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61화 (61/154)

〈 61화 〉 역병

* * *

역병은 내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퍼졌다.

감염된 쥐는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다른 동족들에게 균을 옮겼고, 폭탄이 된 것도 모른 채 배를 채우기 위해 창고에서 곡식을 훔쳐먹던 쥐는 결국 사냥개에게 물려 죽고 말았다.

쥐의 사체를 처리하며 개의 머리를 쓰다듬던 주인은 다음날 신체의 말단이 검게 물든 채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재앙의 시작이었다.

시체를 발견한 두 명의 주민들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체를 옮겼고, 다음날 세 명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곡식과 여러 교역품을 실은 선박은 역병의 근원이 숨어든 것도 모른 채로 다른 지역으로 향했고 도시는 순식간에 지옥이 됐다.

쥐에 붙어 있던 벼룩은 인간의 피를 빨며 간단하게 균을 옮겼고, 심지어 황제마저 감염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생각보다 강한 역병 때문에 매일 같이 시체로 산이 쌓이며 하루에 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것에 당황한 나는 만만해 보이는 귀족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어떤 귀족이 역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때는 이미 귀족이 죽은 이후였고, 거리에 있는 시민마저도 점점 줄어들어갔기에 들려오는 소문도 함께 줄어들었다.

'원래 계획이라면 간단하게 귀족부터 시작했을 텐데 어쩔 수 없나.'

건강한 귀족을 건들 수도 없고, 강제로 감염시켜도 고민하는 사이에 죽을 테니.

신포도라고 생각했던 황제를 한번 건드려 봐야겠다.

현대에도 몇몇 왕조는 이어져오니 부디 운이 좋길 바래야겠다.

나는 황제가 간병 중인 곳으로 향했다.

호화로운 침대에 누운 채로 잠든 것인지 눈을 감은 그의 혈색은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보였다.

금방이라도 사신이 찾아와 영혼을 데려갈 거 같은데—

'어라.'

—뚫려 있는 창 너머로 전형적인 서향의 사신처럼 생긴 낫을 들고 검은 로브를 걸친 해골이 기척도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텅 비어 있는 눈구멍이 이쪽을 바라봤고 움직임을 멈췄다.

'이런. 내가 늦었으면 정말로 죽었을 운명인 건가.'

일단 의식이라도 깨울 겸으로 약간만 치유해 둘까.

나는 검지로 이마를 쿡 건드려서 하루 정도 더 버틸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러면서 반대쪽 손으로 사신으로 보이는 녀석에게 손을 휘휘 저으면서 저리 가라고 했다.

그러자 녀석은 시무룩해 하며 뒤로 돌아섰다.

'바깥에도 일거리는 많을 텐데. 그나저나 괴력난신은 정말 신기하네.'

상상의 산물일 터인 존재가 저렇게 버젓이 돌아다닌다니.

이렇게 내가 사신을 내쫓는 동안 치유가 완료된 황제는 천천히 눈을 떴다.

"콜록, 콜록콜록."

"폐하!"

밖에 있던 사람은 기침 소리를 듣자 급히 방으로 들어오더니 황제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둘이서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가만히 지켜 보기만 했더니 누워 있던 황제의 시선이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를 끝마친 그가 약을 가져오겠다면서 밖으로 나가자 내게 말을 걸었다.

"그대는… 누군가? 검은 로브를 보면 사신인가?"

"내가 그렇게 보이나?"

"아니, 사신이 우스꽝스러운 새가면을 쓰고 다닐리가 없지."

클클 거리던 그의 갈라진 웃음소리는 금방 기침 소리로 바뀌었다.

"클클, 쿨럭. 그래서 정체가 뭐지. 역병을 퍼뜨린 흑마법사인가?"

"흑마법사와 비교하면 너무 섭섭하군. 그저 대가를 받고 치료해 주는 수수께끼의 의사라고 해 두지."

"받아 갈 대가는 있나? 무역은 물론이고 농업과 공업도 생산량이 감소했어. 전쟁 중이었는데 소집할 병력도 없지. 다행인 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거로군."

"그렇다면 대가는 후대에게서 받기로 하지. 상당히 명군인 거 같은데 자손도 비슷하겠지."

"검은 죽음에서 날 살려내다니. 도대체 어떤 대가를 받아 갈지 이제는 두렵기까지 하군."

나는 그의 심장 부근에다가 손을 갖다 대고 온몸에 퍼져 있는 균을 회수했다.

지금 상태로는 면역력이 약해서 작은 상처에도 쉽게 죽을 수 있을 테니 어느 정도 회복시키며 그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다.

"항상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죽음의 고비를 간신히 넘긴 그는 내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

건강하게 복귀한 그가 제대로 치세해서 역병의 피해를 복구하나 싶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역병으로 인한 타격이 엄청난 것인지 후대에 가서야 간신히 복구하나 싶었지만 어떤 군인의 반역으로 인해 나라가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렸었다.

그로 인해 황제가 남긴 말도 잊혀져서 내가 받기로 한 대가도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덕분에 허탈해진 나는 그 원흉의 영혼을 가지고 놀다가 어딘가에 버려 두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신이 알아서 가져가겠지.

결국, 나는 시간을 돌려가며 다시 역병을 퍼뜨릴 만한 시간대를 찾기 시작했다.

"흠?"

그러다가 발견한 시간대는 중세.

내가 역병을 퍼뜨린 날로부터 약 천 년 정도 지난 시간대였다.

'시간을 제대로 안 봐서 몰랐는데 고대… 아니, 고대가 거의 끝나가는 시대였나보군.'

생활 양식으로부터 알아차릴 수도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아 몰랐다.

로마 제국이 당당히 군림하고 있을 때, 그로부터 약 천 년이 지날 때까지 역병은 여러 동물을 거쳐오다가 다시 인간들에게 되돌아왔다.

어떤 자들은 신벌이라면서 십자가를 메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거리를 나돌았고, 귀족이 부른 의사는 피를 빼야 한다면서 결국 사람을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만들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시대에 다시 한번 나타난 나는 이번에야말로 찾겠다고 다짐하며 마을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어떤 마을은 공터에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서 불태워진 채로 있었고, 어떤 마을은 폭도와 약탈꾼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떤 도시는 의사들의 격리 조치와 환자의 물건들을 모조리 태워 버리는 등 여러 가지 조치로 안전한 곳도 있었다.

그렇게 환자를 하나하나 줄여나가며 안전해지는 듯 싶었으나—

'영지민도 그동안 본 곳들에 비해 대부분 살아 있고 귀족도 멀쩡해 보이네. 그렇다면 내가 나서야겠군.'

아직 미생물도 발견하지 못한 시대니 자연 치유나 약초 같은 것으로 밖에 치료 방법은 없겠지.

나는 황제에게서 회수한 것을 꺼냈다.

과거의 역병이라 지금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거다.

지금 나도는 역병은 천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과거보다 치사율이 낮아졌을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 죽지만 말이지.

목표는— 장차 가문을 이끌어 갈 장남으로 할까.

이외에 다른 아들이나 서자도 없고, 데릴사위를 데려오기엔 역병이 두려울 터.

거대한 저택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살펴본다.

딱 봐도 자기가 높은 사람이라고 어필하는 듯한 의복을 찾아보니 고급스러운 의복을 입은 청년이 보였다.

내 안목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 잠시 동안 따라다녔지만 금세 이곳의 장남인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에게 역병이 담긴 날벌레를 날려 보낸다.

목 뒷부분에 안착한 벌레가 물자 따끔한 건지 물린 부위를 손으로 매만지며 뒤를 돌아봤다.

그래 봤자 보이는 사람은 없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은 피로감을 느꼈는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며칠 후 잠복기를 지나 활동을 시작한 질병으로 인해 그에게 고열과 두통이 찾아왔다.

이를 알아차린 그의 아버지는 빠르게 의사를 불렀고, 영지에서 활동하던 의사 중 한 명이 저택을 방문했다.

천으로 입과 코가 막히도록 묶어둔 의사는 빠르게 격리시키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눈앞의 사람이 귀족이다 보니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권력 앞에 무릎 꿇은 의사는 최대한 약재를 구해 달라면서 장남을 검진했다.

의외로 감기일 수도 있다며 행복 회로를 돌리던 의사는 절망했고, 그날을 기점으로 간병이 시작됐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신비한 이미지의 동방으로부터 구해온 약재로도 낫지 않자 그의 아버지는 물론 의사도 더욱이 다급해졌다.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이제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들을 옆에서 제대로 지켜 주지 못하는 것에 자책하고 있었다.

의사는 언제 목이 떨어질까 두려워하고 있고.

그럴 때 내가 침대에 누워 있는 장남의 앞에 나타났다.

간만에 본래의 용도로 사용된 지팡이가 바닥에 부딪치면서 소리를 내자 기척을 느낀 건지 청년이 고개를 돌렸다.

병 때문에 식욕이 없는 건지, 들어와도 금세 나가 버리는 건지 피골이 상접한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타깝지 않나. 이렇게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다니."

"넌… 누구?"

"글쎄. 네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러 온 천사? 혹은 널 치유하고 대가를 받아 갈 악마?"

"가급적이면… 후자인 편이 좋겠는, 쿨럭쿨럭!"

대화할 때 불편하니 목 부분은 약간 치유해둘까.

그러면 녀석도 날 믿을 테고.

"잠시만 기다리거라."

내가 손을 그의 목에다가 올려 두자 약간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급소이기도 하니 그의 반응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대로 마력을 불어넣어 약간이지만 치유시키자 그의 표정에서 놀라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 이게 무슨?"

"그럼 이제는 대화할 마음이 들었나?"

내가 그리 말하자 그의 눈에서 두려움과 기대감이 느껴졌다.

"당신은 정말로 악마인가요?"

"오, 설마 정말로 방금 그 말을 믿은 건가. 당연히 장난이지."

"예?"

"하지만 대가를 받아 간다는 것은 진실일세."

그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영혼이라도 받아 간다고 생각한 건지 몸을 떨고 있었다.

내가 정말 악마처럼 생겼나?

"대가가 영혼이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그건 지금부터 차차 생각해야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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