하면 완벽하겠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느낀 나는 빠르게 그것들을 해치우고 일정을 확인했다.
4시에 버스를 타고 가면 7시 쯤에는 도착인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존하고 잠깐 문자라도 할까.
지금이면 퇴근했을 테니 편하게 보내도 될 거다.
[M : J 지금 뭐 해요?]
[J : 오늘은 사건이 간단해서 금방 끝내고 집으로 가는 중이지.]
[J : 그러고 보니 내일 온다고 했던가?]
[M : 아직 공항으로 가기엔 시간이 좀 일러서요.]
[J : 아무튼 내일 아침에 공항으로 찾아가면 되는 거지?]
[M : 굳이 일찍 안 찾아와도 괜찮은데.]
[M : 거기서 간단하게 아침이라도 먹게요.]
[J :그다지 추천은 하지 않는다만.]
세상에서 가장 얇은 요리책이 영국의 요리책이라고 하지만 그게 맛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왠만해서 소문보다는 경험한 것을 믿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존과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이제 샤워도 하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하기에 존에게 내일 보자고 문자를 보냈다.
[M : 이제 슬슬 샤워나 해야겠어요.]
[M : 내일 봐요.]
스마트폰의 베터리를 슬쩍 확인하고 충전기에 연결한 나는 옷을 대충 바구니에다가 던져 두고는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느끼며 간단하게 샤워를 끝마치고는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옷을 입었다.
시계를 확인하며 빠뜨린 것은 없는지 몇 번을 확인한 나는 현관 쪽에 비치해 두었던 여행가방을 어깨에 메고 문을 나섰다.
버스에 올라타자 마자 곯아 떨어진 나는 귀에 들려오는 안내음에 벌떡 일어나서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공항까지는 아직 두 정거장이나 남아서 이어폰으로 음악이나 듣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점심을 먹은지 시간은 꽤 지나 있었지만 아직 허기지지 않으므로 체크인이나 했다.
여행가방은 크긴 하지만 수화물로 위탁까지 할 만큼 크지는 않아서 금속탐지기를 지나 간단하게 출국심사를 마쳤다.
그리고 안쪽에 벤치에 앉아서 신문이나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 구석으로 가 메고 있던 가방을 옆에다가 내려 둔다.
"휴우, 어깨가 조금 뻐근하네."
가방을 메고 다닌 시간도 별로 없는데 왜 이리도 뻐근한지 어깨를 매만지며 근육을 풀었다.
여권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며 티켓과 손목시계를 번갈아 보면서 탑승시간을 제대로 확인한다.
'조금 일찍 온 거 같은데 게임이나 하면서 기다리자.'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며 간단한 게임을 하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시계를 확인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비행기의 승객인지 아직 내가 탈 비행기는 멀었다.
그렇게 게임을 하다가 가끔씩 시간을 확인하다 보니 어느새 9시가 가까워졌다.
나는 여행가방을 메고 게이트로 가서 줄을 서고 조금씩 앞으로 가다가 티켓을 보여 주고는 내가 앉을 좌석으로 갔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위쪽 짐 넣는 곳에다가 넣고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메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보니 안내음이 들리고 잠시 후 비행기가 움직였다.
우회전을 하면서 활주로로 이동하더니 점점 가속하면서 이륙하더니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몸속의 장기가 무중력 상태로 들어간 것처럼 붕 뜨는 느낌이 느껴졌다.
마침 창가 자리여서 올라가는걸 구경하려고 했지만, 이미 밤이어서 도시의 야경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창문 밖은 신경 끄고 지금 듣고 있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감았더니 일어났을 때는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어느새 창밖은 밝아져 있었고, 구름과 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안내음이 들렸다.
'벌써 런던에 도착하다니.'
그리 많이 자지는 못했지만 돌아다니는데 피곤할 정도는 아니었다.
쿵—하고 비행기가 착륙한 걸 느끼고 가방을 꺼내고 내리자 런던이 나를 맞이했다.
비행기에선 자느라 아무것도 먹지 않아 허기진 나는 공항의 어느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영국 요리에 대해 느낀 점은….
'맛 없는 건 아닌데 맛있다고 하는 것도 애매하네.'
마치 할 수 있는 요리라곤 굽는 방법밖에 모르는 사람이 요리를 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텅 비어 있는 배를 채우고 공항 밖으로 나와 미국과는 다른 공기의 맛을 느끼면서 기다리다 보니 어떤 차가 경적을 울렸다.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하는지 쳐다봤더니 수수께끼의 저택에서 한 번 보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보였다.
반가움에 빠르게 다가가서 앞좌석에 앉으니 바로 공항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렸다.
"인터넷으로는 몰라도 이렇게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
"사실상 두 번째죠."
"그래도 운이 좋았네. 신청한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을 텐데."
"올해의 운은 여기에 다 쓴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내 사무실을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탐정이라면서요."
"아니, 난 셜록 홈즈같은 사람이 아닌데."
이전의 저택에서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권총을 생각하면 평범한 탐정은 아니리라.
그래도 미국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면 정상적인 축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나도 집에 산탄총이 한 자루 있긴 하니까.
도둑이나 강도가 든 적은 없어서 써 볼 기회는 없었지만.
아무튼 존에게 사무실로 가고 싶다고 몇 번이고 말하니 어느새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짐은 차에다가 두고."
"여기가 사무실인가요?"
"2층으로 올라가면 있지."
계단을 올라가 존이 문고리에다가 열쇠를 넣고 돌리자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렇게 들어간 탐정 사무실은 평범했다.
가운데에 있는 탁자와 소파, 저쪽으로는 사무용 책상과 컴퓨터가 있고 벽에 붙어 있는 책장에는 많은 파일들이 꽂혀 있었다.
"저거 읽어봐도 돼요?"
"싹 다 개인정보라서 안 돼."
시답잖은 대화를 하며 소파에 누워 쉬고 있다 보니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
의뢰라도 온 건가 싶어서 문을 바라보니 어떤 택배기사가 들어와서 크고 납작한 소포를 벽에다가 기대어 두고는 나갔다.
"무슨 소포래요?"
"글쎄다. 나는 이런 걸 시킨 기억이 없는데."
소포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책상에서 커터칼을 가져오고는 테이프를 잘랐다.
그리고 골판지 상자를 전부 치우자 붉은 커튼과 갑옷이 서 있는 복도가 그려진 그림이 액자로 감싸져 있었다.
"뭔가 의문스럽군."
"이전의 고객이 보낸 거 아니에요? 화가라던지, 그런 사람이 보내려고 했다가 깜빡해서 최근에 보낸 걸 수도 있죠."
"그동안 내가 받은 의뢰인 중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어."
"오오. 그걸 하나하나 다 기억해요?"
"당연하지. 그건 탐정으로서 기본, 뭣, 으악!"
등 뒤로 내게 이야기하던 존이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깜짝 놀란 내가 뒤돌아보자 쓰러진 존의 뒤쪽으로 무언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그림에서 튀어나온 벌레와 구더기로 우글거리는 팔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 비현실적인 장면에 굳은 나는 존이 그대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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