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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59화 (59/154)

〈 59화 〉 외전 ­ 하윤이의 일상

* * *

처음에 저 녀석의 팔을 잡았을 때 땅에 못 박힌 것처럼 끌어당기지 못한 이유.

주문이라도 사용한 걸까 생각했었지만 방금 그림자에서 나온 뱀으로 민아를 흡수한 걸 보고 알았다.

어떤 술수를 부린 지는 몰라도 신체 자체를 제단으로 개조한 거일 터.

나와 싸우면서 마지막에 일으켰던 대마법은 아무리 나라도 주문을 몇 번 외운다고 할 수 있는 스케일이 아니다.

그것에 드는 마력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커다란 의식장과 제물들이 필요하겠지.

처음엔 팔을 잡아당겨도 꿈쩍도 않던 걸 대마법을 쓰고 나서는 간단히 들어 올리고, 민아를 흡수하고 난 후에는 무게가 약간 늘어난 걸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그렇다면 저 녀석이 주문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민아가 살아 있을 확률이 있다는 건데….

'어떻게 제압해서 뱉어내게 해야 하지?'

눈을 찌푸리면서 앞에서 나를 경계하는 흑마법사를 천천히 살펴본다.

빼빼 마른 몸에다가 주름진 얼굴에 희게 센 머리카락까지.

생긴 건 무슨 관짝에서 금방 일어난 미라처럼 생겼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하다니.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딴 건 나중에 알아봐도 상관없겠지.'

저 녀석을 들어 올렸을 때는 마치 깃털처럼 가벼웠으니 그동안 납치해 온 희생자들은 모두 마지막 대마법에 바쳐진 것이 분명하다.

고작 사람 한 명으로 펼칠 수 있는 마법은 위력적이지 못하니 내 시야를 가리고 재빠르게 도망치려고 하겠지.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주문을 외우지 못하도록 성대를 찢고, 수인을 맺지 못하도록 손을 부수고, 주변의 마력마저 장악한다면 완벽한 제압일 터…이지만.

방금 그 괴물의 뱃속에서 탈출하느라 마력을 대부분 소진했다.

그걸 저 녀석도 알고 있으니 서로 대치하면서 눈치를 보고 있는 거겠지.

비장의 수라도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미라 새끼가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대치만 하고 있으면 금방 아침이 찾아오겠군. 어차피 계속 싸워 봤자 손해일 텐데 여기서 그만두는 건 어떤가?"

"뭐래 이 새끼가. 우리 마을에서 사고쳐 놓고는 죽을 거 같으니까 이제 와서 봐달라고?"

"내가 방금 흡수한 여학생, 소중한 사람인 거 같은데."

녀석의 입에서 나온 민아 이야기에 무의식적으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반응을 보아하니 내 생각이 맞는 모양이군. 만약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고 맹세한다면 풀어 주도록 하지."

"맹세?"

"그래. 네 녀석 정도의 강자라면 당연히 섬기는 존재가 있을 터."

"…하!"

봉인에 가려져 있던 문장이 내 의지에 따라 점점 깨어나기 시작했다.

"너, 역린이라고 알아?"

"용의 약점이던가. 그런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지?"

"역린을 건든 사람은 분노한 용에게 반드시 죽어. 세상 끝까지 도망치더라도. 그리고 넌 내 역린을 건들였어."

마력을 움직일 때마다 옷을 여러 겹 껴입은 것처럼 갑갑하던 느낌이 봉인이 풀려나면서 사라진다.

그리고 봉인을 이루던 마력이 신체 곳곳에 흘러가며 잠자고 있던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우는 느낌이 들었다.

봉인 아래에 감춰져 있던 기억이 점점 깨어나며 머리를 어지럽혔지만 눈앞의 목표에만 집중한다.

"이, 이게 정녕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마력인가…!"

"아아—, 이 상쾌하고도 후련한 감각. 오랜만이네."

밀물처럼 밀려오는 경험과 기억의 파도 속에서 쓸모 있는 것들을 골라온다.

어떻게 해야 죽이지 않고 성대만 베어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상대가 주문조차 사용하지 못하도록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는지.

'그럼 어떤 거부터 시작할까.'

녀석이 눈을 깜빡일 때를 노려 쏜살같이 달려든다.

평상시와는 다른 몸 상태에 실수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잠들어 있던 경험은 엄청난 신체 능력의 변화에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줬다.

귀찮아서 그냥 깨부수던 보호막도 간섭하여 해제하고, 굵은 나뭇가지 같은 목을 잡아 마력을 집어넣어 성대를 헤집는다.

마치 요리 준비할 때 고기를 써는 거 같은 감촉이 느껴지면서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녀석은 생각지도 못한 고통에 수인을 맺을 생각은 커녕 양손으로 내 손목을 붙잡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쪽 손에 쥐어진 단검을 옆에다가 휘두른다.

단검에 새겨져 있던 검게 빛나던 문장이 공간을 부여잡고 스르르 갈라서는 건너편의 모습을 비춘다.

그 안쪽으로 들고 있던 새끼를 던져 넣고는 나도 같이 들어간다.

그러자 공간을 가르고 있던 틈이 스르르 닫히면서 사거리에는 전투의 흔적만이 남게 되었다.

***

"켈록, 커헉."

아직까지도 고통이 가시지 않은 건지 목을 부여잡고는 기침하고 있는 녀석이 보인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나를 제외하면 누구도 마력을 움직일 수 없으니까 상관없겠지.

'그래도 화풀이로 양손은 잘라버릴까.'

여기서 피를 봐도 상관없을까 고개를 들어 올리자 잠들어 있는 건지 눈을 감고 있는 신 님이 보였다.

원래 절차라면 단검에 새겨진 문장과 반응해서 영혼만이 이곳에 도달해야만 하겠지만 그걸 반대로 응용해서 공간을 찢고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단검은 엄청 옛날에 내 선조께서 신 님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다고 그랬지.

그럼 저 새끼도 짐승이나 마찬가지인 새끼니까 이걸로 베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아니면 짐승 미만이라서 오히려 싫어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온 흑마법사가 정신 차린 건지 무릎을 꿇고 양손을 싹싹 빌면서 내게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쇼…!"

"흠?"

모가지가 얇아 성대 구조가 달라서 그런가, 아니면 신체 내부가 일반인과 다른 건가.

불쾌하게 바람 새는 소리만 빼면 발음은 정확하게 또박또박 들린다.

뭐, 그래도 벌은 받아야겠지만.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면서 내게 용서를 바라는 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뚜벅뚜벅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과연 이 발소리가 어떻게 들릴까.

죽음을 가져다줄 사신의 발소리?

아니면 무엇이든 용서할 천사의 발소리?

어느새 그의 앞까지 도달한 나는 싹싹 빌고 있던 손을 가볍게 붙잡아둔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니 마치 내게 용서라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녀석도 똑같이 부들부들 입꼬리를 최대한 들어 올리며 미소 짓는 게 참으로 역겹다.

어쩌나, 천사는 날개가 있어서 발소리 같은 건 내지 않는데.

—우드득.

손뼈가 완전히 가루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꽉 쥐어 주니 억지로 짓던 미소가 일그러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끄아악—!"

손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해질 때까지 주무르다가 놓아주니 손의 형태는 어딜 봐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뼈가 피부를 찢고 나오지 않도록 조절하긴 했지만 빠르게 조치하지 않으면 괴사해서 손을 절단할 수밖에는 없을 거다.

"그럼 이제 민아를 되돌려줄까?"

"끄으으, 크학."

"야. 정신 안 차리냐?"

이제는 눈이 뒤집혀서는 검은자가 보이지 않는 게 기절한 모양이다.

이럴 때는 뺨을 때려야지.

—짜악!

고개가 완전히 꺾일 정도로 뺨을 한 대 때린다.

그러나 고통스런 신음만 약하게 내기만 하고 정신은 차리지 못했다.

일어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가며 뺨을 때리니 입에서 누런 게 튀어나왔다.

"으엑. 너무 때렸나? 어금니가 튀어나왔네."

이러다간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니 주문으로 깨워야겠다.

검지 손가락을 녀석의 이마에다가 갖다 대고 주문을 그려 낸다.

주문 : 정신 충격

"일어나."

"커헉!"

아마도 머리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할 거다.

참고로 이건 이전에 그 주교에게 실험하고 인증받은 적이 있으니 믿을 만한 정보다.

"손이, 손이!"

"시끄러워."

내가 이렇게 말하자 흐물흐물한 손으로 입을 틀어 막으며 이리저리 눈을 굴려댔다.

조금만 더 시끄럽게 했으면 목을 날려 버렸을 텐데 눈치가 좋네.

"흐음, 과연 그런 건가."

이제 슬슬 문장이 완전히 깨어난 건지 보이지 않던 것도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녀석의 육체 안에 뼈로 세워진 기둥과 제단, 그리고 그 위에 누워 있는 민아가 잠든 것인지 눈을 감고 있었다.

"이제 너는 쓸모가 없어졌네."

"네? 그, 그게 무슨…."

"이런 거지."

나는 다시 한번 목을 잡고 들어 올려서 녀석의 뱃가죽을 향해 손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느껴지는 건 가죽을 찢고 근육을 헤집는 느낌이 아닌 텅 빈 공간에다가 손을 집어넣은 느낌이었다.

더듬거리며 조금 더 깊숙이 팔을 넣었다가 느껴지는 뼈 기둥에 조금만 더 옆으로 향하니 자그마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걸 잡아당기자 잠들어 있는 민아를 구출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걸 무시하고 민아의 어깨를 흔들며 어떻게든 깨우려고 했지만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민아는 이제 영원히 잠들었으니까.

분명 이전에도 일어났던 일인데 어째서 눈물은 마르지도 않고 계속 나는 걸까.

눈에서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가 턱에서 모여 떨어진다.

그렇게 떨어진 눈물이 우연히도 민아의 감고 있는 눈 부근에 떨어져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내가 슬퍼하는 것에 자기도 슬퍼하는 것처럼.

저기 기어가며 도망치는 녀석은 신경 쓰지도 않고 품 안에 안겨 있는 민아에게 작게 속삭였다.

"다음번엔, 다음번에는 반드시 구해낼게. 머리가 아프다고 무작정 봉인만 해 두는 게 아니었는데…."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뺨을 쓰다듬어 주다 보니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요동치지만 무시하고 계속 쓰다듬는다.

"으아악!"

하지만 시끄럽게 하는 훼방꾼 때문에 고개를 돌리니 무언가에 붙잡힌 듯이 공중에 떠 있는 흑마법사 녀석이 보였다.

"흠, 어째서 침입자가 있나 했더니 하윤이 너였구나."

"도대체, 도대체 누구냐!"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한 녀석은 내 옆에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의 정체를 찾으려고 했다.

"이것도 알아채지 못하다니. 삼류도 못 되겠네."

그렇게 말하며 내가 고개를 올리자 녀석도 나를 따라 고개를 올리더니 표정이 굳다 못해 완전히 파리해졌다.

"신 님."

"아아, 그래."

"잠깐! 나는 그저—"

—푸확!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녀석은 많이 불어서 터진 풍선처럼 사방팔방으로 내장을 흩뿌리며 죽었다.

그리고 시간은 되감겨지며 나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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