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65화 (65/154)

〈 65화 〉 비밀 결사

* * *

역병이 터진 와중에 이런 소녀가 마을 밖을 돌아다닌다면 수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만약 흑마법사가 근처 마을에 몇 번이고 방문했더라면 처음 보는 소녀를 경계하겠지.

그러나 흑마법사가 괜히 흑마법사라고 불리겠는가.

인신 공양은 기본이고 제대로 미친 녀석은 마을 하나를 통째로 제물로 삼으니 마법사는 물론이고 이단 심문관에게도 단단히 찍혀 있다.

작은 마을이라면 몰라도 웬만한 도시는 성당이 있으니 까딱하다간 바로 고문실 행일 거다.

여기 근처에는 화전민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도 없으니 산속에서 잠잠히 지내며 가끔씩 들어오는 사람들을 마법으로 유인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거나 지식을 채우려 들 것이다.

나는 키가 작아져서 어색해진 몸을 이끌고 숲의 입구 앞에 섰다.

옷만 더러우면 이상할 테니 얼굴과 손에도 약간 검댕을 묻히고는 바구니를 하나 만들었다.

산에서 그냥 돌아다니면 수상해 보일 테니 버섯이나 약초 같은 걸 캐면서 돌아다녀야겠다.

도시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산인데도 길이 나 있는 걸 확인하고는 그걸 따라서 올라갔다.

작은 동물들의 기척이 풀숲에서 느껴지다가 내 발소리를 들은 건지 저 멀리 도망치는 걸 느끼면서 나무 밑동을 살펴보았다.

어두운 그늘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새하얀 버섯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독을 품고 있었다.

'만난 흑마법사가 꽝이면 이거라도 먹일까.'

지금 겉모습은 어린 소녀이니 납치하고 나서 몹쓸 짓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결사단에 받아들일 수도 없으니까.

지식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고 드는 식충이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독버섯을 하나 둘씩 모으다 보니 바구니가 어느정도 무거워졌다.

잠시 쉬기 위해서 적당한 바위에 걸터 앉아 새들이 지저귀는 걸 듣다보니 근처로 다가온 가느다란 마력의 실이 보였다.

거침없이 빠르게 다가온 마력의 실은 마치 뱀처럼 내 몸을 기어오르더니 귓구멍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마력의 실이 뭉치면서 마법진이 만들어졌고, 완성된 주문은 무언가를 저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안에 들어 있어야 할 뇌가 없어서 그런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나는 마력의 흔적을 따라 흑마법사를 추적했다.

점점 더 깊은 숲속으로 걸어가다 보니 저 멀리 통나무로 지어진 집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의외로 멀쩡하게 생긴 중년과 청년 사이의 남성이 서 있었다.

일단 주문에 당한 척을 하기 위해 초점 없이 죽은 눈을 하고 통나무 집으로 다가가자 흑마법사가 나를 발견했다.

그는 내가 가까이 다가오자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손을 잡고는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안은 침대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그저 가죽을 여러 겹으로 깔아둔 것과 조악하게 만들어진 책상이 있었다.

잠시 그가 무언가하기 위해 손을 놓았을 때 몰래 고개를 돌려 책상을 살펴봤지만 양피지처럼 무언가를 기록할 만한 건 없었다.

이대로 제압해서 독버섯이나 먹여 버릴까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가죽 아래에 깔려 있던 지하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다시 내 손을 잡고 내려가길래 잠시 보류했다.

'지하를 확인해도 늦지 않으니까.'

소중한 자료니까 누구나 떡하니 볼 수 있는 지상이 아닌 지하에다가 뒀을 가능성도 있을 거다.

아무리 봐도 인공적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지하 동굴이지만, 귀찮다고 확인도 하지 않고 죽이면 소중한 인재를 놓치는 행동일 테니까.

그렇게 그를 따라가다 보니 간단하게 만들어진 제단이 보였다.

도대체 무슨 책을 읽은 건지 규칙성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그 너머에는 마치 마네킹처럼 박제된 작은 소녀들이 있었다.

소녀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놀라거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굳어 있었고 잠시 눈을 굴려 그의 눈빛을 확인하니 어떠한 욕망이 보였다.

"아니, 처음부터 꽝이네."

"어라? 지금 왜 말을—"

—서걱!

느긋하게 마력을 움직여서 그의 발목을 잘라버릴 주문을 만드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그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끄아악!"

잘려 나간 발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나오며 금방이라도 죽을 거 같기에 나는 자그마한 화염구로 절단면을 지졌다.

그러자 흑마법사는 엄청난 고통에 거품을 물면서 기절했고 분당 200번은 뛸 거 같았던 심장 박동이 순식간에 멈췄다.

"어라, 심장이 멈췄네. 이럴 때는 CPR을 해야지."

아직 먹이지 못한 독버섯이 한가득인데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심장이 있을 부분을 대충 어림짐작해 깍지를 낀 손을 올리고는 살짝 눌러봤다.

—우드득!

"앗."

생각해 보니 겉보기에는 가련해 보이는 소녀여도 신체 능력은 변하지 않아서 인간을 초월한 근력은 그대로인걸 깜빡했다.

한 번 더 눌렀다가는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버릴 수 있었기에 나는 바로 다음 단계로 넘겼다.

"제세동기! 제세동기는 어디 있지?!"

나는 양손을 비비다가 맞부딪치며 주문으로 스파크를 일으키다가 흑마법사의 가슴팍에다가 올렸다.

"클리어!"

잘못하면 그대로 전기 구이가 될 수도 있지만 섬세한 조절로 심근만을 자극할 수 있도록 전기 충격을 가한다.

그러고는 귀를 기울여 보니 심장이 다시 뛰는 게 들렸다.

심장이 다시 자기 일을 시작하면서 흑마법사는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천천히 눈을 뜨다가 나를 보고는 질문했다.

"여, 여기가… 어디요?"

"아, 안심하세요. 병원입니다. 출혈이 너무 심해 지혈을 했고 심폐소생술을 했어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이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래쪽에… 감각이 전혀 없으니…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아… 어느 정도 완쾌된 뒤에 말하려고 했는데, 잘 알아두세요. 아… 선생은 이제 걸어 다닐 수 없습니다."

"뭐요?! 이보시오, 이보시오! 의사 양반! 아유우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헛소리를 하길래 장단을 맞춰주긴 했지만, 이러다간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니 끝내야 할 시간이다.

"내가 좋은 버섯을 캐 왔으니 이걸 먹고 잠시 안정을 취하세요."

"내가, 내가 걸어 다니지 못한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흑, 아핡, 아…."

"진통 작용도 있으니 먹으면 잠시 고통을 잊을 수 있을 거요."

내가 그리 말하며 입가에다가 버섯을 갇다 대니 흑마법사가 천천히 버섯을 씹고는 꿀꺽 삼켰다.

"으으, 맛이 이상한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버섯을 전부 먹은 그는 점점 표정이 몽롱해지더니 무언가 환상이라도 보는 것인지 내가 아닌 허공을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나는 독이 빠르게 작용하도록 주문을 걸어두고는 뒤에 박제되어 있는 소녀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변신한 것처럼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제대로 성장했다면 또래의 청년들을 여럿 울렸을 법하게 생겼다.

이대로 저기 쓸쓸하게 죽어 가는 흑마법사와 함께 두기에는 이브가 떠오르기도 해서 불쌍하게 느껴졌다.

—딱!

내가 손을 튕기자 불똥이 박제된 소녀들에게 튀었고, 순식간에 불태우면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박제에 묶여 있던 영혼이 올라가는 걸 마저 확인하고는 뒤돌아보니 녀석은 어느새 피를 토하고 있었다.

"커헉, 쿨럭! 속이, 속이 불타는 거 같아…."

"흐음, 완전히 새하얀 이 버섯은 소화기 계통에 작용하는 독인 건가?"

"우읍, 쿠웨엑!"

좀 짜증 나서 독성을 강화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거라고 생각지는 못했다.

이대로 가만히 두어도 죽을 운명이긴 하지만 죽어도 흑마법사인 녀석이다.

마법의 성취가 엄청나 보이지는 않지만 죽고 나서 기어다니는 것으로 변할지도 모르고.

"마법사의 무덤이 없는 마을은 언제나 평화로우리라."

신체의 말단부터 천천히 찢어발기면서 마치 믹서기로 갈아버리듯이 곤죽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사람의 형체도 보이지 않는 핏덩어리를 소각해 버리고는 지하 동굴을 빠져나와 통나무 집마저 불태웠다.

물론 산불로 번지지 않도록 통나무 집만 불태우도록 조절하면서 불멍을 때리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다.

해가 아직 지평선을 넘지 않았지만 하늘이 불타는 것처럼 붉은 노을이 져서는 금방이라도 어두워질 것만 같았다.

어설픈 어린아이 연기는 집어치우고 강압적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서 기본으로 쓰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러고는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현대적인 양복을 입고 중절모까지 쓴 다음 주변에 있는 흑마법사를 찾아 갔다.

"이번에는 도시 안인가. 아무래도 계급이 높은 모양인데. 하지만 귀족은 아닌 모양이고."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녀석의 비밀방으로 이동해서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위에서 단란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걸 들으면서 책을 넘기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다섯 번째 책을 꺼내서 읽다 보니 이쪽으로 내려오는 인기척이 느껴졌고, 통로 쪽을 바라보자 촛불 하나에 의지해 내려오는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그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 한 번에 방에 있는 모든 초를 켜니 화들짝 놀란 그가 촛대를 떨어뜨렸다.

"어이쿠. 이러다가 불이라도 나면 어쩔 거야?"

그러나 떨어지던 촛대는 그대로 멈춰 서는 다시 그의 손에 쥐어졌다.

"어, 어?"

"책이라던지 마력 같은 걸 보면 아무래도 입문자인 거 같은데. 내 말이 틀리나?"

"서, 설마 이단 심문관?!"

"흠? 내가 그렇게 보이나? 허리춤엔 메이스도 없는데."

복장이 시대상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오해하다니.

—쿵!

나는 그가 내려오면서 열어둔 통로를 다시 닫아줬다.

"하나만 질문하지."

"그, 그게 뭡니까?"

"흑마법 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하겠소! 다시는 안 하겠소!"

"해!"

"예?"

"하라고."

나는 이딴 초급 신화서보다 더욱 많은 게 쓰여 있는 신화서을 책상 위에다가 올려 두었다.

그리고 턱짓으로 책을 가리키면서 읽으라고 했고, 그는 머뭇거리면서도 다가와서는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점점 그의 고개가 책에 파묻히는 걸 확인하고는 흐뭇함을 느끼면서 나는 비밀방을 빠져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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