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비밀 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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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영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나와 마법사가 찾아가서 최대한 설득해 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설득'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최후의 수단까지 사용하게 만들어서 몇몇 재능이나 수행이 부족한 사람들이 죽긴 했지만, 이미 지식의 편린을 맛봤던 마법사와 마녀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제자가 죽었는데도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보여 준 지식만을 갈망하던 마법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쪽과 관련된 지식을 가진 마법사는 가끔 내 정체를 알아채고는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관련 지식을 가졌으면서도 모르는 머저리들은 모두 '설득'당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근방에 있는 흑마법사를 제외한 모든 마법사들을 영입했으니 이들이 살아가고 연구할 공간을 구해야 한다.
내가 생각했던 건 점조직 형태로 숨겨진 건물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가끔씩 뭣도 모르는 민간인이 들어와 비밀을 알아차리고 도망가려다가 죽는 스토리는 뻔하다못해 이제는 우려먹을 것조차 없으니 기대하지도 않지만.
일단 지금은 임시방편으로 그림 속 세상에다가 간단히 숙소라도 만들어서 그곳에서 지내도록 할까.
아직은 도서관밖에 없지만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의견 차이도 생길 테니 회의장도 만들어야 할 테고.
책만 수집하는 게 아닌 다른 흥미를 끄는 물건이 생긴다면 박물관처럼 그걸 보관할 장소도 만들어야겠지.
나중에 지부를 설립한다면 그곳에서 연구한 것을 기록해서 도서관까지 조달할 수 있도록 따로 통로도 만들어둬야겠지.
설득하려고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지나서 벌써 해가 저물었지만 나를 따라온 마법사들이 뒤에 수십 명은 넘어서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이목을 끌 것이다.
내가 어제 그려 둔 새로운 통로용 그림을 허공에서 꺼내자 뒤에 있던 마법사들이 감탄한다.
현대인들이 봤다면 인벤토리라고 외칠 법한 장면이었지만 중세 시대에 그런 소설이 있을 리가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마법사들은 누구나 눈을 반짝거리면서 방금 봤던 것을 지금 당장이라도 연구하고 싶다는 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에게 손짓 하면서 그림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하자 잘못 들었다는 듯이 다시 한번 말해 달라고 했다.
귀찮음을 느낀 나는 그냥 가까이 있는 녀석을 하나 잡아서 그림으로 집어던졌더니 또다시 마법사들의 눈이 커졌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액자를 뜯어내고 그 안에 새겨진 주문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길래 먼저 다가오는 녀석을 본보기로 해서 강제로 집어넣었더니 다른 녀석들은 허튼 생각하지 않고 알아서 들어갔다.
모두 들어간 걸 확인하고 액자를 다시 새하얀 공간에다가 보관해 두고는 두 번째 화신을 해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도서관의 옥상에서 누워 있는 첫 번째 화신을 일깨웠다.
오른손에 들린 붓을 굴려 가면서 그저 하얗기만 한 하늘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아래에 있는 마법사들을 살펴봤다.
모두 짐은 챙겼지만 연구를 진행할 공간이 없어 바닥에라도 양피지를 깔아 두고는 깃펜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정말 엄청난 열의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들을 위해 붓을 휘두르자 새하얀 바닥에는 갈색의 나무 판자가 빈틈없이 퍼즐처럼 맞춰졌고, 나무 기둥이 솟아오르며 그것에 맞춰 벽이 세워지고 지붕이 덮였다.
인원수가 많아 크기도 커지긴 했지만 넘쳐나는 게 공백인 이 세상 안에서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바닥을 나무 판자가 채울 때 놀라면서 무언가를 적고 있던 양피지를 품에 안고 있던 마법사 중 한 명이 문을 열자 안은 평범한 방이었다.
책상과 의자, 침대, 그리고 안을 밝게 비추는 초와 촛대까지.
중세 시대에 맞춰서 커스텀한 방이었다.
'이 정도면 살기에는 충분하겠지.'
본격적인 연구를 하려면 커다란 실험실이 필요하겠지만 그게 그림 속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도 모르기도 하고, 간단한 실험은 사고실험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마법사들은 방에 틀어박혀서는 곧바로 양피지에다가 무언가를 적거나 마력을 운용하며 연구를 진행해나갔다.
나는 가만히 그걸 지켜보다가 붓을 없애버리고는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꽂혀진 책 하나 없이 깨끗한 책장을 둘러보며 위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중간을 가로지르는 다리나 위로 올라가기 위해 설치된 계단 같은 것이 난잡하면서 정교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강경책을 통해 결사단의 일원을 모았지만 나중에는 이곳에 쌓인 지식을 통해 사람들을 모을 예정이다.
여러 번 세대가 교체된다면 내가 하는 말에 껌뻑 죽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사람도 생겨나겠지.
하지만 문제가 있다.
당연하게도 책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지.
과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70만 권 정도의 책을 수집했다고 하니 분야가 한정되긴 했어도 수 만 권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이고, 그 도서관의 크기보다 더욱 큰 이곳은 오히려 넘쳐나는 공간으로 곤란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바로 리셋에 있다.
나중에 내가 추가하고 싶은 게 생겨서 리셋하게 된다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고 마법사들은 했던 연구를 다시 반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복된 책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지겠지.
자신들이 연구하려던 주제가 이미 책으로 만들어져서는 보관되어 있다는 것에 마법사들은 놀랄 테고.
어찌 보면 타임 패러독스라고 해야겠지.
그렇다면 시대에 맞게 읽을 수 있는 마도서를 제한해야 할까.
아니면 오히려 그동안의 연구 기록들을 모조리 개방해서 다른 실험을 하도록 유도한다면 어떨까.
어차피 내가 주로 활동할 시간대는 현대니 상관없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 고치면 되겠지.
***
마법사들이 그림 속 세상으로 들어온 지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그들은 집중력이 깨지지도 않고 열심히 연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 강철 같은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꼬르륵.
어느 방의 누군가의 배에서 울린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자 마치 연쇄 반응이라도 일어나는 것인지 점점 배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은 마법사가 늘어났다.
이 정도 공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연구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주린 배를 부여잡고는 문을 열고 나왔다.
씨앗만 있다면 금방 키워낼 수 있는 마법사에게 공복이란 익숙하지 않은 것이겠지.
그래도 나를 섬기는 이들인데 공복 따위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고 말할 수 없는 나는 해결책을 생각했다.
붓으로 먹을 걸 그린다면 물감 맛이 날 것만 같아서 넘기고 쓸 만한 것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예전 이곳에 있던 저택이 떠올랐다.
그곳의 주방에 있던 목각 인형을 어느 정도 조정한다면 살인이 아니라 원래 직업대로 요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주변을 흰색으로 덧칠한 물감을 점점 없애나가며 이전에 있던 저택과 그 안에서 여전히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목각 인형을 발견했다.
그것들만 꺼내고 다시 색칠해 저택을 없앤 나는 새겨져 있던 주문을 간단히 손보았다.
그러고는 마법사들이 사는 공간에다가 마치 여관처럼 식당을 만들어 두고는 인형들을 배치해 요리를 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식자재를 간단히 공수해 오자 그것들을 손질하고 물에다가 넣고 끓여 간단하고 빠르게 수프를 만들었다.
그 냄새에 이끌려 찾아온 마법사들은 허기진 배를 채운 다음 다시 방으로 돌아가 연구를 이어나갔다.
이런 걸 보면 무섭다 못해 내가 무슨 블랙 기업의 사장이라도 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저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언젠가 내가 보여 준 것을 망각한다면 그만둘까.
그때가 다가온다면 부디 내게 다시 한 번만 더 보여달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높이 솟은 도서관에서 나와 저택이 아닌 지구로 돌아갔다.
여전히 역병으로 혼란스러운 도시는 길거리에 피를 토하는 사람이 고통스럽다는 듯이 부들대며 쓰러져 있었다.
그걸 구경하던 아이를 안고 있던 여인은 혹여라도 감염될까 구걸하던 것도 멈추고 집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서 다가온 사람은 쓰러진 사람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젓고는 어디론가로 끌고 갔다.
내가 그를 따라가자 나온 곳은 무언가 불타고 있는 구덩이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시체들이었다.
고통스럽다는 듯이 일그러진 시체의 표정은 금방 불타올라서 녹아내렸다.
그런 광경을 지켜다 보며 내가 그 도시를 선택할 수 있던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시체가 불타는 온기를 약간 느껴보다가 그것들을 뒤로하고 도시를 빠져나와 정처 없이 무작정 길을 걸었다.
어차피 목적지는 마법으로 이동하면 되기에.
'근방의 마법사는 모두 설득했지만, 흑마법사가 남았지.'
흑마법사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원래부터 성정이 잔혹한 사람이 마법에도 재능이 있어서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공공의 적이 된 경우.
이 경우에는 나중에 이쪽 계열의 주문을 파고드는 케이스가 많다.
두 번째는 일반적인 마법사였는데 욕심을 부리다가 이쪽 계열의 마법을 배우고는 타락하는 경우.
사람들을 납치하고 인신 공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훌륭한 흑마법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내가 찾을 흑마법사는 후자에 해당한다.
전자는 개인적인 욕구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녀석이기 때문에 연구도 안 하는 버러지에 불과하다.
그런 것들은 반드시 모두 박멸해야겠지.
하지만 후자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진리에 닿기 위해 이쪽 계열에 실수로 발을 담근 것이다.
그게 늪이라는 것도 깨닫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전자와 후자를 구별하기 위해 일부러 첫 번째 화신으로 지구에 방문한 나는 외형을 변경시켰다.
키가 줄어들고 피부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처럼 새하얗게 변한다.
입술은 사과처럼 빨갛고 머리카락은 마치 금을 녹인 것처럼 반짝이며 푸른 눈은 마치 사파이어와도 같았다.
여기서 옷만 약간 꾀쬐쬐하게 바꾸면 변장은 끝이다.
이제 흑마법사를 찾아가서 그 눈빛이 어떤지만 확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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