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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50화 (50/154)

〈 50화 〉 런던에서 일어난 일

* * *

집중해서 책을 읽는 와중에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정신 차렸나 싶어 읽던 책을 내려 두고 옆을 바라보니 두통이 좀 나아졌는지 표정이 괜찮아진 에반이 보였다.

"머리는 좀 괜찮아졌어요?"

"아까보단."

"마법을 쓰면 머리가 아파오나 봐요?"

"주문을 사용하는 사람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밖에 몰라서 내가 이상한 건지 다들 이런 건지 모르겠네."

"그런가요. 당신이 쓰는 마법을 보고 로망이 생겼는데 아깝네요."

다들 어릴 적이나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한 번쯤 마법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론 나는 20살이 넘은 성인이지만 그런 광경을 본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안다까움을 속으로 집어삼키고는 에반에게 내가 발견한 것들을 말하려고 할 때였다.

"…음?"

"왜 그래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서재로 왔네. 정신없는 내가 스스로 걸어왔을리는 없고, 네가 도와줬구나."

"위험하니까 당연히 도와야죠."

"고맙다."

"에반이 갑옷들을 쓰러뜨렸는데 저도 뭔가 도와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말을 하며 이번에야말로 발견한 단서에 대해 말하려고 하자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갑옷이 움직이는 소리.

밖에서 걸어 다니는 발소리가 들려온 적이 없으니 아마 문 앞에 서 있던 갑옷이 움직이는 소리일 것이다.

차라리 책을 읽지 말고 시간이나 측정하고 있을 걸 생각했지만 책의 내용도 어딘가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숨을 죽이며 갑옷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갔나보네."

"그러게요."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 때마다 하나씩 움직이는 갑옷이 늘어나는 모양이야."

"부정하고 싶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네요."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런 암울한 상황을 한탄했다.

내 추측이 맞아떨어지다니.

차라리 틀리는 게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한숨을 내쉬자 에반이 이럴 시간이 없다며 어서 나가자고 했다.

"이럴 시간에 내려가자. 너도 그 탐정 양반을 구해야 할 거 아니야?"

"아…, 그러네요."

그렇게 나는 말하려고 했던 책의 내용은 깜빡 잊은 채로 그를 따라 문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아래층에도 갑옷이 있을까 경계하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지만 고요한 로비에는 아무것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저 저택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중앙의 바위 같은 것에 장검이 박혀 있을 뿐이었다.

"저건 뭘까요?"

"검이지."

"저도 눈은 제대로 달려 있거든요?"

내가 무슨 시력이 안 좋아서 물어본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저건 함정일까요?"

"다가가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미쳤어요?"

에반은 겁도 없는지 성큼성큼 검으로 다가갔고, 나도 속으로 수백 번은 욕을 내뱉으며 그의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 그가 검을 향해 손을 뻗는 걸 가만히 지켜보며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근처에서 적이 튀어나온다던가 함정 같은 게 발동하지 않았지만 검도 뽑히지 않았다.

"간단히 뽑힐 거 같은데 생각보다는 힘이 약하신가 봐요?"

이렇게 말하고 비키라고 손짓한 후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힘껏 당겼지만 바위하고 한 몸인지 전혀 뽑히지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뽑아볼까 생각했지만, 그래 봤자 끄떡 없을 거 같은 예감이 들어 포기했다.

내가 부끄러움에 얼굴에 피가 쏠린 걸 보고는 에반이 어깨를 치면서 위로해 줬다.

"괜찮아. 어딘가에 이걸 해결할 단서가 있겠지."

'그러고 보면 이 사람, 존을 한 손으로 잡고 들어 올렸었지.'

그런 사람 앞에서 힘자랑하려고 했다니.

더더욱 수치감이 몰려와서 쥐구멍에라도 파고들고 싶은 느낌까지 들었다.

"근데 이 검,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아?"

"응? 애초에 이런 장검은 역사 박물관을 제외하면 보기 어렵지 않아요?"

요즘 같은 시대에 검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윗층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철컥.

갑옷의 발소리.

'아—'

"갑옷이 들고 있던 거 아니에요?"

"마침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

"근데 그게 왜 여기 박혀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무기로 쓰라는 것도 아닐 테고.'

애초에 그 괴물이 자신을 상대할 무기를 이렇게 당당히 로비 중앙에 배치할 리가 없겠지.

내가 검의 폼멜 부분을 쥐고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에반이 따라오라고 말했다.

딱히 여기 있어도 진전이 없을 거 같기에 그를 따라가면서 어디로 가는지 물어봤다.

"여기 저택 구조를 잘 아는 거 같은데,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마도 네가 찾는 사람이 갇혀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

"제가 그런 걸 말했던가요?"

"기억이 흐릿하지만 이전의 저택에서 너 말고도 다른 한 사람이 있던 걸 기억하거든. 복도에 있던 액자 옆의 글씨를 보고 그 사람도 같이 끌려왔나 싶었는데. 내 추측이 맞았나 보네."

벽에 써져 있던 글씨만 읽고 거기까지 추리하다니.

그런 사람이 왜 수상한 장검을 향해 무작정 다가간 거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우리들은 그 대화를 끝으로 조용히 걷기만 했고, 어느새 그가 설명한 장소에 도착했다.

이곳 저택과는 다르게 회색 벽돌로 지어진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

그 통로를 두 갑옷이 수문장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수상해 보이지 않아?"

"확실히 그런 분위기가 풍기네요."

"그럼 빨리 갑옷이나 치워 보자."

내가 봤던 괴물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내 옆의 에반도 똑같으니까.

나는 뒤에서 구경만 하면 된다.

빨리 존이나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갑옷을 하나 맡아 힘껏 밀었지만 방금 로비의 검처럼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마치 벽을 미는 것처럼 미동조차 안 하니 포기하고 주저앉았다.

"아이고, 팔만 아프네."

"허억, 후우. 바닥에 고정이라도 한 건가."

"여기가 존이 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면서요."

"내가 본 곳은 여기까지고 가장 수상하니까 온 거다. …응?"

나와 함께 바닥에 앉아 있던 에반은 무언가 발견했는지 일어나려고 했다.

"왜 그래요?"

"아니 잠깐…."

갑옷의 어깨를 짚고 일어나더니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살펴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이상한 건지 물어보려고 했을 때, 그의 입이 열렸다.

"이 갑옷들, 검을 가지고 있지 않잖아?"

확실히 그건 그렇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게 어째서요?"

"그리고 로비에는 검 한 자루가 바위에 박혀 있었지."

"그럼 설마?!"

"쉬잇!"

내가 그의 추측에 놀라자 윗층의 갑옷이나 아래에 있을 괴물이 들을까 에반이 조용히 하라고 시켰다.

이번엔 확실히 내가 경솔하긴 했으니 넘기기로 하고 그가 말하길 기다렸다.

"아까 그 갑옷들이 왜 쫓아왔는지 잊었어? 시끄럽게 했다가 위에 있는 것들이 내려오면 어쩌려고."

"미안해요. 그럼 그 검은 어떻게 뽑아야 할까요?"

"어딘가에 단서가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건지 그가 손을 뻗어왔고, 나는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허잇챠.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일단 2층은 전부 찾아본 거 같으니 1층을 수색하자."

우리는 검을 뽑아낼 방법을 찾기 위해 걸어왔던 복도를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방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구멍이 나 있는 문을 발견했다.

안에는 불이 꺼져 있는 건지 멀리서 봤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에반이 먼저 다가가 구멍 안쪽을 보더니 나에게도 한번 보라며 권유했다.

"으음. *찰칵찰칵* 잠겨 있네. 나는 아무것도 안 보여서 그런데 한번 볼래?"

"잠시만요."

그가 옆으로 비키자 문으로 다가가 구멍에다가 눈을 갖다 댔다.

불이 꺼져 있는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방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눈을 굴리던 나는 무언가 노랗게 빛나는 걸 발견했다.

"어라?"

"뭔가 발견했어?"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마치 파충류의 눈처럼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보였다.

노랗게 빛나는 눈과 마주치자 감고 있던 수십 개가 넘는 눈동자가 드러나며 오직 나만을 응시했다.

마치 뱀 앞에서 얼어붙은 생쥐처럼 꼼짝도 못 하는 내 머릿속에는 점점 공포라는 감정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 공포심이 내 생존본능을 건들이자 나도 모르게 뒤로 넘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니,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내 입을 틀어막으며 움직이지도 못 하게 했고, 공포에 눈이 먼 나는 문 너머에 있던 괴물이 나와 나를 잡아먹으려 하는 줄 알았다.

"읍읍!"

윗층에 갑옷이 돌아다니는 건 생각조차 못 하고 발광하던 나는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점점 이성이 돌아왔다.

"—차려. 정신 차려."

에반은 내가 움직이지 않자 정신 차렸냐고 물었고, 고개를 끄덕이자 천천히 구속을 풀었다.

너무 날뛰어서 그런 건지 에반이 구속을 세게 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거 같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나를 에반이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괜찮냐고 질문했다.

"괜찮냐.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서 깜짝 놀랐네."

"이제는 좀 괜찮은 거 같아요."

"도대체 뭘 봤길래 그런 거야?"

"무슨 괴물이랑 눈이 마주쳤어요."

"괴물? 나는 그런 거 못 봤는데."

생각해 보면 에반이 낸 소리 때문에 괴물이 눈을 뜬 게 아닌가.

억울한 마음에 다시 한번 구멍을 들여다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시간 낭비를 할 수 없었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두 번째로 찾은 방은 문이 잠겨 있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가구만 놓여 있는 평범한 방이었다.

허탕친 것에 실망할 틈도 없이 다음 방을 찾아나선 우리는 수상한 방으로 들어왔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문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오자 밖에서 봤던 것보다 내부가 더 넓은 방이었다.

저택과 다르게 벽돌로 지어진 방은 기둥이 높은 천장을 지탱하고 있었고 안쪽으로는 커다란 원탁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원탁을 둘러싼 12개의 의자에는 검이나 활을 가진 그림자들이 앉아 있었고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 어디서 본 거 같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다지 떠오르지 않던 나는 기둥 뒤에서 몰래 염탐하다가 의자 뒤로 가려져 있던 한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왕관과 망토를 두르고는 마치 내가 왕이라고 말하는 거 같은 그림자는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집중하면서 귀를 기울였고, 야만인이니 전쟁이니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슨 성배 같은 이야기까지 들려오자 마침내 나는 방금부터 느껴졌던 기시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재에 있던 아서 왕 전설!'

로비 중앙의 바위에 박혀 있던 검과 원탁, 이것만 봐도 아서 왕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옆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엿듣던 에반에게 전설에 대해 얘기했다.

"드디어 기억났어요."

"뭐가?"

"서재에 있던 단서요. 그중에 아서 왕 전설도 있었거든요."

"확실히 분위기를 보면 그게 떠오르긴 하는데."

"저희가 무언가를 해야 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에반은 알겠다는 듯이 일어나서 원탁으로 향하려고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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