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비밀 결사
* * *
내 말이 그렇게나 충격적이었나.
아무리 그래도 지팡이를 떨어뜨리다니.
"의심스럽군. 백작이나 되는 사람이 너처럼 수상해 보이는 사람을 후원한다는 것이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백작의 작위를 물려 받지는 않았네."
"그렇다면 백작의 아들을 건드렸다는 건가? 미쳤군!"
"건드린 게 아니고 정당하게 거래를 했다니까."
내가 설득해 보려고 해도 눈앞의 마법사는 전혀 듣지 않으며 방금 충격으로 떨어뜨린 지팡이를 다시 들었다.
그러고는 금방이라도 마법을 쓸 것처럼 지팡이를 겨누면서 빨리 나가라는 듯이 장막 바깥을 향해 가리켰다.
역시 이쪽에서 줄을 쥐고 있지 않은 이상 설득은 귀찮은 일이다.
"에휴, 어쩔 수 없군."
"무력 행사라도 할 거면 각오해야 할걸세."
"각오? 푸하하하하!"
손가락으로 살짝만 짓눌러도 벌레처럼 터져 죽을 녀석이 그렇게 말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하하—. 흐으. 안에 들어 있지도 않은 내장이 아프다고 느껴질 정도로 웃은 적은 처음인 거 같구나."
"도대체 뭐가 웃긴 거지? 너는 이 근방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가 나여서 찾아온 게 아닌가?"
"그건 맞지. 하지만—"
옷의 틈새에서 벌레들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오며 검은 안개처럼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비교할걸 비교해야 하지 않겠나?"
"윽, 이런. 인간도 아니었단 말인가!"
마법사는 주문을 외우며 지팡이를 휘둘러 이쪽으로 불덩이를 날려 보냈다.
나는 지팡이에 새겨져 있던 방어 주문으로 그걸 막아 냈지만 뒤따라 오는 여러 주문이 계속해서 보호막에 작렬했다.
이대로면 마지막으로 해 보려는 설득이 불가능할 거 같아 녀석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잠시 증식시켜 두었던 벌레들을 녀석에게 날려 보냈다.
결사단의 일원이 될 사람이니 죽일 수는 없으나 위협용으로는 충분하겠지.
주변을 날아다니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날갯짓을 하는 소리에 한눈 팔린 녀석은 나를 향해 있던 지팡이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처음 만난 마법사가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 다행이다.
이렇게 밖에서는 눈에 띄지 않도록 장막까지 펼쳐두었으니.
보호막을 해제한 나는 그 사이에 벌레들을 모두 처리한 그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정말이지 보면 볼 수록 탐이 나는군."
"그렇게 말해도 난 네가 말한 그곳엔 속하지 않을 거다."
최후의 수단까지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네는 이 구절을 아는가? 이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었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도중 그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들여다 보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흐음, 깊은 뜻이 담긴 거 같군.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지."
"뭐, 나는 그 괴물과 강제로 싸우게 할 거라는 소리다."
내 뒤쪽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반대편에 서 있던 마법사는 그걸 보더니 다시 한번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방금처럼 황당해하는 눈빛이 아닌 텅 빈 눈에서는 어떠한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괴상한 지식 때문에 몸조차 가누기도 힘들겠지.
이제 녀석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그 지식을 받아들이고 나를 섬기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뇌가 익어서 죽거나.
다행히도 전자에 속한 그는 무릎을 꿇다 못해 내게 기어와서는 발등에다가 입을 맞췄다.
내가 이렇게 될 거 같아서 최대한 마지막 수단으로 남겼는데 말이지.
아까의 신뢰하지 못한다는 눈빛은 어디 가고 내가 죽으라고 말하면 바로 목숨을 끊을 것처럼 나를 열렬하게 쳐다보았다.
열성적인 광신도를 얻은 것에 기뻐해야 하는 걸까.
"이봐."
"예!"
"그래서 내 제안은—"
"하겠습니다!"
"음, 좋군."
너무 효과가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하며 잠시 뒤를 돌아 경치를 보고 있으니 나무집에서 우당탕하고 소리가 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문을 열어 보니 가방이라기보다는 가죽 주머니처럼 생긴 것에다가 양피지와 여러 물건들을 넣고 있는 마법사였다.
나를 따라오기 위해 짐이라도 싸는 모양인 거 같은데.
"지금 뭐 하는 게냐."
"그 단체를 설립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비밀 결사 말인가?"
"예. 백작의 후원도 받으니 이단 심문관이 찾아올지도 모를 이런 산골짜기보다는 안전하기도 할 테고. 무엇보다도 당신을 가까이서 섬기고 싶습니다."
"어, 음, 그렇군."
나는 짐을 싸고 있는 녀석을 지나쳐서 책상 위에 난잡하게 놓여 있는 양피지를 하나 살펴봤다.
본 적도 없는 마법 이론으로 수식이 적혀 있는 것에 오랬동안 들여다보다가 다시 내려 두니 양피지를 차곡차곡 정리하던 그가 설명했다.
"아, 그건 동양에서 들여온 결계에 관한 이론을 필사해 둔 것입니다. 저희들은 상상도 못한 이론을 만들어내다니 정말로 신비로운 곳이 아니겠습니까?"
"흥미롭군."
"제가 배우던 마법과 결합해 근방의 산과 숲에다가 깔아두었죠. 덕분에 그동안 귀찮게 하던 이단 심문관과 흑마법사들도 만난 적이 거의 없었죠."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마법이 나의 흥미를 일깨웠다.
'목적이 없으면 결사단이 아니니 일단 이걸 첫 번째 목표로 잡아야겠네.'
전부 읽은 양피지를 그가 쌓아둔 것 위에다가 올려 둔다.
그러자 양피지를 모두 주머니에다가 넣고 새끼줄 같은 것을 당겨서 묶고는 어깨에다가 멨다.
"결사단이 머물 장소는 어떤 곳입니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예?"
"일단 임시방편으로 쓸 곳을 마련하마. 그동안은 계속 여기서 머물고."
그러자 실망한 거 같은 표정을 짓던 그는 고개를 휘휘 젓고는 묶어둔 주머니에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양피지를 새로 꺼냈다.
"그렇다면 저는 그때까지 방금 겪었던 지식의 파도에서 무엇이라도 하나 건지기 위해 연구하고 있겠습니다."
"앗, 방금 결사단의 목적이 결정됐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뭔가 정신을 갈아 타는 외계 종족 녀석들을 따라 하는 거 같지만. 지식을, 그것도 마법과 주문에 관련된 것을 수집한다."
"그렇다면 제가 모으고 필사해 둔 양피지가 쓸모 있겠군요."
"그렇지."
나는 열려 있는 가죽 주머니에다가 손을 집어넣고 잡히는 양피지를 하나 꺼냈다.
방금 봤던 동방의 결계 이론과는 다른 내용이 내 안의 무언가를 일깨우는 것만 같았다.
"다만 조금만 더 보기 편한 형태로 바꾸는 게 좋겠군. 두루말이 형태보단 코덱스가 더욱 보관하기에 편할 테니."
"하긴 양피지보다는 동양의 종이가 더욱 효율적이기는 하죠. 지금은 역병 때문에 종이 공장이 문을 닫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생산을 시작할 겁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아직 인쇄술은 발명되지 않은 건가?"
"인쇄술이 뭐죠?"
"몰라도 상관없다."
읽고 있던 양피지를 다시 주머니에다가 넣고는 녀석이 꺼낸 새것도 같이 집어넣었다.
그러자 연구를 하려고 잉크까지 꺼내던 마법사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어, 제 양피지는 왜 같이 넣으셨습니까?"
"네가 할 일이 있다. 너 혼자만 있으면 결사단이 굴러가겠느냐?"
"당연히 무리이죠. 아무리 한정된 범위라고 해도 지식과 정보를 모으는 일에는 여러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전문가들은 나중에 백작을 통해 찾도록 하고, 지금은 그 분야와 관련된 사람들을 찾으러 갈 것이다."
"마치 저를 찾아오신 것처럼 말입니까?"
"그렇지."
내가 주머니를 책상 위에다가 올려 두고 밖으로 나오자 그도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느새 석양이 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저 멀리 사람들이 생활하는 도시를 구경했다.
"밤에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으니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그렇다면 제 친구는 어떻습니까? 저와 같이 동양쪽으로 연구도 하고 있고 제자도 키우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게 하도록 하지."
나는 화신을 해제하면서 육체를 이루고 있던 것들이 점점 흩어지는 걸 느꼈다.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
"예. 실망하시지 않도록 다른 마법사와 마녀에게도 연락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
생각보다 시간이 지나서 저택을 살펴봤더니 이브는 어느새 인형을 꼭 껴안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첫 번째 화신으로 방에 들어온 나는 이브의 방으로 내려가 한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화실로 향했다.
벽에 걸려 있는 다양한 그림들은 쳐다보다가 중앙에 걸린 이상한 액자에 다가갔다.
좁은 방과 문이 그려져 있는 그림에다가 손을 뻗자 건너편에 공간이라도 있는 것처럼 손이 그대로 들어가졌다.
그대로 그림 속 세상로 들어온 나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붉은색 투성이의 복도.
저번 시나리오의 주무대였던 곳이다.
이곳을 결사단이 지낼 장소로 선택해야 할지 너무나도 고민된다.
여기에서는 없던 공간도 그려내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나는 허공에서 붓을 꺼내 하얀색 물감으로 세상을 칠해 나갔다.
복도를 뒤덮고 있던 빨간 카페트도, 검을 들고 가만히 서 있던 은빛 갑옷도, 정원에 심겨져 있던 초록색의 풀과 나무도.
전부 하얗게 칠해지면서 내가 나왔던 문밖에 세상에 남지 않았다.
이런 공백 속에다가 내가 생각하던 건물을 하나둘씩 그려 나간다.
마치 하늘 너머로 높이 솟아 오를 거 같은 바벨탑처럼 높은 건물에 책장으로 가득 채운다.
'이곳은 모아온 지식들을 책의 형태로 만들어서 보관할 장소로 하고.'
결사단의 일원들이 생활할 숙소 같은 건물을 만들려다가 잠시 멈춘다.
'아직 어떤 형태로 운영할지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도서관만 만들어둘까.'
손에 들린 붓을 움직여 허공에 있는 문과 도서관까지 복도로 이어두고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