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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71화 (71/154)

〈 71화 〉 라플라스의 고양이

* * *

서아가 기록하는 걸 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연구의 목적은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 아닌가? 늙은이들이 어쩌고 했던 거 같은데."

"아아, 그거?"

그녀는 근처에 누가 없는지 확인한 다음 나에게 대답했다.

"원래라면 기밀이긴 한데 너라면 상관없겠지. 이번 실험은 인공적으로 육체를 만든 후 영혼을 옮기는 실험이야."

"그걸 굳이 실험까지?"

영혼을 새로운 육신에다가 옮기는 것 따위 시도해 본 적도 없지만, 그냥 간단하게 영혼만 끄집어내서 텅 빈 몸에다가 넣으면 끝 아닌가?

아무래도 육신을 만드는 건 연구원 쪽이고 영혼을 옮기는 건 마법사들이 맡아서 하는 모양인 거 같지만 그 정도도 못하다니.

아니면 후원자에게서 돈을 더 뜯어내려는 전략인 걸까.

"그러게 말이다. 매일 같이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퇴사하고 싶다니까."

"인체 실험 정도야 당연하다는 건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하고 있었으니까 바꿔보려고 해도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지. 지금은 경력이 좀 쌓였는데도 그런데 말단일 때 항의라도 한다? 바로 그냥 퇴사당하는 거지."

"결사단이? 아니면 너네 회사가?"

"으음…. 정확히는 우리 회사에서 주도적으로 하고 있지만 결사단도 그거에 대해 눈을 감아 주고 있지."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지? 대규모로 주문이라도 써서 조작하나?"

"그건 잘 모르겠지만, 실험 대상은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고. 또 우리가 퇴사당해도 가족이나 친구들이 목소리를 내겠지만 거대한 회사 앞에서 그래 봤자 얼마나 가겠어?"

"대단한 블랙 기업이구만."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상황이 재미있어졌다.

"게다가 이쪽으로 오는 연구원은 모두 인터넷을 통해 전부 조사가 마쳐져서 인간관계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사람이 오거든."

"그 말인즉슨…."

"여기 오면 말 그대로 강제 아싸 인증이라는 거지."

"다른 연구원과 친하게 지내는 거 같던데."

"사람이 대화도 안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 아무리 아싸라고 해도 여기까지 올 정도면 통하는 것도 있을 테고."

"그럼 너도—"

"닥쳐라."

"아싸가 그런 말 해도 무섭지 않은데?"

"아 진짜!"

머리 위에 있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손을 피하며 시험관 너머로 도망치자 서아는 도저히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잘못하다가 시험관을 깨뜨릴 수도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큰 소리로 화내는 걸 들은 다른 동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서아는 오늘 야근해야 한다는 게 갑자기 빡쳤다면서 동료와 함께 윗대가리 욕을 좀 하다가 돌려보냈다.

아직까지도 핏줄이 두드러진 손으로 조심조심 시험관을 치운 그녀는 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시험관을 인질로 잡자 결국 포기했다.

"계속 그러면 고양이의 습성이 나올 것만 같아."

"그것만은 건들지 마. 만드는데 얼마나 복잡한 공정이 필요한지 알아?"

"내가 알 필요가 있어?"

"젠장."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시험관을 바라보는 서아의 눈꼬리가 바들바들 떨리는 걸 충분히 즐긴 후 다시 그녀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조금 더 나를 공경하라고. 츄르를 바치라던가 그런 말은 안 할 거지만 나는 네 스승이란 말이야."

"예이 스승님."

"그럼 이전에 했던 실험이나 한번 말해 보거라."

"무슨 사극 말투야? 그나저나 이전 실험이라."

"말하기 꺼려지는 거라도 있냥?"

"냥냥거리지 말라니까. 솔직히 처음엔 멀쩡한 시체만 봐도 토할 거 같았지만, 요즘은 끔찍하게 죽거나 아직 어린 애들의 시체를 볼 때만 그럴 정도로 나아지긴 했지."

"그래서 실험 얘기는?"

"지금부터 시작할 거니까 재촉하지 마셔요."

서아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실험이 내가 들어온 직후로 다섯 번째니까 입사 이후로 4년이나 지났네."

"그 정도로 경력이 쌓였다고 할 수 있나?"

"뭐,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 위에 있던 선배들은 모두 퇴사당했거든."

"저런. 그래서?"

"가장 처음에 했던 실험은 진시황의 불로초 전승을 재현하는 거였어. 신입이었던 나는 실험하는 도중 화분에 물 주느라 정신 없었지."

"지금까지 실험이 이어진 걸 보면 실패였겠군."

"당연하지. 그래도 실험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약이 괜찮아서 그렇게 질책하지는 않았어. 우리 회사는 연구의 부산물로 장사도 하거든."

"나쁘지 않은 전략이네."

불로를 위한 연구에서 나온 부산물이니 아마 피부 노화 방지와 관련해서 나오지 않았을까.

그 정도면 돈이 복사가 되는 지경이었을 거다.

물론 아래에 있는 연구원들은 갈려 나가겠지만.

"시체의 산을 쌓아서 만든 것들로 번 돈이 그렇게나 달달한지 모르겠지만, 그 장본인인 내가 말해봤자 웃기기만 하겠지."

"네가 그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바꿀 수 있을 거다."

"그게 찾아오기나 할까?"

"그러기 위해 지금 나에게서 배우고 있잖아. 아무튼 다음 실험이나 말해 보거라."

"응…. 그래, 그렇지. 다음 실험은 어려지는 회춘약을 만드는 거였어. 불로초를 먹는다고 해도 삐걱거리는 관절과 오락가락하는 정신 때문에 사는 게 불편할 테니까."

"참 빨리도 알아차렸군."

"애초에 도서관 방문은 1년에 한 번뿐이니까. 불로초 연구를 이어나가려고 해도 현대판 분서갱유 덕분에 자료 찾기도 어렵고."

그러고 보니 지금 결사단 중국 지부가 사실상 마비되었다고 했었지.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찾아가 볼까.

겸사겸사 현대판 삼국지를 찍어 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다.

하지만 그런 혼란은 점차 커져서 나도 모르게 스노우볼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니 웬만해서는 안 하겠지만.

"아무튼 도서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전승, 민간 신앙까지 전부 찾아봤어. 물론 전에 했던 불로초처럼 실패하고 부산물조차 쓸모없어서 욕만 더럽게 많이 쳐먹었지."

"회춘약이면 괜찮은 게 많이 나올 거 같은데. 회춘 자체에 실패했으니 부산물조차 쓸모없는 건가."

"대충 그렇지. 그 늙다리가 멀쩡했으면 아마 1년 동안 들을 욕은 다 듣지 않았을까? 정말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짜증 나지만 참았었지."

"오랫동안 연구가 이어진 거 같은데 명줄이 길군."

"이 세상엔 돈만 있으면 대부분은 해결할 수 있으니까. 시체로 산을 쌓으며 벌어들인 돈으로 자기의 건강을 사고 있는 거지."

"재미있는 표현이군."

나는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에 꼬리를 휘둘러 서아가 말하려는 걸 막았다.

"기록은 다 끝냈어?"

"어? 아, 여기."

"우리가 경력이 제일 많아서 밑에 애들한테 귀찮은 일을 떠넘기고 있지만, 슬슬 눈치 보이니까 가서 실험이나 진행하자."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어?"

"당연하지. 저거 실험하다가 실수하면 비용은 물론이고 들인 시간도 날아가니까 지켜봐야지."

"그럼 난 먼저 갈 테니까 시험관 좀 보관해 두고 빨리 와."

"오케이."

서아는 책상 위에 있는 시험관을 챙겨 후드 안에다가 넣고는 저기서 실험하는 무리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거 말하는 걸 깜빡할 뻔했네.

"어제 알려 준 마력 순환은 꼼꼼히 하고."

"아, 맞다. 알았으니까 실험은 방해하지 마라."

멈춰있던 체내의 마력이 움직이는 걸 지켜보며 그저 실험하는 것만 관찰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9시에 가까워졌다.

나는 그동안 마력이 제대로 돌고 있는지 보고 있었는데 느리긴 하지만 의외로 실수 한번 없이 계속 이어나가며 야근이 끝날 때까지 지속해나갔다.

몇 개 정도 더 만들어진 시험관을 보관하고 나서 퇴근한 서아를 따라 숙소로 돌아오니 바로 침대로 향하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거의 침대와 한 몸이 된 서아의 배 위에 드러누워도 힘이 없는 건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흠, 숙소와 연구실이 한 건물이라서 이 정도의 야근이 가능한 건가."

"그렇겠지.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게 아니었는데."

"그런 조항이 없던 계약서였나?"

"아니. 난 이렇게까지 거의 매일 같이 야근을 시킬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

"네가 선택한 회사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고? 그렇게 버텨 오긴 했지. 월급이랑 숙소에 혹해서 내가 미쳤지 정말."

"이젠 퇴사도 못하는 몸이지만."

"가능하긴 해. 하나는 너도 알겠지만 죽어서 나가는 거고, 나머지 하나는 정년 퇴직을 하던 사표를 내던 하는 거지."

"그런 게 가능했으면 진작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마법으로 비밀 유지 계약서를 쓰고 나가야 하는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어. 정년 퇴직한 사람은 애사심을 높게 잡아서 왠만해선 느슨하게 풀어 주지만…."

"사표를 낸 사람은 다르다?"

"뭐 하나만 잘못해도 당일에 심장마비돼서 발견되겠지."

회사를 나가서도 언제 죽을지 몰라하며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계속 여기에 남는 걸 선택한 모양이다.

나는 조금이지만 측은해져서 육구로 꾹꾹 눌러가며 마사지를 해줬다.

"내게 불쌍함을 느끼게 하다니. 특별히 마사지를 해주마."

"그거랑 마사지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받도록 할게."

"그럼 뒤로 돌아 임마."

오랫동안 앉아 있느라 혹사당한 허리를 위해 조금씩 마력을 사용해가며 눌러 주자 허리가 시원한 건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으아으— 거기보다 좀만 아래로."

"네 감각보단 내 눈이 더 정확하단다."

"아니 그래도, 읏! 오오—"

허리 부근에서 뚜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섬세한 조절을 이어나가니 금세 노곤노곤해진 서아의 눈이 반쯤 감겼다.

저녁은 실험실에서 대충 때운 걸 봤지만 씻지도 않고 자려는 모습에 뺨을 툭툭 건드려 봐도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은 들어 올려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포기한 나는 달이 지고 해가 고개를 들어 올릴 때까지 잠자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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