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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66화 (66/154)

〈 66화 〉 비밀 결사

* * *

건전한 흑마법사에게는 나아갈 길을 가르치고, 재활용도 못할 흑마법사는 처단하며 다닌지 어언 3일.

첫날에 만났던 가정을 가진 중년의 흑마법사는 가진 것이 많아 미련이 남았는지 결사단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재능이라곤 티끌만큼도 없었으니 들어와봤자 사람들 사이에 끼지도 못하고 뻘쭘하게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 방구석에서 울지 않을까?

하필이면 흑마법과 관련돼서 주변인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결사단의 마법사나 흑마법사는 이것도 모르냐면서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내겠지.

물론 그들은 순수하게 어째서 모르는 건지 궁금하다는 거겠지만 흑마법에 발만 담근 일반인에 가까운 그에게는 그조차도 상처일 터.

아무튼 그는 대신 결사단을 원조하겠다며 내가 말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자기 이야기를 풀었다.

"제가 왕년에는 직접 말을 끌기도하고—"

간단히 요약하자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무역을 하던 그는 지금은 배도 있고 직원도 여럿 부리는 회사까지 차렸다는 거다.

젊은 시절 어쩌다 묵은 수상한 마을에서 물고기와 사람을 섞은 듯한 괴물을 본 적도 있고, 돈이 없다면서 대신 받은 책은 들킨다면 화형당할 수 있는 신화서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못 받은 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따위의 책으로 대신하려고 하다니.

나는 이름도 모르는 흑마법사의 용기에 감탄하면서 생각보다 재미있는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역병 때문에 사실상 무역은 불가능하게 되었죠. 정말 해적보다 더 무섭다니까요."

"아, 음, 그렇군."

내가 일으킨 역병은 작은 눈덩이였지만 오랜 시간 동안 구르고 구르면서 덩치를 불려 나가다 보니 커다란 스노우볼이 되었다.

앞을 막는 것은 전부 때려 부수는 스노우볼.

덕분에 백작 하나를 얻을 수 있었지만 결사단에 도움이 되는 것들도 많이 부쉈다.

어차피 내가 개입하면 대부분의 일은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귀찮은 일도 많이 연관될 거다.

그걸 결사단 애들에게 폭탄 돌리듯이 넘겨도 되겠지만 그러면 걔네들이 하던 일에도 차질이 생길 테니까.

웬만하면 결사단이 망하기 직전에만 개입하도록 할 것이다.

"그럼 이야기도 끝났으니 가 봐야겠군."

"원조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요?"

"그건 나중에 단원을 보내도록 하지. 그와 상의하도록."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영입하는 것도 귀찮지만 마법사와 흑마법사는 상극이라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나를 섬기기 때문에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싸워서 인력 손실이 나면 나만 손해다.

흑마법사에게 인신 공양을 금지시키던 마법사를 완전히 타락시키거나 해야지.

나는 잠시 잘려 나간 커다란 나무의 그루터기에 앉아 잠시 쉬면서 어제 처단했던 흑마법사들을 떠올렸다.

예쁘장한 여자를 납치하고 죽여서 시간하던 시체박이, 죽이고 좀비로 만들던 좀비박이, 어린아이를 납치하던 페도필리아까지.

물론 시대가 다르니 성인의 기준도 다르겠지만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은 어린아이를 납치하길래 바로 죽였다.

이외에도 정신 나간 흑마법사는 많았지만 그다지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녀석도 있었다.

숨겨져 있던 실험실로 들어가자 반쯤 썩어서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시체를 껴안고는 허리를 움직이던 녀석을 떠올리면 정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체가 좋으면 너도 시체가 되라고 말하면서 몸과 심장을 이별시켜줬으니 기분은 나아졌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서 눈을 감으면 녀석의 들썩이던 허리가 생각났다.

앞으로 많은 기억들을 쌓아 올려 감출 수밖에는 없겠지.

나는 그루터기에서 일어나 이제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흑마법사의 기척을 느끼면서 감각을 점점 넓혀갔다.

도시에서 국가, 국가에서 대륙으로 범위를 넓혀가니 수많은 마법사와 흑마법사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곳은 직접 내가 결사단을 세웠지만 다른 지부는 인간들이 스스로 지어야겠지.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지만 흑마법사들의 이상성욕으로 더럽혀진 나의 기억 덕분에 개입하기가 더 싫어졌다.

내가 선택했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 귀찮으니 인간들에게 짬처리나 해야지.

저택으로 잠시 돌아온 나는 이브가 공부하는 걸 지켜보면서 힐링 타임을 가졌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마력도 늘어나고 주문도 빠르게 영창 하는 게 금방 에반을 따라잡을 것만 같다.

에반도 경쟁심이 생겨서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아이를 진심으로 상대하는 게 웃겼지만 둘 다 즐거워하니까 상관없겠지.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뭐지? 이 따듯하면서 찌릿한 느낌은?'

티끌보다도 적었지만 더러운 경험으로 감각이 예민해진 나는 에반의 심장 부근에서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그걸 조금만 더 자세히 느껴보기 위해 천천히 손을 뻗어 봤지만 자그마한 손이 중간에 가로막았다.

"빨리 연무장으로 가자니까요?"

"응? 뭐가 말이냐."

"대련 말이에요! 아까부터 계속 말했는데 안 들었어요?"

"미안하구나. 잠시 지구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도대체 어떤 일이었길래 그래요?"

"애들은 몰라도 된다. 아니, 성인조차 버티지 못하겠네."

"그럼 굳이 듣지는 않을게요. 아무튼! 저기 에반 아저씨랑 대련하기로 했어요."

"대련?"

"일단 가요!"

어쩔 수 없이 끌려간 연무장에서 대련 구경을 하게 된 나는 이렇게 된 거 얼마나 성장했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이브와 에반이 서로 마주 보면서 기다리자 중간에 있던 심판으로 온 제임스가 규칙을 설명했다.

"규칙은 알고 있겠지만 여기 모르는 분을 위해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각자 처음에 보호막을 하나 펼치고 나서 대련을 시작합니다. 이후로는 알아서 마법으로 보호막을 깨트린 사람이 우승입니다. 중간에 보호막을 여러 겹으로 생성해도 괜찮습니다. 그럼 일단 각자 보호막을 펼쳐주세요."

그러자 이브와 에반 모두 반투명한 보호막을 만들었다.

사실 보호막은 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옛날에 제사장에게 전수할 때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게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상대방에게 나 보호막 쓰고 있어요—라고 광고하는 꼴이지만 지금은 대련용으로 쓰는 거니까.

나중에 투명한 보호막도 가르쳐야겠다.

"그럼 호루라기를 불면 대련 시작입니다."

—휘이익!

제임스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호루라기를 불자 날카로운 소리가 연무장으로 퍼졌다.

그러자 이브와 에반은 조금씩 움직이면서 주문을 외우다가 각자 준비한 것들을 사용했다.

이브가 보호막을 만들어내자 에반의 번개 화살이 순식간의 보호막을 강타하고는 찢어발겼다.

'처음부터 서로 공격한다면 속도가 빠른 쪽이 유리하겠네.'

물론 서로의 공격이 보호막을 부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그렇다는 거지만.

보호막이 하나 깨진 이브는 바람을 일으켜서는 흙먼지로 시야를 가렸다.

"뭐, 윽!"

당황한 에반은 주문을 외우던 것도 멈추고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움직였다.

그러자 덮쳐 온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이 그 자리를 강타했다.

손맛을 느끼지 못한 이브는 혀를 차면서 흙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걸 바닥에다가 꽂고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선 이브는 다시 주문을 준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흙먼지가 거의 없어지며 보호막의 윤곽이 서서히 보이자 자세를 낮추고 있던 에반이 번개 화살을 날렸다.

이브를 향해 날아가던 번개 한 줄기는 갑자기 방향을 꺾으며 그녀가 꽂은 막대를 타고 지면으로 흘러 갔다.

그렇다.

이브가 품에서 꺼낸 것은 바로 쇠 막대였던 것이다.

번개가 날아가는 것을 일일이 조정한다면 그대로 맞출 수도 있었겠지만, 마력이 더 들기도하고 저런 변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에반의 실수였다.

다시 한 번 더 당황한 그는 주문을 외우던 도중에 혀를 씹기도 하면서 계속 실수했다.

그러면서 주문의 완성은 더욱 늦어졌고, 그 사이에 이브의 기나긴 영창이 끝났다.

갑작스레 솟아오른 지면이 에반의 보호막을 둘러싸며 압박하기 시작했고, 버티고 있던 보호막에는 점점 금이 가면서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았다.

그가 영창하고 있던 주문은 또 번개 화살인 건지 하던 걸 멈추고는 다른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용하는 주문이 적은 것도 문제로군. 특히 번개 화살을 애용하니 그것의 약점을 정확히 찔러서 무력화했네.'

아직 막혀지지 않은 위쪽으로 날려서 일일이 조정해 이브를 맞추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려진 시야로는 절대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거다.

결국 모든 보호막이 깨진 에반은 패배를 시인했고, 이브는 기뻐하며 내게 달려왔다.

"와아아! 드디어 첫 우승이에요!"

"잘 싸웠구나. 특히 약점을 찌른 부분은 대단했다."

"헤헤. 맨날 번개만 날려대는 게 짜증 났거든요."

저 멀리서 솟아오른 흙더미를 부수며 나온 에반은 머리를 긁으며 나처럼 이브를 칭찬했다.

"이야. 중간부터는 완전히 말려가지고 결국 졌네."

"힘의 차이가 느껴져요?"

"쓰읍. 내가 몇 번을 이겼는데."

"근데 지금은 졌잖아요."

"끄응…."

이브는 에반을 놀려 먹었고, 에반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알아보려고 했던 게 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나지 않으니 그리 중요한 건 아니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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