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외전 하윤이의 일상
* * *
오늘도 평온한 아침이다.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리고, 새들은 짝을 찾으며 지저귀며, 알람은 나를 깨우기 위해 진동한다.
—우우웅!
분명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어느새 최악의 곡이 되어버린 알람송을 들으며 기상하니 벌써 7시 반이다.
강화된 감각으로 오늘 아침은 무엇일까 확인해보니 무언가를 튀기듯이 굽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맡아진다.
기대를 하며 방을 나와 남은 잠을 몰아내려 간단히 세안을 하고 주방으로 가니 접시에 계란 후라이 네 개가 올려져 있었다.
그걸 따듯한 밥에다가 하나 가져와서 올리고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밥을 비비다 보니 요리를 마친 엄마와 방금 일어난 건지 안방에서 나온 아빠가 건너편에 앉는다.
"밥 먹기 전에 하유 좀 깨우고 와라."
"졸리다고 징징대는 걸 간신히 데려오면 밥이 식어있을 텐데. 먹고 하면 안돼?"
"안돼."
가족끼리 단란하게 식사하는 거 좋지.
하지만 초등학생을 지금 이 시간에 깨운다?
'오늘은 그냥 잘 일어났으면 좋겠네.'
나도 예전 같았으면 귀찮다고 밥 먹을 시간에 자다가 씻고 학교로 달려갔었는데.
요즘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중요함을 알고 이러는 중이다.
"에효."
엄마가 듣지 못하도록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하유가 자고 있을 방으로 향하니 문에 붙여둔 색종이가 보였다.
문방구에서 파는 색종이에다가 색연필로 '하유네 방'이라고 적어서는 테이프로 붙여둔 게 정말 귀엽다.
내가 어렸을 때도 이랬었나 생각하다가 이러는 와중에도 밥은 식어간다는 걸 깨달고 방문을 연다.
그러고는 침대를 바라보자 이불은 거의 바닥에 떨어진 채로 있었고 잠옷은 올라가서 배꼽이 보일 정도였다.
지금은 여름이라 더운 건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배꼽까지 드러내면 감기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떨어진 이불을 들어올려 개어두고는 잠옷을 제대로 고치고 하유의 어깨를 흔들어 일어나라고 말했다.
"하유, 일어나."
"우응…."
그러나 아무리 어깨를 흔들어봐도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혹시 어제 늦게까지 게임이라도 한 걸까?
어제 내가 순찰하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잠들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강경책을 사용할 시간인가 보다.
"안 일어나면… 볼따구가 무사하지 못할 텐데."
내가 이렇게 말하자 무언가 트라우마라도 건드린 모양인지 눈썹을 찌푸린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풀어져서는 다시 편안하게 돌아왔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 반, 기대된다는 표정 반으로 손을 점점 찹쌀떡처럼 부드럽고 탱탱한 볼을 향해 가져갔다.
초반에는 가볍게 만져대며 놀다가 점점 강도를 세게, 하지만 흔적은 남지 않을 정도로 꼬집자 점점 하유의 눈이 뜨인다.
"일어났어?"
"언니, 또 뭐해."
"나는 경고했었다?"
그러면서 반쯤 엉덩이를 걸치고 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기 전에 한마디를 남겼다.
"밥 먹기 전에 세수하면서 눈꼽도 떼고 잠도 깨고, 그러다가 엄마한테 혼난다?"
"알았어."
어려운 임무를 끝마치고 다시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드니 밥그릇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하유 깨웠지?"
"으응. 세수만 하고 금방 올거야."
시계를 보고 아직 학교 갈 시간까지 많이 남은 걸 확인하고 여유롭게 노른자의 고소한 맛을 음미한다.
그저 밥에다가 계란 후라이, 간장, 참기름만 섞었을 뿐인데 왜 이리도 맛있는 건지.
그렇게 밥을 먹다보니 뒤에서 잠시 발소리가 들리다가 물 트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내 옆에 앉은 하유를 보니 방금 일어났을 때보다 훨씬 깔끔해진 얼굴이 보였다.
반찬에 고기가 없으면 밥 안 먹는다고 난리인데 괜찮을까 생각했지만 계란 후라이 아래에 햄이—
'응?'
왜 계란간장밥이 좀 짜면서 인공적인 맛이 느껴지나 싶었는데 이래서 그랬구나.
'앞으로는 밥 먹을 때마다 투시 주문이라도 써야 하나?'
물론 엄마는 내가 하유한테 전부 줄 거라고 생각해 이렇게 한 모양이지만.
그냥 밥이나 계속 먹어야겠다.
하유는 계란은 무시하고 햄을 젓가락으로 쿡 찔러서 한입 베어물고는 진미라도 맛본 것처럼 미소짓는 게 흐뭇하게 만드는 마술이라도 부리는 거 같았다.
그걸 바라보며 밥을 먹다보니 어느새 밥그릇은 비어 있었고, 나는 소파에 가서 TV를 틀었다.
아침이라서 별로 재미있는 건 없고 뉴스나 볼까 싶어서 채널을 돌리니 마침 내가 관심있던 것이 보도되고 있었다.
몇 명이 실종되고 가스 누출 사고로 사망한 사건까지.
안방에서 양복으로 갈아 입고 나온 아빠는 그걸 보더니 요즘 마을이 흉흉하니까 집에 빨리 들어오라고 말하고는 출근했다.
'오늘은 어딜 좀 들러야 해서 곤란한데….'
이제는 전부 극복해서 눈 앞에 귀신이 지나가도 신경쓰이지 않지만 부모님의 잔소리 만큼은 언제나 괴롭다.
요즘 경찰이 순찰도 많이 돌고 친구랑 여럿이서 다니니까 이해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확인할 건 전부 확인한 나는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간단하게 샤워하고 머리를 말린 후 양치까지 하니 벌써 갈 시간이 가까워졌다.
"언니! 언제 갈 거야?"
저기 현관에서 책가방을 맨 채로 하유가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오늘 시간표를 확인하며 숙제는 없었나 떠올리다가 필통과 잡동사니만 든 가방을 어깨에 매고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옆에 있던 하유가 도도도 달려가 자동문 앞에서 펄쩍 뛰었다.
위에 있던 센서가 그제서야 인식해서 문을 열었고 밖으로 뛰쳐가는 하유를 따라 가니 기다리고 있던 민아가 있었다.
"민아 언니!"
"오, 하유야."
민아는 달려오는 하유를 껴안고는 머리를 쓰다듬다가 뒤따라 오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아, 나도 이렇게 귀여운 동생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하루만 빌려주면 안되냐?"
"성불?"
"미안."
헛소리하는 민아에게 주먹을 들어올리며 성불되고 싶냐고 묻자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 건지 금세 포기했다.
스마트폰으로 지금 시간을 확인하고 하유를 데려다 주면 조례 5분 전까지 도착하겠다 싶어서 빨리 길거리를 걸었다.
어제는 초등학교에서 뭘 했다느니 오늘은 뭘 할 거 같다니 그런 말을 듣다보니 금방 하유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도착했다.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가던 하유는 정문에 있던 선생님 같은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저 멀리 가버렸다.
학교까지 들어가는 걸 확인한 후 잠시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이게 왠 걸?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늦은 게 아닌가.
"우리 망한 거 같은데."
"왜?"
"이거 봐바."
"앗."
시간을 보자 마자 방과후에 청소할 생각에 표정이 굳어버린 민아의 손목을 붙잡고 달렸다.
주변에 지각할까봐 달려가는 학생들을 지나쳐가며 인적이 없는 지름길로 향한다.
'사실 나만 다닐 수 있는 지름길이지만.'
익숙한 민아는 내가 왼팔을 무릎 아래에다가 넣자 힘을 풀고는 내게 몸을 기댔다.
공주님 안기 포즈로 들어올렸을 때 불편하지 않도록 가방을 앞으로 맨 민아에게 탑승감은 어떠냐고 물으니 빨리 가기나 하라고 했다.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을 해 보지만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쳐다봐서 포기하고는 잠시 운동화 상태를 점검한다.
"음, 나쁘지 않네."
"이러다가 지각하면 우리 다 청소야."
"빨리 가겠습니다. 고갱님."
그리고 간단한 인식 저해 주문으로 아래에 있을 사람이 발견해도 새처럼 보이도록 만들고는 그대로 저 건너편 옥상으로 뛰었다.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던 민아도 이제는 놀이기구라도 타는 것처럼 스릴 넘친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게 그건가 싶지만 내 품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겠지.
간격이 넚은 옥상을 뛰어 가면서 학교를 향해 일직선으로 가니 예정대로 5분 전까지 반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저 멀리 앉아 있는 민아는 방금 그거 때문에 속이라도 안 좋은지 표정이 별로다.
이후로는 별거 없었다.
수업 시간엔 공부하는 척 딴 생각하고, 쉬는 시간엔 친구들이랑 놀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졸음을 몰아내며 버티다보니 어느새 종례 시간이 다가왔다.
"요즘 실종 사건이 많은데, 골목 같은데는 조심하고 빨리 집으로 가라. 오늘 청소 당번이 4조네. 4조만 남고 다 가라."
담임이 그렇게 말하자 친구들은 썰물처럼 청소 당번만 남았다.
이제 나도 갈까 싶어 가방을 메니 민아가 다가왔다.
"이제 동아리실이나 갈까?"
"미안. 오늘은 일찍 갈 곳이 있어서."
"실종 사건이랑 관련있는 거야?"
"아마도?"
민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쪽 복도로 향했다.
그럼 가볼까.
나는 학교를 나와 시내 외곽에 있는 한 건물로 향했다.
새하얀 건물에 스테인드 글라스,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있는 한마디로 교회였다.
문을 열자 보이는 연설대와 양옆으로 놓인 기다란 의자.
거기에 듬성듬성 앉아 있는 사람들을 지나 목사가 있을 방으로 들어가니 중년의 남성이 나를 보고는 당황스러워 한다.
"어, 여, 여긴 어떤 일로?"
"일단 지하실로 가지?"
살벌한 목소리에 움찔거린 목사가 무언가를 조작하더니 책장이 옆으로 스르르 움직였다.
그렇게 드러난 것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어떤 목적을 위해 방음이 되어있는 곳으로 내려오자 미래라도 본 것처럼 목사가 눈을 감고는 팔을 들어올렸다.
"히익! 제발 저희 교단은 봐주세요!"
"나는 아무 말도 안했는데."
"엇."
"그럼 내가 다른 거에 관심이 쏠린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볼까?"
목사.
아니, 목사처럼 입은 녀석은 눈치를 보다가 내가 주먹을 들어올리자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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