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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49화 (49/154)

〈 49화 〉 런던에서 일어난 일

* * *

어차피 존을 구하기 전까지는 탈출할 생각조차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열려 있어서 내가 고민하도록 만들었다면 정말로 끔찍했겠지.

나의 안전이냐, 혹은 내 친구의 목숨이냐.

그런 양자택일의 상황으로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복도를 걸어갔다.

—뚜벅뚜벅.

나와 에반, 두 명을 제외한 아무도 없는 복도에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점점 걸어갈수록 또 다른 발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철컥.

방금 그 갑옷은 에반이 마법으로 쓰러뜨렸을 덴데 다른 갑옷이 움직인 걸까 생각을 하다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갑옷이 보였다.

저쪽에서도 시선에 우리가 들어왔는지 점점 빨라지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철컥철컥철컥철컥철컥!

옆에 있는 에반은 마법을 사용하려는 모양인지 방금처럼 무언가 주문을 외우는 거 같았다.

그리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갑옷이 검을 머리 위까지 치켜들고는 나를 한 번에 양단하려는 기세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세가 무색하게 옆에서 날아온 한 줄기의 번개가 다시 갑옷을 강타했다.

공기를 찢으며 날아가는 소리가 귀를 강타하며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칼에 베여서 죽는 것보다는 낫기도하고 금세 괜찮아지기도 했으니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일단 존이 무사한지 확인도 해야 하는데…. 괴물이 된 일기장의 주인이 펜을 못 잡는 건지 이제는 일기도 쓰지 않아서 어떤 상황에 빠진 것도 모르겠고.'

2층에 이렇게 갑옷도 돌아다니는데 1층에는 어떤 것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일단 여기를 먼저 전부 수색해야 내려가도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부디 그때까지 존이 무사하길 빌어야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에반을 따라 걸어가고 있을 때, 그는 문을 발견했는지 그걸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같이 따라서 들어가니 선반에 널린 약품과 플라스크가 들어왔던 방인 것을 알려주었다.

"여긴 무슨 방이지? 선반에 있는 것들을 보면 화학 실험실 같은데."

"정말로 그러네요. 어디 보자…."

선반으로 다가가서 염산이라고 쓰여 있는 갈색 병을 들고 살펴봤다.

안쪽에 찰랑거리는 액체를 확인하며 이 정도 양이면 그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 가늠해 보았다.

'내가 얼핏 봤을 때 그 괴물의 손 같은 게 존의 얼굴을 뒤덮을 정도였으니까 덩치는 사람 만하겠지.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겠네.'

한 손으로도 가뿐히 들 수 있는 병에는 1리터도 안 되어 보이는 염산이 들어 있었다.

아쉬워하면서 염산이 든 병을 원래 자리에 올려 두고는 에반이 뭘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수은이 들어 있는 병을 살펴보고 있었다.

병 속에서 찰랑이는 액체 금속이 마치 나의 동심을 일깨워주는 거 같았다.

"수은이네요? 저도 한번 살펴볼래요."

"그래. 생각보다 무겁다."

그에게서 병을 받자 역시 금속이라 그런지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액체여서 물처럼 가벼울 거라 생각하고 받았다면 떨어뜨렸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거울처럼 내 얼굴을 비추는 병을 둘러보니 금세 흥미가 가라앉았고, 선반에 병들의 간격이 더 벌려져 있는 곳에다가 올려 두었다.

그리고 다른 병들도 살펴보다가 고개를 돌리니 책상 위에 있던 책을 에반이 읽고 있었다.

"그건 무슨 책이예요?"

"아무래도 조합법 같은데."

"화학식이 아니고요?"

여기가 무슨 연금술사가 사는 공간도 아니고 조합법이 무슨 소리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에게 다가가 책을 바라보자 그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수면제에 극독에… 벌꿀술? 아니, 갑자기 술은 왜 나오지?"

"설명을 보면 더 신기할걸."

"용도 재울 수 있는 수면제는… 아마도 비유인 거 같고. 한 방울에 수천 명도 죽인다는 것도 사람 수만 다르지 많이 들어 봤는데. 우주를 다닐 수 있다는 건 무슨 소리지?"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어차피 여긴 벌꿀도 없어서 만들 수도 없는데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프지."

에반은 그런 소리를 하더니 책과 선반을 번갈아 보고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하듯이 멍한 표정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래도 이제 동료라고 할 수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물론 나도 경계심에 성만 알려주긴 했지만.

"저기요?"

"……."

—짝짝!

"저기요!"

"헛!"

내가 소리친 것에 놀란 건지 에반은 움찔거리고는 뒤를 돌았다.

"거 화해도 하고 같이 다니기도 하는데 아무 말 없이 혼자 생각하기 있어요?"

"아니, 그게. 아직 어색해서."

"저도 어색하긴 마찬가지 거든요? 단서라도 찾았다면 말해줘요."

"미안. 그 단서를 찾으려고 나가는 거였는데."

에반이 그렇게 말하고 다시 문고리를 잡으려고 하자 밖에서 갑옷이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모두 자세 그대로 굳어서는 제발 지나가길 빌었으나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 문고리가 움직였다.

끼익하며 경첩에서 소리가 나며 천천히 문이 열리고, 갑옷의 모습이 완전히 나타나자 에반의 손에서 섬광이 일었다.

—콰릉!

뒤이어 나는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문 쪽을 바라보자 갑옷은 벽에 처박혀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분명 저기에 갑옷이 쓰러져 있는데 또다시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방으로 갑옷 하나가 들어왔다.

쓰러져 있는 갑옷의 복수라도 하려는 것처럼 양손으로 검을 쥔 갑옷은 에반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해서 눈을 감았다.

—챙!

하지만 내 귀로 들려온 소리는 검이 신체를 가르는 소리가 아닌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소리였다.

휘두른 검에 피가 튀기며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을 대비해 눈을 감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

혹시라도 잔인한 장면을 목격할지도 몰라 천천히 눈을 뜨자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에반이 들고 있던 두꺼운 책으로 갑옷이 휘두른 검을 막은 것이었다!

게다가 평범한 책이었다면 검이 반쯤 파고들거나 완전히 베어져야 할 텐데 막고 있는 걸 보니 내가 방금 들은 소리가 환청이 아니었다보다.

에반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면서 그에게 다가오는 검을 막거나 피했다.

"힘내요!"

저 갑옷에게 화학 약품이나 의자 같은 걸 던져서 방해할 수도 있었지만 괜히 상대하던 그의 주의를 흩트리거나 잘못하면 맞출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뒤에서 응원만 했다.

팝콘이 있었다면 그걸 으적이면서 구경했을 정도로 엄청난 싸움이었다.

영화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갑옷은 검을 부딪치며 싸우지 않고 상대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하지만 상대하는 사람이 검을 들지 않고 책을 들어서 그런지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괴상한 주문을 끝마친 에반이 마법으로 갑옷을 벽에 처박는 것으로 싸움은 끝났다.

"허억 허억."

갑옷과 싸우는 게 지쳤는지,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무릎을 꿇었다.

나라도 저렇게 두꺼운 책을 몇 번이고 휘두르면서 검을 막아 내고 그러면 엄청 힘들 거 같긴 하다.

"괜찮아요?"

"아니, 으윽!"

내가 그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냐고 물어보자 머리를 움켜쥐더니 두통을 호소했다.

이건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 있는 부분을 움켜줘어야 할 상황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에반의 얼굴을 살펴보니 예전에 수수께끼의 저택에서 봤던 그 눈빛이 약간이지만 스쳐 지나갔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다가갔다.

'예전에 그 저택에서 읽었던 종이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마법의 부작용 같은 거겠지.'

지금,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가서 에반이 진정할 수 있도록 두는 게 좋겠다.

'1층…은 아직 가 본 적이 없으니 일단 서재로 향할까. 그곳은 아직 조사하지도 않았고.'

나는 끙끙 앓는 에반에게 손을 뻗어 어깨를 부축해서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복도를 걸으며 방금 갑옷이 습격한 이유를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가 소리친 것 때문에 들어온 거겠지. 서재도 그랬고 방금 약품방도 그렇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벽 쪽에 서 있는 갑옷을 바라봤다.

'우리를 습격한 갑옷이 하나 더 늘어난 걸로 봐서 시간이 지날 때마다 활동 가능한 갑옷이 늘어나는 건가?'

이런 식으로 추론해가며 복도를 걷다 보니 어느새 서재에 도착했다.

나는 최대한 조용하게 문을 열고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이 에반을 의자에 앉혔다.

그가 괜찮아질까 걱정하며 서재를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다가 책장을 바라봤다.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악필로 쓰여진 제목의 책, 전혀 본 적 없는 언어로 적혀진 책 등.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이상함에 책장으로 다가가 반짝이는 책을 살펴보자 수필로 적혀진 책이 아닌 인쇄라도 한 것처럼 반듯한 글씨체의 책이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면 어떤 미사여구 없이 내용이 적혀 있고 종이의 재질도 약간 다른 게 사람이 직접 만든 거 같았다.

"글씨체가 무슨 기계가 쓴 거 같네."

나는 다른 책장도 찾아가며 똑같이 반짝이는 책을 몇 권 더 찾았다.

그것들을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맨 위에 있는 책을 들어서 펼쳤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며 읽은 책의 내용은 그리스 신화의 한 이야기였다.

왕위를 돌려 받기 위해 황금양털을 구하러 아르고 호 원정대를 만들어 여러 영웅들과 떠나는 이야기.

재밌게 읽긴 했지만 왜 이렇게 제목이 반짝이도록 만든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책상 위의 다른 책을 들어 올린 나는 에반이 일어날 때까지 단서나 찾아볼 겸 계속 책을 읽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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