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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68화 (68/154)

〈 68화 〉 비밀 결사

* * *

물론 그 전에 나는 저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어차피 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저 간부 밖에 없으니 발소리를 죽이고 맨 뒤에 붙어서 따라가자 어떤 넓은 방이 나왔다.

그곳은 마치 전시회처럼 커다란 액자가 수십 개가 걸려 있었고, 각각의 액자 위에는 특정 나라의 국기가 자그마하게 있었다.

그리고 액자 속 그림은 정지해 있지 않고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이런 걸 바라고 건네주긴 했지만 공간을 많이 차지하네. 옛날에 딥 윈들의 의식장처럼 마법진 형태로 할 걸 그랬나?'

나는 그때 봤던 마법진의 크기를 가늠하며 지구와 그림 속 세상의 좌표를 계산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저기 위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 액자로 들어가는 일행들을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뒤꽁무니에 붙어 같이 들어갔다.

그러자 보이는 장소는 새하야면서도 달랑 액자 하나만 있어서 삭막해 보이는 방이었다.

정말 이게 끝인가 싶어 주변을 살펴보다 보니 저 앞의 간부가 주머니에서 카드키를 꺼내 패널에다가 갖다 댔다.

그러자 자동문이 열렸고 일행들은 그를 따라 이 방을 나갔다.

나도 일행을 따라 긴 복도를 쭉 걸어가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위에서 느껴지는 기척들을 보면 여긴 그저 그림만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인가 생각하다 보니 띵—하고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열리고 거기에 타서 버튼을 살펴보니 층수만 표기되어 있었고 우리는 지하 3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져온 책은 1년 후에 다시 반납하면 되고, 모두 연구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지하 3층에 도착하자 간부가 그리 말했고, 다른 이들은 그에게 고개를 꾸벅이곤 모두 제 갈 길을 갔다.

나는 그 안에서도 눈에 띄는 하얀 가운을 입은 그녀를 따라가니 현대적인 실험실이 보였다.

똑같이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현미경으로 무언갈 관찰하거나 후드 안에서 화학 약품을 섞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도착하자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는 환한 웃음과 함께 반겨 주었다.

"오, 드디어 왔네. 거기 도서관은 어땠어?"

"정말 끝내주긴 하더라. 해외 여행도 많이 갔었는데 그렇게 웅장한 건축물은 처음 보는 거 같아. 같이 간 새끼들 때문에 좀 빡치긴 하지만."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니, 들어가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 있더라고."

"다른 지부 사람 아니야?"

"동양인이었거든. 게다가 오늘은 우리나라 차례잖아.'

"아, 그러네."

연구실에 도착한 그녀는 머그컵에다가 커피를 타면서 동료들에게 도서관에서 있던 일을 얘기했다.

게다가 내 이야기가 입에서 튀어나오니 나도 텅 빈 책상 위에 앉아 함께 들었다.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래서 간부 님한테 물어 봤지. 저 사람 침입자 아니냐고."

"그래서?"

"내 머리를 잡고 확 내리면서 무슨 위대한 분을 뵌다고 하더라. 내가 무슨 전문적으로 마법을 배운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

"엑. 위대한 분이면 설마 결사단 창립자 아니야? 너 큰일 난 거 같은데."

"에이. 겉보기엔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게다가 잘 생기기도 했고."

"결사단이 생긴 지가 몇백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젊으면 괴물 아니야?"

"쓰읍, 그런가."

그렇게 대화하던 그녀는 들고 있던 책을 상대에게 건네줬다.

"이야기하느라 책 주는 걸 깜빡했네. 여기 인조 인간 관련으로 가져 왔어."

"땡큐. 하아, 정말 늙었으면 곱게 갈 것이지. 왜 우리들한테 수명을 늘릴 방법을 알아 오라니 지랄인지."

"그러게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같이 간 새끼들 때문에 빡쳤다는 건 뭐야? 딴소리만 하다가 옆으로 샜네."

"아하, 그걸 깜빡할 뻔했네. 그냥 뭐 마법쟁이들이 그렇지. 내가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냥 재능이나 타고 나서 마법밖에 쓸 줄 모르는 새끼들이 지랄인지."

"걔네들이 뭐라고 했어?"

"내가 여기 몸이라도 대주고 올라왔다는 것처럼 뒷담까더라."

"헐. 간부 님에게 말했으면 징계 못 먹이나?"

"모르겠다. 내가 그냥 참아야지. 어휴, 진짜 내가 마법이라도 제대로 배웠으면 그 코를 납작하게 짓눌러 주는 건데."

방금 그녀에 대해 험담하던 마법사들을 욕하면서 커피를 마시던 그녀의 품에 안긴 두꺼운 책을 발견한 실험실 동료는 그 책에 대해 물어 봤다.

"근데 그 책은 뭐야?"

"어? 아, 이거. 여기 가져올 책 좀 찾고 나서 그냥 둘러만 보는 와중에 갑자기 책이 알아서 나오더라."

"무슨 마도서 같은 거야? 책이 말이라도 걸고 그래? '힘을 원하나' 처럼."

"그냥 책인데?"

겁도 없이 휘리릭 책을 넘긴 그녀는 소환할 수 있는 괴물들의 삽화를 보자 넘기던 걸 멈췄다.

"지구 밖에 이런 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네."

"어우, 난 고어한 건 질색이라 못 보겠다."

"한 번 이것들을 소환해서 조금이라도 복수해볼까?"

"아서라. 그러다가 들키면 퇴사당해. 무슨 뜻인지 알지?"

"당연히 알지. 나도 내 목숨은 당연히 아깝거든."

퇴사당하는데 왜 목숨이 아깝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이들이 아직 결사단원이 아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인력인 마법사도 똑같이 대우하면 한 번 손봐줘야겠지.'

물론 그건 나중에 어떻게든 알아가야겠지만.

책을 가져온 그녀는 내가 앉아 있던 책상 위에 두려고 해서 잠시 비켰다.

그리고 그녀가 의자에 앉아 시험관에 든 걸 스포이드로 옮기거나 하는 걸 구경하며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

몇 시간 정도 지나자 시침이 6에 도달했고, 시계를 힐끔 쳐다보던 연구원들은 각자 가방 같은 걸 가지고 나가기 시작했다.

창고에다가 실험 도구를 두고 나온 그녀는 먼저 간 동료들에 감탄하면서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챙기고는 어디론가로 향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가 보니 목적지에는 금방 도착했다.

계단을 통해 몇 층만 올라가니 숙소가 있던 것이다.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입력해 들어가는 걸 따라 들어가니 숙소는 괜찮았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하얀 가운은 의자에다가 던져 버리고 책도 대충 올려놓고는 침대에 다이빙했다.

"흐으아, 피곤하다."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폰을 보던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면서 욕을 내뱉었다.

"아, 진짜 개 같은 마법쟁이 새끼들."

그러더니 갑자기 일어나서는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디 복수하는데 쓸 만한 소환물이…."

잘못해서 걸리면 곧바로 죽음일 텐데 어지간히도 화나는 일이 있었나 보다.

열심히 읽던 그녀는 여러 주의사항에 대해 읽다가 황당해했다.

"아니 소환만 하면 그냥 명령을 듣는 게 아니야? 어이가 없네. 구속 주문? 이건 또 뭐야."

대부분의 외계 생명체들은 지구인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그것도 당연한 게 자기는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마법사가 대뜸 자기를 소환하고는 부려 먹는데 좋아하겠는가.

그러니 그것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명령만을 듣게 할 수 있는 구속 주문이 필요하다.

아니면 그 대가로 자기 팔 한 짝이나 심장을 줄 수도 있으니까.

"으음, 어디 공격적이지 않고 귀여운 건 없나?"

외계 생명체에게서 귀여운 걸 바라다니 생각보다 양심이 없었다.

마구잡이로 페이지를 넘기던 그녀는 마침내 괜찮은 걸 찾은 모양인지 손을 멈췄다.

"뭐지? 삽화는 평범한 고양이인데 이름도 없고, 소환 방법만 적혀 있네. 그럼 위험하진 않겠지?"

그녀가 일하는 동안 몰래 추가한 페이지 중 하나였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A4 용지를 가져온 그녀는 네임펜으로 대충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소환될 예정이긴 했지만, 이건 너무 대충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던 와중 그녀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생각해 두었던 걸 구축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주문을 마치는 타이밍에 맞춰 마법진 위에다가 이동시켰다.

새까만 털에 새까만 눈동자.

서양인이 본다면 저주받는다고 말할 법한 고양이가 세 번째 화신이었다.

그녀는 이제 세 번째 화신으로 관찰하면 되겠다 싶어 저택으로 이동하고 의식을 돌리자 발바닥에서 무언가 감촉이 느껴졌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몸을 움직여 고개를 올려보자 위험하게 하악대며 내 육구를 만지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뭐하냐."

"히야악!"

내가 말하자 그녀는 고양이가 말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건지 깜짝 놀라면서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콰당하고 쓰러졌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다리를 움직여 책상을 내려가니 몸을 비틀면서 아파하는 그녀가 보였다.

"고양이가 말하는 거 처음 봐?"

"으으, 당연하지!"

자기가 주문으로 소환하는 시늉을 했으면서 이제 와서 놀라는 건 뭐야.

"아무튼 네 이름은 뭐냐."

"나? 나는 서아야. 한서아. 너는 뭐야?"

"나? 음, 글쎄? 그냥 말하는 고양이야."

"그런 게 어딨어?!"

"그럼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할게."

"그냥 알려주기 싫다고 말해."

비슷한 게 가능한 존재이긴 한데.

아무리 말해 봐야 믿어 주지도 않을 테니 다른 이야기나 해야겠다.

"그래서 넌 원하는 게 뭐야?"

"이제 와서 악마인 척이라도 하려고?"

"그럼 고양이인 척을 할까? 야옹."

"에휴, 뭐 그래도 귀엽긴 하네."

"나라면 그 녀석들에게 복수할 수도 있는데?"

"…뭐?"

서아는 그녀의 동료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를 오늘의 일에 대해 말하자 놀라는 눈치였다.

"왜? 라플라스의 악마 몰라?"

"그러니까, 대충 모든 걸 아는 악마였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야. 아마도."

"아마도?"

"네가 야매로 소환해서 그렇다고만 말할게."

"앗."

서아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귀가 빨갛게 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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