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외전 하윤이의 일상
* * *
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그저 홀로 쓸쓸히 거리를 밝히는 전등 아래를 걷는다.
도대체 뭘 하는지 아직까지 드문드문 불이 켜져 있는 집을 훑어보다가 다시 갈 길을 간다.
어째서 밤 늦게 돌아다니면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걸까.
물론 이렇게 고양된 기분 때문에 순찰을 망칠 수는 없지만.
경비실을 지나 정문을 나오니 도로에는 가끔씩 차가 한 대 지나갈 뿐 적막만이 가득했다.
납치된 사람은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이었으니 모두 불안에 떨고 있겠지.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 장사를 일찍 끝낸 가게들이 보였지만 아직 꺼지지 않은 간판이 거리를 미약하게나마 밝히고 있었다.
눈을 감고 청각에 집중해서 소리를 들어봐도 발소리나 인기척이 들리기는커녕 저기 가게 안에 켜져 있는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낮에 교회 지하에서 했던 것처럼은 하지 못해 범위는 넓지 않지만 마력의 파동을 퍼뜨려 봐도 전혀 느껴지는 건 없었다.
먹이를 찾으러 쥐가 돌아다니거나 전등 빛에 이끌린 날벌레의 날개짓 정도밖에 느껴지는 게 없다.
사람 크기 정도의 생명체는 없으니 예정대로 공원으로 향하자.
나는 양팔에서 주문으로 촉수를 뽑아내 거미 인간처럼 건물을 타고 다니며 이동하니 순식간에 도착했다.
중간에 기척이 느껴지긴 했지만 마력도 얼마 없는 게 교단 쪽의 사람일 테니 무시하고 공원을 살펴보니 방금 전처럼 수상한 흔적은 없었다.
풀이나 나무에 붙은 채로 제 짝을 찾기 위해 울고 있는 벌레 소리만 들릴 뿐.
범인은 현장에 돌아오는 법이니 계속 기다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 와중에도 피해자는 생기니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마침 만월이니 감시용 주문이라도 크게 써볼까 생각했지만 허점이 많은 주문이라 포기하고 공원을 나가려고 했다.
"저는 지금 세 번째 사람이 납치된 공원에 찾아왔습니다!"
'응?'
하지만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기척을 감추고 풀숲 사이로 숨어야만 했다.
손전등으로 벤치를 비추면서 셀카봉에 달린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뭐라 말하는 게 아무래도 스트리머인 모양이다.
"역시 밤에 찾아오니까 무섭네요."
녀석은 쓰레기통을 뒤져 보면서 무언가를 찾아보더니 포기하고 굽혔던 허리를 다시 폈다.
나도 가끔 할 일이 없을 때 방송을 보는데 누가 미션이라도 건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TTS가 뭐라고 말했다.
암만 봐도 도네이션이겠지.
'일단 저 사람을 미끼로 삼아서 기다려볼까?'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도네이션도 터지는 걸 보면 시청자도 많이 있어 보이는데.
과연 흑마법사가 저런 사람을 노릴까.
나였다면… 단숨에 카메라를 파괴하고 제압했겠지.
내가 쫓는 흑마법사라면 제압할 필요도 없이 그냥 죽이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할 터.
흑마법사 하나 잡자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꼴은 볼 수 없으니 계속 지켜 보기나 할까.
그 스트리머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미션을 받은 건지 손전등을 잠시 끄고 다니거나 다른 쓰레기통도 뒤지거나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흑마법사는 이곳을 찾아오지 않았고 저기서 방송을 하고 있던 스트리머도 베터리가 거의 없는 건지 방종하겠다며 이상한 동작을 했다.
그러고는 메고 있던 가방에다가 셀카봉이라던지 방송 기기들을 전부 넣고 공원을 떠나려고 했다.
숨소리 하나 없이 기척을 죽이고 감시하던 나도 그 녀석을 쫓아가기 위해 주문으로 은신하고 뒤를 밟았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새 시내까지 도착한 그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갔다.
여기 근처에 친구가 다니는 학원인가 공부방이 있다는 걸 떠올리며 마찬가지로 오른쪽으로 꺾으니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
그리고 내가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을 정도의 미약한 마력의 유동.
내 은신을 꿰뚫어 보고 뒤에서 뻗어오는 손을 순식간에 뒤돌아서 잡아낸다.
빼빼 말라서는 완전히 미라같이 보이는 시커먼 팔.
그걸 부러뜨릴 정도로 힘을 주지만 무슨 술수라도 부린 건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무슨 주문이지? 고정? 아니면 외국에서 온 마법?'
판단을 마치기도 전에 휘둘러져 오는 반대쪽 팔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 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완성된 여러 개의 주문이 나를 덥쳤다.
녹색의 불꽃이 소용돌이 치면서 마치 마상창처럼 나를 향해 찔러 온다.
그게 다섯 개.
'불꽃의 색깔을 보면 부패의 불길인가. 거기에다가 바람 계열 주문으로 명중률을 높였네.'
하지만 이 정도 주문은 과거 교단을 부술 때 몇 번이나 상대해봤다.
주먹에 마력 장막을 둘러 불꽃의 창을 쳐 내거나 부수자 가만히 구경하는 흑마법사가 보였다.
"어지간히도 자신이 있나 보지?"
"끌끌끌. 그 정도 주문도 막지 못하면 흑마법사 자격은 없지."
아무리 봐도 죽일 생각으로 날렸다가 막아 내자 허세를 부리는 거 같은데.
그나저나 저 멀리서 방관하는 교단 녀석의 기척이 사라졌다.
도움을 받는 건 기대하면 안 되겠지.
오히려 내가 이기고 나서 뒤통수를 치려 들지도 모르니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을 때 흑마법사가 선공을 했다.
입에선 주문을, 손으로는 수인을, 그리고 그의 주변에 마력의 유동까지 느껴지는 게 참 욕심도 많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두고 볼 수 만은 없지.'
보도블록이 깨지는 건 신경 쓰지 않고 다리에 힘을 줘 도약한다.
어차피 내가 쳐 낸 불꽃의 창 덕분에 여러 구조물이 불타거나 녹았으니까.
지금은 피해를 최소화할 시간이다.
녀석의 앞에 도달한 나는 주문으로 보호한 주먹을 녀석의 안면에 죽일 각오로 휘둘렀다.
그러자 펼쳐진 이중 보호막을 단번에 깨부수고 다시 한번 휘두른다.
녀석은 뒤로 물러났지만 손에 주먹이 스쳐 맺고 있던 수인도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저 입을 닥치게 하는 방법은—'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먼저 완성된 주문이 나를 집어삼키는 게 더 빨랐다.
녀석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입에 빠진 나에게 다가오는 뾰족한 가시가 달린 촉수를 품에 있던 단검으로 베어내며 발판을 만들어 올라가보려 하지만 점점 입이 닫히고 있었다.
저 입이 닫힌다면 분명 피곤해질 거라고 이성 저 건너편에 잠잠히 있던 본능이 소리쳤고, 나는 대책을 강구했다.
'올라가 봤자 늦는다면 탈출구를 만들어야지.'
아껴두었던 마력을 전부 단검에 쏟아부어 앞에다가 참격을 날린다.
그러자 검은 액체가 푸확하고 튀면서 역겨운 냄새를 풍기지만 참아내며 몇 번이고 계속 날려보낸다.
위에서 나를 비추는 달빛이 점점 사라지는 것에 초조함을 느끼며 모든 마력을 때려 박아 최후의 참격을 내지르자 휘두른 모양 그대로 벽에 틈이 생겼다.
밟고 있던 마력 발판이 사라지기 전에 재빠르게 도약하자 나는 괴상한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오랜만에 힘 좀 쓴 거 같네."
"무슨 괴물인가…!"
지상에 안전히 착지한 나는 흑마법사가 아무것도 못하게 목을 부여잡고 살짝 들어 올리며 뒷편에 붕괴하고 있는 나를 집어삼킨 괴물을 살펴봤다.
어지간한 건물 정도 크기의 원기둥 형태의 괴물.
저게 생명체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신 님께 받은 신화 괴물 백과사전에서는 본 적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녀석이 마력으로 만들어냈거나 새로 창조한 건가?
'후자는 역시 터무니 없는 이야기겠지.'
나는 마력을 움직이려는 기미가 보일 때마다 녀석의 목을 잡은 손에다가 살짝씩 힘을 더했고, 고통에 집중이 풀린 건지 형태도 갖추지 못한 마력은 그대로 공기 중에 퍼져나갔다.
이대로 목을 부러뜨려서 사건을 종결할까생각하던 내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윤아…?"
"어?"
내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가방을 멘 민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난 게 당황스러워 손에서 약간 힘이 빠지자 교활한 흑마법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마력의 유동을 느끼고 녀석을 죽일 생각으로 손에다가 힘을 줬지만 이미 늦었다.
"하윤, 아?"
그리고 방심의 대가는 내 친구였다.
녀석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기다란 뱀에게 목이 물린 민아는 내게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손에서 느껴지는여고생 한 명분의 늘어난 무게.
등교하다가 지각할 거 같으면 언제나 공주님 안기로 데려다주었기 때문에 그걸로 놀릴 때도 있었는데.
이 새끼가 내 친구를—
잘못하면 터질까 봐 하고 있던 힘 조절을 그만두고 전력으로 이 개자식의 면상을 강타한다.
—콰앙!
너무 흥분해서 보호 주문조차 걸지 않은 주먹에는 상처가 나 핏방울이 맺혔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저 흙먼지 너머에 있을 녀석에게 말한다.
"살아 있는 거 알아. 이 개새끼야."
주먹에 느껴진 감촉은 가죽을 터뜨리고 뼈를 부수는 감촉이 아닌 마치 일전에 신 님의 화신을 때린 느낌이었다.
"클클. 하마터면 죽을 뻔했군. 마침 제물이 하나 와서 다행이었어."
"…제물?"
심장은 파열할 듯이 쿵쿵 뛰며 마음속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저 새끼를 찢어 죽이자 소리치지만 냉철한 이성은 방금 느꼈던 무게의 증가와 녀석의 발언을 통해 능력을 추론하고 있었다.
"아하. 그래서 처음에 잡아당겼을 때 그랬구나."
"호오, 내 비밀이라도 알아차린 건가?"
"너, 그 몸 자체가 제단인 모양이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