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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69화 (69/154)

〈 69화 〉 라플라스의 고양이

* * *

얼굴을 가리더니 이제는 몸을 반대로 돌려서 내 시선을 피하려 들고 있다.

사람도 아닌 고양이에게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을 받는다면 그야 부끄럽긴 하겠지.

하지만 그럴 시간에 녀석들에게 복수할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게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이럴 땐 필살기를 써야겠네.'

나는 앞발을 슬그머니 들어서 서아의 등짝을 향해 후려쳤다.

냥냥펀치!

정신 좀 차리라고 장난치는 것처럼 살살 때렸지만 서아는 칼에 찔린 것처럼 몸을 뒤틀었다.

맞은 부위를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입을 벌리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다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 소리쳤다.

"야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세게 때리면 어떡해!"

"내가 안 때렸는데?"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오른쪽 앞발을 들어 입가를 가리며 쿡쿡거리자 화를 참는 건지 서아는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거렸다.

한 대라도 때리고 싶다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생긴 게 고양이라서 그런지 손이 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부끄럽다고 계속 누워 있을 거면 복수는 언제 시작할 건데?"

"그럼 네가 생각하는 복수는 도대체 뭔데?"

"글쎄? 그동안 그런 생각이 들도록 한 녀석이… 하나 있었네."

"오오. 어떤 녀석이야? 악마를 화나게 하다니."

"그건 알려주지 못하지만, 녀석은 죽어서도 풀려나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지."

"어우, 그건 좀."

서아의 표정은 음담패설 좀 몇 번 들었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느낌이었다.

"뭐, 그런 식으로 고통을 주려면 내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남의 손을 빌려서 하는 복수는 재미없겠지? 아, 이건 고양이 손을 빌린다고 해야 하나."

"재미없으니까 그런 개그는 내 앞에서 할 생각하지 말고. 확실히 남의 손을 빌려서 복수해봤자 오히려 찝찝하기만 할 뿐이야. 근데 다른 방법이 있나?"

"네가 이런 말을 했었지. '내가 마법만 제대로 배웠어도 녀석들 코를 짓눌러줄텐데' 였던가?"

"아, 응. 연구실에서 그런 말을 했었지."

"영광으로 알라고? 나에게서 주문을 배우는 사람은 너가 세 번째니까."

"세 번째? 그럼 첫 번째랑 두 번째는 누구야? 옛날 사람인가?"

"아니. 두 번째는 내 보호 아래에 있고, 첫 번째는…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네."

서아는 저기 있는 낡은 책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첫 번째 제자라는 사람이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아니 그럼 나랑 나이가 비슷한가?"

"너보다 어린데? 지금 고등학생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머리가 복잡해졌는지 잠시 기다리라며 손짓하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친구가 되는데 나이 차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마법도 어릴 적부터 배울 수 있고. 그런데 저 책이 반출된 적은 없을 텐데?"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지만, 네가 복수를 하고 실력이 여기 한국 지부의 간부 정도로 성장한다면 알아서 알게 될 거야."

"애초에 내가 거기까지 성장할 수는 있을까. 일하느라 바빠 죽을 거 같아서 워라밸도 제대로 못 챙기는데."

"응? 복수만 마치면 이딴 직업 때려쳐. 아니면 본격적으로 결사단에 가입하던가. 그게 더 엄청난 복수가 아닐까? 너를 깔보던 녀석들의 상사로 다시 나타나는 게?"

"그것참 멋진데. 맨날 독촉하는 소리도 듣지 않을 수 있고."

서아는 푹신한 침대에 그대로 눕더니 자신을 뒷담화한 녀석들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는 거 같았다.

어찌나 좋았으면 실실 미소를 짓는 게 냥냥펀치 마렵게 하는 재능이 있었다.

"읏차!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오늘은 실험 첫날이어서 빨리 끝났지만 내일부터는 야근 지옥이니까."

"일단 기본적으로 마력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자. 마법 사용자면 주문만 외워도 장땡이지만 너는 더 높은 곳을 노릴 거잖아?"

"당연하지."

"원래 같으면 주변의 마력을 퍼뜨려서 알아차리도록 하겠지만 누군가 감지할 수도 있으니까 직접 네 몸 안의 마력을 움직일게."

"…위험한 건 아니지?"

"괜찮을 거야. 예전에 여러 번 실험해봤는데 몇 번 하니까 몸이 터지진 않더라."

"뭐? 야! 잠깐!"

"시작한다."

나는 서아의 몸 위에 올라타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은 다음에 말랑말랑한 육구를 명치 위에다가 올렸다.

"쫄?"

"아니 당연히 무섭지!"

"내 알 바는 아니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처음엔 달팽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릿하게 마력을 움직였다.

마치 혈액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도는 것처럼.

서아도 아플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지 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거 알아? 옛날 중국 쪽에서는 주문 같은 것도 있었지만 소설처럼 무공도 실재했다는 걸?"

"직장 동료나 마법사들끼리 떠드는 거에서 얼핏 듣긴 했지. 여긴 온갖 정보들을 찾아다니는 결사단이니까. 물론 지금 중국 지부는 누구 하나 때문에 거의 마비된 지경이지만."

"그래? 그건 그렇고, 이제 속력 좀 높인다."

"뭔가 간질간질한데."

"좀 더 집중해 봐."

나는 그녀의 몸에 흐르는 마력을 느끼며 예전에 했던 실험이 떠올랐다.

한 명은 일부러 마력을 팽창시켰다가 풍선처럼 터져 버렸고, 한 명은 연약한 마력계에 비해 너무 빠르게 순환시켜서 장기와 신경에 손상이 와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죽었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이며 점차 속력을 높여갔다.

"이제 좀 저릿저릿한데. 이게 마력인가?"

"그럼 내가 손을 땔 테니까 너가 한 번 움직여봐."

"그래."

천천히 움직이던 마력을 멈추고 명치에 올려 두었던 앞발을 떼고 배 위에 누웠다.

"…좀 무거운데 내려가면 안 될까?"

"마력이 움직이는 걸 느껴야하니까 어쩔 수 없어. 근데 몰캉몰캉한 게 눕기 좋다."

"야, 죽을래?!"

내 말이 서아의 역린을 건드렸는지 나를 향해 손을 뻗어왔지만 이 정도는 간단하게 쳐낼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연구실에만 있던 몸 치고는 나쁘지 않은 상태인데.'

예전 초창기의 결사단, 아직 지낼 장소도 없었을 때 내가 만들었던 그림 속 세계의 숙소애서 생활하던 마법사들.

밥 먹고 연구하고 자는 게 일상이 된 마법사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나는 손이 아픈지 후후 불면서 나를 쳐다보는 서아에게 빨리하라고 재촉했다.

"이 정도면 관리 안한 거치고는 괜찮은데. 아무튼 빨리 마력이나 움직여 보라고."

"내가 대학생 때는… 에휴, 알았어."

무언가 사족을 붙이려 했지만 내가 앞발을 들어 올리며 분홍색 육구를 보여주자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신체의 말단까지.

움직이는 거는 거북이처럼 느렸지만 초보자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첫 시도 치고는 나쁘지 않네. 그런 식으로 마력을 순환시키면서 심장에다가 조금씩 마력을 쌓아봐. 마치 창고처럼."

"으음…. 잘 모르겠는데."

"무협 소설 같은 건 읽어 봤어?"

"조금."

"거기에 나오는 것처럼 단전이 아니라 심장에 마력을 쌓는다고 상상해 봐."

"뭔가 되는 거 같기도?"

"너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마력의 통로를 늘리는 거야. 하면 할 수록 게임으로 따지면 MP칸이 늘어나는 거지."

물론 판타지 소설처럼 심장에다가 동그랗게 서클을 새긴다던가 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렇게 세상을 바꿔 버린다면 모를까.

"일단 일할 때는 이런 식으로 계속하고, 공부는 꿈속에서 하자."

"꿈속?"

"그래."

나는 서아의 배 위에서 내려와 앞발로 이마를 꾸욱 눌렀다.

"서비스로 푹 잔 것처럼 정신도 말끔하게 해줄게."

"그것참 고마우면서도 무서운데."

"감사할 거까지야."

하다 보니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 이마를 누르다가 결국 서아의 손길에 막히고 말았다.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내려와 다시 책상 위로 올라오니 방금 사용했던 마법진이 보였다.

"근데 이런 증거는 없애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네임펜으로 대충 그려진 마법진을 툭툭 치자 일어난 서아가 그걸 확인했다.

다시 봐도 책에 있는 것처럼 똑같이 그렸지만 네임펜을 사용해서 그런지 기분이 뭔가 묘하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겠지? 청소하는 분도 어차피 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까."

"만일에 하나라도 대비해서 소각해야지."

"난 담배 같은 건 안 피워서 라이터가 없는데. 주방엔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전기레인지고."

"잠깐만 들어봐."

"응? 이렇게?"

"퉤엣—"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를 서아가 들자 거기에다가 불꽃을 뱉었고, 깜짝 놀란 서아는 종이를 놓쳤지만 순식간에 타오른 종이는 재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내가 무슨 문제 있냐는 듯이 태연하게 쳐다보자 갑자기 서아가 손을 뻗어서는 내 볼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정말 사람 깜짝 놀라게 하는 재능이 넘치는구나."

"이건 뭐 하는 거야."

"악마라고 해도 겉보기엔 고양이인데 화내봤자 현타만 올 거 같아서."

"잘 알고 있네."

"그래도 말랑말랑해서 기분은 풀리네."

다시 한번 냥냥펀치 마렵게 하는 미소를 지은 서아는 내 볼을 찹쌀떡처럼 쭈욱 늘렸다가 놓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는 폰이라도 하나 싶었는데 방금 배웠던 것처럼 천천히 마력을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그래도 성실한 제자가 생겨서 기쁘구만."

"하루라도 빨리 그 새끼들이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싶거든."

그렇게 서아는 저녁을 먹은 이후에도 계속 그러다가 잠들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맡에 앉아서는 이마에다가 앞발을 올렸다.

그리고 깊은 수면으로 빠지도록 유도하고는 꿈을 만들어냈다.

꿈속이니까 아무리 부자연스러운 배경이라도 상관없겠지.

구체적으로 땅이라던지 하늘을 만들기 귀찮은 나는 그저 새하얀 백지 같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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